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193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93화
65. 옛 인연(3)
“왜, 왜냐면 너, 너무 반갑잖아? 어? 갑자기 스트리머로 이렇게 잘나간다는데.”
상현은 이동수의 변명은 대강 흘려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결국…….’
언젠간 벌어질 일이었다고.
“아. 야 근데!”
“?”
“이, 이거 나만 잘못 아니다? 현주는 이미 옛적에 알고 있었더라!”
“……뭐?”
현주가 알고 있다. 이건 또 놀라운 얘기다.
“너 엄청 초반부터 우연찮게 봤대. 웬 스트리머가 활만 쏜다길래.”
“초반부터?”
“응. 근데 화면으로 보이는 얼굴이 너도 알다시피 좀 많이 다르잖아? 그리고 10년이나 지나기도 했고…….”
하긴 10년 전 친구가 알아보는 건 많이 힘들 거다.
특히 그 10년 전이 고등학교 때니까.
“그래서 넌 줄도 모르고 처음에 양궁 숙련자 폼이라고 막 글도 올리고 그랬대…….”
글을 올려?
‘이럴 수가.’
상현의 기억을 스쳐 가는 글이 하나 있었다.
그가 활을 쏘는 방식이 왜 프로스러운지 분석했던 글.
묘하게 전문가스러워서 이상했는데.
그게 현주의 글이었다니.
“근데 나중에 네가 판타지아 인터뷰 나온 거 보고 유상현이 맞구나 싶었대.”
“……아.”
판타지아의 인터뷰는 360도 촬영을 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이거 어제 알았어. 내가 현주한테 네 룬스타 보여주니까. 자기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렇구나.”
“근데 네가 비밀로 하고 싶을 줄은 몰랐다. 야…… 어떻게 보면 현주는 네가 비밀로 하고 싶었던 걸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현주는 알고 있었다고?”
“어. 너인 거 알고 게시글을 지웠다고 했거든. 자연스럽게 말해서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보니 네가 밝혀지기 싫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음.”
현주는 소연이의 절친이었다.
상현이 비밀로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어쩌면 그래서 아는 걸지도 모른다.
“여튼 미안하다. 난 신나서…… 좀 떠들고 다녔거든.”
“괜찮아. 앞으로만 조심해 줘. 다 양궁부 애들한테 말한 거지?”
“그럼! 사실 양궁부 애들 중에서도 너랑 친했던 애들이야!”
“그래.”
이야기가 퍼져 나간 게 걱정이 되긴 하지만, 어차피 상현은 별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한테나 이게 민감하고 중요한 일이지. 남들이 보기엔 굳이 비밀로 해야 할 정도는 아니니까.
“근데 너희들 잘 어울려 다니나 보다.”
상현은 이쯤에서 화제를 전환했다.
“응. 그때 애들, 우리 카페에 자주 들러. 다들 잘 지내고. 메달리스트까지 나오고…….”
“메달리스트?”
상현은 저도 모르게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되물어버렸다.
“응…… 너…… 모르냐?”
동수는 당황한 표정이다.
“현주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잖아.”
상현의 머리가 순간 멍해졌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그의 유소년 시절 전부였다.
‘현주가 올림픽 메달리스트라고?’
항상 내게 와서 가르쳐 달라고 했던 그 녀석이…….
메달리스트란다.
복잡한 감정이 심장을 두들겼다.
“와. 진짜 모른다고?”
“응. 일부러 안 봤어. 양궁 관련된 건. 아직 양궁 하고 있구나, 현주는. 그래서 그렇게 분석도 잘했구나…….”
상현은 횡설수설 식으로 중얼거리고는 침묵했다.
“일부러 안 봐……?”
일부러 안 봤다는 말에, 동수는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 제일 잘했는데…….’
유상현.
양궁부에서 이 이름 세 글자는, 그냥 최고와 동의어였다.
압도적인 실력자였다.
그랬던 녀석이 어느 날 재미없어졌다며 관둔다고 했을 땐. 양궁부 전체가 적잖은 충격에 빠졌었다. 국내 선수권 메달을 따고, 선수촌도 가장 먼저 들어갔던 놈이…….
“아쉽다. 상현아. 너도 계속했으면, 금메달 솔직히 따는 건데.”
“금메달이 무슨 동네 구멍가게냐.”
상현은 애써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젓는다.
“현주가 나보다 훨씬 더 잘했어.”
말도 안 되는 기억 왜곡을 시도하면서.
이상하게 쓰린 가슴을 무시하면서.
* * *
동수는 뭔가 눈치를 챈 건지, 양궁 관련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마지막엔 놀러 오라는 말을 남기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만나서 즐거웠다. 다음에 우리 카페에 놀러 와라. 다 같이 보자.”
“그래.”
상현은 웃으며 대답했다.
웃음이 어딘가 힘겹다.
‘그래’라고 대답은 했지만, 다 같이 볼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상현이다.
‘10년간 잊고 살았는데.’
애써 지워냈던 과거의 흔적들이, 우르르 내게 몰려오는 기분이란.
반가우면서도 겁이 난다.
달곰씁쓸하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일 터다.
카페에서 나가고 나니 시간은 오후 3시쯤이었다.
“난 여기 주차했어. 혹시 태워줄까?”
동수는 꽤 괜찮은 외제차에 올라타며 물었다.
“아냐. 난 그냥 알아서 갈게.”
“그래.”
상현은 등을 돌려 걸어서 멀어졌고. 동수는 차의 시동 버튼을 누르다가, 멈칫한다.
그의 눈이 잠시 백미러로 향했다.
‘아직 미련이 남은 걸까?’
보이는 건 상현의 뒷모습뿐이었다.
10년이나 보지 않은 친구의 뒷모습만으로 어떤 감정을 유추하긴 힘들었다.
다만, 아까 상현의 반응이 마음에 걸린다.
‘일부러 양궁 소식을 다 끊었다니. 올림픽 금메달도 모를 정도로…….’
요즘 세상에야, 정보를 워낙 선택적으로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당연히 비인기 종목의 소식 따위야 듣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옛적의 상현을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무래도, 양궁이 그냥 재미없어져서 그만둔 건 절대 아닌 것 같았다.
호기심이 생겼으나, 동수는 이만 생각을 지웠다.
‘나나 잘하자.’
내 코가 석 자였다. 오늘만 해도 남양주점에 아르바이트가 갑자기 그만둔다고 해서, 본인이 직접 땜빵을 하러 간다.
그는 바로 전화를 연결했다.
“어. 나 지금 가는 중이니까. 평소대로 진행해라.”
드르릉.
요즘은 보기 힘든 자연흡기의 배기음을 내뿜으며, 그의 차가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 사장님께서 직접 가신다.”
* * *
다시 집에 도착한 상현은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게 무슨 기분인 건지…….’
이해하기 힘든 심정이었다.
지금 자신의 상태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현주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단 건 분명 축하할 일이다.
우리 학교 양궁부에서 그런 인재가 나오다니. 놀라울 정도다.
그러나…….
“뭐야. 빨리 왔네?”
마당에서 잡초를 정리하던 주혁이 베란다 창을 통해 들어왔다.
“친구는 어떤 것 같아?”
친구?
상현의 멍한 머리가 잠시 버벅거리다가 후에야 알아듣는다.
이동수가 어떻냐고 묻는 것이다.
“아…… 그냥 뭐.”
“그냥 뭐?”
“그냥……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고.”
“입막음은?”
상현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다 말했다더라. 양궁부 친구들한테.”
상현은 이동수가 발이 넓은 친구이며, 아직도 연락하고 지낸다는 걸 덧붙여 설명했다.
“하.”
주혁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거냐. 그러면.”
“근데 양궁부 애들 몇 명이 안다고 다 퍼지는 것도 아니고…… 다 괜찮은 애들이야. 심지어 한 명은 미리 알고 있었대.”
“엥? 그래?”
현주에 대해서도 설명해 줬다.
근데 왠지 모르겠지만, 금메달리스트라는 말은 쏙 빼놓았다.
자기도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와…… 현주 착하네. 근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입 꾹 다물고 있으려나?”
주혁은 현주를 ‘착하다’고 평했다.
맞았다. 현주는 학창시절에도 배려심 깊고, 붙임성 좋고, 성실하기까지 한 학생이었다. 후배였음에도 배울 게 많은…….
“야. 왜 그렇게 멍때려? 다른 애들은 어떻냐고?!”
주혁이 휙 다가와서 그를 흔들었다.
“아…… 미, 미안.”
상현은 그제야 자신이 멍하니 있었다는 걸 알았다.
“괜찮은 거냐?”
“어…… 다들 말 안 할 거야. 어디에 말해서 자기가 이득을 보는 정보도 아니고…….”
그들이 아는 거라곤 상현이 과거에 양궁을 했다가 그만뒀다는 것.
그게 전부다.
‘오른팔에 대해선 모르니까.’
애초에 가장 핵심적인 정보를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그것도 언젠간 알게 될 터다.
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특히나 요즘 시대엔.
“애초에 대단한 과거사도 아니잖아. 별거 아냐.”
오른팔에 대한 게 밝혀져도, 상현은 별수 없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이미 알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의사도 그렇고, 오 실장도 그렇고, 주혁이도…….
‘별거 아니지.’
그냥 별거 아닌, 개인사일 뿐이다.
그 개인이 생각보다 유명해져서 조금 문제긴 하지만.
[스케줄]상현은 휴대폰으로 캘린더를 열어서 날짜를 확인했다.
거기엔 대회 연습 일정과 더불어, 굵직한 스케줄 같은 것들이 적혀 있었는데.
전부 일 관련된 스케줄 틈바구니에서, 이질적인 텍스트가 하나 보인다.
[한소연 생일]바로 내일이다.
시기 참 적절하다.
이 녀석의 생일을 챙기고 있자니, 갑자기 정말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한소연, 이동수, 차현주, 오종현…… 갑자기 옛 이름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버리니, 정말 그때 그 시절 그 교실의 향기가 코를 간지럽히는 듯했다.
스트리머 아몬드가 아니라, 2학년 11반의 유상현이 된 듯했다.
처음 학기가 시작될 때. 자리에 앉아 무심코 창가로 고개를 돌렸던 그때.
네모난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비추는 소연의 얼굴이 참 예뻤는데 말이다.
띠링!
“깜짝아…….”
요란한 알림 소리.
다시 그를 현실로 불러들이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타코야끼 : 어이~ 아몬드. ‘골드’ 찍었다며?]타코야끼였다.
오늘 있을 연습 경기 때문에 미리 연락한 모양이다.
[아. 예. 어제 승급했어요.] [타코야끼 : 대단하네 ㅋㅋㅋ 어제 스크림 뛰고 솔랭도 그렇게 하다니. 전부 란으로 했던데?] [네. 란이 한 손으로 하기 편해서요.] [타코야끼 : 아. 그렇구나. 레이나는 여전히 잘하는 거 맞지? ㅋㅋㅋ 그러다 갑자기 레이나 감 떨어져서 막상 꺼냈는데 못하면 안 돼.] [넵] [타코야끼 : 일단 오늘 연습은 똑같이 6시!] [넵]그날 상현의 팀과 연습 게임이 잡힌 곳은, ‘무지성고라니’라는 곳이었다.
팀이 컨셉을 잡은 건지, 이름처럼 마구 돌진하는 조합만을 꺼내 들어 왔었다.
때문에 란을 플레이하다가 한 판을 지고 말았다.
‘돌진 조합에 란은 안 되고…….’
상현은 이런 교훈을 얻은 뒤, 3경기엔 ‘서리 궁수 -레온’을 골랐다.
돌진 조합에게 아주 쥐약인 원딜러다. 다리를 얼리면 그대로 고꾸라져버리니까.
적들은 달리는 시간보다 얼어붙어 있던 시간이 더 길었다.
-ㅋㅋㅋㅋ쟤네 어둑서니냐? 왜 계속 얼어 있냐?!
-아 넘어지는 거 개웃기네
-레온도 잘하는구나 ㄷㄷ
-무지성 돌진ㅋㅋㅋㅋ 개웃곀ㅋㅋ
-어둑서니가 아니라 우두커니인 듯
적들은 오로지 돌진을 감행하는 너무 단순한 패턴 플레이를 보여줬고. 레온의 강신기인 빙산맥 생성 등에 무력했다.
경기는 결국 일방적으로 끝났다.
적들은 참패했으나. 수확이 없던 건 아니었다.
돌진 조합 앞에선 아몬드의 란도 무용지물이란 걸 알아냈다.
아몬드의 팀은 서리 궁수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조금 더 잘 알게 되었고, 아몬드는 다양한 숙련도가 올라간 느낌이었다.
각자 원하는 걸 얻은 연습 게임이었다.
“수고들 했습니다.”
“내일 파워랭킹 결산 또 하던데. 우리 또 오를 것 같아요!”
“그러게요. 생각보다 잘 되네요. 재밌었습니다. 형님들.”
“수고하세요~”
오후 9시쯤 피드백까지 종료되고, 상현은 또 솔로 랭크를 돌렸다.
아까 양손을 쓰는 레온을 플레이하느라 체력이 많이 소진되긴 했지만 겨우 한 판이었다. 충분히 이어서 할 수 있었다.
그는 연이어서 란을 골라대면서 연승을 거듭했다.
이제 ‘골드 Ⅲ’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빠른 방종이 아니었음에도, 시청자들은 아우성을 쳤다.
방송을 끈 상현은 씻고 바로 잠에 들었다.
그날 꿈에서, 그는 현주와 함께 금메달리스트가 되어 있었다.
남자 금메달, 여자 금메달.
그리고 그들은 인터뷰에서 같은 소감을 말했다.
‘소연이가 기뻐할 것이다.’
잠을 자고 있는 상현의 눈에서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 * *
다음 날.
상현은 일어나자마자 매일같이 양치를 하고, 몸을 씻고 준비 운동을 했다.
그런데 거기서 하나가 추가되었다.
척.
정장을 차려입었다.
그는 구두를 챙겨 신고, 곧장 현관을 나선다.
또각.
돌바닥에 부딪히는 구둣발의 소리가 경쾌했다. 간만에 회사로 출근하던 때의 느낌이다.
그는 돌아서 창문을 바라봤다.
예전엔 할머니께서 늘 출근하는 상현을 지켜보곤 했었다.
‘할머니.’
그는 별 하나 없이 쨍쨍 맑은 아침 하늘을 올려봤다.
‘할머니도 소연이 알지?’
할머니가 꽤나 이뻐하셨다. 어떤 어른이든 아니, 어떤 사람이든 좋아할 법한 사람이었다.
고운 외모에 정갈한 성격, 깍듯하게 차리는 예의…… 학생회장에 딱 어울린다.
실제로 학생회장도 했던가? 기억이 잘 안 난다.
계단을 다 내려온 그는 택시를 불러세웠다.
텅 빈 앞 좌석에서 따뜻한 목소리의 기계음이 새어 나온다.
“어디로 갈까요?”
그는 오늘 한소연에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