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260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60화
92. 추억(1)
“올림픽 우승할 겁니다.”
간단한 소감을 마친 후. 상현은 시상대에서 내려왔다.
그 이후엔 정식 인터뷰어가 아니라, 몇몇 작은 지방 신문지의 기자들이 달라붙었다.
-학생 우리랑도 인터뷰 한번 가능할까? 엄청 잘생겼다. 스포츠지에 크게 실어줄게.
-우리랑 해요. 시간 없어요? 저희가 잘 실어드릴게요!
-코치님이랑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절박해 보이거나 그걸 넘어 무례해 보이는 기자들이 많았으나. 상현은 말을 최대한 아꼈다.
이미 할 말은 다 했고. 코치님께서 늘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건방 떨지 말라 했던 격언(?)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장 비키라고 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기자 대여섯 정도를 지나치자 코치님이 반겼다.
“음. 확실히 네가 올림픽 가려나 보구나.”
코치는 상현의 인터뷰 태도와 바뀐 예의범절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상현은 뭔가 뾰로통한 표정이었다.
칭찬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그에 코치는 허허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다. 아까도 이미 충분히 말했지만. 대단한 일을 했어.”
“감사합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실력으로 칭찬을 받고 싶어 하지. 뛰어난 용모라든가 예의 따위로 추켜 올리는 말에는 관심이 없더랬다.
그런 건 그저 사람들 시선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들이나 따지는 거랬던가.
그래서 코치는 나랑 얼굴을 바꾸는 게 어떠냐 제안했었지만 상현은 아직 그에 대한 답은 해주지 않았다.
“유상현!”
코치의 뒤쪽에서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온 소녀가 반갑게 이름을 외친다.
상현과 똑같은 하얀 유니폼을 입고, 버킷햇을 쓴 여자아이다.
달리는 속도로 인해 모자가 벗겨져 햇살이 얼굴에 드리웠다.
그 햇살처럼 밝은 표정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덥석!
손을 부여잡고 흔들었다.
“진짜 대박이다! 비공식 기록이래!”
코치는 그녀의 호들갑에 피식 웃어버렸다. 껴안기라도 할 기세로 달려오더니 고작 손을 잡는 것에서 멈추는 게, 애는 애다 싶었다.
“비공식이잖아.”
종합 선수권 대회는 공식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때문에 사실 올 10점을 쏜 기록도 이미 있다.
한소연이 말하는 비공식 기록이란 게 그 올 10점 기록과 타이(Tie, 비긴) 기록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상현의 나이가 더 어리다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다음에 공식으로 가서 내면 되지!”
상현의 찬물 끼얹기도 소연의 기를 죽이진 못했다.
뒤이어서 나온 팀원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상현의 이번 대회 성적에 대해서.
“이야. 상현아 대단하다. 난 조져 버렸어~ 이거 그냥 재능 차이인가 봐~”
동수가 늘 그렇듯 느긋한 걸음걸이로 걸어오며 웃어 보였다.
아마 마음이 평안한 것으로 치자면 저놈을 능가할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상현은 문득 생각했다.
“동수 오빠는 상현 오빠의 반도 연습 안 하면서 대회까지 나오는데. 오히려 재능충 아냐?”
뒤이어 따라온 현주가 타박했다. 그녀는 이번 대회에 나온 유일한 1학년이다.
“야. 내가 왜 연습을 안 하겠냐. 해도 안 되니까야, 해도! 내가 인마 1학년 때는…….”
“자. 밥이나 먹으러 갈까?”
코치가 동수의 말을 끊으며 차를 가리켰다.
“짜장면 어떠냐.”
먹을 거에 큰 관심 없는 상현은 짜장면도 어디냐 했으나, 반발이 거셌다.
“유상현 우승했는데요!?”
“예?! 말도 안 돼애애애!”
“아니, 무슨 북한인가요!? 코치님!?”
코치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정정했다.
“장난이다. 오늘은 소고기야.”
그 순간, 엄청난 함성이 귀를 뒤덮었다.
상현도 활짝 웃었다.
이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는 채.
* * *
“뇌의 이상이라…… 영구적인 문제예요.”
의사의 말에, 할머니께선 거의 비명을 내지르셨다.
“예? 선생님! 그게 무슨 말이여?! 영원히 못 고친다는 말이여?!”
“뇌성마비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환자분들께서 보통 아시는 건 지능 발달 문제까지 겹친 뇌성마비이지만…….”
“뇌, 뇌성…….”
“신체의 일부만 영향을 받는 뇌성마비도 많습니다. 상현 학생은 후천성 뇌성마비와 비슷한 증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 하이고…….”
할머니가 바닥에 주저앉으신다.
울고 계신다.
그런데 왜 이 와중에 그때의 기억이 나는 걸까?
그때 먹었던 소고기가 그리 맛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덜덜 떨리는 오른팔을 내려보며 상현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소매는 이미 젖을 대로 젖어서, 더 이상 물기를 머금지도 못하게 되었다.
툭…… 툭…….
그럼에도 하염없이 그 위로 눈물은 떨어졌다.
“재활에 매진한다면 일상생활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지금은 오른손 신경 자체의 문제도 겹쳐져서 증상이 더 심합니다. 신경 문제는 재활로 가능합니다.”
할머니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이성이 사라지신 상태였다.
목놓아 우는 것을 참아내는 데에 모든 힘을 다 쏟고 계셨다.
때문에, 상현이 대신 물어야 했다.
눈물로 범벅된 그의 눈이 의사로 향했다.
“……양궁 못 해요?”
의사는 잠시 자신의 무테안경을 고쳐 쓰더니. 아무런 말 없이 상현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의사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아 한 말이겠지만. 상현에겐 이렇게 들렸다.
‘치료할 방법을 아무도 모른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아무도 모르기에, 희망이 있는…… 마치 수학 난제 같은 그런 수준의 희망인 것이다.
의사는 상현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고, 이만 병실을 떠났다.
그 이후로는 간호사가 와서 앞으로 벌어질 일을 대강 설명했다.
“일단 병원비는 택시 회사의 보험금으로 처리되셨어요.”
할머니는 그나마 정신을 차리시고, 그녀의 말을 받아적으셨으나.
상현은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맑은 하늘, 저 너머 보이는 산에는 바위의 결마저도 느껴진다.
그의 시력이 상당히 좋기 때문이다.
현대식 활쏘기에선 시력이 중요한 것까진 아니지만, 좋으면 유리한 건 맞았다.
“그라믄 입원도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 거요?”
“예. 물론이에요. 어르신. 전부 보험 처리가 됐어요. 치료 과정 전부요.”
입원 따위를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양궁이었다.
활을 원하는 만큼 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일상생활이 가능하신 데까지는 반드시 다 나올 거예요.”
할머니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라…… 살아서……’. 당신께선 그래도 목숨은 부지해서 다행이라 하신다.
‘정말 그럴까.’
상현은 확신하기 어려웠다.
말로 표현한 적은 없으나, 그리고 스스로도 그렇게 자각한 적은 없으나…….
그에겐 양궁이 어느새 전부였다.
달동네에서 할머니와 사는 삶, 공부 머리 없이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삶에서, 어떤 희망을 찾기란 어려운 법이었는데.
양궁이 그의 탈출구였다.
우연치 않게도 이걸 꽤나 잘했다. 이때서야 상현은 세상이 나름대로 공평하다고 느꼈다.
나한테 이런 미약한 재능이라도 줘서, 할머니와 날 먹고 살아가게 하는 거구나.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구나.
“하지만…… 문의하셨던 선수 생활을 위한 재활 치료는…… 보험처리가 되지 않아요.”
간호사가 본론으로 넘어갈수록.
상현은 이걸 더 지속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다 사라지는 게, 모두가 편해지는 길이다.
그동안 20대 청년도 진이 빠지는 그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할머니는 얼마나 고생을 하셨던가.
무릎은 이미 다 닳아 없어져 뼈가 갈리고 있는데도 내색 한번 없으셨다.
“일상생활을 위한 건강 정도라고 계약 사항에 되어 있고. 이런 건 선수 보험이 따로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학생은 아직…….”
상현은 아직 공식으로 등록된 선수가 아니었다.
사실 협회에서 그런 보험까지 들어줄 정도의 선수가 되려면, 올림픽 출전 정도는 해야 했다.
“선수 맞습니다. 등록됐어요.”
“……예?”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가 끼어들었다.
코치님이다.
“선수 맞습니다. 그러니까 재활 치료 다 해주십쇼.”
간호사는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그래요? 제가 확인했을 땐…….”
“얘가 1주 전에 종합 선수권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런 애가 선수 등록이 안 되어 있겠어요?”
“아…….”
간호사는 들어도 뭔 말인지 모를 터다.
“화, 확인해 볼게요.”
간호사는 일단 방을 나섰고. 코치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넨 뒤, 상현에게 다가와 주저앉았다.
“…….”
코치는 차마 그를 보지 못하겠는지, 시선을 돌리며 먼 산을 바라본다.
“선수 등록돼서 보험금 나온다고요?”
상현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되물었다.
역시나 코치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 그건 조금 힘들 수도 있다.”
그럼 그렇지.
상현이 이 사정은 더 잘 알고 있었다.
“선수 등록도 이제 막 된 거고, 보험은 아직 들지도 않았어. 들기로 되어 있는 게 기정사실인데. 보험 회사가 호구도 아니고…… 아직 돈도 입금 안 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을 내줄 리가 없잖냐.”
“……그럼 뭔데요.”
그러면 대체 방금 그 허세는 뭐였단 말인가.
“협회에서 보조금을 받아왔다.”
“?”
코치는 진중한 얼굴로 상현을 마주 보며 말했다.
“네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이건 말 그대로 보조금이야. 위로금.”
그가 더 이상 선수 활동을 할 수 없게 됐고, 유망주를 떠나보내는 순수한 선심으로 지급된 위로금.
“보험금은 치료에만 쓸 수 있지만. 이건 너에게 지급되는 현금이다. 치료가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도 쓸 수 있다. 참고로 네 치료는…… 선수 생활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의 치료는 현재 내가 의사로부터 들은 냉정한 평가로는 치료될 확률이 0.2%도 안 된다.”
“알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네 원래 컨디션 그대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예.”
“어쩔 거냐.”
상현은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그새를 못 참고 할머니가 상현의 머리를 툭 쳐버렸다.
“뭘! 고민을 하냐!? 이것아! 당연히 치료해야지! 니는 내 생각한답시고 이상한 짓 벌이면 진짜 끝이다! 코치님! 그거 지금 당장 결제됩니꺼?!”
그렇게 상현은 협회로부터 받은 보조금, 택시 회사로부터 받은 보험금으로 모든 치료를 다 받게 되었다.
상현은 죽을 각오로 재활에 매진하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학교도 나가지 않고, 그 시간에 재활에 전념했다.
물리 치료실은 환자가 원한다면 비용 추가 없이 계속 사용할 수 있었다.
그의 팔은 아주 미약하게, 점차 일상생활 수준에는 방해가 되지 않는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상현아. 너 너무 무리했어. 조금만 쉬다…….”
물리치료사마저도 걱정을 할 정도로, 그는 이 재활에 모든 걸 다 걸었다.
“근육에 힘이 다 풀렸잖아. 응?”
그를 버티게 하는 건 근육이 아니었다.
“오늘 목표치 다 못했어요.”
정신력이다.
모든 걸 잃고, 단 하나의 목표만이 남은 남자의 정신력.
그거 하나만으로 상현은 모든 걸 다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상현아. 너한테 전화가 왔는데? 계속 안 받는다고 여기로 왔어.”
어느 날 물리 치료실로 걸려온 전화를 받기 전까진.
“누가…… 죽어?”
* * *
상현에겐 처음 있는 일만은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호상’이 아닌 초상집에 간다는 것 말이다.
다름 아닌 상현 본인이 그 초상집의 상주 역할을 해야만 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였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린 나이에도 분명히 각인되어 있는 건 그때 그 장소의 분위기다.
우선 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흐으으윽…….
-아이고…… 소연아…… 소연아……!
-어쩜 좋니. 어쩜…….
또 말 못 할 어떤 묵직한 공기가 흐른다.
누구 하나 말을 쉽게 내뱉지 못하고, 그저 조용히 묵념만 하다가 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식사를 하는 경우에는 젓가락 소리조차 조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어른들도 많았다.
상현에게 와서 말이라도 한번 걸어주고 가더랬다.
그들은 그 이후로는 전혀 볼 수 없었다. 어릴 적엔 그런 그들이 가증스럽고 미웠으나.
이제 상현 본인이 그 어른들의 시점에서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젠 그들을 탓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상현에겐 소연의 죽음에 죽도록 슬퍼하는 저들을 구원할 능력이 없었다.
그렇기에 쉽게 말을 걸 수도 없었다.
책임질 수 없는 위로를 하게 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은 이런 짐을 짊어지고 내게 말을 걸어준 것이었나?
상현은 입술을 질끈 씹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떻게 왔니?”
“소연이…….”
“학교 친구니?”
친구? 그랬다.
친구인 채로 끝나버리긴 했다.
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으로 가서 절 올리면 돼요. 와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잘생긴 친구가 있네.”
소연의 이모일까? 언뜻 소연의 어머니와 닮은 사람이 그를 안내해 줬고.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다.
익숙한 얼굴이 상현을 돌아본다.
소연과 많이 닮은, 그녀의 어머니다.
“사, 상현이구나?”
“할머니는 지금…… 일 나가셔서요. 저만 먼저 왔어요.”
“고, 고맙다.”
고맙다니.
난 감사받을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일에 원인 제공자다.
마침 절을 해야 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상현은 그 말에 다리에 힘이 풀리듯 주저앉았다.
“……흐윽.”
절을 하며 엎드려 있으니 울음을 참는 게 더 힘들었다.
“흐으으으윽…… 흐, 흐윽…….”
다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다시 일어서서 소연이 사진 속에서 예쁘게 웃는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