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268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외전 4화
2. 이상한 구출(1)
학당을 빠져나오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봤던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양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다.
로랑과 아몬드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으로 이동한다.
“자. 이제 다시 양으로 변신시킬 거야. 이번엔 제대로 해야 돼.”
“제대로?”
“기억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거야.”
“……?”
그게 마음대로 되나.
“집중하면 돼.”
로랑은 아몬드의 표정을 읽은 듯, 첨언했다.
“절대, 안 잊어버린다~ 하고 정신을 딱 집중하란 말야.”
그는 기운을 불어넣듯이 아몬드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계획은 계속되어야 해.”
‘이거 진짜 미친놈인가.’
아몬드는 어이가 없는 표정이 되었다.
-이거 진짜 미친놈이넼ㅋㅋㅋ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냐 ㅋㅋㅋ
-호감 고닉 로랑
-개또라이 아냐? ㅋㅋㅋㅋ
본인 때문에 친구가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는데, 아랑곳 않고 계획은 계속 되어야 한다니.
“자, 잠깐 근데 내가 너 때문에 기억을 다 잃어버렸는──”
“그건 돌아올 거야. 친구.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런 명언 몰라?”
로랑이 새끼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씨익 웃어 보였다.
유독 길게 자란 새끼손톱이 반짝였다. 겉멋으로 기른 것 같은데, 그의 광기와 뭔가 잘 어울린다.
“그리고 찌질이 레테이던 시절보다 아몬드가 더 나은 것 같아. 내가 보증해 줄게. 그냥 그대로 쭉 가는 게 더 나아 보여.”
“???”
아몬드는 확신했다.
이 로랑이라는 녀석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그래도 별수 없다. 당장의 조력자는 이 녀석뿐이고, 유일하게 이 녀석과 함께 있을 때만 비밀에 다가간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자. 간다.”
“자, 잠시만 일단 어떻──”
아몬드는 양이 되기 전에 좀 더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로랑이 손가락을 번쩍 치켜세우며 외쳤다.
“퓰리 – 리제트.”
퍼엉!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어느새 양이 되어버린 아몬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애써 다시 입은 옷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가 버렸다.
미처 다 날아가지 않은 양말 하나를 발굽으로 툭 쳐내는 아몬드.
“일단 왜 양이 되어야 하는지 알려줄게.”
아몬드는 그냥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이놈의 리드에 따라야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쥐나 고양이 같은 거면 더 쉽겠지만, 내가 양밖에 할 줄 몰라.”
“……?”
정말 대단한 이유였다.
“하지만 정말 다행이지 뭐야? 여기서 양만큼 의심을 안 받는 동물은 없거든.”
로랑이 가리킨 초원엔, 양들이 한가득이다. 모래알을 숨기려면 사막에…… 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것이다.
“지하 감옥은 초원을 가로질러서 가야 하는데. 사람인 채로는 너무 쉽게 들켜서 방법이 없어.”
“메에.”
아몬드의 양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원을 쭉 가로질러서 저 방향으로 가다 보면 으시시한 숲이 하나 보일 거야. 따로 이름이 있긴 한데 어차피 모두 다 으시시 숲이라고 불러.”
“메에.”
“그래. 잘 듣고 있구나. 그곳에 지하 감옥이 있어.”
“메에?”
“어떻게 찾냐고? 내가 그 위치를 알거든. 하지만 내가 직접 갈 수는 없잖아?”
데엥~ 데엥~
말하던 중, 학당의 시계탑에서 또 종이 울린다. 쉬는 시간이 끝나간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로랑은 급하게 소매를 걷어붙여, 하얀 마나를 손가락 끝에 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검지 끝자락에 모인 하얀 마나는, 점차 형태를 갖춰가더니 나비가 되어 날아올랐다.
“이 녀석이 그 길대로 갈 거야. 난 이만 간다. 건투를 빈다. 아몬드. 사람으로 변해야 할 땐 ‘퓰리 – 베케트’라고 외쳐.”
그런 말만 남긴 후, 로랑은 학당으로 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잠깐. 근데 나도 징계 먹는 거 아냐?’
생각해 보니 아몬드가 들어가게 된 레테라는 이 아이는 계속 수업을 빼먹고 있는 게 아닌가? 이래서는 란의 옆방을 나란히 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 가자.’
그러나 이런 말을 해봐야 로랑이 들어먹을 턱이 없고.
지금 아몬드에겐 로랑 말고는 이 게임을 풀어갈 실마리가 딱히 없었다.
이미 나비가 저만치 날아가고 있다.
“메에!”
그는 네 다리를 열심히 굴려서 초원을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양몬드 달리는 거 넘 커엽네ㅋㅋ
-개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진짜 웃음벨이누 ㅋㅋㅋ
-복실 복실 아몬드 스킨 ㄷㄷ
-달려라 양몬드!
-이, 이게 ‘양’궁 국대의 양 컨?
* * *
한참을 뛰어가니, 정말로 으시시하게 생긴 숲이 나온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말라비틀어진 시커먼 숲이었는데.
이파리가 있는 것들도 거의 죽어가는 듯했다.
저 안에 들어가면 나도 저 꼴이 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살풍경이지만.
로랑의 나비는 마치 제 주인처럼 막무가내로 안으로 날기 시작했다.
아몬드 역시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시커먼 흙에 발굽을 들이미는 순간.
두둥.
[으시시 숲]새로운 공간으로 빠져나왔음을 알려주는 텍스트가 떠올랐다.
-진짜로 으시시 숲이냐?ㅋㅋㅋ
-아니 공식명칭이었냐고 ㅋㅋㅋ
-와 ㄷㄷ 여기 좀 무섭다
-크 이게 스토리모드지
여기서부터 뭔가 시작될 거라는 게 느껴지는 연출이다.
어찌 됐든 아몬드는 계속해서 날아가는 나비를 따라 뛰었다. 빡빡한 숲속을 포실거리는 양털을 달고 들어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메에~”
사삭. 사삭.
거친 나뭇가지들이 양털을 하나둘 붙들고 늘어지고, 새하얗던 털도 점차 군데군데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메에?”
그렇게 따라 들어가자, 어느새 보이는 동굴.
두둥!
[세인트 비셔스 학교 지하감옥]지하감옥이었다.
파앗.
앞장서 가던 하얀 나비는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시야가 한층 더 어둡게 암전된다.
나비가 밝혀주던 빛이 생각보다 상당했던 모양이다.
저 동굴을 앞에 두고 시야가 어두워지니, 선뜻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조금…….’
아몬드는 솔직히 조금 무섭다.
가상현실을 해본 뒤로, 이런 공포스러운 상황은 한 번도 맞닥뜨려보지 않았는데…….
뭐라도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달까.
-쫄?
-아몬드 설마 쫄보야?
-왜 안 들어가
-아몬드가 쫄겠냐 ㅋㅋ
-아몬드 설마 어두운 거 무서워함? ㅋㅋㅋㅋㅋ
-아아가는 아가야…… 어두운 거 무서워 ㅠㅠ
“메에.”
아몬드는 시청자들에게 뭐라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양 소리뿐이 나오지 않았다.
크흥.
대신 콧김이나 한번 거하게 뿜으며 동굴로 뛰어 들어갔다.
타다닥!
‘별일이야 있겠어.’
어차피 게임이니까, 라는 생각을 하며 들어간 동굴.
막상 들어오니, 안쪽엔 횃불이 곳곳을 비추고 있어서 마냥 어둡지만은 않았다.
다만 이상한 것은…….
‘왜 아무도 없지?’
보통 이런 시설은 앞에 지키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특이하게도 이 감옥은 그런 게 없었다.
조금 더 들어가면 사람이 나올까?
근데 사람이 나오면 어쩔 거지? 난 지금 양인데. 양이 이런 곳에 들어와 있으면 어떤 반응일까?
양으로 변신하는 마법이란 걸 눈치채지 않을까?
이 마법은 학생 수준인 로랑이 구사하는 종류이다. 여길 지키는 자들이 알아볼 확률이 높다.
만약 양이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면?
양인 채인 아몬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여기서 풀어야겠다.’
아몬드는 이때가 바로 인간으로 변할 시점이라는 걸 눈치챈다.
‘근데 옷이 없는데.’
이런 상황에 창피함을 따지는 것도 웃기지만, 그게 인간인 모양이다. 아몬드는 자신이 입을 만한 옷부터 찾기 시작했다.
‘저기 뭐가 쌓여 있는데.’
공사를 진행하고 남은 자재들인 건지. 너덜거리는 판자때기들이 쌓여 있는 곳이 있다. 그곳엔 천 쪼가리 비슷한 것도 보였다.
그곳으로 깡총 뛰어가 보는 아몬드.
“메에…….”
하나 이내 실망스러운 메에…… 가 흘러나온다. 하긴 이런 곳에 갑자기 사람이 입을 옷 같은 게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그때였다.
터벅…….
터벅. 터벅.
‘!’
사람 발소리가 들려온다.
저쪽 끝 코너에서 횃불의 주황빛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그 빛이 점점 더 진해지자, 길쭉한 그림자가 하나 드리웠다.
“흐아아암…….”
하품을 하며 돌아 나오는 보초였다.
‘로브다.’
레테의 몸 크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잘 기억 안 나지만, 일단 로브를 대강이라도 걸치면 좀 나을 터다.
저 보초의 옷을 그대로 다 쓸 수 있다면 들키지도 않을 터.
‘일단 사람으로 변해서, 뒤에서 습격할…….’
기습만 제대로 먹힌다면 생각보다 쉬울 것 같다. 비록 레테는 학생이고 저들은 어른이지만, 미니언인 채로 계약자를 죽여야 하던 상황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아몬드는 벽 가까이로 최대한 밀착하며 몸을 숨겼다.
복실거리는 양털을 최대한 꾹꾹 눌러서 밀착시킨다.
“난 한숨 잔다. 오늘은 네가 봐라.”
“……예.”
이런, 병사는 둘이었다.
아몬드는 계획을 수정한다.
그냥 코너를 돌 때 바로 덮쳐 버릴까 했는데. 그 대신 잡동사니들 뒤로 숨어 있기로 한다.
온갖 것들이 다 널려 있는 곳이니 양털 같은 게 하나 있어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쭈구려 앉아 다리를 가리고, 대충 천 쪼가리로 머리를 가리고 푹 숙이면 끝이었다.
“나 일어날 때까지 잘 보고 있어라.”
“……예.”
고참 병사로 보이는 자가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어디론가 걷는다.
터벅. 터벅.
발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쪽으로 오는 거 같다.
잡동사니 더미 바로 앞까지 온 그가 말한다.
“오. 뭐야. 푹신해 보이는데?”
푹신?
여기에 푹신해 보인다고 할 만한 건…….
‘이런.’
아몬드 하나뿐이다.
-잭팟!ㅋㅋㅋㅋ
-어떡해??
-미치겠닼ㅋㅋㅋㅋ
-딱 걸렸네
-고참 자는 동안 신참을 때려눕혀야 하는데. 어쩌누 ㅋㅋㅋㅋㅋ
곤란했다. 채팅에 나오는 것처럼 한 명이 자는 사이 다른 하나를 제압해야 하는데. 자러 오는 놈이 아몬드 등 위로 드러눕고 있었다.
“이야~ 푹신하네. 언제 이런 걸 다 갖다놨다냐. 참내 애새끼들 빠져가지고…….”
고참은 아몬드의 등 위에서 ‘내일 내 밑으로 다 집합일 줄…….’ 따위로 중얼거리며 잠에 빠졌다.
드르러러러렁……!
코까지 골면서.
-ㅋㅋㅋㅋㅋ진짜 잔다고?
-이거 어케함?
-몰래 움직여야 하나?
-무겁겠다 ㅠㅠ ㅋㅋㅋㅋㅋ
-네가 선택한 스토리모드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그의 코 고는 진동이 등으로 다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아. 진상 새끼.”
고참이 일어나 있을 땐 한마디도 못 하던 병사가 썩은 미소를 지으며 침을 퉤 뱉는다.
그는 자세를 한결 느슨하게 하고, 돌덩이 위로 걸터앉았다.
“근무 나올 때까지 술을 차고 다니네. 오늘 지보다 높은 놈들 안 나왔다고 미쳐가지고…….”
고참이 술을 퍼마시다가 왔나 보다.
그런데 딱히 술 냄새는 나지 않는데…… 최상급 고급주라도 마신 걸까.
“빌어먹을 애새끼들만 있는 데서 뭔 경비를 선다는 건지…… 감옥에 갇힌 것도 다 애새끼들뿐이더만. 여신님도 무심하시지.”
불평이 끝나질 않는다.
저렇게 말이 많은 놈이었다니. 어떻게 참았나 궁금할 정도다.
아몬드는 고개를 살포시 들어서 상황을 파악해 봤다. 물론 위에 잠든 고참이 혹여나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후임 병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양의 걸음으로는 한 열댓 걸음 정도?
‘나 왜 양 기준으로 생각하지.’
아몬드는 저도 모르게 양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얼른 변신을 풀든가 해야 했다.
이러다 진짜 로랑의 말대로 뇌까지 양이 될지도 모른다.
‘어쩐다…….’
근데 여기서 변신을 풀면 과연 저 두 명을 이길 수 있을까?
그건 확신할 수 없었다. 레테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알 길이 없으니까.
‘뭔가 좀 더 확실한 무기라도 있으면…….’
변신을 푸는 결정을 하기엔 근거가 부족했다. 아몬드는 일단 다른 방향도 슬며시 둘러본다. 물론 등은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머리만 슥슥 돌리면서.
나무 몽둥이 비스무리한 건 눈에 들어오는데. 딱히 무기가 될 만한 건 없다.
‘하아.’
저런 거로는 진검을 들고 있는 둘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진검?’
그러고 보니 병사들이 무기를 갖고있다. 저걸 어떻게 먼저 뺏어서 뭘 해볼 수 있을까……?
그러면 수월할 거다.
‘잠깐…….’
그 순간, 등에 느껴지는 익숙한 감각.
고참 병사가 등에 차고 있던 것인데…….
‘활.’
그 모양이 꼭 활 같았다.
아몬드가 입을 쫙 벌려 외쳤다.
“메에!”
흘러나온 건 물론 울음소리뿐이지만.
이건 명백한 주문이었다.
‘퓰리 – 베케트’
퍼엉!!
굉음과 함께, 양털만큼이나 하얀 구름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