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167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67화
58. 선물(2)
상현이 처음 아성에 입사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은, 이 말이다.
“말 편하게 할게.”
인사도 없이 바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이쪽에선 ‘보통’이었다.
체육계 선배들보다도 강렬한 인상에 당황했으나, 상현은 금세 이곳의 생리를 이해했다.
아니, 어쩌면 이 사회 전체가 돌아가는 방식을.
“영어는 좀 하냐?”
“아뇨……. 전혀…….”
“……한국말도 못 해?”
“예?”
“한국말도 못 하냐고. 왜 말 흐려.”
“죄송합니다.”
“말 흐리지 마라. 여기 학교 아냐.”
“알겠습니다.”
“네가 클릭 하나 잘못하면 몇십 억, 몇백 억 깨지는 곳에서, 뒤에 말을 흐리면 되겠냐?”
“안 됩니다.”
일단 들어온 신입은 기를 죽이고 봐야 하는 실정이다.
소위 길을 들인다는 표현을 쓰는데, 다른 말로 대체하려 해도 그 말만 한 것이 없다.
이곳은 현대판의 야생이다.
길들이지 못한 가축은 인간을 잡아먹을지도 모른다.
먹히지 않기 위해서다.
살기 위해서다.
“이거.”
툭.
상사가 던진 건 두터운 교본이었다.
영어로만 되어 있는.
“6개월 안에 다 외워. 네가 먹는 쌀 톨보다 많이 듣게 될 용어들이다.”
꼬깃꼬깃하게 구겨진 그 책을 들여다보니.
무역에 관련된 영어 표현들을 정리해서, 직접 프린트하여 커버를 씌운 책이다.
만든이는…….
‘박태현.’
눈앞에 있는 저 과장이다.
“알겠습니다.”
그가 고졸에 낙하산이라, 특히나 더 당하는 것도 있지만.
다행이라 해야 할지, 이런 일은 상현 혼자 당하는 게 아니었다.
“하아. 시발. 이게 말이 돼요? 왜 면벽 수행을 시키는 거야? 일부러 이러는 거죠, 지금?”
“2020년에도 안 하던 짓을…….”
“회사도 복고가 유행인가 보죠.”
남자 셋과 여자 하나가 담배를 나눠 피우며 뒷담화에 열을 올린다.
“나한텐 갑자기 영어로 말을 걸던데요. 우와. 시발 나도 유학파인데. 하나도 못 알아듣는 말을 하더라.”
“헉. 그거 저한테도…… 발음도 진짜 좋아…….”
“그거 무역 용어죠? 그냥 단순히 유학 좀 갔다고 알아들을 수준이 아니에요. 거기 전공이라도 하지 않으면…….”
신입들이 절대 대처할 수 없으면서도, 자존심 상해할 법한 것.
그게 바로 언어의 장벽이었고, 그걸로 거의 모든 팀이 신입을 갈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단 한 명.
“야. 주혁아. 네가 좀 와서 봐야겠다!”
“아, 예! 김 대리님.”
탁.
조용히 있다가 담배를 털며 뛰어가는 사원이 있었다.
아무도 어떤 일도 못 하고 있을 때, 혼자 뭔가 일을 해내고 있는 놈이 있었던 것이다.
* * *
그놈이 지금 상현 앞에서 뭔가를 또 해내고 있었다.
유려한 문장, 상류층의 악센트.
그냥 듣기에도 허투루 배운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 구사력.
상대가 당황한 게 느껴진다.
“Actually, You won’t need that traslator beside you. You can talk to me directly. Mr…….”
“Weilsma.”
“Ok. Mr. Weilsma. Good to see you. I’m his manager, Kim.”
주혁은 일단 이 수법에서 가장 거슬리는 통역사부터 치우자고 제시했다.
우선 저들의 두터운 방패를 치우고자 한 것이다.
“First of all. Thanks for the great opportunity. We really appreciate your offer. However…….”
일단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고 말한 뒤. 그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본론이라 하면 당연히 제안된 금액이 적다는 내용이다.
이는 기분 나빠할 것도 아니다. 당연히 처음 제안은 늘 적다.
외국계 회사들은 특히나 가격 협상에 더욱 지독하기 때문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일 뿐이다.
지켜보는 상현은, 그저 주혁이 저런 협상 스킬을 자신과 비율을 책정할 때 쓰지 않았음을 감사할 뿐이었다.
주혁은 협상 테이블에서 거대한 뱀이었다.
상대는 무장한 인간이었으나, 방금 통역이란 방패를 잃었다.
그저 자신의 검으로 온전히 혼자 주혁을 감당해야 했다.
보는 사람도 벅찬 듯한 느낌.
저 불쌍한 외국인 용병은, 자신의 검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민병대였다.
상현의 시선은 이만, 저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나머지 두 직원으로 향했다.
‘사실…… 저쪽이 본체구나.’
눈치채고 말았다. 저들이 만든 함정에 스스로 나자빠졌다는 것을.
외국인은 책임자도 아니었고, 준비되어있지도 않았다.
그는 별다른 힘도 발휘해 보지 못한 채, 이미 전신을 뱀의 또아리에 묶여 버렸다.
무력하게 뼈까지 으스러지며.
스스슥.
계약서에 주혁이 원하는 숫자를 써넣었다.
* * *
“후아.”
길다면 길었던 이야기가 끝나고.
그린 다이아몬드 사의 직원들은 돌아갔다. 돌아서는 표정이 좋지 못했다.
“우리 예산 어떡해요…….”
“몰라. 인마.”
주혁은 손목시계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1시간 정도 걸렸나?”
“주혁 씨……. 이렇게나 잘할 줄은 몰랐는데?”
옆에 있던 오 실장이 감탄을 자아냈다.
“저는 그냥 태어난 곳이 미국이었을 뿐입니다.”
“아, 아니. 영어도 물론 대단한데…… 완전 쟤네 패턴을 꿰고 있잖아?”
“주혁이는 대학원도 미국에서 나왔고, 전공이 그런 쪽이라…… 저쪽 문화가 오히려 더 밝습니다.”
오 실장은 저번 판타지아 협상에선, ‘꽤 하네’라고 흐뭇하게 쳐다보는 쪽이었지만.
이번엔 상당히 놀란 느낌이다.
이번에야말로 주혁의 전문 분야를 제대로 본 셈이니, 그럴 만했다.
“회사 다닐 때도 해외 쪽이 전문이었어요.”
“와. 그렇구나. 상현 씨도 혹시 영어 잘해요?”
“아뇨. 저는 그냥 듣는 거랑 기본적인 일상 회화만…….”
상현도 낙하산으로 들어간 거기서 살아남겠다고 죽어라 언어 공부를 했던 적이 있다. 덕분에 귀는 트여 있다.
하지만 주혁처럼 자유로운 구사는 불가능했고, 영어로 저런 일을 진행한다는 건 꿈에 가까웠다.
촤락.
상현은 새삼 주혁의 능력을 다시 실감하며, 계약서를 펼쳐 들었다.
[70,000,000원]7천만 원.
오히려 망나니 용사보다도 더 높은 가격이었다.
실제로는 그거보다 급이 낮은 서브 채널 광고인데도.
‘내 몸값이 올랐구나.’
중간에 주혁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수많은 광고 제의를 받고 있고, 앞으로 우리가 이 업계의 ‘Big Shot’이 될 거라고.
빅샷.
거물이란 뜻이다.
정확히 어떤 어감으로 비칠지 상현은 알지 못했지만, 그가 배운 영어로 생각해 보자면 일개 스트리머에겐 과한 표현이었다.
‘헤드샷은 자신 있는데…….’
상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과한 표현이긴 했지만, 마음에 안 든단 건 아니었다.
* * *
건물의 유리문을 열어젖히며 나온 상현과 주혁은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쳤다.
“크아아아아!”
주혁은 여태 참던 포효를 내질렀다.
길 가던 직장인들이 죄다 쳐다봤지만 여기 근처엔 증권가도 있는지라 이런 사람이 그리 이상해 보이진 않을 터다. 가끔 대박을 터뜨리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래서 상현도 두 팔을 활짝 들었다.
“끄아아아아!”
둘은 킬킬대며 다시 계약서에 적힌 돈을 확인했다.
7천만 원이다.
“이거 아몬드 이 자식. 스트리머가 아니라, 완전 CF모델 아니냐?”
주혁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사실상 방송 수입보다 광고 수익이 더 높아지고 있었다.
“이게 다 내가 이미지를 잘 관리해서 그런 거다. 알았냐?”
“알았다.”
상현은 피식 웃으며 끄덕였다.
이미지.
다른 사람들에게 비쳐지는 나.
나의 성격, 나의 외모, 나의 모든 요소……
그것들이 종합되어 하나의 신기루 같은 게 만들어지는데.
그게 소위 이미지라 하는 것이다.
방송인으로서는 너무나 중요한.
‘이게 도토리묵이 말했던 거구나.’
도토리묵은 아몬드가 메이저에서 ‘먹히는’ 이미지라고 했다.
오늘 회의에서 오 실장이 했던 말도 있다.
「대기업을 다녔다는 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이미지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스트리밍 시장의 포문을 열었던 사람도 대기업 출신이라는 게 크게 작용했었어요.」
이러면서 덕분에 아몬드 광고는 받기가 쉬운 편이라고 오 실장이 덧붙였다.
광고라는 건 결국 기업의 이미지에 상승효과를 가져와야 하는데.
스트리머 시장에선 상현의 이미지가 딱 들어맞는 것이다.
‘아성이…… 좋은 곳이었구나.’
이럴 때면 늘 생각한다.
그렇게 고통을 받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둘까 고민했던 그곳을 그래도 꾹 참고 다닌 보람이 있다.
어쩌다 보니 그게 지금의 상현을 지탱해 주는 거대한 기둥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주혁만 해도 그곳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어디서 만날 수 있겠는가?
그때였다.
[편집자 서지아]지이이잉.
상현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지아잖아.”
전화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특히 이런 시간에.
상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받아봤다.
“지아야. 무슨 일이야?”
-큰일!!
“큰일?!”
큰일이란 말에 주혁도 깜짝 놀라 돌아본다.
-1등…… 우리 1등이에요!
“……1등?”
‘뭐가 1등이라는 거야’라고 잠시 생각했으나.
지아가 말할 1등이라면 딱 하나뿐이다.
‘올튜브?’
진짜 빅샷이 되려나 보다.
* * *
음원 사이트에는 음원 차트가 있듯이, 영상 플랫폼인 올튜브에는 영상 차트가 있다.
올린 지 3일이 지나지 않은 영상에 한해서 차트가 만들어지는데.
지아가 스토리 모드 영상을 올린 지 오늘로 딱 이틀째였다.
[127.8만]이틀 만에 무려 120만 조회 수를 기록한 모습이다.
그리고 밑의 태그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게임
#인기 급상승
.
.
.
#실시간 화제 영상 1위
지아의 말대로였다.
진짜로 1위였다.
-와 실시간 1위 축하해요!
-헐 아몬드 ㅠㅠㅠㅜ 드디어 진짜 월클이구나아아!
-와 결국 1등 하네 요즘 상승세가 장난 아니던데
-아몬드 넘 커여웡~~
최신 댓글에선 1등에 관한 말도 보인다.
사람들도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 뭐야 레이나 스토리 모드 ㅅㅂ 최초 클리어?
-와 이건 1등 할만하지 ㅋㅋㅋㅋㅋ
-레이나 ㅠㅠㅠㅠㅠ 아몬드의 1등으로 너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을까? ㅠㅠ
-1등이길래 봤는데 진짜 재밌네요. 근데 스트리머 분이 진짜 저 얼굴이에요? 존잘이네
└ㅇㅇ 실물은 더 지림. 내가 지하철에서 봄
-와 이 집 게임 잘하네. 1등이길래 첨 봤는데 ㅋㅋㅋ
-아 이 사람 전자파 기록 깼던 그 사람이네?! 와 기록을 다 깨고 다니네
-기록 혐오자 아몬드 ㅋㅋㅋㅋㅋ
1등이기 때문에 유입된 새로운 시청자들도 상당했다.
마치 눈덩이가 굴러가듯이, 조회 수는 실시간으로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신기한 건 베스트 댓글이었는데.
-최초 뺏겼어…….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이런 댓글이 압도적인 좋아요를 받으며 베스트 댓글이었다.
왜인지는 대댓글을 열어보면 알 수 있었다.
└찐임? 전자파???
└헐 찐이다. 올려!
└전자파? 형이 왜 여기서 나와?!
└무친…… 레알 실화냐?
└방송 좀 켜줘요 ㅠㅠㅠ
└건강 안 좋대여…….
└전자파 샤라웃…… 아몬드는 월클…… 치직…….
공식 대회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는 프로게이머, 전자파가 댓글의 작성자였다.
‘와 씨…….’
상현의 눈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흔들렸다.
명실상부 올 타임 레전드의 댓글이라니.
이러니 화제가 안될 수가 없다.
축구로 치면 메시가, 농구로 치면 마이클 조던이 청소년 축구부에 댓글을 달아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 댓글을 보려고 들어온 사람들도 최소 몇만이다.
[실시간) 전자파의 아몬드 샤라웃…….] [속보) 전자파 댓글로 등장. 대상은 아몬드?]커뮤니티가 아니라, 아예 올튜브 영상으로 뉴스처럼 재생산되기 시작했고.
그 영상에는 자연스럽게 아몬드가 누구인지도 소개가 되어 있었다.
아몬드는 공짜로 자신에 대한 홍보 영상을 수십 개를 뽑아낸 셈이다.
-아몬드란 사람 첨 알았는데. 잼네 ㅋㅋ 보러 가야겠다
-와 아몬드도 잘하네? 댓글 받을 만하네.
-ㄷㄷㄷㄷ
-우리 아몬드 월클이야!
홍보 효과는 엄청났고.
아마 이 화력이 아몬드의 영상을 1등으로 만든 것이리라.
‘어쩌면 이건 레이나가 준 선물일까?’
스토리 모드를 열심히 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