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104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04화
36. 상현의 보상(3)
깨질 듯한 두통이 엄습해 왔다.
동시에 흐릿했던 어제의 기억도.
‘어제 재밌었지.’
지아는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숙취가 머리를 후려치는 와중에도 미소를 머금었다.
어제 술을 마시면서 한 번 더 친해졌다.
처음 술을 마셨을 때보다 훨씬 더 말도 많이 하고 웃기도 많이 웃었다.
이 둘은 어쩌면 정말 좋은 인연일지도 몰랐다. 한동안 마음이 열리는 사람은 없었는데. 이 사람들은 어쩐지 다르다.
뭔가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들 같달까.
이렇게 말하면, 심장이 차가운 건 죽은 사람들뿐이라고 누군가-대개는 주혁 같은 인간들이- 우스갯소리로 받아칠 것이다.
그런데 어쩌겠나.
회사엔 죽은 사람들뿐이었다.
이 나라 전체가 어쩌면 죽은 사람들로만 이뤄져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죽은 사람들만을 위한 나라인지도 몰랐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만도 못한 대우를 받는다.
산 사람의 말은 들어주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말만이 힘을 가졌다.
끊임없던 야근의 굴레가 겨우 멈췄던 것도 회사 동료가 과로사로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든 생각이 ‘다행이다’였다. 나보다 먼저, 누군가 죽어서 드디어 뭔가 바뀌겠구나.
누군가 저 사람의 말을 이제야 들어주겠구나.
그게 제일 처음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이었다.
어느새 죽어 있었던 것이다.
나도.
“……그나저나 천장이 낯서네.”
누워서 잡생각에 빠져 있던 지아는 눈을 껌벅이며 천장을 바라봤다.
내 방 형광등이 저런 조명이었던가.
도배지도 조금 다르고.
“!”
휙.
갑자기 벌떡 일어나 고개를 돌리는 지아.
‘……뭐, 뭐야!? 여긴 어디야?’
창을 가린 녹색의 풀과 나무들, 나뭇잎 물결을 따라 들어오는 햇살.
난생처음 보는 방의 풍경이다.
지아는 입을 틀어막았다.
‘설마…….’
아마 그 설마가 맞는 듯했다.
* * *
“미안해요.”
지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식탁에 앉았다.
식탁에는 주혁이 끓여놓은 소고기 토마토 스튜가 놓여 있었다.
새콤하고 감칠맛 도는 냄새에 당장에라도 숟가락을 들이밀고 싶었지만.
지아는 우선 사과부터 했다.
“야. 너 그러다가 진짜 큰일 난다. 어? 쪼끄만 게.”
주혁이 이때다 싶은지 지아에게 한마디 했다.
“…….”
지아도 오늘만큼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너, 어제 누가 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 아냐? 만약에 혼자였으면 어떡할 뻔했냐.”
“……!”
지아의 눈이 커졌다.
그래서 여기로 데려왔구나. 열쇠를 결국 못 찾아서 데려온 줄로 알았는데.
“남자…….”
“그래. 키는 대충 상현이보다 조금 작고──”
주혁이 이러쿵저러쿵 묘사했다. 물론 직접 본 건 상현이지만, 주혁은 마치 자기가 본 듯이 말을 해댔다.
‘그 새끼가…… 집까지?’
묘사를 종합해 보면 전 남친이었다.
안 그래도 오늘 휴대폰에 메시지가 몇 개 와 있었다. 읽지도 않고 전부 지웠었는데.
집에 왔었다는 내용이었나 보다.
절대 연락하지도 말고, 보고 싶지도 않다고 했는데. 대체 뭘 말하겠다고 집까지 찾아왔을까.
“어떻게 헤어졌길래.”
상현이 지아의 옆자리에 앉으며 넌지시 물었다.
“어, 어떻게…….”
지아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표정이랑…… 그거 이 각도에서 다 보이거든. 보려고 본 건 아니고.”
상현은 지아의 휴대폰을 가리켰다.
“어떻게 헤어졌길래 ‘개새끼’가 되었나 궁금하네.”
“말하자면 길어요.”
“그래. 길~겠지.”
상현은 별로 들을 생각은 없었는지, 그렇게 대답하고는 토마토 스튜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그, 근데 고마워요. 제가 위험할까 봐 여기까지 데려와 주시고…….”
피식.
상현과 주혁은 그냥 웃어 보일 뿐, 별다른 타박은 더 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후 지아의 집 앞까지 데려다준 상현은 지아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건넸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얘기해 줘. 그럼 나도 들려줄게.”
“……뭘 들려주실 건데요?”
“내 첫사랑.”
씨익.
상현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런데 왜일까.
우는 것보다도 더 슬퍼 보인다.
“네…….”
상현은 손을 휙휙 저으며 다시 위로 올라갔고.
지아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아몬드의…… 첫사랑.”
28살이면 첫사랑 얘기는 조금 오래된 얘기일 것 같다.
왠지 모르게 굉장히 궁금했다.
“궁금하네.”
* * *
“잘 갔냐?”
설거지를 하던 주혁이 뒤통수로 묻는다.
“어. 잘 갔지. 설거지는 내가 하려 했는데.”
“쌓여 있는 거 못 본다. 난.”
“거참.”
상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소파에 앉았다.
나뭇잎 무늬로 파고드는 햇살이 따뜻했다. 어제부터 시작해서 마치 오늘까지 휴가인 듯했다.
“아, 약속 시간 잡혔다. 풍선껌 님이랑.”
설거지를 마친 주혁이 고무장갑을 털며 말을 꺼냈다.
“내일 방송 시간 2시간 전. 그러니까 5시면 될 것 같다. 디스 월드에 들어가서 만나기로 했다.”
“아. 온라인이구나.”
“어. 어차피 듀오만 하는 거니까.”
스트리머끼리의 합방은 보통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특히나 목적이 게임을 하는 거라면 더욱 그렇고, 그 상대가 풍선껌이면 더더욱 그렇다.
풍선껌은 오프라인 합방은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상현은 조금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합방이 잘되면 직접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걱정 마라.”
“그래.”
어제 주혁이 말했었다.
합방 반응이 좋으면 같이 광고 모델이 될 예정이라고.
원래는 풍선껌이 단독으로 광고 모델이 되었었는데, 거기에 판타지아에서 아몬드를 추가적으로 고려 중이라고 했다.
일단 둘의 케미가 중요했다.
‘그거라면 괜찮을 거야.’
상현은 풍선껌의 방송을 3년간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기에, 케미가 안 맞을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상현은 갑자기 고개를 갸웃했다.
“어……?”
“왜?”
“그러고 보니 나 오늘 방송 뭐 하냐?”
다이아 랭크를 가는 것만 생각했던 그이기에.
그다음을 생각해 두질 않았다.
주혁도 잠시 턱을 매만졌다.
“단순히 오늘 문제가 아닌 것 같네. 회의 좀 할까?”
지금이 아몬드 방송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이다.
* * *
오후 3시가 되어서도, 아몬드의 방송은 켜지지 않았다.
커뮤니티에서는 또다시 아몬드에 대한 적의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솔직히 다이아, 마스터 큐에서 아몬드? 좀 오바 아님?] [아몬드 뇌 없이 게임해서 마스터 만나면 탈탈 털려] [마스터한테 돌려 깎기 당하고 바로 참교육 각 ㅋㅋㅋ] [피지컬로는 원래 다이아까지지] [솔직히 다이아 마스터 큐에서는 좀 무리지 ㅋㅋㅋ] [적어도 예전처럼 양학하듯이 죽이진 못할 듯]전자파의 기록을 무려 4배 차이로 격파한 건 어느새 다 잊고, 또 그의 한계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 커뮤니티들의 흔한 풍경이다.
그렇게 아몬드가 방송을 켜기 직전인 오후 7시까지도 그런 글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이 새끼 이제 쫄아서 딴 게임함 ㅋㅋㅋㅋ 내 손모가지 검] [ㄹㅇㅋㅋ 아몬드 이제 배틀 라지 못 하지] [이 새끼들 일부러 도발해서 아몬드 배틀 라지 하게 하려는 어둠의 견과류단 아니냐? ㅋㅋㅋ] [아몬드는 킹덤을 하게 될 것이다 병신들아] [킹덤무새 좀 꺼져 ㅋㅋㅋㅋ] [솔직히 마스터 큐에선 발릴 게 분명한데 너희 같으면 하겠음?]급기야는 아몬드가 쫄아서 배틀 라지를 하지 않을 거라는 말까지 나왔다.
“참내.”
아몬드는 피식 웃고 말았다.
이젠 이런 일이 너무나 익숙했다.
오히려 저런 글이 없으면 힘이 안 날 지경이다.
“들어간다.”
“오케이~”
커뮤니티 글을 주르륵 확인한 후, 아몬드가 캡슐로 들어갔다.
방송은 오후 8시가 되어서야 켜졌다.
평소와 다른 시간에 켜진 방송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니, 뭐야 오후 8시에 방송 실화?
-0군 기상 1시간 전에 방송 켜누 ㅋㅋㅋ
-어이어이 다이아 달자마자 건방져진 거냐고!
-다시 랜덤 방송이누 ㅅㅂ ㅋㅋㅋㅋ
-키야 다이아 달자마자 바로 초심!
-포브스 선정 초심을 잃지 않는 스트리머 당당히 1위!
-꺄아 아몬드!
-퇴근 때 켜니까 좋구만 뭘 ㅋㅋ
-백수들은 어쩌라고 퇴근 때 켜냐아아!
-아하아하!
-아하! (아몬드 쉑 하이라는 뜻!)
주루룩 올라가는 채팅 스크롤.
커뮤니티 여론과는 다르게, 채팅창에선 오로지 그를 반가워하는 사람들뿐이다.
[현재 시청자 3.8천]4천에 가까운 시청자가 방송을 켬과 동시에 입장했다. 이는 다이아 승격전 방송을 할 때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다.
‘당연한 거지. 이 정도 하락은.’
아몬드는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예상하던 바였다.
다이아 승격전은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와서 구경했던 역대급 콘텐츠였고, 지금의 아몬드 방송은 어떤 목적도 없는 그냥 게임 방송이다.
그러니 다시 원래의 사이즈로 돌아가는 게 당연했다.
“트하!”
인트로 음악이 다 끝나고 나서는 그래도 꽤 많은 시청자가 채워졌다.
[현재 시청자 5.3천]게임을 시작하면 아마 6-7천을 조금 웃돌 것이다. 이 정도면 훌륭하게 방어된 수준이다.
-아하아하!
-아하!
-하이요
-오멘
늘 그렇듯이, 루비소드가 후원 스타트를 끊었다.
[루비소드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아몬드 님, 풍선껌 님이랑 합방은 언제인가요!?]“아. 그건 내일입니다. 오늘은 다이아 맛 좀 봐보려고 하는데요. MMR이 높아서 아마 마스터 끝자락도 같이 잡힐 것 같아요.”
-와 마스터 ㄷㄷ
-MMR 졸라 높은가 보네ㄹㅇ
-마스터 켠왕 ㄱ?
-마스터 켠왕 ㅋㅋㅋㅋ
-마스터는 에바지. 프로게이머 할 거냐?
마스터 켠왕.
생각해 보지 않은 콘텐츠는 아니다. 다이아를 이렇게 빨리 달았으니, 마스터를 가 볼까 고민하는 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나 마스터는 프로들이 노리는 영역이다. 아몬드는 프로게이머가 아니라 스트리머다.
이게 오늘 주혁과의 회의에서 주된 내용이었다.
지금은 즐겁게 방송을 하는 게 더 중요했다.
비록 그가 ‘쫄아서’ 마스터에 도전하지 못한다는 오명을 쓰더라도, 일단 시청자들이 즐거운 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 정도 오명은 웃으면서 써주리라.
“마스터 승급은 좀 어렵고, 그동안 열심히 달렸으니 오늘은 즐겜 모드입니다!”
상현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와중에 다른 면에서 실망한 시청자가 하나 있다.
[킹치만 협회장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헐…… 또 배틀 라지냐!]“아…… 킹덤은 음…….”
-ㅋㅋㅋㅋㅋ 킹덤은 미국 갔어 ㅠ
-미국은 무슨! 하늘나라겠지!
-거기는 살 만한가요!? 에밀리아!?!
[로제니타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아몬드. 날…… 버린 거야?]킹치만 협회에서 몰려온 시청자들의 후원이 연이어 터졌다.
‘나중에 한번 해주긴 해야겠네.’
아몬드는 킹덤도 언젠간 다시 해주리라 생각하며 일단 게임을 실행했다.
다이아 랭크에서의 첫판이었다.
“자. 오늘 할 게임은~~~ 배틀 라지!”
두둥──
그의 활기찬 인사말과 함께 울려 퍼지는 배틀 라지 특유의 북소리.
동시에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어버렸다.
* * *
-즐겜? 마스터에서 개털릴까 봐 보험 깔고 가네
-자기도 빡겜은 안 된다는 거 아나 봄 ㅋㅋ
-보험 에반데
아몬드의 즐겜 선언에 대해 비꼬는 듯한 채팅들이 몇 개 올라왔다.
시청자 수가 많아지면 당연한 부작용이었다.
이런 부작용에 특효약은 당연히 무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몬드는 즐겜 선언답게 첫판부터 무기고 돌진이었다.
“무기고 갑니다아!”
무기고 플레이는 플래티넘 큐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어차피 칼전과 활전이다. 그런 쪽에서 아몬드를 당해낼 자는 다이아~마스터 구간에도 별로 없었다.
플래티넘과 다른 게 있다면 사람의 숫자.
사람들이 별로 없다.
운영에 익숙한 고수들답게 진즉에 무기고는 포기하는 걸까?
어찌 됐든 아몬드는 무기고를 폭파시키고, 여느 때처럼 블루존을 따라서 낙오되는 자들을 죽이고 다녔다.
킬당 미션이 걸린 것도 아닌데, 무려 30킬을 올려 버렸다.
다이아 큐에서 30킬이라니. 이건 전혀 즐겜이 아니었다.
‘어……?’
정신없이 플레이하다 보니 어느새 떠 있는 숫자.
[1등]첫판은 1등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판도.
[1등]그다음 판도.
[1등]‘이거 뭐야?’
생각보다 너무 쉽게 풀리는 게임에 아몬드는 당황했다.
[다이아몬드 Ⅳ 승급전이 가능해졌습니다!]마지막 판마저도 1등으로 마치고 나온 아몬드의 휘장이 밝은색으로 빛났다.
승급전을 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미친 ㅋㅋㅋㅋㅋㅋ
-마스터 안 가겠다면서요 ㅋㅋㅋㅋ
-엌ㅋㅋㅋ
-인공지능 러비 : 넌 마스터로 꺼져라.
-세 판 만에 다시 승급전 씹ㅋㅋㅋㅋ
-승급전이 복사가 된다고!
아몬드는 이쯤 되니 고민됐다.
‘마스터 가야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