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25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5화
10. 에밀리아(1)
스슥.
서지아는 아주 쿨하게 그 자리에서 계약서에 사인을 해버렸다.
회사와 이 일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고민해 볼 법도 한데, 전혀 망설이지 않는 모습.
그간 회사에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해하지.’
상현은 자신의 회사 생활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 2,500의 기본급이 지급될 거고, 거기에 올튜브 수익의 40%가 인센티브로 들어갈 겁니다. 깔끔하게 기본급 없이 50%로 나눠도 되는데…….”
“아뇨. 저는 기본급이 있는 게 좋아요. 안정적으로…….”
“알겠습니다.”
서지아는 기본급이 있는 형태의 계약을 선택했고, 마지막 장의 사인까지 마쳤다.
탁.
주혁과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난 서지아.
“그런데 제 채널에 업로드된 동영상은 어쩌죠?”
“그건 아마 공식 채널로 다시 업로드하는 쪽으로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음……. 뭔가 정해지면 알려주세요.”
“넵!”
주혁과 상현은 카페 밖까지 배웅해 주고는 서로를 마주 봤다.
주혁의 표정은 ‘나 어떠냐?’라는 듯한 자신만만한 모습이었으나, 상현은 의뭉 쩍은 표정이다.
“그거, 진짜냐?”
“……뭐?”
“파트너 스트리머.”
“야. 그럼 그게 구라겠냐?! 누굴 사기꾼으로 아네!”
상현은 그제야 제대로 놀랐다.
‘아니, 펑크에서 나한테 파트너 스트리머를?’
게임을 하지 않는 상현도 펑크라는 유통사는 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게임 유통 플랫폼이 워낙에 유명해서다.
“제작사가 아니라, 정말로 유통사에서?”
“그렇다니까?! 나도 오늘 아침에 보고 깜짝 놀랐어. 어때. 무조건 할 거지?”
“당연하지……. 이건 조건이 그냥 너무 좋은데.”
탁. 탁.
주혁은 씩 웃으며 서류를 흔들어 보이더니, 가방에 던져 넣었다.
그러고는 서지아가 나갔던 카페 문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서지아 님, 되게 꼼꼼하면서도 쿨하시네? 난 너한테 사인해달라고 하셔서 되게 쉬울 줄 알았거든.”
“거저먹으려 하네. 팬심은 팬심이고, 계약은 계약이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많은 돈을 후원할 정도면……. 아몬드를 엄청 좋아하는 거잖아? 근데도 꽤 냉정하더라. 거의 웃지도 않고.”
“거의가 아니라 한 번도 안 웃던데?”
둘은 잠시 서지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됐어. 공사 잘 구분하면 앞으로 일하기 좋지, 뭐.”
“그건 그렇다.”
* * *
쾅.
헐떡이며 집에 도착한 서지아.
그녀는 침대로 몸을 날려서 이불을 덮어썼다.
“하아.”
두근대는 이 심장을 어떻게든 진정시키려는 듯 조용히 심호흡까지 했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갑자기 실물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계약까지 해버릴 줄은 더더욱.
촥.
그녀는 아까 가져온 계약서를 펼쳐봤다.
‘인정을…… 받다니.’
누군가 자신을 인정해 준 처음의 순간이 지금 이 종이에 새겨져 있다.
아직은 가계약이지만, 펑크 쪽에서 승인하면 제대로 계약이 될 터다.
그러니까 이제 그녀도 아몬드의 편집자가 되는 거다.
회사를 안 다녀도 된다.
머릿속으로 불쾌한 몇몇 인간들의 얼굴이 지나갔다.
‘야, 전문대 출신이 뭘 어쩐다고……. 하…….’
‘너 여기서 나가면 뭐 어쩔 건데? 네가?’
‘우리만큼 널 쳐주는 데가 있을 것 같아?’
‘돈 받는 만큼만 제발 해봐. 어? 왜 이렇게 멍청해?’
불쾌한 목소리들도 지나갔다.
“벗어난 건가…….”
어쩌면 벗어난 것 같다.
정말 얼떨결에…… 자신을 얽매던 지옥 같은 굴레로부터 벗어나 버렸다.
갑자기 자유를 얻은 노예들이 이럴까?
이상한 기분이다.
평생을 그 굴레에서 쳇바퀴만 굴려야 살 수 있을 줄로 알았는데.
“하아…….”
그녀는 누운 채로 자기가 올렸던 아몬드의 매드무비 영상을 확인했다.
수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게임 카테고리 실시간 급상승 56위
심지어 순위가 올랐다.
78위에서 무려 22계단이나.
지아의 입가에 흔치 않은 미소가 번진다.
* * *
상현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간단한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오늘은 방송을 좀 빨리 켜야겠다.’
아몬드의 방송 시간은 제멋대로다. 의도한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는데, 이게 편해서 상현도 그대로 유지 중이었다.
어찌 됐든 휴방 없이 거의 매일 방송을 하고 있으니, 시청자들도 따로 불만은 없었다.
철컥.
캡슐 안으로 들어간 상현은 화면을 켜는데.
띠링.
[지아 : 인트로 노래랑 영상이에요.]서지아에게 어떤 파일이 도착했다.
영상 파일이다.
어떻게 설치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는 텍스트 파일도 함께였다.
유명 스트리머들이 방송을 켤 때 인트로 영상이라는 걸 사용하는데, 그걸 만들어 보낸 것이다.
인트로 영상을 클릭해 본 상현은 깜짝 놀랐다.
‘와…….’
생각보다 굉장한 퀄리티의 영상이었다.
분명 방금 전에 마주쳐서 집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었는데, 어떻게 이런 걸 만든 걸까?
[이걸 벌써 만든 거예요?] [지아 : 전부터 조금씩 만들었던 거예요.]단순히 팬심으로 인트로 영상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취미로 만든 게 이 정도면…….’
대체 직업 정신을 갖고 만들면 어떤 게 나올지 상현은 궁금해졌다.
앞으로가 참 기대되는 인재다.
[잘 쓰겠습니다.]그는 지아에게 감사 문자를 보낸 후,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스트리밍을 시작합니다]* * *
띠링! 띠링!
전국에 퍼진 아몬드의 팔로워들에게 방송 알림이 전달됐다.
-오. 오늘은 일찍 켜시네!
-아하!
-내가 1등이…… 아니네?
-ㅁㅊ ㅋㅋㅋㅋ 레전드들 ㅈㄴ 많네.
아몬드의 구식 캡슐의 로딩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시청자들이 들어왔다. 입장이라기보단 거의 난입 수준이다.
[현재 시청자 : 214]두둥……! 두둥!
아까 서지아에게 받은 인트로 영상이 재생된다.
-오. 뭐야.
-인트로 생김?
-캬.
서지아의 인트로는 아몬드의 활 실력을 강조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의 대표적인 활약상들이 스틸샷으로 넘어가며, 음악이 흘러나오는 식인데.
서지아의 영상답게 음악과 상황의 싱크로율, 그리고 넘어가는 순간에 박자가 맞아떨어지는 쾌감이 엄청났다.
-인트로도 영화네.
-인생은 화보고.
-캬.
-어? 근데 이거 서지아 님이 만든 거 아님?
-ㄹㅇ 느낌이 서지아 느낌.
-설마 포섭된 건가?
서지아의 영상임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
[현재 시청자 : 1,208]시청자들이 충분히 들어올 무렵. 인트로가 종료됐다.
“트하!”
아몬드의 얼굴이 화면 한구석에 떠오르며 활기찬 인사를 건네왔다.
-아하!
-아하하!
-ㅎㅇㅎㅇㅎㅇ
수많은 채팅이 올라옴과 더불어 시작부터 후원도 들어온다.
[루비소드 님이 ‘1천 원’ 후원했습니다.] [오늘 드디어 에밀리아의 놀라는 얼굴 보나요?] [가지볶음 님이 ‘1천 원’ 후원했습니다.] [아몬드 하이!]아몬드는 간단한 감사 인사와 함께 곧바로 게임을 실행했다.
역시나 오늘도 킹덤이다.
* * *
접속하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성이다.
검은 갑주를 입고 있던 성주는 바닥에 대자로 뻗은 채였다. 정확히는 성주의 시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주를 지키던 세 기사의 시체도 있었다.
그것들을 제외하면 성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ㅋㅋㅋㅋ혼자서 성을 부순 남자…….
-ㄹㅇ 하나도 남김없이 없애 버렸네.
-이게 ‘암살’이란 거다.
-몰살이랑 암살을 헷갈린 듯.
-목격자가 없으니 암살입니다만?
아몬드는 즐거워하는 채팅을 감상하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성에 사람은 없지만, 물건은 조금 남아 있었다. 미처 다 챙겨가지 못한 보물들도 있다.
“솔직히 제가 다 했는데, 조금 재미 봐도 되겠죠?”
그렇게 말하며 아몬드는 성 내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ㄹㅇㅋㅋ
-솔직히 다 가져도 무죄지.
-에밀리아가 한 게 뭐야! 내가 다했지!
-나 같으면 여기 내가 먹음ㅋㅋㅋ
킹덤은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다. 반드시 퀘스트 보상만 받고 손 떼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아몬드는 고생한 만큼 큰 보상을 스스로 쟁취하고자 했고…….
척.
꽤 값이 나가 보이는 고급 가죽 갑옷과 활을 구했다.
“괜찮아 보이네요.”
-오오.
-간지나네.
-더 챙기면 안 되나?
-무게 때문에……ㅋㅋㅋ
일반적인 게임이었다면 온갖 물건들을 인벤토리에 쓸어 담았겠지만. 킹덤은 매우 사실적인 게임이다.
인벤토리라는 개념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금화조차 일일이 들고 다녀야만 한다.
저런 무게의 갑옷을 추가로 더 챙기는 건 무리였다.
“이 정도면 만족합니다. 어지간해선 갑자기 죽을 일은 없겠네요. 그럼 이제 에밀리아에게 보고를 하러 갈게요.”
아몬드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두둥.
[에밀리아에게 임무 완료를 보고하라.]거대한 텍스트가 허공에 떠오른다.
-에밀리아 누나!
-누나, 난 안 죽었어!
-ㅋㅋㅋㅋㅋㅋ
-에밀리아 쉑……. 아몬드가 해낼 줄 몰랐을 듯 ㅋㅋㅋㅋ
-성주 암살하랬더니, 성을 다 털어버릴 줄 어케 상상이나 하겠냐 ㅋㅋㅋㅋ
아몬드는 성에 남겨진 말 하나를 골라서 다시 에밀리아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향한다.
다그닥다그닥.
특정한 경계를 넘어서자, 밤에서 낮이 되었고. 순식간에 에밀리아가 머물고 있는 성에 도착한다.
“아몬드……?”
우연찮게도 마차로 돌아오고 있던 화사한 차림의 에밀리아가 그를 알아본다.
“영애님. 임무를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
“……벌써요? 혹시 마음이 바뀌셨나요?”
에밀리아는 설마하니 벌써 임무를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지 못하는 듯했다.
-뭐래냐 ㅋㅋ
-아뇨. 당신의 마음을 바꾸러 왔습니다!
-ㄴㅇㄱ 상상도 못 한 속도!
-성 하나 다 털린 거 알면 무슨 표정 지을지 벌써부터 기대되누.
아몬드는 조용히 에밀리아 옆에 있는 고용인들을 응시했다.
여기서 말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잠시 독대를 하고 싶구나. 자리를 비켜주어라.”
“……예? 아가씨, 하지만…….”
“얼른.”
고용인들은 심히 걱정된다는 눈치다. 저런 거친 행색의 용병과 영애를 함께 둔다는 게 당연히 이상한 일일 터다.
그러나 에밀리아의 의지가 워낙에 확고하니 별수 없었다.
“얼른 비키라 하지 않는가?”
“……아, 알겠습니다.”
고용인들이 아예 시야에서 사라질 때.
에밀리아는 아몬드에게 같이 걷자는 듯 손짓했다.
“이쪽 산책길로 가면 아무도 없어요.”
둘은 어색한 거리로 떨어져서 걸었다.
성의 높이만큼이나 거대한 나무를 너덧 그루 정도 지나친 후에야.
“설마, 임무를 완료하셨나요?”
에밀리아가 뒤돌아보며 질문했다.
아몬드의 대답은 당연히 ‘예’였다.
“예.”
“……믿을 수가 없군요. 제가 부탁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틀이 지났습니다. 오고 가는 데 하루, 습격 준비에 반나절, 습격에 반나절이 걸렸습니다.”
-걍 하루 컷이었다는 거잖앜ㅋㅋㅋ
-한나절이니까 하루 컷도 아님ㅋㅋ
-잘 거 다 자고 성 하나 벌레 컷ㅋㅋㅋㅋ
“습격……? 암살을 하신 게 아닌가요?”
“경비가 삼엄해서, 그냥…….”
“그냥?”
“다 없앴습니다.”
“!?”
에밀리아의 얼굴은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던 표정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