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156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56화
55. 제안(1)
볼 수 있는 건 뒷모습뿐이었다.
하나,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와 휠체어 등.
다소 흔치 않은 인상착의 덕에 바로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까 그 여자잖아.’
검사받기 전에 사인을 부탁하던 그 팬이다.
아몬드를 팬심으로 도와준 것 같았다.
상현이 아주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도, 여자는 눈치채지 못한 듯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
낮은 숨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담배 피우고 있었구나.’
휠체어와 담배. 정말 안 어울려야 하는데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아가씨. 말씀하신 분을 모셨습니다.”
묵묵히 상현의 휠체어를 끌어주던 남자가 공손히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란 말이 생소한 건 아니지만, 이런 구도에서 쓰이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아─”
여자는 잠시 멈칫하곤 급하게 담배를 재떨이에 털었다.
돌아보는 얼굴을 보니, 역시나 그 여자였다.
여자의 색바랜 입술이 씩 웃었다.
“이제 저랑 처지가 비슷해지셨네요.”
상현도 휠체어에 올라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풍기는 분위기에 비해선 꽤나 유쾌한 첫마디였다.
“그렇네요.”
“휠체어는 탈 만해요?”
“예. 편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
“거기 입원비 비싸거든요. 그런 거 된통 뒤집어쓰면 기분이 별로죠.”
비싼 걸 별로 신경 쓸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인데, 라는 감상은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바래다 드릴까요?”
여자가 저 앞에 주차된 검은 밴을 가리키며 물었다.
휠체어 때문인지 마치 연예인들이 타는 커다란 밴을 타고 다니는 모양이다.
상현은 멈칫했다.
‘어쩌지?’
차를 얻어타면 주소가 알려질 터다.
당연히 거절하는 게 좋지만, 이대로 거절하면 휠체어는 여자에게 다시 줘야 한다.
그러면 상현은 갈 곳이 없다.
“곤란하시구나.”
피식.
여자는 상현의 속내를 읽은 것 같았다.
“따라가자니 거주지가 밝혀지는 게 별로고, 적당히 먼 데서 내려서 걸어가기도 힘들 것 같고, 안 따라가자니 휠체어 없이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죠?”
미리 알고 물어본 것마냥 술술 나온다.
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여자가 웃었다.
“방송에서 보던 대로 엄청 솔직하네.”
솔직하다고 할 만한 부분이 있었나? 상현으로선 알기 힘든 솔직의 기준이었다.
“그럼─”
여자는 잠시 옆의 남자를 바라보더니, 무어라 작게 중얼거렸다.
그 남자는 경호원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 것치곤 나이가 지긋하달까. 집사나 비서 같은 사람일 거다.
중년의 남자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의가 끝난 모양이다. 여자는 다시 상현을 쳐다본다.
“식사는 하셨어요?”
* * *
그녀와 함께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레스토랑으로 이동하는 길.
지이잉.
부드럽게 움직이는 휠체어 위에서, 상현은 주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상현 : 야. 나 지금 잠깐 팬이 구해줬는데. 언제 올 수 있냐? 네가 와야 돌아갈 수 있을 듯]답장은 금세 왔다.
[주혁 : 야 잘됐다! 나 지금 좀 먼데! 지아가 대신 간대!] [상현 : 오 ㄳㄳ]그사이에 주혁은 지아에게 부탁을 해놨던 모양이다.
“구조 요청 보내는 중인가 봐요.”
여자는 휴대폰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알았는지 넌지시 물어왔다.
“아, 예. 아무래도 민폐니까요.”
“민폐는 아녜요. 혹시 딤섬 좋아하시나요?”
여자의 눈길이 향한 곳을 보니, 그도 알고 있는 유명한 고급 레스토랑이 보인다.
“좋죠. 식사는 제가 사겠습니다.”
상현은 구해준 보답으로 식사를 사겠다고 제안했으나.
“음…….”
여자는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
정확히는 경호원 둘과 중년 남자 하나를.
“저도 웬만해선 그러고 싶지만, 저분들도 같이 드셔야 해서요. 편의상 제 법인 카드로 긁을게요.”
“아, 그분들도 당연히 제가─”
“저 도네한 적 거의 없거든요. 도네로 받아주세요.”
여자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식사는 천천히 하나씩 나오는 코스 요리로 선택되었다.
아무래도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야 하는 상황인 걸 고려한 셈이다.
여자와의 대화는 그리 어색하진 않았다. 외양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와는 다르게, 의외로 말을 잘 받아주는 스타일이었다.
상현도 말을 못 하는 편까지는 아니니까, 대화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무엇보다 여자 쪽에서 상현의 행보에 워낙 관심이 많았기에, 대화 주제는 넘쳐났다.
그녀는 특히나 릴 파트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결국 레이나 스토리모드 얘기까지 나왔다.
“아, 축하드려요. 레이나 처음으로 클리어하셨던데. 키스도 하시고.”
다분히 의도적으로 말을 꺼낸 것 같았다. 눈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상현은 약간의 쪽팔림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걸 꼭 언급하시네요.”
“네. 중요하잖아요. 키스.”
여자가 배시시 웃으며 계속 언급했다.
상현은 자신의 얼굴 색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딤섬이나 입에 더 넣었다.
육즙이 팡- 터지는 게 기분이 좋다.
“한국 서버 최초 찍으니 어때요?”
“뿌듯하긴 한데.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사실 대단한 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레이나 스토리 모드에 관심이 없어서 제가 최초인 거죠.”
“레이나가 성능은 안 좋아도 인기는 많은데.”
“그래도 다른 나라보다 플레이 회수가 현저히 적답니다. 한국인들은 애초에 스토리 모드를 안 좋아해서.”
“그래도 최초는 최초니까. 부럽네요.”
최초를 좋아한다더니, 정말 최초에 꽤 집착하는 것 같았다.
“이제 코인도 좀 생기셨을 텐데, 다음 화신은 정하셨어요?”
“아마 사나가 될 것 같은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레이나를 완벽히 쓰시면 대부분 원거리 캐릭터는 쉬우실 거예요. 사나는 특히 난이도가 낮죠.”
쏙.
그녀의 입에 딤섬이 하나 들어갔다.
말하는 와중에도 어떻게 저렇게 입가에 한번 안 묻히고 식사를 할 수 있는 걸까.
부자라는 걸 알고 봐서 그런지 몰라도, 뭔가 기품 자체가 다른 세계의 인간 같았다.
‘그사세’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혹시 원거리만 하실 건가요?”
“그걸 잘해서요.”
“그래도 릴은 다양하게 다룰 줄 아시면 좋아요.”
“그런가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또 다른 딤섬 하나를 입에 쏙 넣었다.
“저는 점멸검을 추천드리는데. 스위프트요.”
점멸검 – 스위프트.
이 화신은 아몬드도 알고 있었다.
‘전자파가 주로 쓰던 건데.’
전자파 영상으로 공부를 하다 보면 알 수밖에 없는 화신이다.
양손검을 쓰는 화신인데, 자신의 검이 있는 곳으로 점멸하여 싸울 수 있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지면 검을 다시 불러올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보통 검을 이리저리 던지면서 점멸을 반복해 상대를 교란시키는 플레이를 한다.
“피지컬도 좋고. 판단도 나름 빠르시던데요. 레이나 스토리 모드 때 보니까 검이라고 못 쓰시지도 않는 것 같더라구요.”
“아, 감사합니다. 한번 써볼게요.”
상현은 머리에 메모를 해두면서 끄덕였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천 같았다.
“앞으로는 목표가 뭐예요?”
“목표요? 글쎄요.”
“전자파 기록 깨기?”
여자의 싱긋 웃는 눈과 마주쳤다.
이때, 상현은 이상한 공백을 느꼈다.
저 질문 뒤에, 기묘하리만치 긴 침묵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실상은 전혀 아닌데도.
“전자파 기록을 릴에서 깰 수는 없지 않을까요.”
“아몬드 님이라면 가능하실지도 모르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상현은 왠지 여자가 자신의 대답에 굉장히 만족해한다고 느꼈다.
‘뭐지.’
지아처럼 본래는 전자파의 팬이었던 걸까?
띠링.
[지아 : 아몬드. 내가 가기로 했어. 필요한 거 있음?]그때 마침 지아에게 메시지가 왔다.
필요한 거라…… 딱히 그런 건 없었다.
[그냥 빨리 와주면 됨.] [지아 : 오키돜. 혹시 친구 같이 가도 됨? 나 혼자 아몬드 못 들거든 ㅋㅋ] [ㅋㅋ 괜찬괜찬ㅇㅇ]“오시기로 됐나 봐요.”
“아, 네. 매니저는 급한 일이 생겨서 편집자가 대신 온다네요.”
“아. 그분이…… 아까 말씀하셨던 후원 많이 하시다가 편집자 되신 분?”
아까 이야기하는 중에 서지아에 관한 이야기도 조금 했었다. 그걸 용케 기억하고 있구나.
“예. 그분입니다.”
“보통 편집자랑 그렇게 가까이 지내는 분은 드문데, 보기 좋네요.”
듣다 보면, 저 여자는 상당히 이 업계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았다.
상현은 궁금하여 넌지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쪽 관련된 일을 하시나 봐요.”
“아뇨. 그냥 백수예요.”
“예……?”
“원래 백수들이 인방에 관심 많잖아요.”
상현은 잽싸게 주변에서 식사 중인 경호원과 집사쯤으로 보이는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경호원들은 몰라도, 집사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집사는 무슨 망언을 하느냐는 듯한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얘는 뉘 집 딸이길래, 이렇게 호의호식하나 생각하시죠.”
“아뇨. 누구 집 딸인지는 안 중요하죠.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순간 둘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여자는 만난 후 처음으로 시선을 피했다.
식사 내내 당당하게 펴져 있던 어깨가 미세하게나마 움츠러들었다.
“……좋은 마인드네요.”
어색한 침묵 후.
식사는 10분 안에 끝이 났다.
디저트를 음미하고 있을 때 지아에게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공터에서 기다리니, 저 멀리에서 지아가 달려온다.
“아몬드!”
아침에 봤던 그녀의 친구도 함께였다.
“오셨네요. 생각보다 엄청 귀여우시다.”
여자는 만나서 반가웠다며, 손을 내밀었다.
“또 봐요.”
상현은 손을 맞잡으며 재차 감사를 표했고, 이만 일어서서 휠체어를 반납했다.
경호원들은 능숙한 손짓으로 휠체어를 접어 밴 끄트머리에 넣었다.
“아몬드. 괜찮아요?”
지아가 다가와서 아몬드의 안색을 살폈다.
“응. 저분 덕분에.”
“저분이 그 팬이에요?”
지아는 까치발을 들며 상현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내밀었으나. 검게 썬팅된 창이라 지아의 얼굴이 반사될 뿐이었다.
지잉.
창이 내려가며 지아의 얼굴이 밑으로 슥 잘려 나갔다.
그 위로 대신 등장한 여자의 얼굴.
매혹적인 눈매와 색바랜 입술,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
그녀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위험해 보이는 묘한 느낌.
대화하면 꼭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잊어버리기가 힘들 것 같은 사람.
“재밌었어요.”
그녀가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지아는 멍하니 떠나간 그 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지아야. 뭐 해.”
“저, 저 사람…….”
지아는 잠시 멍하니 무어라 웅얼거렸는데. 상현은 듣지 못했다.
허연주가 끼어들어서다.
“지아야!”
퍼억.
그녀는 멍하니 있는 지아의 뒷통수를 후려쳤다.
“아. 아파.”
“뭐 하냐구. 멍하니! 멈춰놓을 거면 주차권 뽑으라고 난리란 말이야! 얼른 가자!”
“아…… 알았어. 이상하네…….”
지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몬드와 함께 연주의 차로 향했다.
아직은 휘청이는 그의 몸을 잡아주면서.
* * *
……한편, 아직 오 실장과 만나고 있던 주혁.
그는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다 좋은 얘기뿐이었어.’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들었지만.
여태까지 오 실장이 한 얘기라곤 망나니 용사 광고주들이 굉장히 만족했다는 이야기, 릴에서 인터뷰가 들어왔단 이야기 등등.
전부 좋은 소식이다.
그의 선언대로 좋은 소식부터 말한 것이다.
오 실장은 분명 부탁할 게 있다고 했다.
아마 이제부터 말하겠지.
‘그게 대체 뭐길래.’
대체 뭔 부탁이길래 이렇게 뜸을 들일까.
“크흠.”
오 실장은 쓰디쓴 커피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주혁씨. 이젠 안 좋은 소식이네요. 사실 안 좋은 소식…… 이라기보단 급히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드디어 말을 꺼내는 것 같다.
“말씀하시죠.”
“저희 펑크 엔터 쪽이 풍선껌 님 회사랑 조금 긴밀한 관계인 건 아마 눈치채셨을 겁니다.”
“예.”
“근데 풍선껌 팀이 이번에 대회를 나가거든요. 스트리머 대회.”
“……스트리머 대회요?”
주혁으로선 전혀 모르던 일이다.
“네. 아직 공공연하게 밝혀진 건 없어요. 저희끼리만 오가는 이야기입니다. 근데 릴이랑 트레비 측에서 주최하는 거고, 거기에 풍선껌 님의 크루가 다 나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예.”
“펑크가 났습니다. 저희 회사 이름 말구요. 팀원이 정말로 펑크가 났어요.”
“……아, 예.”
“그쪽에서 아몬드 님을 섭외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조금 급합니다.”
릴 대회?
주혁은 상당히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걔는 아직 랭크도 못 돌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