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177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77화
62. 몰랐던 과거(1)
“아니. 빌어먹을 견과류 쉑. 연예인이냐? 맨날 촬영이래.”
“딱밤 마렵네.”
“당장 문 열어! 아 사장!”
“이래서 인싸는 안된다고 제가 안 그랬습니까?!”
달리는 차 안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들이 하나같이 상현을 공격하고 있다.
“……그만 좀 읽어라.”
상현이 짜증 난다는 듯 툭 내뱉는다. 그 모습에 주혁이 운전석에서 낄낄댔다.
“아니, 왜. 차 안에서 휴대폰 보면 멀미 난다길래 보이스로 읽어주는 기능을 켠 건데.”
목소리들의 출처는 주혁의 휴대폰이었다.
운전자나 장애인들을 위해 글을 그대로 읽어주는 기능인데, 주혁은 그걸 아몬드의 공지 댓글에다가 켜둔 셈이다.
“좀 꺼라.”
결국 상현의 손이 쑥 뻗어 나와서 휴대폰을 꺼버렸다.
툭.
“거참. 재미를 모르는 놈이네.”
주혁이 툴툴대며 핸들을 꺾었다.
“그나저나 오늘 우리 회식인 거 알지? 공식적으로는 첫 회식이다.”
와중에도 스케줄을 확인하는 주혁.
상현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알지.”
오늘은 지아와 함께 세명이서 회식을 하기로 한 날이다.
여태 딱히 공식적인 회식은 한 번도 없었기에 이번에야말로 좀 괜찮은 데서 먹자고 주혁이 먼저 제안했다.
들어온 돈도 많고, 그간의 성장 역시 눈부신 걸 축하하는 기념이다.
회사로 치면 성과금 파티 같은 느낌이랄까.
“회식이라고 하니까 좀 그렇다, 근데. 회사도 아닌데. 그치?”
“……갑자기? 그냥 다들 회식이라 하잖아.”
“회사에서 해야 회식이지.”
“회가 그 회가 아닐 텐데…… 미국에서 살았어서 모르냐?”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주혁이 무어라 꿍얼댄다.
‘뭐지?’
저 녀석이 저런 사소한 걸로 걸고넘어지는 스타일이 아닌데.
이상했다.
사실, 뭔가 짚이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상현은 운전하는 그를 빤히 보며 묻는다.
“너, 회사 만들고 싶은──”
──빠아아앙!
거대한 트럭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에라이……!”
주혁은 길길이 날뛰며 뭐라 욕을 퍼부었고, 그 욕의 수위에 깜짝 놀란 상현은 질문은 까맣게 잊었다.
그러던 중 병원에 도착했다.
* * *
사락.
빠르게 하나둘 넘어가는 하얀 종이.
그 위엔 메마른 잿빛의 그래프와 가로세로로 딱딱하게 나뉜 도표가 빼곡했다.
사라락.
마지막 종이마저 넘어간 후.
도수가 옅은 뿔테 안경을 벗은 송하나가 말했다.
“검사 결과는 좋아요.”
그 말에 상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운동은 원래 열심히 하셨던 것 같네요. 체지방률, 근력 다 좋습니다. 가장 중점적으로 검사했던 뇌 관련 부분도 10년 전 검사와 다를 게 거의 없어요. 이건 좋은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아. 네. 그럼 플레이 타임은 어떻게 되죠?”
상현의 질문에 송하나가 찌릿 노려본다.
성급하게 굴지 말라는 뜻이다.
“뇌의 상황이 같으니, 플레이 타임 제한은 당연히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
상현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대회를 나가신다면서요?”
“아, 네.”
어떻게 알았지? 라는 눈빛에 송하나가 시선을 돌리며 간단히 대답했다.
“환자 모니터링은 늘 한다니까요?”
“아……”
“대회는 플레이 타임이 필연적으로 길잖아요. 어떤 생각으로 출전을 결심하신 거죠?”
“그건…….”
상현은 스포츠가 좋았다.
무대에 서서 그간의 노력을 증명하고 이겨내는 것, 그리고 승리를 달성할 때의 그 쾌감.
그걸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적당히 큰 무대에서, 적당히 큰 성취를 해보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깊이 생각하고 결정한 건 아니었다. 상현이 결정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듯이.
“성취감 때문에요.”
“……예?”
송하나는 의외의 대답이었는지 되물었지만, 상현은 굳이 같은 말을 두번 하진 않았다.
“그, 그럼 대안이나 이런 건 있나요?”
송하나는 조금 당황한 듯, 그녀답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후보 선수가 더 있다든가.”
“방송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이런 작은 대회에선 그런 거 없습니다.”
“그럼 어쩌시게요?”
“다만, 다른 대안은 찾아봤어요.”
다른…… 대안?
송하나의 눈이 의문스럽게 쳐다본다.
그 위로 상현의 왼손이 드리웠다.
“이것만 쓰면 어떨까요.”
“왼손…… 아. 그러니까. 문제가 있는 신체 부위를 쓰지 않으면 플레이 타임을 늘릴 수 있다는 건가요?”
“예.”
송하나는 잠시 결과지를 들여다봤다. 종이를 착착 넘기면서 어딘가를 찾더니, 한쪽에 밑줄을 그었다.
물론 상현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전문용어였다.
“음…… 가능해요. 확실히…… 그렇겠네요. 과부하는 언제나 오른손을 쓸 때 걸리는 거니까.”
“!”
생각보다 쉽게 수락하는 모습에 상현이 되려 놀랐다.
“정말요?”
“예. 음…… 상현 씨 같은 케이스가 한 분 더 있긴 했는데. 그분은 두 다리가 문제라 사실 이런 방법은 선택 사항이 아니었거든요. 근데 상현 씨는 오른손 파트만 문제니까. 이런 게 될 수도 있겠어요.”
상현은 멍하니 자신의 왼손을 내려봤다.
그간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운동과 병행해, 오른손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플레이를 연습했었다.
“그런데 여전히, 뇌파를 쓰는 게임이고. 상현 씨의 뇌는 손상이 되어 있다는 점. 명심하셔야 해요. 여기요.”
탁.
송하나가 뭔가 칩 같은 걸 내밀었다.
“이건 캡슐의 데이터 익스포트(Export)용 칩이에요. 온라인으로는 개인 캡슐 정보를 뺄 수 없거든요. 매번 방문하실 때 이걸 저한테 주시거나, 어려우시면 우편으로 부쳐주세요. 데이터를 보고 매주 분석해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소식이 이게 전부는 아니에요.”
검사가 이렇게 오래 걸렸는데, 이것뿐이겠어요? 라며 송하나가 머리를 귀 뒤로 넘긴다. 자신감의 표현이다.
“예전에 ‘살아남아라’ 컨텐츠 기억나세요?
판타지아 채널에서 테스트 형식으로 했던, 무식하기 짝이 없는 게임이었다.
수없이 날아오는 투사체들과 위험을 피해서 살아남는 게 전부인 게임이며, VNS 수치를 측정하는 데 가장 특화된 게임이기도 했다.
“마지막에 조금 이상하다고 못느끼셨나요?”
“아…… 그랬던 것 같기도…….”
마지막에 인지 속도가 너무 올라가서, 세상이 느리게 보이는 현상이 발생했었다.
신형 캡슐이었고, 동기화 제한을 두지 않은 테스트 기종이라서 그랬던 거라고 엔지니어가 설명했었지. 상현은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읊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갑자기 고장난 것처럼 몸이 안 움직였습니다. 그다음엔 그냥 게임이 끝났어요.”
사실 상현은 살아남아라에서 아웃된 게 아니라, 튕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지 않았다.
상현은 이미 나온 결과에 대해 왈가왈부 떠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 실력이 된다면 다음에 다시 증명하면 될 뿐이었다.
“역시…….”
역시?
송하나는 그 현상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엔지니어분과 제가 같이 연구했었는데요. 그때 소위 ‘동기화가 튀는’ 현상이 일어났던 거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핑이 튀다 할 때와 같은 겁니까?”
“네. 매우 짧은 시간에 급격한 상승 혹은 하락이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아몬드 님의 경우는 상승이지만, 그 폭이 너무 컸어요. 그래서 잠깐 움직임이 더뎌지신 거예요. 결국엔 아바타와 동기화가 멈췄구요.”
“아…….”
튕긴 게 맞았구나.
나중에 다시 챌린지를 도전해야겠다, 생각하는 순간.
송하나는 말을 또 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익숙한 숫자가 적힌 표를 하나 보여줬다.
“당신과 똑같은 기록을 가진 사람이 하나 있죠?”
똑같은 기록?
상현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전자파다.
전자파의 기록과 아예 동일했던 게 기억난다.
정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같았다.
“하. 그나저나 두 분 다 변명이나 투정이 없으신 스타일이라, 이거 알아내는 데 오래 걸렸다구요. 게임이 튕겼는데 그냥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딨어요. 대체.”
송하나가 볼멘소리를 내며 다시 서류를 뒤적였다.
“엔지니어는 이렇게 평가했어요. 신체 부위의 결함을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대체하면서, 그들은 가상세계에서 초월적인 구동력을 얻었다. 대신, 그들이 초집중 상태를 일정 시간 이상 유지할 시엔 기계가 감당을 못한다. 특히 판타지아에 있던 최신식, 리미트가 안 걸린 기계일 수록, 그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상현은 순간 멍해졌다.
“그렇다면 전자파도…….”
“맞아요. 전자파 님이랑 같은 시간이 나온 건 그 기계가 같은 결함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아…….”
전자파도 신체에 결함이 있다?
그런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두 분은 모두 어린 시절 신체에 문제를 겪으시면서, 의식적으로 계속 원래의 자유롭던 몸을 상상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오신 거죠. 그게 지금의 게임 실력과 연관이 되는거 같아요. 게임 안에서 아바타의 다리, 팔을 그런 이미징 능력으로 대체하기 때문에 가상 세계에서 훨씬 더 자유로운 거라는 게 현재 이론입니다.”
이어져 가는 송하나의 말 역시, 다시 한번 상현의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다리요……?”
“나머지 한 분은 다리에 문제가 있으세요.”
나머지 한 분이라는 건 전자파다.
‘다리라면, 그 여자…….’
상현의 머리를 스쳐 가는 여자가 하나 있다.
그렇지만 미디어에선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게다가 남자잖아.
남장을 했다는 건가?
그건 그렇다 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걸어 다닌 거지.’
평소에 전자파는 걸어 다닌다.
지금 그 여자를 생각해 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제야 생각나는 정보가 하나 있었다.
‘신경 촉진제!’
줄기 신경 촉진제에 대한 정보다.
「어떤 환자분 하나도 계속 촉진제를 다시 맞고 싶으시다 하는데…… 아마 영원히 안 될 것 같거든요. 정말 생명에 위험이 생겨요.」
‘그걸 맞았구나…….’
이제야 퍼즐 조각이 완성되는 기분이었다.
전자파와 같은 숫자, 높은 게임 집중력, 가끔씩 주변이 느리게 보이는 현상, 휠체어의 여자…….
전부 다 하나로 연결된다.
“……눈치채셨나 봐요.”
싱긋.
상현의 표정을 읽은 송하나가 웃었다.
“사실 이미 전자파 님한테 양해를 구한 참이에요. 둘이 비슷한 처지라고 하니까, 흔쾌히 허락해 주셨어요. 공동 연구를 하기로요.”
“……그분이 맞군요?”
“네. 그때 상현 씨를 입원비 폭탄으로부터 구해주신 분이 전자파, 최사랑 씨예요.”
“……하.”
상현은 허탈한 숨을 내뱉었다.
“속일 의도는 아녔어요.”
“압니다. 당연히 개인 정보니까요.”
“어찌 됐든 원인을 파악하고 나니 조금은 개운하시지 않은가요?”
“……네. 확실히.”
“최사랑 씨가 비밀 지켜달라고 당부했어요.”
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 안 합니다.”
“물론 상현 씨가 입이 무거운 분인 거 제가 잘 말씀드렸어요. 그래도…… 워낙 철저하신 분이라. 같이 연습했던 동료들도 아직도 남자인 줄 안답니다.”
철저하다라, 확실히 그래 보이긴 했다.
모든 물건을 장갑 끼고 만질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그래도 안 좋게 생각하진 마세요. 약간 고자세이긴 해도 정말 순수한 분이거든요.”
상현은 일전에 함께 딤섬을 먹던 장면을 떠올렸다.
릴 이야기를 하며 웃던 모습.
어떻게 보면 순수하단 것도 맞는 말이다.
“오늘 진료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에 셋이서 식사라도 해요.”
* * *
진료실에서 나오는 상현의 표정은 정말 뒤숭숭했다.
“뭐야. 왜 그러냐.”
폰 게임을 하고 있던 주혁이 놀라서 물어볼 정도였다.
상현은 말이 없었다. 방금 들은 걸 본인 말주변으로 깔끔하게 다 말하려면 시간이 필요했기에, 회식 때로 미루기로 했다.
“야. 왜. 결과 안 좋아?”
“아. 그냥 잠깐 뭐 좀 생각하느라. 결과는 좋아. 그냥 똑같대. 플레이 타임 잘 조절하면 되고…… 아!”
상현은 그제야 앞서 들었던 좋은 소식이 다시 생각났다. 그는 왼손을 들어 보이며 덧붙였다.
“이 전략 된단다. 대신 매번 체크할 거래.”
주혁에게도 이미 왼손 위주 플레이에 대한 전술은 공유해 둔 바다.
“오!”
곧바로 반응이 왔다.
“잘됐다! 대회도 진짜 할 만해지겠는데?”
“응. 퍼포먼스는 좀 더 내려가겠지만.”
한 가지 고민은 해결됐다.
“그럼 이제 촬영하러 가자.”
촬영 얘기에 상현의 머릿속이 다시 밝아지며, 이전과 같은 단순한 구조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린 다이아몬드!’
아몬드 시리얼 광고를 진짜로 찍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