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23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3화
9. 편집자 영입(1)
덜컹덜컹.
퇴근 시간의 지하철에서 나는 소리.
“하아.”
서지아는 이 소리가 싫었다.
이 거대한 열차가 일으키는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게 싫었다.
휩쓸리다가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에 떨어질 수 있다면.
만약 그렇다면 차라리 좋을 테지만.
-……내리실 문은 왼쪽, 왼쪽입니다.
결국 이 파도가 끝나는 순간조차 또 다른 파도에 휩쓸려야만 했다.
“아, 좀 나갑시다!”
“비켜요!”
“갑니다~”
스쳐 가는 넥타이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면서 도착한 후계역. 그녀가 사는 동네였다.
서울 후미진 곳에 자리한 작은 마을. 누군가는 달동네라고 부르는 이곳은 그녀가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다.
“다녀왔습니다.”
지아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사를 건넸으나, 받아줄 사람은 없었다.
툭.
가방을 내던진 채 컴퓨터 앞에 쭈그려 앉는다.
앞에 놓인 아몬드 봉지를 열어 한 움큼 입에 털어 넣고는 물을 들이켰다.
꿀꺽.
한 번에 전부 들이켜 버린 후.
트리비 웹 페이지로 향했다.
그곳에서 팔로우 목록 중 하나를 클릭한다. 요즘 들어 보는 데 재미가 들린 인터넷 방송이었다.
그녀가 식사 대용으로 자주 먹는 것과 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의 방송.
아몬드.
‘시간 딱 맞췄네.’
그녀의 예쁜 입술이 미소를 그렸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표정이었다.
이게 그녀의 유일한 낙이었다. 퇴근 후 지켜보는 아몬드의 방송. 비록 이 낙이 시작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그녀는 이 낙을 위해서라면 월급 중 절반을 후원해도 괜찮았다.
어차피 행복하기 위해서 쓰는 돈.
이런 곳에 쓰는 게 쓸데없이 사치품을 사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화면 속의 아몬드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퀘스트 진짜 이상하네.’
에밀리아 영애에게 무려 성을 공략해달라는 퀘스트를 받은 아몬드.
그는 그 말도 안 되는 임무를 수락하고, 실제로 수행할 생각이었다.
그저 방송의 재미를 위해 수락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진짜로 깰 생각이야?’
아몬드는 성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놀라운 실력으로 두 병사를 동시에 처리하고서.
“…….”
지아는 무엇에 홀린 듯이, 그의 방송을 지켜봤다. 오른쪽 하단에 있는 캠으로 시선이 많이 가긴 했으나, 역시나 아몬드는 실력 방송.
-파앙!
마지막 병사를 쓰러뜨린 화살이 날아갈 때, 지아는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쳐버렸다.
‘와!’
그리고 기관총을 연사하는 듯한 고속 연사로 성주의 갑옷을 깨부쉈을 때는 육성으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우와아!”
타다다닥.
그녀는 얼른 키보드를 두들겼다.
후원을 하기 위해서.
‘10만 원 할까?’
일전에 10만 원 미션을 걸었던 ‘루비소드’라는 사람이 머리를 스친다.
‘30만 원 가자.’
아몬드를 후원하는 것만큼은 다른 사람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자, 이제 에밀리아 영애가 놀라는 얼굴을 보러…… 어?
눈이 휘둥그레진 아몬드의 모습.
그녀는 오른쪽 아래에 박힌 캠 화면에 더 집중했다. 실제 상현의 얼굴도 꽤나 솔직한 반응을 하는 중이다.
‘어떤 리액션을 하려나.’
이 정도의 리액션만으로도 서지아는 충분히 만족했지만, 아마 그녀가 아는 아몬드라면 뭔가 더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아몬드는 잠시 멍하니 채팅창을 보더니.
-아, 무려 30만 원……! 정말 감사합니다! 서지아 님! 근데 이름이 낯설지 않은데…….
머리를 긁적인다.
그 모습을 보며 지아의 입술이 예쁜 미소를 그렸다.
“기억하네.”
뿌듯하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는 찰나.
아몬드는 채팅을 읽어가다가 적절한 아이디어가 생각난 모양이다.
-공중제비를 돌면서…… 방종……. 좋네요.
그렇게 말하자 채팅창은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다. 누가 그 말을 꺼냈냐는 둥, 방종 왜 하냐는 둥, 서로를 헐뜯었다. 물론 거기에 악의가 느껴지진 않았다.
친한 친구들끼리 깔깔거리며 놀리는 듯한 분위기. 지아는 이 방의 이런 분위기가 좋았다.
-트바!
아몬드는 공중제비를 돌고 두 팔을 치켜들었고. 그 순간 정수리에 화살이 꽂혔다.
솔직히 굉장한 묘기였지만. 트리비의 시청자들은 깔깔대며 웃기 바빴다.
“푸훕…… 귀여워.”
그건 지아도 마찬가지였다.
더 웃긴 건 그다음.
-어……?
아몬드는 부활 장소에서 다시 태어났고, 방송은 종료되지 않았다.
-아, 아무래도 최적화 세팅을 맞춰놔서 안 튕긴 모양이네요.
그리고 그는 수동으로 게임을 꺼버렸다.
“푸하핫. 아니, 방송을 꼭 꺼야 하는 거야?”
그 모습에 지아는 빵 터져 버렸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어코 방종……ㅋㅋㅋㅋ
-공중제비 돌면서 방종은 못 했네, 그래도 ㅋㅋㅋ
-따로국밥
-ㅋㅋㅋㅋㅋㅋㅋ
-방종할 시간이 되긴 했지~
-미치겠닼ㅋㅋㅋ
지아도 채팅을 치면서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재밌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보단 재밌다는 생각뿐이었다.
무려 30만 원일 수도 있지만, 그녀에겐 이 정도의 리액션을 본 것만으로 30만 원의 값어치는 충분했다.
돈을 버는 목적이 행복이라면, 이것이야말로 그 목적에 정말 부합하는 소비였으니까.
‘클립 따 둬야지.’
그녀는 이제 본업으로 돌아갔다.
아몬드의 영상 클립을 여러 개 따 두고, 그것들로 다시 매드무비를 만드는 거다.
폴더를 열어 수많은 음악 파일을 하나씩 다시 감상해 보고, 어울리는 배경 음악을 골랐다.
‘회사에서 쓰는 것들이지만, 이 정도 샘플은 그냥 누구나 써도 되는 거니까…….’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작업에 몰두하는 지아.
그녀의 눈이 반짝거리며 약간의 흥분기가 돌기 시작한다.
‘이번 건 역대급일 거야.’
저번에 만들었던 게 초라해 보일 정도로, 이번 영상은 뛰어날 것이다.
스토리 라인도 깔끔하고, 영상미도 이전의 활약들에 비해 훨씬 뛰어나니까.
게다가 아몬드가 보여줬던 묘기에 가까운 슈팅 퍼포먼스는 오히려 저번보다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그는 정말로 더 성장해 버렸다.
‘그러니 매드무비도 성장할 수밖에.’
지아는 아몬드를 다시 한 움큼 입에 털어 넣고, 마우스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 * *
“후아!”
땀에 절은 머리칼을 넘기며 일어난 상현. 그는 옆에 상비된 수건으로 흥건해진 얼굴을 닦아낸다.
“이제 죽어도 튕기지 않는구나…….”
리액션을 하면서 조금 당황했지만. 채팅창의 반응을 보니 어찌 됐든 잘 풀린 모양이다.
무려 30만 원어치의 리액션인데, 별로면 안 되겠지.
“……30만 원 후원이라니. 누굴까?”
서지아…….
이름이 분명 낯설지 않았다.
“아.”
상현은 미처 컴퓨터 앞에 앉기 전에 기억이 나버렸다.
‘아몬드 팬 서지아.’
그 엄청난 매드무비를 만들어줬던 팬이다.
‘100만 원 후원도…… 했던 것 같은데.’
거기에 도토리묵과의 합방에서 무려 100만 원을 후원했던 사람이다.
‘여자 같은데, 조금 부담스럽다.’
잘 생겼다고 하는 걸로 보나, 이름으로 보나 여자 팬인데, 과한 사랑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상현이었다.
왠지 어린 것 같은데, 스트리머에게 그렇게 큰돈을 쏘다니.
‘내가 너무 꼰댄가.’
상현은 머리를 긁으며 생각을 털어버렸다. 금수저겠지. 뭐.
스트리머를 하면서 남의 돈 받는 걸 부담스러워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벌써 시간이…….’
저녁 방송을 했더니 벌써 새벽 2시였다.
그는 가볍게 땀을 씻어내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어디 보자.’
자기 전에 커뮤니티 킹치만에 접속한다. 이젠 이게 정해진 삶의 루틴이다.
매번 대중들의 반응을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곳에 가 보는 것.
일단 킹덤 커뮤니티 킹치만.
[아몬드 30만 원 리액션.gif]이런 제목의 게시글이 보인다.
상당히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
-나중에 100만 원 터지면 어떻게 되는 거임
-그땐 캡슐 뿌수는 거 영상 올리나? ㅋㅋㅋㅋ
└아몬드 하고 싶은 거 다 해! 지구 뿌셔! 캡슐 뿌셔!
-도랏다…… ㄹㅇ 도랏다…….
└ㅋㅋㅋㅋㅋㅋㄹㅇ 공중제비를 돌았네.
└근데 활만 잘 쏘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운동신경이 좋은가? 공중제비는 아무리 캡슐이어도 좀 어려운데.
└현실보단 쉬움.
└ㄴㄴ현실에서 비보잉 하는 사람은 오히려 저게 더 답답하다고 함. 필요한 소양이 다름.
└도토리묵이 아몬드 집중력이 넘사 수준으로 높다 함.
-아, 오늘 방송 놓쳤네. 이제 일어나서…….
└ㅁㅊㅋㅋㅋㅋ
└0군 평균 기상 시간, 새벽 2시.
상현조차 킥킥대면서 댓글을 읽어 내려갔다. 인터넷엔 참 재밌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상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서 재밌는 거다.
[화살도 이 정도면 지랄 맞다.gif]또 인기 게시물 중에는 이런 제목의 게시물이 있었다.
그가 성주를 공략하는 장면인데.
고속 연사로 미친 듯이 쏴대서 결국 갑옷을 부숴 버리는 모습이 계속 반복되는 움짤이었다.
-와 ㅁㅊ
-ㅋㅋㅋ
-저걸 계속 연타로 다 같은 곳만 맞혔다고……?
└저거 알아보니까 정확히 같은 곳을 맞히는 거 아니면 저런 판정이 나오질 않는대.
└ㄹㅇㅋㅋ 게임사에서 만든 방법이 아니라, 걍 물리 엔진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버릴 정도로 때린 거임 ㅋㅋㅋ
-걍 할 말이 없다.
-이게 말이 됨?
-양궁 금메달리스트가 와도 안 될 듯.
이 역시도 아몬드에 대한 찬양 댓글로 가득했다.
그 외에도, 아몬드에 대한 글을 수도 없이 많이 올라왔고.
대부분 조회 수와 추천 수가 높았다.
여러모로 아몬드의 인기가 꽤나 높아졌다는 게 실감 나는 순간이다.
“좋은데?”
상현은 이번 반응에 대충 만족했다.
이 작은 커뮤니티에서의 인기도 인기라고, 기분이 좋았다.
슬슬 정말 스트리머로서 자리를 잡아가는구나, 뿌듯한 감정도 생겼다.
‘자야겠다.’
그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눈을 감았다.
휴대폰 액정 불빛마저 꺼지자 작은 방엔 한 줌의 빛도 남지 않았다.
* * *
다음 날.
상현은 아침부터 울려대는 전화벨에 눈을 떴다.
“으으…….”
대체 누구야…… 라는 말이 나가려다 도로 삼켜진다. 주혁이었다.
아마 무슨 일이 있으니 이러는 거겠지.
“……어. 왜.”
“잤냐?”
“그럼 안 자냐?”
“오늘 점심은 라자냐.”
툭.
상현은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이이잉…….
휴대폰이 한 10번은 더 울리고 나서야 다시 받은 상현.
“미안하다.”
“알면 됐다.”
“문제가 있어.”
“뭔데.”
“그때 매드무비 올린 사람 있잖아. 서지아라는.”
“어.”
“그 사람, 도저히 댓글을 안 봐. 대체 뭐 하고 있는 건지…….”
“댓글을? 댓글로 컨택을 하려 했어?”
“아무 정보도 없잖아. 댓글 다는 거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어.”
“트리비 쪽지는?”
“수신 거부 계정이다.”
확실히 곤란한 상황 같다.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아. 다음에 서지아 님 후원이 다시 들어오면 그때 방송에서 말할 수밖에 없을 수도.”
“그건 좀 위험한데…… 일단 알았다.”
탁.
전화를 끊은 상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천천히 생각하자.’
상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방 정리를 시작했다.
오늘은 쓰레기를 버려야 할 날이다.
그간 모인 쓰레기를 봉투에 한 움큼 집어넣고, 집을 나선 후.
띠링.
아몬드 팬 서지아의 채널엔 새로운 매드무비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