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140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40화
49. 미니언(1)
빛이 사라지고 등장한 것은, 그 빛만큼이나 새하얀 평원.
눈으로 뒤덮인 설원이었다.
새하얀 눈이 반사하는 빛이 눈꺼풀 사이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윽.”
아몬드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가렸다.
눈이 부신 것을 애써 참으며 주변을 둘러봤으나…….
휘이이이잉──
그를 맞이하는 건 눈보라를 실은 칼바람뿐이었다.
그때 뒤쪽 종아리에 느껴지는 발길질.
퍽.
묵직한 부츠가 걷어차는 감각이다.
“시체는 너희들이 마저 치워라.”
아몬드는 어리둥절하여 가만히 있었으나.
“예.”
옆의 다른 아이들의 입에서 곧장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렇다.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까의 그 군인이 명령한 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피가 끈적하게 얼어붙은 시체들을 소각장으로 끌고 갔다.
저 시체들마저도 그리 크진 않은 게 왠지 아이들 같았다.
“이봐. 너.”
앳된 목소리 하나가 멍하니 있던 아몬드를 불렀다.
무심코 돌아본 아몬드는 놀랐다.
‘레이나?’
레이나를 쏙 닮은 아이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나 누나…… 가 아니네?
-어이 지금의 레이나는 법의 보호를 받으니 말들 조심하라구~
-레이나 ㅠㅠㅠㅠㅠ
-헐…… 나 이거 첨 보는데. 대체 뭔 일이람?
-레이나 어린 시절임? ㅠㅠㅠ
많이 잡아도 16살쯤 되었을 듯한 모습.
그 어린 시절의 레이나가, 이 추운 서릿발에 비닐 우비 같은 것만을 걸친 채로, 한 손에는 시체를 끌고서, 아몬드에게 묻는다.
“못 보던 얼굴인데. 타란의 포로인가. 이름이 뭐지?”
여기서 이름을 정하는 것 같았다.
-망나니 용사가 아니라 ㅈㄴ 다행이네 ㅋㅋㅋㅋ
-망나니 용사면 개웃겼을듯ㅋㅋㅋㅋ
-물어봐 줘서 고맙다 ㅠㅠㅋㅋㅋㅋ
시청자들의 채팅을 아몬드도 분명히 봤으나.
그의 눈엔 채팅창뿐 아니라, 어린 레이나의 눈도 보였다.
어린아이 특유의 생기는 찾아볼 수 없는 파란 눈.
바다 같은 그 색은, 이 설원의 칼바람에 얼어붙은 듯 탁한 모습이다.
여기서 그는 차마 망나니 용사라는 이름을 말할 수 없었다.
“아몬드.”
아마 레이나에게 처음으로 알려주는 그의 본명이었다.
“아몬드? 희한한 이름이네.”
무미건조한 말투로 그렇게 말한 레이나는 비닐 우의를 한 번 더 조여 매며 아몬드를 툭 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서 있다간, 다음엔 널 끌고 갈 수도 있어.”
그 말에 아몬드는 레이나가 시체를 질질 끌고 온 눈길을 돌아봤다.
눈길은 저 눈 덮인 언덕 위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언덕 위엔 봉긋 솟은 뭔가가 보인다.
‘포탑?’
탑이었다.
공성전에 나오던 포탑이다.
근처에 병사나 계약자가 다가오면 무참히 마법 공격을 가해오던 그 포탑이다.
그래서 저기 근처에 시체들이 쌓여 있는 모양이다.
아몬드는 시청자들에게만 들리는 채널로 물었다.
“설마 저기 산처럼 쌓인 게 다 시체인가요?”
-그런 듯 ㄷㄷ
-오. 이게 공성전 현실판이네
-릴이 이렇게 무서운 게임입니다. 여러분!
-ㄷㄷ 무섭다
-팩트) 릴에선 유저들이 더 무섭다
-우리가 병사들 죽이면 얘네가 치우는 거임? ㅠㅠ
-스포 ㄴㄴㄴ
-스포하지 마라 애드라
채팅을 참고하자면, 이곳이 공성전 맵의 현실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아몬드는 전장이 한바탕 끝나고, 그 뒤처리를 하는 모양이다.
근데 이 어린애들은 다 누구인 걸까?
누구와 싸우는 걸까.
그리고, 내가 플레이하고 있는 이 아이는 누구인가.
‘대체 뭐지.’
릴 스토리 모드는 방송으로 거의 본 적이 없었기에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그가 자주 보던 풍선껌의 주력은 배틀 라지와 마나 소드였으니까.
‘하긴 모르고 하는 게 낫지.’
스토리 모드라는 게 알고 하면 재미가 없다.
그래서 채팅에서도 저렇게 스포하지 말라고 난리를 치는 것일 터다.
아마 시청자들은 아몬드가 놀라야 할 때 놀라고, 감동을 받아야 할 때 감동받으며 게임에 몰입하길 바랄 거다.
때마침 이런 후원이 들어온다.
띠링.
[루비소드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아몬드 님! 릴 스토리 모드로 게임 카테고리 바꾸세요! 킹덤 같은 똥겜하고는 다르게 스포 자동으로 걸러지는 기능 있어영!]트리비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은 게임들은 이런 기능을 쓸 수 있단다.
“아. 루비소드 님. 좋은 정보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게임을 할 때는 확실히 좋은 기능이다.
[릴 공성전 → 릴 스토리 모드]그의 말대로, 게임 카테고리를 바꾸자 자동으로 물어왔다.
[서사가 있는 게임입니다. 스포일러 필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예]이젠 스포일러에도 안심하고 게임을 할 수 있다.
오롯이 스토리를 즐기면서.
-엌ㅋㅋ 이제 켠 거였어?
-포브스 선정 가장 맛있는 뉴비 스트리머
-이제 한 달 된 중견 스트리머;;
-경력은 한 달인데 커리어는 거의 5년급 ㅋㅋㅋㅋ
“자, 다시 게임 갈게요.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키는 거 하면서 버텨야겠죠?”
-ㅇㅇㅇ
-그냥 흘러가는 대로 하세영ㅋㅋㅋ
-ㅈ도 모르고 걍 하는 게 스토리 모드 맛임.
아몬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포탑이 있는 설산을 올려봤다.
‘저기로 가야 되나?’
그의 옆에 있던 다른 아이들도 설산을 기어올랐다. 아몬드를 눈치 주듯이 흘끔 쳐다보면서.
일단 아몬드도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러다간 레이나의 말대로 다음 시체는 아몬드가 될지도 몰랐다.
‘가 보자.’
그는 일단 살아남기 위해 언덕을 올랐다.
푹. 푹.
꽁꽁 얼어붙은 다리를 힘겹게 내디딜 때마다, 눈 안으로 깊숙이 박혔다.
무릎 밑까지 차오르는 차가운 촉감.
물론 실제는 아니다 보니 살갗이 얼어붙어 깨지는 듯한 고통이나, 습기로 인한 축축함 등은 없었으나 몸이 덜덜 떨리는 건 느껴졌다.
추위로 인한 고통은 구현하지 않았더라도, 추위로 인한 불편은 구현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 불편이 너무 현실감 있어서, 마치 환상통처럼 진짜 추운 게 아닌가 착각이 들었다.
“으으…….”
아몬드는 괜히 한번 몸을 떨어주고는, 열심히 언덕 위를 향해 발을 디뎠다.
푹. 푹.
휘날리는 눈발을 뚫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자…….
“후아. 왔다.”
설원 언덕의 끝에 도달했다.
숨을 내쉬니 하얀 입김이 휘날리는 눈발을 타고 이리저리 흩어진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수많은 시체들.
예상대로 포탑 근처에 쌓였던 건 시체였다.
너무 리얼한 묘사는 배제되어 있지만, 여전히 불쾌했다. 인간 시체란 건…….
“으…….”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버린 아몬드. 그는 언덕 아래의 레이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 역시 시체를 끌고 가다 말고 아몬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아몬드를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니 다시 시체를 끌고 걷는다.
레이나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신경 끄기로 했다. 아몬드에겐 당장 이 시체를 옮기는 게 중요했다.
그는 시체 중에 가장 크기가 작아 보이는 걸 골라서 잡아당겼다.
“어……?”
그런데 생각보다 잘 안 끌린다.
“이거 잘 안 되네요.”
여기서 아몬드의 힘은 그리 강하지 못했다. 어지간히 악력이 좋은 게 아니라면 성인 남자도 죽은 사람의 손을 붙잡고 끄는 건 불가능할 텐데. 이런 몸으로 될 리가 없다.
-%*@*@
-ㅋㅋㅋㅋ저희한테 물어봐야 소용 ㄴ
-아 ㅋㅋㅋㅋ 나랑 똑같네 ㅋㅋㅋ
-&&$*#
이상한 특수문자로 도배되는 채팅창.
아무래도 저게 스포일러 필터인 듯 했다. 시청자들의 도움은 받을 수 없을 것 같다.
‘다른 애들은 어떻게 끄는 거야.’
아몬드는 그제야 다른 아이들을 살폈다.
다들 시체를 잘 끌고 간다.
그야, 밧줄을 묶어서 가고 있으니까.
“……밧줄이 없네요.”
아몬드만 밧줄이 없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황당할 정도의 관찰력이다. 이걸 이제야 알다니.
채팅창은 그를 놀리는 문장으로 도배되어 버렸다.
* * *
아몬드는 결국 언덕을 내려가서 밧줄을 가져온 후, 다시 올라온 뒤 시체들을 옮겨야 했다.
개고생이란 이런 걸 말하는 것 같다, 라고 느낄 무렵.
어느새 마지막 시체였다.
“끄으으……. 으아아!”
쿵.
기합과 함께 소각장에 던진 마지막 시체.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소각장 한구석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일단 눈치가 보여서 시체를 옮기긴 했는데, 대체 이 스토리 모드의 목적을 모르겠다.
“이제 뭐 해야 하는 거죠? 도대체 갑자기 시작해 버리니 뭔지…….”
그때였다.
띠링.
==== ====
[클리어 조건]★ : 생존
★★ : 적군 섬멸
★★★ : 레이나의 이유
==== ====
아몬드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듯, 창 하나가 떠올랐다.
별 하나 클리어는 생존이면 충분하고, 두 개부터는 조금 난이도가 있어 보인다.
특히 세 개짜리는 뭔지 감이 안 잡힌다.
‘레이나의 이유?’
아마 레이나가 화가 났던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정 짓기엔 너무 애매한 말이다.
“이 3개짜리는…… 원래 뭔지 모르는 게 정상이죠?”
-ㅇㅇ 애매하게 나옴.
-원래 3개짜리는 클리어 어렵습니당
-3개로 클리어하면 특별 보상 있음 근데 레이나 건 아무도 못 깸
-별 3개 클리어는 ‘꿈’입니다 포기하셈 ㅋㅋ
-그건 그냥 개뽀록으로 깨는 거임. 2개에 집중하는 게 나음
-레이나 별 3개 클리어 가능함? 한 번도 못 봄
-소문만 무성함 누가 했다 카더라 ㅋㅋㅋ
모르는 게 정상이란다.
심지어 아무도 못 깼다고 한다. 아마 방송을 하는 사람 중에는 깬 사람이 없나 보다.
[데협 님이 미션을 등록했습니다.] [별 3개 클리어 시 50만 원!]“?”
아몬드는 깜짝 놀랐다. 평소에 돈을 많이 쓰는 후원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괜찮으시겠어요?”
조금 역겨운 컨셉의 말투지만, 어찌 됐든 미션에 뒤끝을 안 부리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감사합니다. 50만 원.”
-ㅋㅋㅋㅋㅋ자신감 보소
-야! 저거 못 깨!
-켠왕 선언입니까!?
-레이나 별 3개 클리어 켠왕ㅋㅋㅋ
-저건 실력이랑 상관이 없다니까요?!
실력이랑 상관이 있든 없든, 아몬드는 깨고 싶었다.
최고 랭크를 달성하는 건 늘 그의 심장을 뛰게 하니까.
그때였다.
끼익.
소각장 옆, 창고의 문이 열리더니 덩치 큰 군인이 등장했다.
“어이. 거기. 끝났으면 무기고 안으로 들어와라.”
창고는 무기고였던 모양이다.
“……예!”
아몬드는 어느새 이 아이들처럼 그들의 말을 잘 듣게 되었다.
-어이. 혹시 본인이 망나니 용사임을 잊었나요?
-크 몰입감 죽이네 이게 뉴비지
-ㅋㅋㅋㅋ 내 학창시절 보는 거 같네 ㅅㅂ
-말 잘 듣는 아몬드……! 짜릿해!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그와 함께 시체를 옮기던 아이들이 난로의 불을 쬐고 있었다.
‘다 여기서 쉬고 있었냐.’
아몬드는 추위도 안 느끼는 주제에 이상한 배신감에 사로잡혀서 어떻게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곧 있으면 다시 전투가 시작될 거다.”
아이들이 급격히 움츠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차마 웅성거리는 소리는 없었으나, 덜덜 떠는 아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아마 추위 때문은 아닐 터다.
“여기는 앞의 미니언들이 쓰고 남은 무기들이 있다.”
미니언들?
그제야 아몬드는 자신의 정체를 확신했다.
미니언이었다.
릴 공성전에서 계속 생산되던 그 병사들. 포탑으로 무작정 돌진만 하는 그 병사들을 미니언이라고 한다.
이 게임에서 아마 가장 약한 존재이다. 계약자들에게 잡혀서 골드와 경험치가 되는 존재.
그런데 이젠 내가 그 미니언이라니.
“잘 쓸 수 있는 무기를 골라라. 너희들의 목숨을 지켜줄 유일한 무기다.”
쿵.
무심하게 내려놓은 무기들.
쓰고 남은 무기들은 당연히 핏자국에 녹이 슨 게 대부분이었으며 제대로 관리된 건 없었다.
그러나──
“!”
우르르르!
아이들은 굶주린 이리 떼처럼 달려든다.
그중에서라도 더 좋은 걸 잡기 위해서다.
아몬드도 망설임 없이 달렸다. 그가 선택한 건 당연히 활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멀쩡해 보이는 활이었다.
한데 그 위에 다른 새하얀 손이 얹어졌다.
탁.
“……!”
“?”
돌아보니 마주친 건 레이나의 푸른 눈동자다.
그녀가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며 물었다.
“활…… 쏠 줄은 알아?”
* * *
[초보자 Tip: 미니언(Minion)들은 가장 하위 계층이며 오직 윗계급의 명령만을 듣는 자들입니다. 평소엔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며, 전장에선 가장 먼저 포탑을 향해 돌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