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194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94화
66. 별거 아닌 사연(1)
양궁 카페의 남양주 지점.
동수의 차가 급히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요란한 배기음 덕분에 아주 멀리서도 알기 쉽다.
사장님의 요상한 취향이다.
저 정도 가격이면 자율 주행 자동차를 살 수도 있는데.
남자라면 자연흡기 8기통을 타고 핸들을 직접 돌려야 한다던가…….
어찌 됐든 저녁 담당 매니저는 한시름 놓았다.
입구에서 푸짐한 인상에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가 들어온다.
사장님, 이동수다.
“사장님. 진짜 오셨네요. 다행이다. 저희 펑크 나서 작년에 그만둔 소연이 부르려고 했잖아요.”
“소연이?”
급히 유니폼으로 갈아입던 동수가 멈칫한다.
“네. 이소연이요.”
“아…….”
우연히 이름이 같은 아이다.
그러고 보니, 상현이를 만나서 차마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한소연…….’
한소연과 유상현.
이 둘이 꽤나 각별한 사이였다는 건, 당시 눈치 따위 밥 말아 먹었던 이동수조차 알 수 있었다.
혹시나 싶어 물으면 둘은 한사코 부인하곤 했다.
「내, 내가 얘랑 사귀어?! 무,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있냐! 그냥 친구야!」
화들짝 놀라며 대답하는 모습이, ‘우리 사귀어요’라고 광고하는 것과 같았음을 어렸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실제로 사귄 건 아니라지.’
후에 현주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귄다고 말은 안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게 무슨 의미인가.
서로에게 각별한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는데.
그러니까 동수도 차마 상현이 앞에서 소연의 이야기를 못 꺼낸 것이리라.
“저. 사장님?”
매니저가 그를 톡톡 건드렸다.
“아…… 어?”
“괜찮으세요?”
“어. 어. 갑자기 급하게 오느라고 좀 정신이 없어. 왜?”
“아니, 저기 과녁이요. 하나 갈아줘야 할 것 같은데. 재고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일단은 빼놨어요.”
“아. 과녁. 내가 주문 넣을게. 일단 퇴근해.”
“넵!”
퇴근이라는 말에 벼락처럼 도망치는 매니저.
그 모습에 동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어디 보자…… 과녁…….”
그는 카페 한편에 마련된 양궁장으로 향했다.
동수는 잔디가 깔린 그곳을 터벅터벅 지나서 다 찢어져 가는 과녁을 들어 올렸다.
“이야. 누가 이렇게 열심히 쐈냐. 나 거덜내려고 작정했나.”
동수는 싸구려 재질로 만든 과녁을 이리저리 살피며 중얼거렸다.
노란색, 빨간색, 검은색.
이 3가지 색깔에 최면이라도 걸린듯, 얼마나 열심히 쏴댔던가.
그때 그 시절의 우리는.
* * *
동수가 상현을 처음 봤던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때는 그도 양궁을 진지하게 하고 있을 때였다.
중학교 시절엔 나름대로 잘한다고 자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했던 걸로 기억한다.
‘여긴 전통 스포츠 특성화니까…….’
그가 진학한 청계고는 일반 인문계이긴 했으나, 특별 활동 특성화가 진행 중인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전통 스포츠라고 해서, 태권도, 양궁을 필두로 고대부터 있었던 전통 있는 스포츠들을 다루는 부서가 많았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선 흔치 않게 육상부에 큰 투자가 된다든가.
물론 그렇다고 해도 체육고보단 덜하겠으나.
그건 집안의 자금 문제로 갈 수 없었고, 유일한 대안이 청계고였다.
아마 그건 그가 만났던 유상현도 비슷했던 것 같다.
유상현에 대한 그의 첫인상은 ‘강심장’이었다.
지금 스트리머로서 비춰지는 상현이와는 비슷하면서도 많이 달랐다.
조금 더 날것이었다고 해야 하나.
“양궁부에 온 걸 환영한다. 여기는 취미 생활로 쏘는 곳은 아니니까. 대충 쏘면 처맞는 줄 알아라.”
처음부터 우리는 너희 기합을 잡겠다고 선포하듯이 구는 선배들 앞에서.
동수의 바로 옆에 있던 상현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게 뭐 대수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어린 동수에겐 그게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상현이 왜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는지는, 당일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자. 일단 간단한 입단 시험이다.”
선배들이 과녁을 세팅하고, 우리는 각자의 활을 들었다.
“올림픽 기준으로 세팅해 뒀다. 10점을 한 발이라도 쏘면 입단이다.”
사실 올림픽에서 10점을 한 발 쏜다면 그 선수는 영구 퇴출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의 우리는 고1이었다.
아직 성장도 다 마치지 못한 그들에게 올림픽 세팅은 상당히 고난이도였다.
“누가 제일 먼저 쏠…….”
파앙!
선배들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화살이 날았다.
그리고 과녁의 한가운데로 화살이 꽂혔다.
푸욱!
“……시, 십 점?!”
동수는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그러는 사이에 또 화살이 날았다.
푹!
또 10점.
그리고 연이어서 준비한 5발의 화살 중 4발이 10점에 꽂혔다.
나머지 1발은 약간 비껴서 9점이었다.
상현은 그마저도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아…… 실수했네.”
동수는 이때 직감했다.
‘저, 저 새끼 뭐야?’
저놈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다는 걸.
‘제대로 된 위치에 서 있지도 않잖아?’
당시 상현은 과녁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지도 않았다.
45도로 비껴 선 채였다. 그 상태로 그냥 과녁을 향해 쏜 것이다.
“……합격.”
선배는 일단 합격을 외쳤다.
“근데 넌 끝나고 남아라.”
조금은 무서운 말과 함께.
* * *
동수도 겨우 10점을 두 번 맞혀내면서 입단에 성공했고.
이 날의 부활동은 간단하게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주면서 끝났다.
‘아까 그 새끼는…… 어떻게 되려나.’
상현이 어떻게 될지 걱정하던 동수는 체육관을 나선 뒤에, 슬쩍 길을 돌아서 뒷문 창문을 살폈다.
선배들이 상현을 둘러싸고 있다.
그럼 그렇지.
‘큰일이다.’
그는 너무나 예상대로 흘러가는 모습에 당황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가 무슨 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었다.
“어. 상현이 왔구나.”
코치로 짐작되는 목소리.
“안녕하세요.”
“그래. 청계고로 왔구나. 다행이야. 인사들은 했냐?”
선배들은 갑자기 등장한 코치님 앞에서 얼어붙었다. 게다가 코치가 이미 상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아…… 막 하려던 참입니다.”
“그래? 흠.”
코치는 싱긋 웃으며 어림도 없다는 듯 일갈했다.
“인사하는 데 오래도 걸리네.”
선배들은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휴.
지켜보고 있던 동수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코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상현은 5분 정도 뒤에 체육관을 나왔는데.
“어?”
동수는 마치 우연찮게 마주친 것마냥 놀라며 그의 옆에 붙었다.
“……?”
상현은 동수를 기억도 못 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지나가려 했다.
“야, 야! 나 몰라?”
“……오늘 학교 첫날인데. 어떻게 아냐.”
“아씨. 네 옆에 있던 놈이잖아.”
“아.”
상현은 다시 지나가려 했다.
“야! 잠깐만!”
“아니. 왜.”
동수가 또 붙잡자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었다.
“나 이동수야.”
인사를 하자는 것을 알고는 조금 표정이 누그러뜨리는 모습이었다.
“……난 유상현.”
손을 맞잡는 상현을 보며, 나쁜 녀석은 아닌 것 같다고, 동수는 생각했다.
“너 아까 왜 그랬냐.”
“뭐가.”
“거기서 갑자기 화살을 쏘면 어떡해. 양궁 연습은 첫째도 둘째도 안전인데.”
“아.”
상현이 그때 피식 웃으면서 했던 말이, 동수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난다.
“귀찮게 말이 많잖아.”
‘……미친 새끼.’
그게 예의 없는 짓임을 알면서 일부러 쏜 거였다.
무어라 한마디 해야 되지만. 동수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상현의 기세에 겁먹었다.
저렇게 활을 잘 쏘는 놈을 처음 봤다.
그러나, 동수 대신 한마디 할 사람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야.”
그들을 가로막은 한 여자아이의 그림자.
그림자만 봐도 이쁜애라는 걸 알 수 있는, 그런 애였다. 한소연은.
“아까 갑자기 활 쏜 거 뭐야?”
“…….”
동수에겐 한없이 까칠했던 상현은, 소연이 앞에선 제대로 말을 못했다. 여자아이라서일까?
“뭐냐니까? 첫날부터 맞아 죽고 싶은 거야? 활을 안 배운 애도 아니던데.”
“……너도 양궁부냐?”
“그래. 네 옆옆이었다.”
동수가 이쯤에 끼어들었다.
“난 옆이었어! 반갑다!”
“…….”
소연이 그를 한심한 듯 흘겨보더니, 다시 상현을 쳐다봤다.
‘나한텐 관심이 없어!?’
동수는 상처를 받았다.
소연의 잔소리는 조금 더 이어졌다.
“그거 원래 진짜 맞아도 할 말 없는 거야.”
“하아…….”
상현은 할 말이 없는지, 그냥 한숨을 쉬며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야!”
“다음부턴 안 그럴게.”
“!?”
그가 소연을 돌아보며 약속했다. 순간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물론 금세 고개를 돌렸지만.
“뭐?”
“다음부턴…… 안 그런다고.”
“또 그러면?”
“그럼 때려.”
이게 셋의 첫 만남이었다.
상현이 휙 가버린 뒤.
동수가 소연에게 물었다.
“근데…… 소연이? 맞지? 넌 왜 여기 남아 있냐.”
“……어? 뭐가?”
“수업은 아까 끝났는데. 왜 여기 있냐고.”
“……”
소연은 동수를 그냥 무시하고는 저 멀리 걸어가 버렸다.
동수는 또 상처를 받았다.
“내, 내 말이 잘 안 들리나……?”
그는 괜히 자신의 목젖을 만져봤다.
* * *
그 이후로, 상현에 대한 기억은 그저 양궁부의 신예, 에이스, 슈퍼 루키…….
정도의 단편적인 기억뿐이었는데.
유일하게 첫 만남 이상으로 인상적이었던 시점이 하나 더 있다.
1년이 지난, 고등학교 2학년 때이다.
“금메달! 유상현 선수! 렌즈 몇 개를 깨버립니까!? 연이어서 한가운데를 쏘면서 금메달을 따냅니다! 선수권에선 최연소죠?!”
“예! 대단합니다! 우리나라 코치진이 해외에 수출이 되면서 위태로웠던 양궁계에 희망이…….”
유상현이 국내 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버린 것이다.
다음 날.
여자아이들이 멀리서 수군대는 터에, 유상현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도 어느 반에 유상현이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와…… 진짜 존잘러다.”
“쟤야?”
“뭐, 뭐야, 쟤 신궁 맞네. 내 심장에 언제 쏜 거야!”
“나 장래 희망 정했어. 활이 될 거야.”
동수는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었으나.
막상 자기가 금메달을 땄으면, 동네 형들이 우르르 몰려 왔을 거라고 생각하니.
본질은 다른 데 있었다는 걸 알아버렸다.
하나, 그런 부러움도 잠시였다.
양궁 선수들이 늘상 그렇듯이, 관심은 1주일을 채 가지 못했다.
나중엔 ‘아, 양궁 걔?’라는 정도로 통용될 뿐. 유상현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아이들도 몇 없었다.
동수는 이게 이유라고 생각했다.
“재미없어졌어.”
선수촌에 갔다가 몇 달 만에 돌아온 그가 이런 말을 하면서 그만둔 이유 말이다.
양궁이라는 스포츠의 입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메달 땄을 때나 반짝하는 인지도.
축구나 야구처럼 프로 리그가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보기에도 지루한 스포츠다.
그저 국뽕이나 올려주는.
자기 만족을 위해 쏘는 게 차라리 나은 그런 스포츠이기에, 상현이 그만뒀다고 여겼다.
‘관종 새끼.’
동수는 이렇게 속으로 욕이나 하고 말았지만.
소연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나 보다.
상현이 뒤돌아 나가자마자 갑자기 활을 던지고 뛰쳐나갔다.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동수는 한소연이 그렇게 큰 소리를 내는 걸 처음 들었다.
잔소리가 좀 있는 편이긴 해도, 고함을 치는 스타일은 절대 아닌데.
타악!
상현의 어깨를 잡아채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저게 소연이가 정말 화났을 때의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됐다.
저 멀리에서 실루엣으로만 봐도, 둘 사이에 끼어들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다.
동수는 그저 멀찍이서만 지켜봤다.
“무슨 상관이냐니!? 너…… 너 보고 입단한 애들도 있는 거 몰라!? 현주는?! 종현이는?!”
“그 애들 때문에 내가 재미없는 걸 하고 있어야겠냐.”
냉정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한소연은 고장난 것처럼 멍해졌다.
상현은 그 틈에 다시 뒤돌아서, 운동장을 지나 교문을 나갔다. 학교도 전학을 간단다.
동수는 작별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다.
* * *
그 사건이 있은 뒤로, 약 6개월이 지난 시점.
동수도, 소연도 이제 어엿한 3학년이었다.
이제 슬슬 그들의 기억에서 유상현이라는 존재는 지워져가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늘 그렇듯이, 적응이 빠른 법이다.
“하아. 난 양궁에도 별로 재능도 없고. 공부는 하나도 안 해놨고. 뭐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점심시간 후. 동수는 늘 습관처럼 벤치에 누우며 신세를 한탄했다.
준비되지 않은 고3들이 으레 하는 말 따위였다.
이쯤 되면 늘 소연이 그럴 시간에 그럼 공부를 하라며 한소리하곤 했다. 그녀는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그 말이 안 나왔다.
전화기에 대고 심각한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뭐……? 어디서 봤다고?”
동수는 무슨 일인가 슬며시 일어나 그녀를 쳐다봤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다시 후계로 왔다고?”
말했듯, 어린아이들이나 적응이 빠른 법이다.
소연이는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유상현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해봐. 유상현 본 곳이 어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