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133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33화
47. 촬영장(1)
오 실장이 경고했던 걸 생각해 보면…….
“안녕하세요! 아몬드 님! 이쪽으로 먼저 와주세요!”
“잠시 대기 부탁드립니다!”
“아몬드 님이죠? 쓰리디 팀입니다! 설명은 미리 들으셨나요?”
촬영장 분위기는 생각보다 굉장히 좋았다.
표정도 밝고, 전부 친절했다. 오히려 너무 친절해서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그렇다고 오 실장이 없는 말은 한 건 아니었다.
‘나 때문에 많이 바빠진 건 맞는 것 같은데.’
실제로 상현에게 달라붙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오 실장이 미리 말했듯이 쓰리디 팀이 먼저 붙는 건 물론, 거기에 시간을 아끼기 위해 메이크업 팀까지 동시에 붙었다.
다른 사람들은 미용실처럼 생긴 간이 대기실에서 메이크업을 받는 반면, 상현은 온갖 컴퓨터와 홀로그램에 둘러싸인 채로 받는다.
“생체 코드 확인부터 할게요.”
좌측에선 지문과 홍채, 머리칼을 체크하며 생체 코드를 오픈하고 있고.
우측에선 실시간으로 상현의 쓰리디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있었다.
“잠시 눈 좀 감아주세요~”
전방은 당연히 메이크업 팀 차지였다.
“근데 이분은 메이크업 진짜 필요한 거 맞나요~? 너무 잘생기셨다~”
업계 특유의 살랑거리는 목소리로 어린아이 달래듯 빠르게 움직이는 붓질.
“아몬드 님. 잠시 돕시다. 자, 이쪽으로.”
이건 쓰리디 팀의 요청이다. 메이크업을 하는 중에 몸을 돌려야 해서 미안한 마음에 눈치를 살폈으나.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아무런 내색도 없이 그를 따라 쪼르르 돌면서 손을 멈추지 않았다.
거의 허공에서 그림을 그리는 경지 같았다. 이게 제대로 되고 있는 건지는 걱정되었다만…….
‘와…… 미쳤나 봐.’
‘저런 사람이 왜 이제 나왔어?’
‘어디 동굴에 있었나.’
대기 중인 조수들의 표정을 보니 잘되어가는 게 분명했다.
* * *
당황스러운 건 오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음? 예상하고는 다른데. 고 팀장이 나한테 분명…….’
고중석 팀장. 그놈이 분명 잔뜩 열 받아서 전화해서는 촬영장 분위기는 알아서 감당하라는 듯 말했었다.
왜 계약을 늦게 진행하냐고 오 실장을 탓하면서.
그건 촬영장 분위기로 복수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건방진 자식이 조금 친해졌다고, 말 안 가리고 막 나갔다.
그러나 뭐라 한마디 섣불리 반박할 수는 없었다.
일단 촬영이 끝나기 전까지는 고 팀장에게 주도권이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촬영장 분위기가 심하게 다운되어 있으면 피해 보는 건 늘 광고 모델들이다. 그리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당연히 고 팀장이다.
한마디로, 촬영이 해결될 때까지는 오 실장이 을이다. 오 실장도 나름의 각오를 하고 온 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촬영장은 멀쩡하다.
아니, 오히려 활기가 돈다고 해야 하나?
오 실장은 고 팀장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열 받아서 전화하더니. 생각보다 멀쩡한데?”
“뭐…… 그냥 내가 사방팔방 뛰었지. 동선도 다시 정비하고. 저기 지금 동시에 다 진행하고 있는 거도 방금 전에 나온 아이디어야. 이러니까 좀 낫더라고.”
고 팀장은 일을 그리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는 편이 아니다.
오 실장은 의구심이 들어, 고 팀장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그래? 엉덩이 무거운 사람이, 웬일로.”
“중요하니까.”
“아까는 안 중요했다가, 지금 중요해졌다?”
“…….”
“호오. 뭔가 있긴 있구만?”
오 실장이 슬며시 웃었다.
“하아…….”
고 팀장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얼버무리려는 순간.
“어이 오 실장. 자넨 더 통통해졌네?”
제기랄.
기획부장의 목소리다. 낭패였다.
“아이고. 부장님. 부쩍 얼굴이 좋아 보이십니다? 얼마 전에 골프 아마추어 우승하셨다면서요.”
“아하하하! 그걸 자네가 벌써 들었나?”
“필드 나가는 놈들 중에서 모르는 놈 있겠습니까? 저도 골프 좀 열심히 쳐야 덜 통통해질 텐데요.”
“자네는 그게 매력이야.”
오 실장은 곧바로 환하게 웃으며 부장을 반겼다.
이제 저 눈치 빠른 놈이 어떤 질문을 할지는 뻔했다.
“오늘 고 팀장이 좀 컨디션이 굉장히 좋나 봅니다. 아주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싹싹해요. 아침엔 절 삶아 먹으려고 했는데.”
부하 직원 칭찬인 듯 보이지만, 사실 요지는 ‘얘 갑자기 왜 열심히 하냐?’라는 질문이다.
“아…….”
기획부장은 잠시 고 팀장을 바라봤다.
눈을 마주쳐서 필사적으로 NO 사인을 보냈지만. 효과는 없었다.
“자네 실검 뜬 거 몰라?”
“실~검이요?”
오 실장의 눈이 슥──
고 팀장을 쳐다본다.
“……그런 건 금시초문인데.”
뜨끔.
고 팀장은 인상을 구기며 그냥 시선을 피했으나, 부장이 그를 콕 찔렀다.
“참내. 그거 말 안 한 거야?”
“바, 방금 만난 겁니다.”
“에라이. 이 쫌생아.”
부장은 가볍게 고 팀장을 타박하고는 실검 사건이 뭔지 알려줬다.
아침부터 바쁘게 스케줄을 준비하던 오 실장과 고 팀장은 알 수 없었지만.
기획팀 직원 하나가 릴프로를 들어갔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실검 9위에 망나니 용사가 떡 하니 박혀 있었다.
오 실장의 눈이 야구공만 해졌다.
‘이게 무슨……?’
“그런데 그게 아몬드라는 스트리머 때문이 아니겠어? 바로 오늘 촬영을 하는.”
아몬드의 방종 사건 등등…….
그 경위를 다 들은 오 실장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기가 아니었다.
진짜 기가 막혔다.
‘무슨 이런 운빨이?!’
아몬드의 성격을 잘 아는 오 실장으로서는, 이게 다 우연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놈은 그냥 나간 거다. 그게 캐릭터로 잡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냥 방종을 한 거란 말이다.
그런데 그게 얻어걸린 거다.
그나마 아몬드가 기특한 일을 했다면, 그건 아몬드 닉네임이 막힌 와중에 망나니 용사 홍보를 생각해 준 것.
그 사소한 성실함이, 지금 이 사태를 만들어냈다.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이 딱 그 예시였다.
‘될 놈은 되나 보다. 근데 그게 고 팀장이 잘해주는 거랑 뭔…….’
그냥 실검 올려줬다고 특별 대우 해주나? 그럴 리가. 고중석 이 자식이 그렇게 쉽게 부지런해지는 놈이 아니다.
답은 기획부장이 곧장 말해줬다.
“근데 그걸 내가 박 상무님한테 보고하고 오는 길이야.”
부장은 잠시 눈치를 보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 양반이, 좀 옛날 사람이라 실검이라고 하면 그냥 뻑가거든.”
“아…….”
“아몬드 촬영본에 전부 넣고, 빠뜨리지 말라고 직접 오더 내렸어.”
아몬드를 촬영에서 빠뜨리지 말라.
사실 당연한 일이다.
당연히 계약했으니 촬영해야 한다. 이런 당연한 말을 한 번 더 반복하는 이유는, 사실 ‘신경 써줘라’를 돌려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말에 고 팀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뻔하다.
‘고 팀장 저 자식 승진이 박 상무와 관련이 있겠지. 하긴, 언제까지 과장일 거야?’
팀장은 임시적인 직책일 뿐, 직급은 과장이다.
그리고 고 팀장이 박 상무 라인이라는 건 오 실장도 알았다. 그러니 저런 말 한마디에 벌벌 떠는 거다.
피식.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아침에 으름장을 놓더니. 하루아침도 아니고, 몇 시간 만에 이렇게 상황이 바뀌나.
“뭐. 그렇게 된 거지. 잘들 해봐. 시작부터 프로젝트에 호재가 있으니, 좋은 거 아니겠어? 나 같은 꼰대가 여기 있으면 방해되니까. 이만 갈게.”
기획부장이 물러가고.
고 팀장과 오 실장만 어색하게 남았다.
오 실장은 그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야. 이런 일이 있네.”
툭, 툭.
마치 하급자를 대하듯 두드리는 손짓.
“처신 잘해야겠어?”
씩 웃는 오 실장의 표정에, 고 팀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정말로 처신을 잘해야 하는 게 맞았으니까.
* * *
오 실장이 고 팀장의 기를 단단히 꺾어놓은 덕분일까? 촬영은 굉장히 순조롭게 흘러갔다.
물론 그건 광고 모델들의 입장에서다. 그들의 입장에선 마치 자동 세차처럼 사람들이 오고 가며 모든 걸 다 준비해 놓으니.
그저 시키는 포즈로 가만히 있고, 안내하는 곳으로 이동하면 될 뿐이었다.
다만, 직원들은 죽어나고 있다.
수많은 카메라 뒤의 스태프들은 한겨울 날씨에도 조명 열로 인해 부채질을 해댔다.
“후아. 죽겠다. 죽어.”
“진짜 빡세다…….”
그때, 꿀 같은 휴식이 주어졌다.
“잠깐 쉬었다 합시다.”
문제는 이게 10분일지, 겨우 5분일지 모른다는 점.
짜증 내는 티를 절대 내지 말라 했던 고 팀장의 으름장 때문에 스태프들은 구석에 모여서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보일러 끄면 안 되나?”
“야. 미호 의상 안 보이냐? 고 과장이 개지랄할걸. 미호 얼어 죽으라는 거냐!? 하면서.”
스태프들은 더울지라도, 미호의 촬영 의상은 노출도가 높아서 조금이라도 춥게 했다간 바로 영향이 갈 거다.
“하…… 난 반팔 입어도 더운데.”
“우린 뛰니까. 미호는 가만히 서 있어야 되잖냐.”
더운 건 조명 바로 뒤에서 일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스태프들뿐이다.
그때, 잠시 나갔다 온다던 주혁이 자기 덩치만 한 박스를 들고 왔다.
끼익.
그 뒤엔 또 다른 남자가 거대한 박스를 들고 따라 들어왔다.
“아,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후아. 예, 예. 수고하세요!”
쿵.
그가 내려놓은 건 음료 박스였다.
“마실 것 좀 사 왔습니다. 이거 드시고 하세요.”
스태프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와~”
“와! 감사합니다!”
“아니, 뭐 이런 걸……!”
고 팀장도 시원한 음료가 반가운 듯 박스 앞으로 다가갔다.
“하하. 제가 할 게 없더라구요. 너무 체계적이어서. 이런 거라도 해야죠. 얼른 드세요.”
우르르.
마침 쉬는 시간이었던 스태프들이 전부 몰려들었다.
“어? 아몬드 우유다.”
“오. 나 이거 첨 먹어봐.”
“파워 포션도 있어!”
“우와 아몬드 매니저라고, 아몬드 우유 사 오신 거예요?! 푸하하핫!”
“난 아몬드 우유 먹어봐야지. 이거 칼로리 낮대”
“넌 이 상황에 칼로리 걱정이 되냐? 난 뒤지기 전에 이온 음료 파워 포션이다.”
와글와글.
스태프들이 모여 떠들기 시작하면서 현장 분위기는 자연스레 좋아졌다.
별거 아닌 이벤트로, 한참 다운됐던 분위기를 회복한 것이다.
‘허. 진짜 보통 수완인 놈들이 아니네.’
고 팀장은 박스에서 아몬드 우유를 하나 꺼내 들어 쳐다봤다.
매니저와 스트리머-는 사실 운빨이지만- 둘 다 수완이 좋다.
사실 고 팀장은 부하 직원들을 닦달해서 일을 제대로 진행하고 있을 뿐. 아몬드를 그리 좋게 보지만은 못하고 있었는데.
‘아몬드 우유라…….’
고 팀장은 몰라도, 아마 스태프들의 머리엔 ‘아몬드’라는 단어가 박혀 버렸을 거다.
아마 다른 음료였다면, 아몬드보단 아몬드의 매니저를 좋게 기억했겠지.
그러나 저 매니저는 자기 대신 아몬드만이 기억되길 바란 것 같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아몬드 쪽으로 옮겨졌는데.
“캬. 역시 파워 포션이지.”
꿀꺽, 꿀꺽, 음료를 들이켜는 아몬드.
그를 보며 고 팀장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왜 그걸 마셔?!’
당연히 아몬드 우유를 먹을 줄 알았던 것이다.
* * *
휴식 시간이 끝나고.
“우와! 배우다! 배우! 내가 만들었어!”
“야, 난 진짜로 만들었다. 숏다리 아몬드.”
아몬드의 메이크업도, 그의 망나니 용사 캐릭터도 동시에 완성이 됐다.
“자, 캐릭터 한번 보세요. 어떤지.”
화면 속에는 3등신 정도가 되어버린 아몬드가 아장아장 걸어다니고 있었다.
엄청 단순화 되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상현과 닮아 있었다.
딱히 이 녀석이 들고 다니는 물주머니가 아몬드 모양이라서는 아니었다.
정말 생긴 게 상현 같았다.
“인간의 인지력에 가장 영향이 가는 특징들만 생체 코드에서 딱 잡아서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숏다리도 잘생기셨네요.”
“아…….”
“이제 드디어 촬영하시면 됩니다!”
정말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았는데.
‘2시간 지난 거였어?’
촬영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하얀 조명이 번쩍이는 구역을 바라보니, 미호와 풍선껌이 열심히 포즈를 잡으며 샷을 찍어내고 있었다.
꽤나 능숙했다.
미호는 그냥 서 있는 게 그림 그 자체인 데다가, 모델 출신인지라 카메라를 보는 시선 처리, 비례가 좋은 자세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걸어 다니는 패션 잡지 커버였다.
풍선껌은 평생 익살스러운 표정만 만들어온 장인마냥 다채롭고 우스운 얼굴을 무한대로 만들어내며(사실 그냥 서 있는 건데 웃긴 거일 수도 있다) 스태프들을 계속 웃게 했다.
‘……내가 저거 할 수 있나?’
그냥 카메라에 대고 하는 인터뷰라면 모를까.
모델 일이라니. 뭔가 굉장히 어색할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나, 어차피 하기로 한 거.
‘하다 보면 늘겠지, 뭐.’
아몬드는 그냥 머리를 비웠다.
“아몬드 님! 준비되셨으면 이쪽으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