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155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55화
54. 만남(2)
“저 게임 잘해요. 어쩌면 아몬드 님보다 더.”
저 말을 듣는 순간 상현은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걸 느꼈는데.
단순히 저 여자의 외양이 매혹적이어서는 아니었다.
‘나보다 잘해?’
아니, 그것과 오히려 거리가 멀었다.
미인을 본다고 화가 치솟는 남자는 없으니까.
그렇다. 게임을 자기만큼 잘한다는 말에 순간 화가 치솟은 것이다.
‘이런 거에 도발당하다니.’
상현은 스스로도 제 반응에 놀라며 이내 시선을 피했다.
‘왜 이러지.’
게임을 나보다 잘한다는 말에 울컥하다니. 양궁도 아닌데. 게다가 저 여자는 장난치고 있는 게 분명하잖아.
어느새 게임이 내게 엄청 중요해진 걸까?
아니면, 저 여자의 말이 진심이 담긴 도발같이 느껴져서 그런 걸까.
“이름이 뭔가요.”
상현은 얼른 사인을 해주고 끝내려는 듯 펜을 움켜쥐었다.
“이름은 됐어요. 그냥 사인만 해줘요.”
“네.”
스스슥.
상현은 자신의 필기체 사인과 함께, 옆에 작은 아몬드를 그려넣었다.
노트를 돌려받은 여자는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날 선 눈매 때문에 조금 무서운 인상이, 웃음과 함께 전부 녹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이건 뭔데요.”
“아몬드요.”
“원래 이렇게 해요?”
“아, 방금부터 시작한 건데. 사인이 좀 재미없어서. 별로인가요?”
“네. 그런데…….”
여자는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웃는 채로 별로라고 대답했다.
“제가 처음이라면 좋아요. 저 최초 좋아하거든요.”
사실은 그냥 내 그림이 마음에 드는 게 아닐까?
상현이 그런 생각을 하는 중.
간호사가 이름을 호명했다.
“유상현 씨?”
“아, 네.”
상현은 여자와 눈인사를 하고는 검사를 받으러 떠났다.
* * *
상현이 검사실로 불려간 후.
“유상현이 이름이구나.”
여자는 자신이 받은 사인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나랑 같은 검사를?’
이상했다.
왜 아몬드가 저 검사를 받는 건지.
여자는 다시 한번 상현이 들어간 검사실을 확인했다.
[특수 뇌 의학 뇌파 검사]‘맞는데.’
자신과 같은 검사를 받으러 간 게 맞았다.
뇌 의학이라면, 우리나라의 병원마다 하나씩은 있다지만 특수 뇌 의학 뇌파 검사라는 건, 손에 꼽는다.
그 용도 자체가 굉장히 한정적이고, 그걸 수행할 수 있는 의료진도 우리나라에 단 다섯 정도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있는 의사 송하나가 그중 한 명인데. 그마저도 본래 이 병원 소속은 아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아성 병원에서 자신들이 못 다루는 카테고리가 생기는 게 싫어 그녀에게 파트너 제안을 하고 데려온 것이다.
그러니까 송하나는 그 젊은 나이에 벌써 재단의 이사직이다.
여자의 시선이 문 쪽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최고에게 진료를 받는다는 건,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다.
‘근데 혼자인가.’
보호자가 필요할 텐데.
* * *
진료실로 들어가자.
“안녕하세요. 간만이에요.”
의사 송하나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네.”
“잘 지내셨죠?”
“네. 잘 지내고 있어요.”
“저도 상현 씨 방송 가끔 봤는데.”
“?”
순간 상현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방송을 봤다고 하니까, 바로 떠오르는 장면이 레이나와의 키스신이었다.
어지간한 거로는 뻔뻔하게 잘 대응하는 상현도, 자신이 그런 스킨십을 하는 장면이 방송으로 나오는 걸 보는 건 견디기 힘들었다.
‘그걸 보진 않았겠지.’
스토리 모드가 최근 방송 중에 최고 시청률을 자랑했고, 그 장면이 클립 중 가장 많이 재생되었으나 상현은 애써 부정했다.
의사들은 바빠서 그 시간엔 볼 수 없었을 거라고.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장면은 피크타임인 오후 6시에 송출되었다.
“판타지아도 그런 게임을 만들어야 할 텐데 말이죠. 전 정말 살아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니까요?”
“……?”
“레이나요. 어떻게 그렇게 현실적인지.”
“아…….”
봤구나.
상현의 얼굴이 이젠 대놓고 빨개졌다.
송하나가 배시시 웃으며 덧붙였다.
“어머. 부끄러워하시는 거예요? 전 그 장면 안 봤어요.”
그 장면을 안다는 게 봤다는 거잖아.
“아…… 예. 감사합니다. 안 보셔서.”
상현의 무력한 대처에, 송하나는 한 번 더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전에 봤을 땐 심각한 상황이어서 저런 밝은 모습은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보니 의사가 아니라 그냥 대학생 같았다.
“제가 방송을 본 건요. 상현 씨 스토킹하려는 게 아니라. 게임 시간을 준수하고 있는지 확인한 거예요. 평소에는 잘 지키시는 것 같은데, 배틀 라지 다이아몬드 미션 할 때랑…….”
송하나는 상현이 3~4시간 이상 게임을 이어간 날을 다 짚어냈다.
저걸 어떻게 다 아는지, 감탄이 나왔다.
아마 방송을 다 보는 건 당연히 아니고, 다시 보기 같은 걸로 방송 시간만 체크하는 것일 터다.
“……스토리 모드 할 때는 아주 시원하게 어기셨던데.”
송하나가 의사의 눈빛으로 상현을 살짝 노려봤다.
상현은 할 말이 없었다.
켠왕 미션이 걸리고, 성공 미션까지 걸리면서 방송 욕심에 눈이 멀어버렸었다.
“몸은 어떠세요.”
“스토리 모드 때는 괜찮았습니다.”
“격한 움직임이 적어서?”
“예. 아마 그런 것 같아요.”
“음…… 이것도 좋은 정보네요.”
스스슥.
송하나는 메모장에 흔한 의사들의 악필로 뭔가를 적었다.
“혹시, 오른팔 평소에 불편한 건 없으세요?”
“오랫동안 뭘 하기는 힘들어요. 아주 정밀한 일도 못 하구요.”
“오랫동안 하기 힘든 건…… 예를 들어?”
“키보드가 대표적인데, 빡셀 때는 3시간 정도 넘어가면 손이 좀 많이 떨립니다. 쉬엄쉬엄 일하면 7시간 정도는 괜찮구요.”
“아. 그럼 회사 다니실 때 보고서 같은 게 밀리면 힘드셨겠네요.”
“저 대신 다른 직원들이 고생했죠.”
“……음. 정밀한 게 힘든 건요?”
“…….”
상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양궁.’
양궁을 하지 못했다.
그 정도 정밀한 컨트롤이 필요한 게 아니면, 실생활에 문제는 없었다.
대체 뭐로 대신해야 맞을까.
“조립 같은 거…… 작은 나사나 이런 거 잡을 때 잘 안 돼요.”
“그렇군요. 평소에는 거의 불편한 게 없으시겠어요?”
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촉진제라는 게 있어요. 가격이 엄청 비싼데, 하루 정도 효과를 줍니다. 약뇌성마비를 잠시 치료해 줘요. 정확한 명칭은 ‘줄기 신경 촉진제’입니다. 일시적인 효과죠.”
“……그런 게 있어요?”
상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그런데 세상에 그냥은 없거든요. 역시나 큰 부작용이 발견되어서…… 다시 금지됐습니다. 어떤 환자분 하나도 계속 촉진제를 다시 맞고 싶으시다 하는데…… 아마 영원히 안 될 것 같거든요. 정말 생명에 위험이 생겨요.”
듣자 하니, 부작용이 장난이 아닌 모양이다.
상현의 오른손이 조금 떨렸다.
그의 머릿속에 ‘어떤 환자분’이 아른거렸다.
자신이 죽어가는 걸 알면서도, 다시 맞고 싶다고 했단다.
대체 그렇게까지 해서 맞아야 했던 이유가 뭘까?
왠지 알 것도 같았다.
‘나도 지금까지 양궁을 했다면…… 그랬으려나.’
애석하게도 상현이 사고를 당했을 적엔 저런 약물이 없었지만.
‘내 오른손이 다시 움직인다면…… 어떨까.’
상현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다시…… 그 경기장에 설 수 있을까?’
심장이 쿵쾅대는 것이 더 거세졌다.
단 한 번이라면 어떨지…….
‘지금도 금메달을 딸 수 있을지도 몰라.’
매일같이 연습하는 선수들 상대로 이런 자만을 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뭔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경기를 치르는 날만 촉진제를 맞으면 되지 않을까? 연습 없이 오로지 실전만…….
“상현 씨?”
“……예?”
“이거 사인하셔야 해요.”
“아…….”
어느새 눈앞에 놓인 하얀 종이.
“저는 촉진제의 존재를 알려드렸고, 상현 씨의 선택으로 촉진제 처방의 권리를 저에게 위임한다는 서류예요.”
“……”
송하나의 허락 없이는 촉진제를 먹지 못한다는 뜻이다.
“어길 시엔, 법적으로는 형사처벌, 처방으로는 병원 구금까지 저와 의사 협회의 의사분들 협의하에 처분 내릴 수 있어요.”
“조금 무시무시한데요.”
“저는 이 서류에 사인 안 하시면, 진료를 봐 드리지 않아요. 사실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안 돼요.”
“……알겠습니다.
상현은 일단 서류에 사인을 했다.
‘망상이지.’
아까 전 머리를 어지럽히던 생각들을 털어내듯이 머리를 휘휘 저으면서.
스슥.
습관적으로 하던 사인을 종이에 적어내었다.
“제 판단하에 꼭 필요하신 상황이 오면 처방해 드릴 수 있어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저에게 꼭 연락하세요.”
“아, 예. 감사합니다.”
송하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싱긋 웃었다.
“그럼 이제…… 엥?”
서류를 확인하던 그녀가 웃음을 빵 터뜨렸다.
“이게 뭐예요?”
“……?”
“이거요.”
척.
그녀의 검지가 가리키는 부분엔 아몬드 그림이 들어가 있었다.
“아…… 습관적으로. 하하. 다시 할까요?”
상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뇨. 귀엽네요. 이제 검사를 시작할게요. 보호자분은 밖에서 대기 중이시죠?”
“……예?”
아. 상현은 그제야 기억났다.
주혁이 왜 굳이 따라오려고 했는지.
“보호자분. 안 오셨어요?”
“아, 예. 그런 게 필요한가요?”
“음. 아무래도 전신 마취 후, 진행하니까요. 게다가 그땐 게임 업체 시설이어서 제대로 못 한 뇌파 정밀 검사도 하거든요. 이게 꽤 많은 어지럼증을─”
요약하자면, 오늘 안에 집에 가고 싶으면 부축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매니저한테 연락하고, 그대로 진행할게요.”
“그러실래요? 그럼 이쪽으로─”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매니저에게 메시지 한 번 보내면 끝나는 일이었다.
* * *
약 두어 시간 후.
“끝나셨습니다.”
상현의 몸에는 힘이 하나도 안 남아 있었다.
“보호자분 오실 때까지 침대에 누워계실게요.”
‘아직도 안 왔어?’
입 밖으로 말이 잘 나오지도 않았다. 말로 형용하기 참 어려운 이상한 감각이다.
그는 힘겹게 휴대폰을 들어 주혁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주혁 : 나 지금 오 실장이 급하게 불러서 거기 가는데???] [주혁 : 지아라도 보낼까?] [주혁 : 야 지아도 자나 봐. 그냥 거기 누워 있어라.]이런 일이 있었구나.
‘오 실장이 왜 불렀지.’
모르겠다.
상현은 어지럼증을 느끼며 일단 침대에 쓰러져 누웠다.
“여기 임시 병동이라, 1시간 정도만 누워계실 수 있거든요. 더 필요하시면 죄송하지만 입원 병동으로 옮겨져서 금액이 따로 결제되세요. 그리고 환자분 검사는 보험 처리가 안 되는…….”
이럴 수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보험 처리 안 되는 입원은 사양이었다.
‘한 시간만 자고 가자.’
상현은 50분 알람을 맞춰놓고 잠에 들었다.
어떻게든 택시는 잡을 수 있겠지 싶었다.
그리고 50분이 순식간에 지났다.
“으…….”
제길. 몸의 상태는 여전했다.
“안녕하십니까.”
“?”
“보호자입니다.”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보호자라는 단어의 뜻 그대로가 정말 잘 어울리는, 경호원 같은 남자였다.
“……누구시죠.”
“아가씨께서 보내셨습니다. 보호자가 없으셔서 곤란하신 것 같다고…….”
지잉.
그러면서 그는 전동 휠체어 하나를 내왔다.
“일단 앉으시죠. 곧 임시 병동 시간이 끝납니다.”
상현은 납치라도 하는 거 아닌가, 조금 의심스러웠다. 물론 자신 같은 다 큰 남자를 납치해서 어디에 쓰겠냐마는……
“아. 상현 씨. 안심해요. 제 환자분 보호자세요.”
송하나가 옆에서 거들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네. 무료로 해드리기로 했는데. 입원료는 제 소관이 아니라…… 이렇게 했네요. 죄송해요.”
“아녜요. 감사합니다.”
상현은 남자의 휠체어에 몸을 실었고.
그는 병원 밖으로 나섰다.
마치 어디로 갈지 정해져 있는 듯 거침없는 발걸음이었다.
잔디밭을 지나, 공터로 향했다.
그곳엔 아까 봤던 긴 머리의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 * *
……한편, 주혁은 오 실장과 이제 막 조우했다.
“어. 주혁 씨. 갑자기 불러서 미안해요.”
카페 테이블에 앉아 있던 오 실장이 반가워하며 일어섰다.
“아, 예. 무슨 말씀이세요? 아까 메시지는…….”
“아. 그거 말고 일단은 우리 좋은 얘기부터 할까요?”
좋은 소식도 있었어? 주혁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릴 운영진 쪽에서, 아몬드 인터뷰가 들어왔어요. 릴 회사 알죠?”
“예. 폴리스…… 였나요?”
폴리스. 릴의 개발사다.
릴을 제외하고는 다 말아먹고 있긴 하지만, 릴 하나로 여러 모드를 만들어내면서 재기에 성공한, 세계 탑급 게임사.
“네. 폴리스 코리아 인터뷰입니다. 서버 최초로 뭘 했다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