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10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0화
4. 도토리묵이 누구야?(2)
도토리묵.
시청자 수로 따지면 그리 잘나가는 스트리머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수익으로 따지자면 상당히 상위에 랭크될 게 분명한 스트리머였다.
이런 기괴한 가성비적 수익 모델을 갖고 있는 원인은 바로 그가 플레이하는 게임 때문이다.
그는 매니악한 게임만 전문으로 플레이한다.
“다른 게임도 많이 하는구나.”
스크롤을 내려가며 도토리묵에 대한 설명을 읽어가던 상현이 중얼거렸다.
“풍선껌 같은 종합 게임 스트리머였어.”
종합 게임 스트리머.
그건 상현이 원하는 형태의 스트리머였다.
단순히 상업적으로만 생각해 봐도 훨씬 유리한 형태다. 어떤 유행에도 흔들리지 않고 여러 가지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거니까.
물론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스트리머는 선택받은 소수뿐이다.
모든 게임을 다 잘하거나, 아니면 게임을 잘하는 것 대신 방송 감각이 뛰어나거나.
‘난 전자로 노력해 봐야지.’
상현은 스스로 생각했을 때, 방송감이 뛰어난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타고난 승부욕과 집중력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답장을 뭐라 해야 하나…….”
상념을 정리한 상현은 다시 문제의 쪽지 내용을 응시했다.
==== ====
안녕하세요. 아몬드 님. 저는 도토리묵이라고 하는 스트리머입니다. 요즘은 주로 킹덤 에이지를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저도 나름 게임을 좀 하는 편이지만, 아몬드 님의 플레이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습니다. 오해는 하지 마시구요. 저는 여자 좋아합니다.
여하튼, 요지는 아몬드 님과 합방을 한 번 진행해서 노하우를 전수해 주셔도 좋고, 아니면 제가 플레이를 분석해 보는 컨텐츠를 꾸려보면 어떨까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실제로 만나 뵙거나 혹은 가상 미팅으로도 가능합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다른 용건으로도 얼마든지 연락 주세요.
==== ====
부담은 갖지 말라 했지만, 심각하게 부담되는 내용의 쪽지였다.
“아…… 이런 거 잘 못 하는데.”
상현은 고민했다. 이런 합방이 그에겐 독이 될 경우도 있었다.
합방을 하는 스트리머로 이미지가 굳혀질 수도 있고, 모기처럼 비칠 수도 있으니까.
“처신 잘못하면 진짜 이상해져.”
상현은 -무려- 대기업 대리 출신이지만, 사회적 스킬은 거의 없는 편이다.
아무리 사회 활동해도 친구가 잘 안 생기는 스타일.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인 스타일.
그런데 어쩌다 건진 친구가 꽤나 좋은 스타일…… 인 듯하다.
지이이이잉.
그의 휴대폰엔 익숙한 글자가 떠오르고 있었다.
[김주혁]상현은 그가 무슨 용건인지는 모르나, 일단 받아봤다.
“어. 뭐냐.”
“야. 너 방송 검색해 봤는데. 네가 아몬드 맞지?”
“어.”
“이야~ 새끼. 반응 좋던데?”
“어. 그렇지.”
“원래 방송이란 게 이틀 차 만에 그 정도 되는 거냐? 어째 내가 더 흥분한 거 같다?”
“양궁 필수 소양이야. 차분한 거. 그리고 난 어렸을 때부터 천재여서 익숙해.”
“후…….”
잠시 전화기에서 욕이 들리는 듯했다.
“야. 그거 아냐?”
“뭐?”
“나 오늘 부장이랑 대판 싸웠다.”
“?!”
상현은 진심으로 놀라서 대답을 못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김주혁이 부장이랑 갈등이 있었다니? 과장도 아니고?
김주혁은 절대 그럴 성격이 아니었다.
참는 걸 세상에서 제일 잘한다고 자기 입으로 맨날 말하던 놈이다. 그러니까 그런 엘리트스러운 스펙도 갖출 수 있었던 거라고.
“목소리가 대충 싸운 게 아니라…… 진짜 뭐라도 결정한 것 같다?”
무엇보다 부장이랑 단순히 한판 싸웠다고 말하는 투가 아니었다. 상현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이건 좋은 예감이었다.
“그래. 아주 개판 냈지, 개판. 그 X새끼. 재떨이라도 내가 던지고 올걸.”
“……너 설마 퇴사했냐?”
“그래, X발.”
으하하하! 전화기가 터질 듯이 웃어대는 통에 상현은 잠시 귀를 떼어내고 인상을 찌푸렸다.
“어쩌려고?”
“어쩌긴 이직해야지.”
“아.”
아…… 그랬지.
상현은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주혁의 삶은 상현과는 전혀 달랐다.
그의 스펙과 능력이라면 어느 회사든 갈 수 있으리라. 애초에 이미 어디선가 오퍼가 수도 없이 왔을 수도 있다.
주혁은 단순히 스펙만 쌓은 멍청이가 아니었다. 그의 업무 능력은 진짜다. 그러니 이직해도 자신이 있을 거다.
그래서 상현은 아까부터 꿈틀거리던 생각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다.
‘이걸 말해볼까, 말까…….’
그가 들어도 정말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다.
‘너, 내 매니저가 되라!’
속으로 되새겨보니 진짜 정신병자 같은 소리였다. 아직 매출이라고는 고작 10만 원인 회사에 취업하라는 얘기나 다름없으니까.
그런데 상현은 그런 고민이 전부 부질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다음 순간 주혁이 꺼낸 말 때문이다.
“야. 나 잠깐 쉴 건데, 그동안 뭐 도와줄 거 있음 말해라. 가만히 있기도 심심하니까.”
“……뭐?”
“매니저 같은 거 필요 없냐?”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상현은 방금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있으면 좋기야 한데……. 너, 나 아직 개하꼬인 거 알지?”
“어. 알지. ‘아직’ 하꼬인 거.”
“…….”
“너 캡슐에서 나오면서 우는 거.”
“아아아아! 말하지 마!”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모습 보고 나도 생각이 많았다.”
“……?”
“진짜 좋아하는 것 같더라. 활 쏘는 거. 난 좋아하는 거 해본 적 없거든.”
“매니저는 좋아하냐……?”
“그건 모르지. 근데 재밌을 것 같아. 적어도 회사생활보단 재밌을걸? 솔직히 회사 생활 존나 재미없잖아.”
“그렇지.”
“나 정도면 1년 정도는 쉬어도 이직에 문제없어. 그리고 잘되면 너 계약으로 존나 묶어서 악덕 엔터 사장까지 할 거니까 걱정 말고.”
상현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이럴 수가.’
이건 주혁의 순수한 호의였다. 아무리 그가 고스펙의 능력자라지만, 그에게도 1년은 소중한 시간이다.
하다못해 연애를 해도 될 시간이다.
그 시간을 지금 상현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겠다는 거 아닌가?
그간 다니던 기업의 연봉으로만 따져도 5천만 원은 거뜬히 넘을 정도의 제안이었다.
“그…….”
상현이 미안함에 망설이는 것을 느끼고, 주혁은 덧붙였다. 일부러 건방진 목소리로.
“그러니까 내가 너 한번 키워보려고 하는데. 어떠냐?”
피식.
상현은 결국 웃고 말았다.
이건 또 다른 각도에서 참 미친 소리였다.
주혁이 대단한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매니지먼트는커녕 매니저 경험도 없는 대리 나부랭이가 누굴 키우고 자시고 한단 말인가?
그런데 너무나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매니저와 아무것도 없는 스트리머.
이 둘이 같이 대기업을 퇴사하고 나란히 성공한다……. 생각만 해도 미소가 나오는 그런 이야기였다.
“네가 키우긴 누굴 키워. 내가 돈방석 앉게 해줄 테니까, 당장 사표 수리시켜!”
전화기 속에선 폭소가 터져 나왔다.
“부장 따라한 거냐?”
“김 대리. 내일부터 당장 할 일이 있는데.”
“뭔데.”
상현은 일전에 자신이 받은 쪽지에 대해서 말했다.
“합방 제의? 오, 역시 내가 고른 인재구만. 벌써 그런 1티어가 합방을 제시하다니.”
주혁의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괜찮은 건가?”
“말이라고 하냐? 손해 볼 거 하나 없는 건데?”
“그런가? 근데 내가 사람한테 잘 보이는 거 잘 못 해서.”
“그건 그렇지. 근데 일단은 당연히 무보수로 나가고, 그냥 당당하게 실력 보여주면 돼. 합방 자체가 진행이 잘되면 잘 보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그래, 그래.”
상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았다. 어차피 어떻게 되도 손해 볼 건 없는 만남이었다. 상현은 잃을 게 아예 없으니까.
잘 보이려고 크게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열심히 플레이만 해도 반응은 좋을 거다.
“야, 그리고 나도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그건 만나서 말해줄게. 일단 내일 어디서 만날지 톡으로 보내. 나도 갈게.”
“오키오키.”
탁.
그렇게 전화를 끊은 상현은 벅차오르는 숨을 겨우 골라야 했다.
“……뭔가 갑자기 일이 엄청나게 진행된 느낌이네.”
상위 0.1%의 인재를 매니저로 부리게 생겼고, 이쪽의 1티어 스트리머와 합방 제안도 받았다.
누군가 그랬었다.
성공의 길을 달릴 땐, 그 어느 때보다 세상이 빠르게 움직인다고. 주변의 풍경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쩌면 상현은 지금 그 성공가도의 한편에 이미 올라타 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이미 그의 눈엔 다른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회사를 나온 것에 대한 걱정도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몬드에 우유만 먹어도 에너지는 넘쳤다. 아침엔 눈이 저절로 번쩍 떠졌다.
내일도, 내일모레도 방송을 할 생각에 두근대는 심장이 저절로 머리를 깨우니까.
우드드득.
그는 아몬드를 추가로 입에 털어 넣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도토리묵 님. 아몬드입니다.]* * *
도토리묵은 간만에 세팅한 머리를 다시 만지며 시계를 확인했다.
“흠.”
너무 일찍 와버렸다.
“오빠. 근데 이런 하꼬도 실제로 만나주고 해도 되는 거야?”
그가 약속 시간을 무려 30분이나 먼저 와서 앉아 있는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매니저가 투덜댔다.
“야. 가능성을 보고 만나는 거지. 누구는 처음부터 슈퍼스타냐?”
“참나. 저번에도 무슨 하꼬 여 스트리머랑 꼬여서 X될 뻔 해놓고.”
“어허, 인마. 이분은 남자고! 나도 남자고! 너는…… 매니저고!”
도토리묵은 이전 스캔들에 대해서 호통으로 묵살하며 매니저를 진정시켰다.
“봐, 인마. 내 안목이 맞나 틀리나. 일단 피지컬은 국내 최상급이야. 이런 사람을 먼저 발굴하고 미리 만나야 나중에 훨씬 친해지고, 나도 덕 본다고.”
“하. 실력만 좋다고 뜨는 세상이냐고. 합방 토크쇼 같은 거도 하려면 와꾸도 좀 받쳐주고 해야 한다고. 그 사람 게임 보정이랑 코스튬 벗으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지?”
“음…….”
도토리묵은 이에 대해선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게임 속의 아몬드는 여러 효과들로 보정이 된 모습이니까. 실제 사람이라기보단 게임 캐릭터에 더 가까웠다.
그 외 그의 실제 얼굴이 나온 장면은 없었다.
“그리고 막상 게임만 해대는 찐따들 이런 데 나와서 말도 못 하고, 살만 뒤룩뒤룩 쪄가지고…… 와…….”
매니저가 말을 하다 말고 어딘가를 응시했다.
깔끔한 슈트를 빼 입은 남자 둘이 카페 입구로 들어왔던 것이다.
곧게 편 허리, 수트 핏, 깔끔한 포마드. 누가 봐도 멋들어진 거대 기업에 다닐 것 같은 세련된 사회인들의 모습이었다.
“와. 내 취향이다. 저렇게만 생겼으면 좋겠는데…….”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걸까. 놀랍게도 그 둘은 도토리묵 쪽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왜, 왜 이쪽으로…… 오지……?”
심지어 그들은 도토리묵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손까지 내민다.
“도토리묵 님 맞으시죠?”
“예…… 혹시…….”
“안녕하세요. 아몬드, 유상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