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195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95화
66. 별거 아닌 사연(2)
수업 시간이 끝나고, 똑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우르르 교문 밖으로 빠져나간다.
모두가 동시에 끝나는 시간이기에, 교문은 숨 쉴 틈 없이 빡빡했다.
출근 시간의 지하철처럼.
그 틈으로 비집고 드는 한 학생이 외쳤다.
“잠시만! 미안! 나 좀 나갈게!”
새하얀 운동복에, 새하얀 모자. 그 아래로 길게 늘어진 흑발.
고등학교의 하교 시간에 흔히 보기는 힘든 모습이었다. 더 희한했던 건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절박함이었다.
“지, 진짜 나 빨리 가야 되거든? 얘들아. 좀만…… 으……!”
3학년이라는 게 새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소연은 무지막지한 인파를 뚫고 뛰어나오는 데 성공한다.
탁.
발목에 드러난 피부처럼 새하얀 운동화가 드디어 학교 운동장의 잔디가 아닌 보도블록을 밟았다. 동시에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나간다.
‘육상부인가?’
‘체대 준비하나 봐.’
‘진짜 빠르네.’
다른 아이들이 넋을 놓고 볼 정도로 빠른 달리기였다.
그들의 예상대로 운동부는 맞았다.
달리기랑 전혀 관련은 없지만.
“하아…… 하아…….”
그래서인지 얼마 못 가 숨을 헐떡였다. 지구력은 없는 모양이다.
턱.
들썩이는 그녀의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올라왔다.
“언니!”
차현주, 라고 쓰인 명찰이 밝게 빛나는 여학생이었다.
“진정 좀 해!”
“……너, 넌 왜 따라왔어?”
“그야! 언니 지금 꼴을 봐봐. 거기서 상현 오빠 봤다는 거. 정확한 것도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지금 가서 확인해 보겠다는 거지.”
그녀는 현주의 손을 뿌리치고 도로변으로 나섰다.
다급하게 손을 흔들며 무언가를 불러세웠다.
지잉.
매끄럽게 멈춰 선 그것은 택시였다. 최근 도입된 자율 주행 택시다.
“언니!”
“넌 타지 마!”
툭.
문을 잠가서 귀찮게 구는 후배를 물리친 후.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어…….”
텅 빈 앞 좌석, 쓸데없이 화려한 엠비언트 라이트.
처음 타보는 자율 주행 택시다.
상용화된 지는 1년 가까이 되었지만, 택시를 탈 일이 별로 없는 학생 신분이기에 사용 방법이 낯설다.
쿵. 쿵. 쿵.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이번엔 동수였다. 얼마나 뛰어온 건지 얼굴이 시뻘겋다.
그 꼴이 안타까워서라도, 소연은 창문을 열었다.
“뭔데.”
“야! 유상현 그 새끼 그냥 양궁이 멋없어서 때려치운 거야! 왜 그렇게 걔한테 안달이야!”
“……네가 뭘 모르니까 그딴 소리 하지.”
“뭐?!”
“상현이는…….”
소연은 잠시 뜸을 들였다.
“걔는 양궁 그만 못 둬. 무슨 이유가 있는 거야.”
“야 이 정신병──”
지잉.
다시 창이 닫혔다.
“후계 3길 74-8로 가주세요.”
“청계 고등학교에서, 후계 3길 74-8로 이동합니다.”
* * *
자율 주행 택시 안.
상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필 이 차냐.”
한참 이슈가 되어서 많이 사라졌었는데.
요즘 들어 다시 나오는 모양이다.
그냥 내릴까도 고민했지만 언제까지 이럴 순 없다. 상현은 그냥 눈을 질끈 감고,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샛강 추모 공원.”
“후계에서, 샛강 추모 공원.”
기계 음성이 되새기듯이 말하자, 옆의 화면에 지도가 붕 떠오르며 반응했다.
상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이 과하게 뛰는 것 같았다. 그의 손이 괜히 옆의 손잡이를 꼭 쥔다.
“출발합니다. 안전벨트를 꼭 착용해 주세요.”
운전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우웅!
전기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창밖의 풍경이 슥슥 지나간다.
지이이잉…….
모터음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휴대전화 진동음.
[김주혁]주혁에게서 온 전화다.
상현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휴대전화를 꺼내 든다.
“뭐냐.”
-야. 너 어디냐? 말할 거 있는데. 갑자기 없네?
“아…….”
상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의 차림새를 체크하고는 대답한다.
“나 결혼식.”
-결혼식?
“저번에 만난 동료 있잖아. 걔 결혼식이래.”
-아. 어쩐지. 그래서 연락 왔구나? 여튼 우리 인터뷰 있잖아?
“인터뷰?”
-어. 폴리스랑 인터뷰. 집혔었잖아.
“아…… 그랬지.”
릴의 제작사인 폴리스와 인터뷰가 잡혀 있었다.
-그거 그냥 대회 뒤로 미뤘어. 내가 패기 있게 우승 인터뷰로 잡아달라고 했거든?
“게임은 내가하는데, 왜 패기는 네가 부리냐.”
-그냥 농담으로 알아들었겠지. 뭐.
푸하하. 주혁이 웃어댄다.
-그리고 망나니 용사 제작사랑도 미팅 있어. 약간 시사회?처럼 진행될 거다. 다음 주부터 제대로 오픈베타 개시거든. 우리도 거기 참여해서 광고 방송해야 한다.
“지금 대회 중인데?”
-다른 스트리머들은 놀고 있냐? 광고는 광고고, 대회는 대회지.
하기야.
상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또 착각해 버리고 말았다. 그는 선수도 아니고, 스트리머에 불과한데.
당연히 대회 연습보단 광고가 우선일 터다.
“……음. 알았다.”
-오키~
생각보다 스케줄이 빡빡하구나.
상현은 오늘 만나러 가기로 결심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교통 변화를 감지하여, 경로를 변경합니다.”
텅 빈 앞 좌석의 핸들이 스르륵, 움직이며 차선이 변경되었다.
* * *
소연은 곧장 전화를 걸었다.
한참 신호가 간 뒤에야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상현의 목소리였다.
“너 어디야.”
소연이 입술을 꽉 깨물며 물었다.
-그건 왜.
“나 학교 끝났어. 너 집이지? 아직 거기 살지? 다 알아. 너 봤다는 사람 한둘 아니거든.”
-……스토커냐.
“스토커가 아니라, 추노꾼이다. 먼저 선수촌 입성하고, 협회에서 스폰이랑 특혜는 다 받더니. 그냥 그렇게 재미없어졌다고 도망가? 넌 그 세금 다 뱉어내기 전엔 못 그만둘 줄 알아.”
-……하아.
“뭐가 잘했다고 한숨이야? 내가 장난치는 것 같아?”
-너답지 않게 유치한 말 하지 말고. 그냥 집으로 가.
“뭐!? 유…….”
툭.
전화가 끊어지자, 어이가 없는 듯 한숨을 토해냈다.
“하……!”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의 대답 대신, 택시에서 낯선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교통 변화를 감지하여, 경로를 변경합니다.”
휴대폰에서는 연결음만이 울려 퍼질 뿐. 결국 연결되지 않았다.
“……대체 뭔데.”
하얀 모자 아래에서, 결국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젠 딱히 볼 필요도 없는 백미러에 비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처량했다.
슥.
그러나 본래의 의연한 성격처럼, 그녀는 얼른 눈물을 닦아내고, 마음을 굳혔다.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교통 변화를 감지하여, 경로를 변경합니다.”
두 번째 이 음성이 울려 퍼질 때도.
소녀는 초조한 듯 하얀 모자를 만지작거릴 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알아서 잘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교통량에 따라서 이리저리 빠른 길로 옮겨 다니는 시스템이라는 건 학교에서도 배운 적이 있다.
“교통 변화를 감지하여…….”
연이어 세 번째 음성이 울렸을 때.
그제야 이상함을 눈치챘다.
“?”
그러고 보니 슬슬 보여야 할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수동 안내로 바꿔야 하나? 그녀는 텅 빈 운전석을 바라봤다.
몇 개의 간단한 버튼이 보이는데.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학생이 차도 상황을 제대로 알 리가 없다.
“교통 변화를 감지…… 파……푸…….”
치지지지직……!
급기야 이상한 노이즈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그녀는 황급히 안전벨트를 풀고, 비상 정지 버튼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안전벨트부터가 풀리지 않았다.
“주행 중엔 안전벨트를 푸실 수 없습니다.”
‘뭐……?’
냉정한 기계 말투가, 어쩐지 시리게 차가웠다.
그 딱딱한 말투로, 택시는 연이어 외쳤다.
“예상 경로에서 벗어났습니다. 경로를 다시 탐색합니다.”
“예상 경로에서 벗어났습니다. 경로를 다시 탐색합니다.”
“예상 경로에서 벗어났습니다. 경로를 다시 탐색합니다.”
“예상 경로에서 벗어났습니다. 경로를 다시 탐색합니다.”
.
.
.
소녀는 빠르게 휴대폰을 들고 119를 찍었다.
“태, 택시가 이상해요! 도와주세요!”
신고 접수원은 그녀의 번호로 위치를 확인했으나.
그 위치는 시시각각 변해버렸다.
“속도위반 단속 지역입니다. 속도를 줄여주세요.”
핑! 핑! 핑!
빨간 조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며, 운전자에게 속도를 낮추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속도를 낮출 운전자는 없다.
시속 80, 90, 100…….
빠아아아아아아앙!!!!
앞 차량이 다급하게 토해내는 경적이 마지막으로 듣게 된 소리다.
* * *
“도착하셨습니다.”
택시의 음성이 울려 퍼지고, 상현은 카드를 찍어 계산을 마쳤다.
쏴아아아…….
내리자마자 꽤나 익숙한 향기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 온다.
촉촉한 물 내음과 사방에 펼쳐진 침엽수들이 내뿜는 솔향이다.
고개를 슬쩍 돌리니, 목적지가 정갈한 글씨체로 쓰여 있다.
‘샛강 추모 공원’
문득 지나가면 여기가 추모 공원인지도 모를 법한 공간이었다.
아마 아이들은 여기서 뛰어놀면서도 모를 것이다.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공간이라는 것을.
샛강 근처를 다니다가, 문득 길을 잘못 들어서면 실수로라도 들어올 수 있는 구조였다. 이는 설계부터 의도된 효과였다.
이 공간은, 죽음이 두렵거나, 어떤 특별한, 혹은 괴로운 게 아닌 인간사의 종착역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이 추모 공간도 말끔하고 검은 대리석에 고인들의 이름이 박혀 있다.
그 앞을 지나가면, 검은 배경에 비친 내가 보인다. 내 모습 위로 그 이름들이 덮인다.
나 또한 언젠가 저 이름들 중 하나가 될 터다.
그게 슬픈 것도, 두려운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다음 세대를 향해 자리를 비켜주고 있다.
시커먼 대리석 벽을 스치며 지나치던 손이 어딘가에 멈춘다.
거기에 낙인처럼 새겨진 이름.
‘한소연.’
‘2007. 12. 03 ~ 2025. 06. 27’
유독 짧은 생애도 밑에 함께 부연되어 있다.
그녀의 탄생은 모든 생명이 얼어붙어 스러지는 겨울이었으나.
그녀의 죽음은 모든 생명이 활기를 뿜는 초여름이었다.
‘25년 6월 27일.’
상현의 눈길이 그 숫자에 깊이 머물렀다.
저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여름이 이제 막 시작되려는 시기, 모든 생명이 절정을 맞이하는 싱그러운 계절의 서막에, 그녀의 생명은 꺼져 버렸다.
허무하게도, 그녀 역시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당시 크게 문제로 대두되었던 완전 자율 주행 차량들의 오류로 인한 사고.
상현이 당한 것과 똑같은 사고였다.
‘내가 그때 전화 통화라도 제대로 했다면…….’
사고 직전. 소연은 상현에게 전화했었다. 그 통화에서라도, 상현이 만약 양궁을 왜 그만두는지, 제대로 알려줬다면 어땠을까?
그가 자율 주행 사고에 당했고, 앞으로 너도 조심해서 타라고 했다면…….
‘달랐을까?’
이런 잔인한 ‘만약’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평소엔 어디 한구석에 잘 가두어뒀던 감정들이 그를 난도질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털썩.
그는 대리석에 등을 기대며, 쓰러지듯이 앉았다.
“간만이지? 작년엔 바빠서 못 왔어. 미안하다.”
하얀 입김이 후회와 함께 피어오른다.
이제 10년째 오는 곳인데도, 올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다행히 이제 눈물을 흘리진 않는다.
“소연아.”
그는 들릴 리가 없는 벽을 향해 조용히 읊조렸다.
“나 어제 동수 만났다.”
이곳에 오면 상현이 늘 하는 일이다.
마치 소연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간의 사연을 들려준다.
“살 많이 쪘던데? 잘살고 있고. 네 얘기는 안 하더라. 일부러 안 한 것 같아.”
상현은 동수가 자신을 배려해 줬음을 알고 있다.
“근데…… 조금 무서워.”
그는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말을 소연에게 고백한다.
“걔네들이 알게 될까 봐. 내가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 내가 널…… 사실 살릴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될까 봐.”
그렇다.
이게 상현이 가장 두려운 것이다.
대중들이 자신의 약점을 알게 되는 것도 역시나 무서운 일이고, 그들의 입에 소연과 관련된 신파가 감성팔이처럼 오르내리는 것도 물론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이미 10년도 더 된 일.
이미 많이 무뎌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가슴을 짓누르는 건.
“내가 널 죽인 거나 다름없다는 걸. 걔네들이 알게 되면…… 어떨지…….”
죄책감이다.
소연은 상현과 같은 사고를 당해 죽었다.
죽기 직전 통화했던 것도 상현이다.
그리고, 상현은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해주지 않았다.
최소한의 설명이라도 했다면, 하다못해 자율 주행 차를 조심하라는 말이라도 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거다.
이 사실을,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던 사람을 지키기는커녕 되려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걸, 과거의 동료들이 알게 되는 것.
이게 상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그간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현주가 금메달리스트가 된 것도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동수에게 룬스타로 연락이 왔을 때.
이젠 정말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스트리머로 살아갈 거라면.
어차피 맞닥뜨려야 한다는 걸.
“그래도 웃긴 게, 연락이 오니까 반갑더라. 시간이 많이 지나긴 했나 봐.”
그때, 놀랍게도 검은 벽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진짜로 기일이 아니라 생일에 오시는구나.”
“!”
화들짝 놀란 상현이 두리번거렸다.
“보통 고인에 미련이 많이 남은 사람들이 생일에 온다던데.”
음성의 주인공은 천천히 돌벽을 돌아서 벽의 끝에서 등장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소연과 가장 친했던 후배인 차현주였다.
“아니면 저희랑 마주치기 싫어서 그러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