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178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78화
62. 몰랐던 과거(2)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 그린 다이아몬드의 사옥.
묵직한 빌딩 매스 중앙에 자리한 녹색의 정원.
그게 그린 다이아몬드의 상징이었다.
‘와…… 역시 그린 다이아몬드다.’
‘서울 도심에 저 정도 지으려면 얼마려나. 최소…….’
생각은 둘이 달랐지만 상현과 주혁은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사옥에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정원은 위쪽으로 벗어나 버렸다.
“여기요!”
저 멀리 빌딩 입구서부터 누군가 손을 흔들며 뛰어온다.
달려온 남자는 자신의 사원증을 들어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오늘 촬영 오신 아몬드 님 맞죠?”
능숙하게 웃어 보이는 모습이, 전형적인 대기업 대리 관상의 남자였다.
그 뒤에는 뒤늦게 따라붙은 젊은 남자 둘이 더 있었다.
그들 역시 복사 붙여넣기라도 한 듯, 어디서 본 듯한 사람들이다.
상현은 새삼 자신도 저렇게까지 똑같아 보였을까 생각한다.
“내리시죠. 차는 제가 주차하겠습니다.”
“이러실 것까진 없는데.”
“괜찮습니다. 여기 지하 주차장이 건물 크기에 비해서 좀 복잡하거든요.”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이런 건물의 주차장이 불편하게 되어 있을 리가 없잖은가.
상대가 호의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 이유를 만들어내는 답변이다. 역시나 능숙하다고 느낀다.
“아, 예. 그럼 부탁드립니다.”
주혁은 차 키를 맡기고 상현과 함께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남은 두 명의 직원이 그들에게 따라붙어 엘리베이터를 잡아주었다.
“혹시 이런 광고는 촬영 경험이 있으신가요?”
“네. 얼마 전에 망나니 용사 키우기라는 모바일 게임 광고를 했었죠…….”
“아. 판타지아 사의…… 저도 그거 티저 정도는 본 것 같은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미 해당 층에 도착한 뒤였다.
‘되게 신경 써주네.’
상현은 흔히 드라마에서나 연출되던, 성공한 연예인들이 대접받는 모습을 연상했다.
그 정도로 귀빈 대우까지는 아니지만, 사실상 평생을 회사원으로 보내온 그의 입장에선 광고를 주는 쪽이 오히려 더 신경 써주는 이런 구도가 참 기이했다.
“아. 아몬드 님! 어서 오세요!”
“여기 아몬드 님 도착하셨습니다! 준비 들어갑시다!”
“일단 메이크업은 안 하셨죠? 잘하셨네요. 이쪽으로 오세요.”
“대충 콘티 받으셨겠지만, 촬영 장소가 저희 본사 공중 정원이거든요.”
순식간에 메이크업을 하는 팀과, 콘티를 설명해 주는 기획팀이 붙어서 동시에 진행됐다.
‘그때가 유별났던 게 아니군.’
판타지아 촬영 때, 아몬드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큰 민폐를 끼친 줄 알았는데.
원래 촬영 현장이란 곳이 이렇게나 미쳐 돌아가는 곳인 듯했다.
“콘티는 이런 식이고요. 정확히 이런 포즈라는 게 아니라 그냥 레퍼런스로 참고해 주시면 됩니다.”
“촬영은 360도로 한 번에 딸 테니까 스케줄에 큰 무리는 없을 거예요.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요.”
“다만 감독님이 원하는 샷이 안 나오면 연장될 수도 있거든요.”
상현은 일단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려 했으나, 메이크업 쪽에서는 그의 고개를 다시 고쳐 쥐었다.
“움직이시면 안 돼요.”
“아…… 네.”
“이제 설명이 다 끝났습니다. 혹시 질문 사항 있으세요?”
“음……”
상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불현듯 저번 촬영이 생각나 물었다.
“혹시 활도 쏘나요?”
직원이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예?”
그는 영문을 모른다는 듯이 되묻는다.
“활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그 사냥할 때 쓰는 활 말씀이신가요?”
“네.”
“아뇨. 전혀 그런 건 없어요. 그냥 제품 광고에요. 옛날 TV CF 생각하시면 돼요.”
“아, 알겠습니다.”
하긴. 자연 친화적 아몬드 광고에 활쏘기라니.
컨셉이 몽골 산지직송이면 모를까, 그럴 일은 없을 터다. 무안한 상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톡. 톡. 톡.
그 위로 메이크업이 덮어진다.
담당이 생긋 웃으며 말을 건다.
“아몬드 님. 이런 말 많이 들었죠.”
“?”
“메이크업 필요 없다는 말.”
많이 들었다.
“메이크업 하나도 안 해도 그냥 빛이 나는 피부예요. 식단 같은 거라도 해요? 아님 운동? 사실 타고난 게 큰가?”
식단이란 말에, 상현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몬드 많이 먹어요.”
“예……?”
메이크업하던 손이 잠시 멈칫했다.
“평소에 아몬드 많이 먹어요.”
“아, 그래요? 아몬드…… 나도 먹어볼까…… 하하…….”
“안 먹어요? 그린 다이아몬드 다니시는데.”
“예?”
여자는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저는 여기 직원 아니에요. 당연히…… 식품 회사에 메이크업 아티스트랑 촬영팀은 없죠. 아무리 대기업이어도.”
“아…… 그렇겠네요.”
판타지아는 게임 회사라서 그런 특수 촬영이 비일비재하지만, 식품 회사는 확실히 그럴 필요는 없다.
“여기랑 연계해서 기획 담당하고 있는 최강기획 소속이구요. 거기서도 완전 소속은 아니고, 저희 메이크업 팀이 있어요. 프리랜서가 하청받는 뭐 그런 거죠.”
그녀의 손이 다시 바쁘게 움직인다.
“그렇군요.”
그린 다이아몬드 > 최강기획 > 메이크업팀 > 프리랜서.
상현은 습관적으로 머릿속에서 하청 구조를 정리했다.
“최강기획이라고 하면…… 아성 계열사 아닌가요?”
“오. 맞아요. 아시는구나! 저희 팀이 그쪽이랑 많이 일해요.”
최강기획.
아성의 재벌가 중 하나가 만든 기획 회사다.
보통 아성 계열사들의 광고를 전부 맡아서 하고, 그 외에도 특별히 건수가 큰 것들을 외주를 받는 걸로 알고 있다.
“아성에서 일했던 적이 있어요.”
“아. 맞다. 저도 들었어요! 기획 쪽 사람들하고 아세요?”
“아뇨. 저는 물산 쪽이라…….”
말이 아성 계열사지, 법인도 다르고 이름도 다르고 대표도 다른 아예 다른 회사다.
아성 물산 안에도 따로 기획, 마케팅팀이 있으니 최강기획이 매번 끼어드는 것도 아니다.
“인기 많으셨겠다. 잘생기고 능력도 좋으시니, 물론 지금이 인기는 더 많으시겠지만…… 하하.”
인기?
상현은 씁쓸한 웃음으로 대답을 무마했다.
‘그랬을 리가 없지.’
대기업을 다닌다는 게, 단순히 얼굴 좀 보기 좋다고 해결되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상현은 그 안에서 절대 인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은 숨 쉬듯이 듣는 잘생겼다는 말도, 그 안에선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사람의 눈이 얼마나 간사한지, 가끔 사람들은 망각하곤 한다.
“자! 다 됐다! 여기 메이크업 끝났습니다! 별로 할 것도 없네요!”
* * *
촬영이 시작됐다.
요구하는 포즈나, 행동은 판타지아 때의 촬영에 비하면 별로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냥 그린 다이아몬드가 자랑하는 공중 중정의 숲에서 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아몬드를 한입 깨물면 된다.
“자, 슛 들어갑니다.”
360도를 둘러싼 카메라에서 붉은빛이 잠시 번뜩였다.
‘와.’
주혁은 그게 꼭 테러범을 사살하려고 레이저 포인터를 쏘는 스왓팀 같다고 느꼈다.
그만큼 이 영상팀의 촬영 장비는 살벌한 수준이었다.
‘최강기획 전문팀이라 확실히 다르구나.’
판타지아는 자신들이 직접 촬영팀을 꾸린 것이었지만, 여긴 전문 광고 제작 업체에게 외주를 맡긴 것이다. 그러니 퀄리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물론 특수효과 같은 건 판타지아가 월등하겠지만, 이런 아날로그 매체 촬영에선 한참 밀리는 듯하다.
“자, 다음 시퀀스요.”
감독의 지시에 따라 상현이 정해진 행동을 하기 시작했고, 또다시 카메라들이 그를 매섭게 따라갔다.
이번엔 들판 위를 뛰어다니는 장면이다. 상현의 귀족적인 외모를 보고 이런 콘티를 짠 것 같은데.
사실 상현에겐 별로 어울리지 않는 컨셉이었다.
순수 소년 같은 걸 바라는 모양인데, 사실 그렇지 않으니까. 찌들 대로 찌든 놈이니까.
물론 주혁은 저 모습도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꽤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기긴 했으니 말이다.
‘어찌 됐든 금방 끝나겠네.’
주혁은 오늘 밤에 있을 첫 회식 메뉴나 생각하며 신경을 거두었다.
[지아 : 오늘 메뉴 뭐 먹어?] [주혁 : 회?] [지아 : 오오. 제일 연장자가 쏘는 거야?] [주혁 : 미쳤냐.] [지아 : ㅋㅋㅋ 오빠~ 밥 사줘~] [주혁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아 : 왜 웃어?] [주혁 : …여튼 여기 근처에 유명한 횟집이 있어. ‘다까무라’라고 또 하나는 ‘판다’라고 중식 안주들 나오는 술집이 있다는데. 어향가지라든가 마라새우 이런 거 파는 데 알지?] [지아 : 가지 우웩] [주혁 : 판다 ㄱ] [지아 : ?] [주혁 : …회로 할까?] [지아 : 판다 ㄱ]그렇게 판다로 정해졌다.
상현은 발언권이 하나도 없었다. 그야 아몬드 말곤 딱히 좋아라 하는 음식이 없으니까. 주혁이 배제해 버린 것이다.
“좋습니다~”
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카메라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일단 테이크는 끝났거든요. 잠시 확인할 동안 쉬고 계세요.”
역시나 빠른 촬영이었다.
“후. 생각보다 진짜 빠르다.”
상현도 주혁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같은 감상을 내뱉었다.
“그러게. 이게 전문팀 수준인가?”
“그럴지도.”
상현은 촬영하고 남은 아몬드를 입으로 털어 넣고.
주혁은 금세 끝나겠다는 생각에 지아에게 슬슬 나오라는 말을 하려는 때.
“아…… 이건 다시 찍어야겠는데?”
좋지 않은 소식이 흘러왔다.
“나름…… 괜찮긴 한데.”
“살아 있지가 않죠?”
“아무래도 전문 모델분은 아니시니까요. 조금 어색한 건 별수 없죠.”
“애초에 어색한 걸 컨셉으로 가는 것도 방법인데…….”
“그걸 그린 다이아몬드 쪽에서 별로 바라진 않아요.”
“콘티를 수정해야 할까요?”
이럴 수가.
콘티를 수정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상현과 주혁의 시선이 마주쳤다.
‘대체 뭐야?’
둘은 슬그머니 일어나 감독들이 회의하는 쪽으로 접근해봤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 아뇨. 저는 상현 씨가 이 장면에 조금 더 녹아들었으면 하거든요.”
산뜻한 정원을 배경으로 아몬드를 한입 베어먹는 상현의 모습.
그 장면에 둘은 동시에 얼굴이 벌게졌다.
‘너무 어색해…….’
‘뭔가 이상한데?’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모습.
“한 번 더 해보죠.”
상현은 망설임 없이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감독들의 표정이 좋아졌다.
어떻게 다시 하자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던 차였는데, 알아서 곧바로 해준다고 하니 일이 편해진다.
“열의 좋습니다. 그럼 처음 시퀀스부터 들어가 봅시다.”
* * *
2시간 후.
“하아. 씨…….”
상현이 벤치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축 내려온 머리칼이 가려놓은 눈이, 애꿎은 정원을 노려본다.
‘뭐지……’
그는 새삼 깨달은 바를 되새긴다.
‘모델 일 어렵잖아?’
판타지아는 전부 스트리머라서, 게임 관련 촬영이어서, 상현에게 최적화된 콘티여서 쉬웠던 거다.
반면 그린 다이아몬드의 콘티는 프로 모델이 해야 적합한 식이었다.
‘순백의 란 같은 놈이 찍어야 하는 콘티를 내가 찍고 있으니. 될 리가 없어.’
자연친화적이고, 화사하고, 따사로운 미소를 내뿜는 게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상현은 알 수 없었다.
“……야. 어쩌냐. 늦어질 것 같은데. 회식 취소할까?”
주혁이 걱정스럽게 묻는다.
상현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야. 첫 회식인데. 아직 5시밖에 안 됐어.”
그때, 스태프 하나가 미안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다가와서 비보를 전했다.
“저…… 이제 해가 슬슬 지려고 해서요…….”
해가 진다는 말에, 주혁과 상현이 뭔가를 깨달은 듯 아찔한 표정을 지었다.
“자연광으로 찍는 컨셉이다 보니…… 해가 없으면 다음으로 촬영을 미뤄야 하거든요.”
그렇다.
이 촬영 컨셉으론 해가 지면 찍을 수가 없었다.
‘또 이걸 해야 한다고…….’
스케줄이 미뤄지는 건 별로다.
“다음 일정으로 미루거나, 저희가 콘티를 수정하는 쪽으로 하려는데 괜찮으실까요?”
“……별수 없죠.”
돈 벌기가 쉽지 않다.
“하아. 참. 잘 안되네.”
상현은 남은 아몬드나 다 털어먹었다.
오드드득. 오드득.
촬영 때 감질맛 나게 한입씩 오물조물 먹었던 걸 복수하기라도 하듯이, 와장창 털어 넣었다.
겨울잠 준비하는 다람쥐 같은 모습에 주혁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야. 그게 그렇게 맛있냐?”
“응.”
“나도 하나만 줘봐.”
상현은 말없이 그냥 아몬드를 더 털어 넣었다. 전부 다 사라질 때까지.
“……하나도 안 주냐?”
“줄 것 같냐?”
“너도 순두부찌개 먹었잖아?!”
“그건 달라.”
“무슨……!”
둘은 기다렸다는 듯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약간의 소란에, 감독이 고개를 돌렸다.
‘어……?’
감독은 손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둘을 담아본다.
노을이 지는 회사 옥상 정원, 지친 표정, 스트레스 풀듯이 털어 넣는 아몬드, 사소한 말싸움…….
‘저게 더 어울리는데?’
일상에 녹아든 아몬드가, 연출된 화사함 산뜻함보다는 훨씬 더 상품으로서 어필하는 바가 큰 것 같았다.
무엇보다…….
‘뭐 저리 맛있게 먹어?’
지금 상현이 아몬드를 엄청나게 맛있게 먹는다.
감독은 스태프들을 지나쳐 그에게 다가갔다.
“혹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보실래요? 그 옆에 있는 분도 같이요.”
“……예?”
인상을 구기고 있던 주혁이 깜짝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