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191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91화
65. 옛 인연(1)
디스월드로 돌아온 후.
주장인 단무지는 피드백을 진행했다.
피드백 내용은 별거 없었다.
워낙에 일방적인 승리였다. 바텀을 제외하고.
“다들 잘했어.”
팀원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았다.
그 역시, 바텀 라인을 제외하고.
서포터인 고구마, 원딜러인 백숙. 이 둘은 구석에 따로 앉아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그중 특히나 백숙은 처참할 지경이다.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저 표정.
‘……벽을 느끼기라도 한 건가?’
단무지는 저 표정을 알고 있다.
상대에게 벽을 느꼈을 때의 표정이다. 수많은 프로들이 짓는 그 표정이다.
모든 프로게이머들, 혹은 아마추어 유명 플레이어들은 자기가 그래도 릴을 상당히 잘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주변 지인들 어딜 살펴도 그랜드 마스터, 마스터 실력은 흔치 않으니까. 마스터만 되어도 자기 주변에선 최강자다.
그렇게 최강자로서 릴을 오랜 시간 플레이하는데. 막상 프로급의 세계에 닿아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본래 최강자로 군림했던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는 되려 하위 티어다. 프로에선 수치스러운 게 되어버린다.
챌린저가 된다고 해도 얘기가 다르지 않다.
챌린저라도 같은 챌린저가 아니다. 천 포인트를 넘네 안 넘네 하며 또 실력의 급이 나뉜다.
천 포인트를 넘어도, 대회에 나가면 또 다르다. 정규 리그를 나갈 수 있느냐, 아니면 2부 선수냐.
플레이오프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
나중엔 우승을 했냐, 못 했냐…….
‘난 마지막 벽을 못 넘었지.’
단무지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눈을 질끈 감는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건 정말 인간에겐 절망이다. 그 무력감은 이루 설명할 수 없다.
단무지에게는 결승전이 그랬다.
그는 온갖 좋은 평가는 받았어도, 우승은 하지 못했다.
‘무관의 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까지 얻었다.
그때 단무지는 차라리 죽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다른 사람은 이해 못 할 것이다.
-그냥 연봉 따박 따박 받으면서 나중에 은퇴하면 되잖아? 건물 사겠네?
-우승 그거 뭐 하면 좋지만. 지금도 최고 수준 연봉 아냐?
-야.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그러면 월급 루팡한다고 좋아해. 너무 집착하지 마.
연봉 받아 건물을 사?
월급 루팡하며 꿀을 빨아?
이런 삶이나 살려고 프로게이머를 한 게 아니라는 걸,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삶을 추구하는 자들은, 우승을 하지 못해 한을 품게 되는 이런 자리까지도 오지 못하니까.
프로의 세계까지 발을 들이는 사람들의 정신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그들은 승리에 취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노년에 든든한 건물을 위해서 온 게 아니다.
“……야. 백숙.”
단무지는 백숙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가 비록 아마추어일지라도, 한때 챌린저까지 올라갔던 사람이다.
그 승부욕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원래 그런 거다. 인마.”
“……뭐가.”
“잘하는 놈이 있으면, 더 잘하는 놈이 있고. 우승 못 하는 놈이 있으면, 우승하는 놈이 있어.”
“그게 지금 위로라고 하는거냐?!”
백숙이 어이가 없어서 벌떡 일어났다.
푸하하하.
다른 팀원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단무지는 진정하라는 듯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진짜 위로를 전했다.
“야. 다행히 실버한테 졌다는 소리는 안 듣겠더라.”
“……또 뭔 말을 하려는 거야.”
“아까 살짝 봤는데. 아몬드 지금 솔랭 돌려.”
“……뭐?”
백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까 바텀에서의 접전은 그야말로 뇌가 녹을 듯한 혈투였다.
그는 가상 현실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고 느끼기까지 했었다.
아몬드와 싸운 시간은 거의 10분도 채 되지 않을 텐데 그게 꼭 10시간 같았다.
그 정도로 미칠 듯한 집중력으로 교전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계속, 멈추치 않고.
“말도 안 돼.”
백숙의 체력은 이미 게임 내에서 다 바닥났다. 비단 바텀 라인전뿐 아니라, 다 같이 다니는 게임 중후반 구도에서도 그는 녹초가 된 채로 싸워야 했다.
그런데 지금 솔랭을 추가로 돌린다니.
대체 체력이 어떻게 된건가?
“골드 가기 직전이야. 이미.”
“그렇구나.”
“아, 근데 안 좋은 소식도 있다.”
“?”
“나도 피드백하다가 알았어. 말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단무지는 다른 사람들이 못듣게 조용히 읊조렸다.
“아몬드 한 손으로만 플레이했더라.”
“!?”
“그 전판에서도 그랬대.”
이럴 수가.
‘그러고 보니……’
그제야 스쳐 가는 이상했던 장면들.
백숙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정말로 한 손으로 져버렸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 * *
[망나니 용사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전장의 지배자! 망나니 용사!] [망나니 용사가 전설적입니다!]점점 흥분을 더해가는 음성이, 종국엔 게임이 끝났음을 선언한다.
[패배]뭔가 폭풍 같은 게 지나가더니, 성소가 깨져 있었다.
화살은 당연히 망나니 용사를 상대했던 바텀을 향한다.
“아니, 십…… 이게 말이 되냐? 애를 얼마나 키운 거야? 어?”
“아주 지가 태양의 농부여. 존나 잘 키우네.”
“패작러 새끼들인가 싶어서 봤더니 패작러도 아니네. 그런데 저렇게 발리냐? 그냥 죽어라 제발.”
망나니 용사가 누군지 알았다면, 이런 말을 듣진 않았겠지만.
실버~골드 랭크대의 유저들은 대부분 라이트하게 릴을 즐기는 편이다.
유명 프로게이머가 아닌 릴 스트리머들은 잘 알지 못한다.
“아니. 저 란이 존나 잘한다니까? 니들도 란이 올라갔을 때 다 처발렸잖아!?”
“그건 니가 존~~나 키워 와서 그렇지 새끼야.”
“하?”
아몬드가 잘하면 적 바텀은 언제나 할 말이 없다.
그냥 말싸움의 가정부터가 안 된다.
자기들도 망나니 용사의 피지컬에 교전에서 전부 패배했으면서.
그건 이미 잘 큰 상태라서 그렇다고, 니들이 키웠다고 해버리면 할 말이 없었다.
이들의 죄라고는 그저, 같은 바텀 라이너라 망나니 용사를 가장 먼저 만난 것뿐인데.
“답답하네. 걍 꺼져. 다시는 보지 말자.”
“그건 우리가 할 소리지. 트윈헤드 트롤 새끼야.”
망나니 용사의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승급전의 마지막인, 그다음 판에서도 그는 압도적이었다.
[망나니 용사! 펜타킬!]게임을 거듭할수록 급격하게 란의 숙련도가 올라갔다. 한 손으로 플레이하는데도, 오히려 두 손으로 처음 할 때보다 실력이 좋았다.
사격 정확도나, 속도는 두 손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운영적 노하우나 게임 이해도가 올라간 것이다.
[승리]아몬드의 시야엔 어느새 익숙해진 두 글자가 떠오른다.
은색의 인장이 밝은 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키이잉……!
[골드 Ⅳ]골드 4티어로 승급했다.
약 4-5판을 연속으로 돌린 보람이 있었다.
“후우. 이제 골드네.”
아몬드는 이제야 조금 마음이 풀린 건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 손으로 플레이하는 거 안 익혀뒀으면 다이아도 못 찍겠다.”
릴은 절대적인 판수가 높아야만 랭크를 올릴 수 있는 구조였다.
아무리 연승을 해도 점프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 손 플레이 방식을 익힌 덕에, 릴이 요구하는 게임량을 채울 수 있었다.
‘효과가 꽤 좋은것 같아.’
의사가 대번에 오케이한 이유가 있었다.
이게 효과가 굉장했다.
오른손을 안 쓰기만 해도 확실히 부하가 걸리는 게 적은 느낌이고, 땀도 적게 난다.
‘퍼포먼스도 차이가 그리 나진 않네.’
아몬드는 자신의 딜그래프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골드에선 한 손이나 양손이나 딜량은 비슷했다.
‘백숙에 비하면 너무 못해…….’
아까 상대했던 백숙이나, 심지어는 그린티보다도 한참 못한 플레이어들이 상대로 등장했다.
그러니 굳이 양손을 쓸 필요도 없는 것이다.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 [와 아몬드다!] [그게 누구임?] [견과류 쉑 다음엔 같은 팀으로 만나자…… 우씨……] [아몬드 맞음? 방송도 안 켰는데?] [와 아몬드 폐관 수련 중임?]그래도 대회를 나가서 릴 판에서도 나름대로 인지도가 생긴걸까?
그간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는데.
마지막 판엔 알아보는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형 혹시 더 할 거임? 나랑 듀오 ㄱ? 나 서포터 잘함.]아까 함께 서포터를 했던 사람은 듀오 신청을 하기도 했다.
아몬드인 걸 알아보는 건지, 아니면 그냥 잘한다고 생각해서 신청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듀오라…….’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밤 11시였다.
‘언제 이렇게 됐지.’
꼬르르륵.
야식이 땡겼다.
[듀오는 힘들 것 같네요.]그는 정중히 요청을 거절하고 캡슐 밖으로 나갔다.
치익──
나가보니 주혁은 소파에 뻗어 있었다. 삐져나와 덜렁거리는 손 밑엔 맥주캔이 굴러다닌다.
톡.
상현은 주혁을 슬쩍 건드렸다.
“야. 들어가서 자.”
“……?”
주혁이 부스스한 눈을 떴다.
“오. 끝났냐?”
생각보다 멀끔하게 일어나 버리는 주혁. 그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다시 상현을 쳐다봤다.
“너 이렇게 게임 오래 해도 되냐?”
“한 손으로 하니까 별 상관 없지.”
“그거 진짜 먹히나 보다?”
주혁이 상현의 위 아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땀이 적어졌다.
“누구랑 전화했냐?”
“아……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올튜브나 보고 있었지. 아! 그리고 지아가 새로 자기 보조 뽑고 싶대.”
“보조?”
“응. 자기 페이에서 나눠준다네. 요즘 올라가는 속도가 너무 느려졌다고. 릴 잘 아는 사람으로 뽑을 생각이래. 일단 네가 결정권자니까. 어때?”
저번에 봤던 그 친구일까? 자기 페이에서 나눠준다고 하니 상현이야 별 상관 없을 터다.
“그래. 그렇게 하라 해.”
“오케이.”
“야.”
“……어?”
이만 들어가 자려는 주혁을 상현이 불러세웠다.
“그…… 너 배 안 고프냐?”
“?”
주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야식 먹자는 건가?
“그러고 보니 조금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하고.”
맥주를 마셔서 그런가, 탄수화물이 땡긴다.
“오. 그래? 혹시 뭐 할 거 없나?”
상현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바뀌었다.
주혁은 그제야 상현이 원하는 걸 눈치챘다.
‘이 새끼…….’
배는 고픈데, 자기가 야식을 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아몬드나 처먹으라고 말하고 싶긴 한데.’
야식 요리의 귀찮음보다 아몬드 대신 자신의 요리를 찾아준다는 것에, 주혁은 더 높은 점수를 줬다.
그리고 매니저 좋다는 게 이런 거 아니겠나?
“이번에 올튜브에서 비빔 국수 레시피를 봤는데.”
“……오!”
* * *
후르릅.
새콤 매콤 달달한 양념이 시원한 오이채와 함께 쭉 빨려 들어간다.
“와. 이것도 맛있네.”
“이건 빅선생님 거야.”
“빅선생?”
“등치 크신 셰프분 있어.”
“그렇구나. 요즘 세상 좋네.”
빅선생표 비빔국수를 쑥쑥 빨아들이며 상현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룬스타그램]요즘 푹 빠져 있는 개인 SNS였다.
그간 해왔던 올튜브, 트레비와는 뭔가 소통의 재미가 다르달까.
“뭐야. 룬스타 보냐?”
“어.”
“그건 내가 관리 안 해도 되겠냐?”
“이 정도야 뭐…… 내 개인 계정인데.”
그랬다.
트레비나 올튜브는 주혁과 지아과 관리하는 시스템이지만.
룬스타는 온전히 상현의 것이었다.
그게 다른 점이었다.
물론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 알았다. 조심해라.”
상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십 개 쌓인 디엠을 확인했다.
응원 메시지나, 대화를 원하는 여성 팬들이 잔뜩이었다.
그중에…….
[와. 상현아. 너 상현이지?]익숙한 이름으로부터 전해진 메시지가 보였다.
[양궁 그만두고 소식 끊겨서 다른 거 하는 줄 알았는데. 스트리머구나? 완전 신기하다ㅋㅋㅋ 여전히 잘 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