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118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18화
41. 저스트 채팅(3)
“릴……?”
타코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되물었다.
풍선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릴.”
“내가 아는 그 라이프 이즈 레전드?”
“그래, 인마. 네가 프로까지 했던 그 릴!”
“와! 제기랄 나 그럼 여태까지 뭐 한 거냐!? 으아아아! 진짜 인생 레전드다! 라이프 이즈 레전드!”
이게 그렇게까지 충격적인 소식였던 걸까. 타코는 있지도 않은 머리털을 잡아 뜯으려 하며 소리를 질렀다.
“하아. 술이나 마시죠.”
소주잔을 들어 올리는 손이 덜덜 떨리기까지 했다.
‘하긴. 내가 이해할 수는 없겠지.’
풍선껌은 전형적인 게임 못하는 놈이다. 그의 성격처럼 게임도 천하태평으로 진행해서다.
그러나 타코 같은 프로 레벨에 도달했던 사람들은 달랐다.
기본적으로 승부욕이 굉장히 높았다. 풍선껌 같은 범인들은 감히 견주지도 못할 정도다.
한때 꽤 잘나가던 프로였던 타코도 마찬가지.
그깟 게임에서 한 번 굴욕을 당했다고 머리까지 죄다 밀지 않았나.
프로게이머들은 지는 걸 죽도록 싫어한다. 단순히 돈이나 명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진다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꿀꺽.
타코는 소주잔을 휙 꺾으며 알콜을 털어 넣었다.
“하아.”
쓴 표정을 지으며 뱉는 한숨에 술 내음이 묻어 나온다.
“형님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몬드가 릴 한다는 거요.”
“아. 난 매니저한테 전해 들었어.”
주혁과 상현이 이야기를 끝낸 후, 풍선껌의 매니저에게 슬쩍 언질을 넣어두었다.
풍선껌이 먼저 제안했던 콘텐츠이니까.
“그…… 사실 내가 릴 하자고 꼬드겼는데…….”
풍선껌은 눈치를 보며 볼을 긁적였다. 왠지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아서다.
타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에이. 신경 쓰지 마요. 이게 뭐라고.”
“너한텐 중요하잖냐.”
“저한테만 중요하죠.”
어딘가 자조적인 어투였다.
“그나저나 릴이라…….”
타코는 예전 프로 시절을 떠올렸다.
사실 별로 좋은 기억은 없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냥 이기기 위해 죽어라 발악하던 날들의 연속.
하루하루로 따진다면 지옥, 혹은 천국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다.
그런데 왜일까.
어느덧 멀리 서서 바라보면, 그 롤러코스터 같은 굴곡이 만들어내는 파도가 아름답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나도 다시 해볼까.”
“프로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프로로 다시 도전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프로의 세계는 2-3년간 쉬어온 그가 뛸 수 있을 정도로 녹록지 않다.
타코는 단지 연을 끊었던 릴을 다시 해보면 어떨까 생각한 것이다.
“야. 릴이라면 학을 뗀 놈이…… 그거 다시 할 자신이 있냐?”
“글쎄요.”
“그렇게 아몬드가 이기고 싶나?”
“하아.”
타코가 다시 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취한 듯 숙인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형님은 이 기분 모릅니다.”
“그래. 내가 뭘 알겠냐.”
풍선껌은 위로해 주려는 듯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절대 모르시죠. 브론즈잖아요.”
“에라이! 나 실버야, 이 새끼야!”
“그게 그거죠.”
* * *
낮잠에서 일어난 주혁은 크게 당황했다.
‘아니, 이게 뭔…….’
상현이 말도 없이 캡슐에 들어가 있었다. 거기서 끝이라면 놀랄 것도 없었다.
매일 하는 게 방송이니까.
‘뭐 할지도 안정했잖아?’
문제는 이제 배틀 라지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는 것이다.
종합 게임 스트리머들의 가장 큰 장벽이 바로 게임이 바뀔 때다.
잘못되면 시청자가 우르르 빠져나가고 그대로 떡락한다.
이미 킹덤에서 한 번 경험이 있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사이즈가 크지 않아서 별로 상관없었다. 더군다나 킹덤 에이지 같은 마이너 게임에서 메이저로 옮기는 건 리스크가 덜하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아몬드의 현재 유명세의 8할은 배틀 라지의 팬층에서 비롯되었고, 여기서 전자파의 신기록까지 깨버렸다.
이 게임을 버리고 다른 게임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건 아예 다른 문제다.
그래서 서로 신중하게 이 문제에 접근하기로 했다.
게임 전환을 어떻게 부드럽게 진행할 건지.
아직 그 방법을 강구하지 못한 참이었다.
근데 왜 방송을 하고 있을까?
‘설마, 설마…….’
주혁의 머리에 최악의 경우가 스쳐 간다.
설마 아몬드가 벌써 게임을 바꿔서 플레이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차라리 배틀 라지 마스터 켠왕을 하라고 빌면서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다행히도 위의 두 가지 경우 다 아니었다.
‘이게 뭐야?’
아몬드는 유하연 아나운서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처음엔 무슨 서로 우결이라도 찍는 줄 알았다.
꽃동산에서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실실 웃고 있으니, 누군들 그렇게 생각할 법했다.
아마 의도된 연출일 거다.
인터뷰는 자극적일수록 좋으니까.
‘아니, 근데 왜 갑자기 인터뷰지? 생방에서 후원으로 신청했나?’
주혁은 대충 시나리오를 가정하며 일단 실시간 방송을 주목했다.
초조가 잔뜩 배인 얼굴로.
“이건…….”
그러나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주혁의 얼굴은 밝아졌다.
시청자 그래프는 우상향 중이었고, 배틀 라지가 아닌 수다 방송이라고 믿기 힘든 수준이었다.
‘이거 적기다.’
주혁이 보기엔 지금이 기회였다.
배틀 라지를 보러 온 시청자들이 아닌, 아몬드를 보러 모인 시청자들.
이때 게임을 바꾼다는 말을 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릴(LIL)이란 걸 해볼까 합니다.]아몬드가 주혁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발표했다.
쿵.
주혁은 흥분하며 책상을 쳤다.
“이 천재 새끼!”
채팅창의 반응이 굉장하다.
-와! ㄹㅇ?!
-헐 ㅋㅋㅋ 전자파에게 전면 도전!?
-오오오오 릴!
-와아아아아ㅏ
-ㄹㅇ 존잼이겠누
-캬
-소리 질러어어어
이렇게 성공적이라니.
이렇게 간단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놀랍게도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게임 전환’을, 자고 일어나니 아몬드가 그냥 해결해 버렸다.
주혁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다른 보조 모니터에서 다시 보기를 돌려봤다.
“……소통 방송이었구나!”
아몬드는 오늘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았다.
갑자기 방송을 켜더니, 아무 말 대잔치인 소통 방송을 했던 것이다.
이게 게임 전환 성공의 큰 지분이었다.
오늘 들어온 시청자들만큼은 배틀 라지 아몬드가 아니라, 그냥 인간 아몬드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오늘 또 마침 지아가 올튜브에 전자파 기록 격파 영상을 올려서, 시청자 물량도 엄청났다.
이때 소통 방송을 진행해 버린 건 신의 한 수였다.
‘와. 난 풍선껌이랑 자연스레 합방하면서, 명분 만들려고 생쇼를 다 했는데…….’
그런 고생은 할 필요가 없었다.
아몬드 방송의 본질은 아몬드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주혁도 알고 있었다. 잠시 망각했던 것이다.
풍선껌이라는 매혹적인 도깨비방망이에 눈이 팔려서 잊었던 것이다.
이 방송의 주인은 아몬드다.
누구보다도 아몬드가 스트리머로서 중심을 잡는 게 중요했다. 그게 부드러운 게임 전환의 가장 정석적인 길이었다.
훌륭한 정공법을 뻔히 두고 이상한 사파 무공을 쓰려 했던 것이다.
반면 아몬드는 가장 시청자가 몰려올 법한 시기에 과감하게 소통 방송을 진행하면서 방송의 기둥을 확고히 했다.
여긴 배틀 라지를 보는 곳이 아니라, 아몬드를 보는 곳이라는 걸 완벽하게 어필해 낸 것이다.
그의 매력을 여지없이 보여준 것이다.
“하. 진짜…….”
주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대단한 새끼야.”
채팅방 반응은 엄청나게 좋다.
시청자는 빠져나가긴커녕 오히려 더 몰려든다. 유하연과 합방을 하는 중이라는 제목 때문이다.
방금 주혁이 제목을 바꿔준 것이다.
‘커뮤니티도 확인해 보자.’
일단 라이브 반응은 좋은데. 더 날 것의 반응을 보려면 커뮤니티로 가야 했다. 특히 배라31 커뮤니티로.
“후우.”
주혁은 긴장감이 섞인 숨을 내뱉으며, 배라 31로 향했다.
* * *
[실시간 아몬드 “똥겜 배라 안 해” 선언]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게시글의 제목이다.
시작부터 만만치가 않다.
‘반응이 좋진 않겠지. 여기는.’
애초에 배틀 라지를 좋아하는 놈들이 모인 커뮤니티인데, 배라를 안 하겠다고 하는 스트리머에게 좋은 소리가 나올 리가 없다.
==== ====
ㄹㅇ임
이제 릴 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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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겜은 맞아. 인기는 많지만 ㅎ
└그런 논리면 릴도 마찬가지지 ㅅㅂ
-ㅋㅋㅋㅋㅋㅋㅋ제목 어그로 미쳤누
-언제 그렇게 말했어 X련아 ㅋㅋㅋㅋㅋ
└어케 말함? 나 못 봄
└아몬드 이제 배틀 라지에서 걍 더 하고 싶은 게 없다 함. 한 게임만 너무 오래 하는 거 싫다 함.
└ㄹㅇ? 종겜스였냐?
└원래 킹덤 에이지 하던 양반인데. 당연히 종겜 스트리머지.
-뭐 사실 이렇게 될 것 같았어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쌍욕이 박혀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흔히들 이런 일이 벌어지면 ‘단물만 쪽 빨고 튀냐!?’ 따위의 논지가 자주 등장하는데.
적어도 지금은 그런 게 없다.
한마디로 아몬드의 전환 타이밍과 방식이 아주 좋았다는 뜻이다.
오히려 이런 반응이 더 많다.
[와 박수 칠 때 떠나네?] [마스터 다는 거 보고 싶긴 했는데. 실력 증명은 이미 다 했지 뭐 ㅋㅋㅋ] [이거 아몬드 까들한테 ‘고뢔서 쵈린저는 돠셨냐구여어어어?!’ 할 여지 남겨주는 거잖어 엌ㅋㅋㅋㅋ] [ㄹㅇ 배붕이들한테 깔 여지를 남겨주고 가시네]아몬드가 적절한 시기에 게임을 바꿨다는 의견들이다.
박수 칠 때 떠났다는 극찬에 가까운 말도 많았다.
물론 조금 색다른 의견도 있다.
[ㅈㄹ ㄴㄴ 견과류단한테 아몬드 신격화 여지 남겨준 거지. 솔직히 프로 레벨 가서 개털리면 개쪽인데] [프로들한테 개털릴까 봐 접는 거지 ㅋㅋ] [타코야끼가 벼르고 있을 텐데 무섭지 당근 ㅋ] [야 솔직히 챌린저 가서 활쟁이 짓 가능하겠냐고] [챌린저가면 컨셉 버리고 총 들거나 아님 개털려야 하니까 접는 듯]아몬드가 위쪽 플레이어들의 실력이 두려워서 접는다는 의견들.
피식.
이런 것쯤이야. 주혁은 오히려 웃어넘겼다.
이 정도면 그가 상상했던 반응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애초에 스트리머인데 거기까지 가서 뭔 프로들이랑 대결을 해 병신아 ㅋㅋㅋ]손수 이런 의견을 써준 후.
그는 이만 커뮤니티를 나갔다.
“후아.”
여유롭게 기지개를 켜며 현재 라이브 중인 아몬드의 방송을 쳐다봤다.
그는 아직도 유하연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인터뷰 중이었다.
‘저거 사심 섞인 거 아냐?’
분명 인터뷰할 건 이제 없을 텐데 유하연이 계속 말을 이어나가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어찌 됐든 아몬드가 알아서 잘 커트할 것이니, 주혁은 이만 다른 사이트로 눈길을 돌렸다.
바로 ‘gosu.gg’라는 사이트다.
여기엔 ‘Life is Legend’ 즉 ‘릴’에 대한 모든 정보와 통계가 담겨 있었다.
주혁은 이미 1주 전부터 이곳을 오가며 상현을 위한 ‘화신’들을 찾아두었다.
릴은 자신의 실제 신체를 구현해 놓은 아바타에, ‘화신’이라는 존재가 빙의한다는 컨셉이다.
배틀 라지에선 총과 활 등의 무기가 있다면, 릴에선 이 화신이 있는 것이고. 이를 얼마나 잘 다루냐가 게임의 승패를 좌우한다.
[사나 : 빛의 선율]주혁이 가장 눈여겨본 건 사나라는 화신이다.
일단 활을 쏘는 게 마음에 든다.
[2티어]문제는 현재 성능 평가가 2티어라서 조금 애매하다는 것 정도인데.
주혁은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
오히려 좋았다.
언제부터 아몬드가 대세를 탔던가?
[패시브 : 매번 적의 신체에 작은 타깃이 생깁니다. 이 타깃을 빛의 화살로 맞히면 자신과 아군의 체력이 크게 회복됩니다.]어차피 이 패시브 하나 보고 고른 화신이다.
‘아몬드라면 다르겠지.’
저 패시브를 극한까지 활용할 수 있는 아몬드라면 분명 화신의 성능을 100% 이상으로 끌어올려 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