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154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54화
54. 만남(1)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자가 물었다.
“오늘 진료 몇 시야.”
“11시 예약입니다.”
중년의 남성은 대답과 함께 조심스레 제안해 본다.
“오늘은 회장님께서 직접 데려다준다고 하시는…….”
“됐어.”
제안은 단칼에 거절당했다.
“집사가 직접 데려다줘.”
“아…… 그, 그래도…….”
“싫어. 아빠는 너무 귀찮게 굴어서.”
“으음…… 알겠습니다.”
집사는 회장님의 실망하실 얼굴이 절로 그려져 망설여졌으나. 어찌 됐든 본인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니까.
별수 없었다.
“그럼 천천히 식사 마치고 가시죠. 옷은 아주머니를 부를까요?”
외출을 하는 경우엔 혼자서 입기 버거운 옷들도 있다. 가족처럼 보는 집사이지만, 여전히 남자이기 때문에 보통은 아주머니를 부른다.
“아니.”
하지만 여자는 그마저도 싫다 했다.
혼자서 뭣도 못 하는 사람처럼 되는 것 같아서.
“알겠습니다.”
집사는 물러갔고, 여자는 식사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지이잉.
휠체어가 스스로 굴러가, 아침 식사가 준비된 식탁에 안착했다.
차려진 음식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별로…… 맛있진 않았다.
맛을 제대로 느낄 턱이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지금 단 한 가지 생각뿐이니까.
‘결과가 잘 나오려나.’
오늘 중요한 결과가 나온다.
줄기 신경 촉진제.
이 주사를 다시 맞을 수 있느냐 마느냐가 오늘 결정될 것이다.
이걸 맞을 수 있다면, 약효가 있는 동안은 멀쩡한 사람처럼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물론 아버지는 죽어라 반대하실 테고, 그녀도 무턱대고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이 약을 너무 자주 맞아서 생긴 참사는 아직도 생생하게 몸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왜 처방을 받고 싶느냐 묻는 자들이 있다.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다.
유사시 언제든 약을 맞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것과 절대 걸을 수 없는 것. 천지 차이다.
탁.
지루한 20분간의 식사 후. 그녀는 수저를 내려놓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간만에 옷장에서 말끔한 옷들을 꺼내 들었다.
‘……치마는 좀.’
저도 모르게 치마를 들었는데. 오늘은 한파가 있다고 했으니,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아쉬웠다. 일이 잘 풀리면 한동안 못 입을 테니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결심했다.
‘입자.’
기다랗고 나풀거리는 검은 치마를 꺼내 들었다.
이런 옷이라면 혼자서 입기도 무난하고 안에 속바지를 잘 챙겨입으면 추운 것도 덜할 것이다.
어차피 실내에만 있을 테니, 그리 춥지도 않을 거고.
온갖 합리화를 진행시킨 후.
“후우…….”
그녀는 휠체어의 어떤 버튼을 눌렀다.
지이이잉…….
휠체어의 의자가 위로 솟구치며, 아기 보행기처럼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그 상태로 침대까지 휠체어를 이동시켰다.
그러고는 팔로 몸을 밀어 침대로 던졌다.
푹신한 감각이 등에 닿는 순간, 재빠르게 치마 안으로 두 다리를 우겨 넣었다.
고군분투 끝에, 치마가 무릎까지는 입혀졌다.
그다음은 허리를 튕겨 배까지 올렸다.
‘됐다.’
버튼이 딸깍 소리를 내며 허리를 조이는 감각이 전해졌다.
여전히 사이즈는 맞는 모양이다.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치마를 입어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시 휠체어 위로 올라타야만 상의를 입을 수 있었다.
그녀는 몸을 굴려서, 조심스레 침대 바닥으로 기어 내려갔다.
바닥에서부터 기어서 휠체어를 타는 법은 많이 연습했다.
우선 휠체어를 탑승 모드로 바꾼다.
지이잉.
휠체어의 의자가 앞으로 튀어나오면서 한 바퀴 회전한다.
굳이 등을 돌려서 앉을 필요 없이, 저기에 거꾸로 앉으면 다시 돌려서 앉혀주는 것이다.
그녀는 두 팔로 손잡이를 잡고, 상체를 일으킨 다음, 몸 전체를 붕 띄웠다.
팔이 덜덜 떨렸으나 잠깐이면 된다. 한 3~4초만 버틴다면, 휠체어에 앉기에 충분했다.
탁.
그녀의 몸이 탑승 모드로 인해 튀어나온 안장에 쏙 맞게 들어간다.
지이잉.
다시 주행 모드로 바뀌며, 그녀의 몸이 한 바퀴 돌아 휠체어 안으로 안착했다.
여기부턴 쉽다. 이제 상의만 입으면 된다.
“후아.”
뿌듯한 기분이 마구 몰려왔다.
무의식적으로, 옷장 속 거울에 비친 자신을 봤다.
그 처량한 눈과 마주쳤다.
비참했다.
비참한 기분이, 아까의 뿌듯함은 거짓말처럼 몰아냈다.
* * *
오늘은 상현에게 이상한 날이었다.
일단 김주혁이 늦잠을 자는 걸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는 것부터가 참 이상했다.
‘저놈이 늦잠이라니.’
오늘 아침부터 진료 예약이 있었다.
주혁도 같이 가기로 했는데, 일어날 기미가 없다.
상현은 늘 그렇듯이 일찍 일어나서 양치를 하고 다시 몸을 씻었다.
그때까지도 주혁은 일어나 있지 않았다.
‘그냥 혼자 가자.’
어차피 병원 진료인데 주혁이 같이 가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것이다.
상현은 그 이상한 일을 주혁이 왜 하려고 들었는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시간이 없었다.
상현은 혼자 가기로 결심하고 겉옷을 챙겨 입었다.
오늘은 한파가 불어닥친다고 했다.
‘시간 없다. 빨리 가자.’
그는 시간을 체크하고, 목도리를 여미며 출발했다.
* * *
오늘이 이상한 날이라고 했던 것은 비단 주혁의 늦잠뿐만이 아니다.
요즘들어 유명세가 꽤 괜찮아져서 그는 꼭 얼굴을 가리고 다녔는데.
평소엔 마스크지만 오늘은 한파가 불어닥치니, 목도리로 가렸다.
그래서 팬을 마주치는 일 같은 건 없을 거라 여겼는데.
이게 웬걸, 동네의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부터 만나버렸다.
“아몬드.”
“어?”
지아였다.
오늘 언제 출발하냐고 묻더니, 만나려고 그랬던 걸까?
웬일로 아침부터 문밖으로 나와 있었다.
“병원 가는 거죠.”
“응.”
“주혁쓰는 또 싸웠나.”
“아니. 그냥 늦잠.”
“아…… 저…… 부탁이 있는데.”
“부탁? 뭔데?”
“제 친구가 팬이라고 하거든요. 아몬드 보고 싶다고 해서…….”
“아, 그래? 누구신데? 지금 여기 있는 모양인데.”
상현이 슬쩍 창문 쪽을 바라보니 빼꼼 바라보고 있는 여자 하나가 보인다.
“안녕하세요!”
활짝 웃는 인상이 귀여운 여자였다.
“허, 허연주라고 합니다!”
하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아몬드에게 인사하는 그녀는 서지아의 친구였다.
“너무 반가워요! 팬이에요!”
계속 저렇게 창문에서 볼 예정인가 보다.
“쟤가 저 릴 영상 도와줬어요. 제가 릴을 잘 몰라서. 얘가 지금은 어디 모자라 보여도, 똑똑하거든요.”
“와. 고맙습니다.”
상현이 인사하며 웃어 보이자, 연주는 방방 뛰며 기뻐했다.
“고, 고맙대! 나보고 고맙대! 꺄아아아!”
정말 기운이 넘치는 사람이구나.
상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지아는 곤란한 웃음을 지으며 얼른 친구를 제지하러 들어갔다.
“병원 잘 갔다 와요.”
“그래. 고생했다.”
* * *
오늘이 이상한 날인 건, 지아의 친구를 보게 된 것 때문은 아니었다.
항상 여성 팬들만 넘쳤던 그에게, 처음으로 남자 팬이 다가온 날이기도 해서이다.
“와. 아몬드 님. 맞죠? 대중교통 타시는구나. 사진 한 번만 찍어도 될까요?”
지하철 안에서 마주친 팬이었다.
“아. 네, 맞는데…….”
상현은 입 위까지 돌돌 말았던 목도리를 슬쩍 내리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떻게 알아본 거지?’
일부러 마스크처럼 목도리로 가린 건데, 알아본 게 더 신기했다.
“이 안에서 찍나요?”
지하철 안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게 조금 이상해서 물었다.
“아, 아뇨. 따라서 내릴게요.”
그렇게까지?
지나칠 정도로 적극적인 팬이었다.
‘그럼 계속 같이 있어야 하잖아.’
저 사람이 따로 내리는 수고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지만, 계속 같이 붙어서 이야기를 나누는 건 더 별로였다.
“그냥 여기서 찍죠.”
결국 상현은 지하철 손잡이를 잡은 채로, 대강 포즈를 잡으며 남자와 사진을 찍었다.
“와. 형. 감사합니다. 제 얼굴 오징어처럼 나오네요. 하하하.”
“음…….”
상현은 뭔가 위로의 말을 찾고 싶었으나.
사실이어서 별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 남자는 사진에 오징어처럼 나왔다.
상현이 아무 말이 없음에도, 남자는 유쾌하게 푸하하하 웃으며 넘겼다.
그리고 알아서 다음 칸으로 걸어갔다. 상현이 부담스러워한단 걸 느낀 모양이다.
그리고 연결 칸의 문을 넘어가기 전에 이렇게 외쳤다.
“킹덤! 해줘요!”
슥─
무심한 표정이던 지하철의 승객들이 죄다 그를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 시선이 더 좋다는 듯 두 팔을 들어 올려 보였다.
마치 근육을 자랑하듯.
“킹~! 너네 나 못이겨! ~덤!”
“……미친.”
상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킹덤무새였다니…….’
단순 킹덤무새가 아니라, 엄청난 관종이다.
스트리머는 저런 놈이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번 역은 ──]다섯 정거장 정도 남았구나.
들려오는 방송에 시간을 재어보며, 상현은 휴대폰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 * *
지하철역에서 나오자, 바로 병원이 보였다.
새삼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 진짜 이상한 사람들 많네.’
겨우 둘 만난 것이지만 임팩트가 너무 강했달까.
여태까지 만난 팬들은 점잖은 편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익숙해져야겠지.’
그래도 악의가 있는 사람들은 아니고, 그냥 성격이 유별난 것일 뿐이었다.
상현은 최대한 신경 쓰지 않기로 하며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몰랐다.
그곳에서 만난 팬이, 오늘 하루를 정말 이상한 날로 만들어준다는 걸.
“저기서 대기하시면 되요.”
병원의 카운터에서 안내받은 자리.
상현의 대기 번호는 그리 길진 않았다. 일주일 전부터 예약한 데다가, 의사가 특별히 관찰하고 싶다고 했었으니까.
‘생각보다 사람이 꽤 있네.’
상현이 대기하는 곳은 ‘특수 뇌의학 뇌파 검사’라고 쓰여 있는 문 앞이었다.
여느 진료실처럼 작은 문이 아니라, 어디 건물 입구마냥 더블 도어로 되어 있는 모습.
척 보기에도 뭔가 대단한 검사를 할 것 같은 곳인데. 이런 걸 받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내가 알기론 캡슐에 거의 특화된 검사였을 텐데…….’
뇌파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쓰는 케이스는 캡슐 관련된 산업 말고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캡슐과 관련된 일에 종사한다는 뜻일까?
나이가 꽤 많은 노인이나, 휠체어에 탄 젊은 여자도 보이는데.
저 사람들이 다?
‘세상이 진짜 많이 바뀌었구나.’
상현은 새삼 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며 대기석에 앉았다.
기릭. 기릭.
휠체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들이 도란도란 떠드는 소리도.
가만히 이러고 있으려니 잠이 온다고 느낄 무렵.
휠체어 하나가 그 앞에서 멈췄다.
‘뭐지.’
이때만 해도 설마하니 나한테 볼 일이 있어서 멈춘 거겠냐고 생각했지만.
휠체어 위에 앉은 사람은, 상현에게 작은 노트 하나를 내밀었다.
“사인해 주세요.”
너무 담담한 어조로 말해서, 마치 택배 기사가 사인해 달라는 것 같았다.
그 기묘한 느낌에 상현이 고개를 들었다.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
그 순간, 그의 동공이 떨리더니.
어느새 초점을 잃고 멍해졌다.
그에게 대뜸 사인을 요청한 팬은 검은 긴 머리의 여자였다.
새까만 흑발을 길게 늘어뜨린, 어딘가 날 선 듯한 눈매를 갖고 있는 여자.
빼곡하고 화려한 속눈썹과 반쯤 감고 있어도 커다란 눈.
그 안을 들여다보면 반면, 너무나 순수한 무언가와 마주하게 된다.
어떤 열망. 아마 열정일 수도.
어찌 됐든…….
‘닮았어.’
그의 기억 속의 한소연과 너무나 닮았다.
단순히 생김새를 넘어, 풍기는 분위기와 전해져 오는 기류가.
그녀의 철학이 그대로 담긴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알고 있다.
한소연은 절대 여기에 있을 리가 없다.
있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재미가 없다니…… 그게 이유야?」
그의 귀에는 또 이런 환청이 들려왔다.
다만, 이번엔 그게 환청이란 걸 바로 자각할 수 있었다.
앞의 여자의 입술이 움직이는 바는 전혀 달랐으니.
“사인. 해줘요.”
그녀는 뭘 맡겨놓은 것마냥 당당하게 말했다. 하나 그게 무례해 보이지는 않는 신기한 어조였다.
그녀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는 사실도 한몫했을 터다.
“안 해줄 거예요?”
여자가 고개를 까닥이며 묻는다.
상현은 피식 웃었다.
자신이 생각보다 멍 때린 시간이 길었단 걸 인지해서다.
“아…… 당연히 해드리죠. 근데 제가 누군지는 아시는 거죠?”
“아몬드요.”
흘끔 다시 마주친 눈.
다시 봐도 게임 같은 걸 좋아할 것 같진 않았다.
그냥 뭔가 분위기가 그랬다.
“……게임 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은데.”
상현이 무의식적으로 한 말에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저 게임 잘해요.”
미소가 사뭇 도발적이기까지 했다.
“어쩌면 아몬드 님보다 더.”
그 순간, 둘의 눈이 마주쳤다.
둘 사이에 미세한 불꽃이 튀었다.
‘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