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280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외전 15화
4. 마녀(4)
아몬드가 처음 이 전략을 떠올렸을 때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이거다.
‘근데 이건 레테 의견도 들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이 몸의 주인은 어쨌거나 레테인데. 아몬드가 선택한 이 전략을 쓴다면, 레테의 몸에 전혀 좋을 게 없을 것이다.
아마 최악의 경우엔…….
‘대답해 줘서 고맙다.’
아몬드는 자신의 팔뚝을 내려보며 그렇게 되뇌었다.
「란을 지켜줘…….」
피로 그려진 글자들이다.
대체 언제 새긴 건지는 모르지만, 레테가 아몬드에게 보내는 메시지임은 분명했다.
* * *
“어딜 가!? 어?! 어딜 가아아아!?”
네메시스가 광기에 젖은 목소리로 돌진해 왔다.
파지지직!
붉은 벼락이 눈앞에서 달려드는 것 같았다.
란은 미약하게 떨리는, 그렇지만 강인한 목소리로 말한다.
“……와!”
우우웅!
그의 방패가 외침을 들었다는 듯 더 밝게 빛을 발한다.
‘두 번. 두 번만 버티면 돼.’
아몬드가 그에게 딱 두 번만 버텨달라 했다. 란은 이를 꽉 악물고 아몬드 앞에 섰다.
‘뭔가 방법을 찾아내신 거야.’
내달려온 붉은 전격이, 허리를 회전시키며 발을 내지른다.
──쿠우웅.
이때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충격이 가해졌다.
“컥……!”
란의 신형이 뒤로 쭉 밀려났다.
“아하하하! 아하하하! 그거…… 이렇게도 부술 수 있어! 몰랐지?!”
파지지직……!
불끈 쥔 주먹에 붉은 마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쿠우웅!
내지르는 순간, 엄청난 압력이 방패를 짓뭉갰다.
“허억……!”
버텨내던 란의 입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 번은 이미 끝났다. 하지만 방패는 그대로다.
‘……?’
방패에 가해지는 충격은 아까보다 훨씬 덜하다.
대신…….
“크헉!”
후두둑.
피찌꺼기가 바닥에 떨어진다.
그 꼴을 보며 네메시스가 광소를 터뜨린다.
‘내상을 입히고 있어?’
그는 방패를 부수는 대신, 방패를 들고 있는 란을 부수기로 한 모양이다.
“……멍청하군요.”
란이 비릿한 미소를 먹금는다.
“오히려 버티기 쉬워지잖습니까.”
방패는 어차피 마나 양으로 인해 내구도가 정해져 있는 반면.
이 육신은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버텨내면 다른 결과를 만들 수도 있었다.
란은 차라리 이게 낫다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이 네메시스를 정면으로 올려본다.
“어디 더 해봐.”
네메시스의 눈에서도, 란의 눈에서도 불꽃이 일었다.
* * *
쿠웅……!
쿵!
퍼어엉!
아몬드는 최대한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신경 쓰지 않은 채. 포션 박스 앞에 앉아 미친 사람처럼 포션을 들이켜고 있었다.
“후아. 후아…….”
꿀꺽. 꿀꺽.
그렇게 박스 한 통을 다 비웠을 때.
쿵──!
자신의 옆으로 시체 같은 게 하나 굴러 날아든다.
“……?”
란이었다.
“라, 란?”
“……아…… 아몬드…… 나…… 오래…… 버텼…….”
아몬드는 란의 맥박부터 짚었다.
살아 있다. 일단은.
그는 별수 없이 란에게도 포션을 한 통 들이부어 버렸다.
‘이제 진짜 이판사판이야.’
부작용이고 뭐고 죽는 상황 앞에선 방법이란 게 없다.
“일단 이거 딱 한 병만 먹고. 기다려.”
아몬드는 몸을 일으키며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00:02:03]2분 3초.
짧은 시간이다. 이 시간을 주고 수능 수학 영역 4점짜리 문제를 풀라고 했다면 그렇게 느꼈을 거다.
‘……길다.’
그러나 현재의 아몬드에겐 너무나 긴 시간이다.
‘광역 공격 패턴만 파악하면 될 거 같은데.’
툭. 툭.
아몬드는 무릎에 쌓인 유리 조각을 털어내며 네메시스 주변을 맴돌았다.
희한하게 녀석은 섣불리 공격을 하지 않았다.
“너…….”
뭔가 바뀐 걸 알아챈 것이다.
“누구냐?”
“아몬드.”
자기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몬드는 슬쩍 채팅창을 본다.
-ㅋㅋㅋㅋㅋㅁㅊ
-너무 태연하게 아무도 모르는 이름을 말하누 ㅋㅋㅋ
-내 이름은 아몬드. 광고쟁이죠.
히죽.
네메시스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소를 머금었다. 그의 파충류 같은 샛노란 눈이 빙글빙글 맴도는 아몬드를 따라간다.
“……처음 듣는 이름이군. 화신인가?”
“논문에 그런 게 적혀 있더라고.”
“논문?”
“트랜스 상태에 있는 자가 블루홀 그러니까 포션을 폭발적으로 과다복용하게 되면…….”
트랜스 상태를 다룬 논문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폭발적인 과다복용(Overdose) 상태가 되면 단순한 신내림뿐 아니라 강신(降神)이 가능한 만큼의 ‘문’이 열린다는 문헌이 있었다.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으나 여러 사례로 보아 확실히 한 차원 다른 트랜스 상태에 다다른다는 것이……」
“한 차원 다른 상태가 된다지.”
치익!
아몬드는 자신의 손바닥을 그어냈다.
‘그리고 난 그게 뭔지 알아.’
그것이 다름 아닌 강신이 가능한 상태.
즉, 게임 상에서 레벨 6에 도달하여 강신기를 쓸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게 여기서 어떻게 구현될지는 모르지만.
파지지직……!
아몬드의 신형을 감싸며 붉은 전격이 타오른다.
[강신(降神) – 망나니 용사]강신이 된다.
강신기는 없어도, 화신이 현현하는 실제 강신이 되는 거다.
“……?”
근데 이름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
-폼은 다잡더니 ㅋㅋㅋ ^망나니 용사^
-미치겠닼ㅋㅋㅋㅋㅋㅋ
-씹ㅋㅋㅋㅋㅋ
-망용이냐고 ㅋㅋㅋ
-망나뇽! 너로 정했다!
이름이 조금 톤이 안 맞긴 하지만.
콰광!
어찌 됐든 강신은 강행되었다.
네메시스는 물론이고, 뒤쪽에서 포션을 홀짝이던 란마저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 살아 있는 다른 용병들도 한 발짝 물러나며, 공포스럽다는 듯 쳐다본다.
붉은 전격의 폭풍이 가라앉고.
“오.”
아몬드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작고 말랐던 레테의 몸이 아니라, 이제 아몬드 본인의 모습이었다.
-인 싸 강 림
-크으~
-강신기가 얼굴 버프인가 봄
-레테 강신기 개좃사기네 ㅅㅂ 인생을 바꿔 버리누
시청자들은 스토리모드 안에 아몬드의 모습이 등장하자 잔뜩 신나했다.
[남은 시간] [00:01:31]시간도 꽤 허비시켰다. 의외로 네메시스가 공격을 멈춰주어서.
다만, 그건 앞으로의 맹공에 대비하여 힘을 비축한 것도 같았다.
“하? 그러면──”
파앗.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흩어지며, 바로 코앞에서 주먹이 날아들었다.
“──뭐가 바뀌냐!?”
후우우웅!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바뀌네.’
가볍게 허리를 뉘여 피한 아몬드.
“……?!”
신체 조건이 아예 다르던 레테를 움직이던 것과 제 몸이나 다름없는 아몬드의 신체 프로파일로 움직이는 건 전혀 달랐다.
게다가, 이건 강신기로서 구현된 상황이니만큼. 란으로 플레이할 때 가졌던 스킬도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더 강력했다.
란의 그 느릿한 움직임이 없으니.
[충전]파지지직.
아몬드의 손가락 끝에 전격이 모여든다.
그사이 네메시스의 발이 하늘에서부터 찍어내렸다. 어느새 위로 이동했던 것인데.
쿵──!
발뒤꿈치가 바닥을 박살 내버린다.
즉, 헛발질이다.
아몬드는 또 가볍게 피해낸 것이다.
-무친 속도;
-저걸 어케 피하누.
-와 이제 광역기 쓰겠다.
“어디 한번 이것도 피해봐아아아!?”
네메시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파지지직……!
그는 아까의 그 광역기를 쓰기 위해 붉은 전격을 모았다.
훙!
손을 휘두르는 순간, 전방위 공격이다.
콰과과과광──
뿌연 먼지가 사방을 뒤덮었다.
“……!?”
먼지가 걷히자, 수많은 붉은 방패들이 보인다.
“……뭐, 뭐야. 이게.”
아몬드가 생성해 낸 붉은 방패들이다. 다만 자신만 막은 게 아니라, 최대의 효율로 란과 용병단장 그리고 살아남은 단원들까지 지켜냈다.
마치 이기어검술처럼 이곳 저곳으로 날려보낸 것이다.
아몬드는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것도 되네.”
“마, 마나를 이렇게 다룬다고?”
멀티 태스킹에 일가견이 있는 아몬드이기에 가능한 기행이다.
-네메시스 좃뉴비쉑ㅋㅋㅋ
-이게 김치식 란이다 이 말이여! 양놈새끼야!
-이야 ㅋㅋㅋㅋㅋ 쾌감 지린다
-미쳤다 ㅋㅋㅋ
-와……
-도랏누 ㅋㅋㅋ 그냥 죽여도 되겠는데? 시스템상으로 못 죽이겠지만ㅋㅋㅋ
-네메시스 새끼는 아몬드가 오늘 도네 다 꺼서 켤 미션이 없는 걸 감사하게 여겨라 ㅋㅋㅋ
아몬드는 아까전 충전해 둔 순백의 결정을 내밀었다. 한 손으로는 충전을하면서 다른 쪽으론 방패도 만들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이론상 최강으로 강화된 란을 플레이하는 것 같았다.
실제 게임에는 밸런스상 넣을 수 없는, 오직 스토리모드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존재.
아몬드는 이게 꽤 재밌었다.
[방출]그는 방출을 시켜내며, 말했다.
“빵.”
-ㅁㅊㅋㅋㅋㅋ
-빵ㅋㅋㅋㅇㅈㄹ
-엌ㅋㅋ
-???: 어, 어떤 빵인지 말해줘야지 상현아……ㅠㅠ
슈우우웅──
붉은 전격이 곧장 네메시스의 이마를 강타했다.
──콰아앙!
네메시스의 허리가 휙 뒤로 꺾이며, 타격이 들어간다. 방패를 쓰면서 동시에 공격이 날아올 걸 예상을 못했던 모양인지 그냥 맞아버렸다.
물론, 그는 고무 인형마냥 다시 벌떡 상체를 일으키며 열불을 낸다.
“이런 버러지 새끼가아아아아!!!!”
네메시스는 완전히 폭주하여 광범위 공격을 연속으로 감행했다.
콰아아앙!
콰광!
물론 모든 공격은 방패에 막혔으나.
다음번부턴 쉽진 않을 거 같았다.
‘방패를 나눠놔서 효율이…….’
한두 번이야 여러 명을 보호할 수 있다지만, 이런 식이면 효율이 딸린다.
아몬드는 이내 가장 효율이 좋은 방식을 구현한다.
“이것도 되나?”
휘리릭.
네메시스가 잠시 충전하는 사이, 그는 방패들을 다시 불러들여 조합한다.
그리고…….
검지로 정확히 네메시스 쪽을 가리킨다.
쿠웅! 쿵!
촘촘히 얽히고설킨 방패들이 네메시스 주변을 둘러싸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뚜껑까지 덮어버린다.
쿵!
“……!”
네메시스는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꼴에 방패 안에 갇혀 버린 거다.
-??
-대체 몇 개를 동시에 컨하냐
-와 ㅋㅋㅋ 이러면 되네
-하아 드디어 피지컬로 깨부수는구나 ㅋㅋㅋ 너무 좋다 ㅋㅋㅋ
-와 네메시스가 이렇게 ㅈ밥처럼 보이는 건 처음이야 ㅋㅋㅋ
-지금 네메시스 표정 = 현재 내 표정.
[남은 시간] [00:00:52]“남은 시간도 어차피 별로 없네요.”
네메시스는 이대로 50초간 아무런 공격도 하지 못할 것이다.
쿠우웅! 쿵!
안쪽에서 이미 발작을 일으키며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있지만.
“이거! 놔아! 놔아아아!”
뭘 놓으라는 건지, 여튼 비명까지 지르고 있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어차피 타격은 안 들어가는 것 같고.’
네메시스는 뭔 설정인지 몰라도 전혀 대미지가 박히는 느낌은 없었다.
이대로 기다리면 될 것이다.
로랑을.
“……아몬드?”
그때 누군가 뒤쪽에서 아몬드를 부른다.
이제야 몸을 일으킨 용병단의 단장이다.
“……?”
아몬드는 무슨 용건인가 뒤돌아보려다…… 깜짝 놀란다.
단장이 투구를 벗어 던졌는데.
그녀는 눈물범벅이 된 채였고.
“……레이나.”
헝클어졌으나 여전히 빛나는 기다란 금발과 맑은 푸른 눈동자, 예쁘장하게 위로 솟은 눈매가 영락없는 그녀였다.
‘이게 되는 거야?’
아몬드도 그랬지만, 레이나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왔다.
그사이에 대체 몇 번이나 그녀의 눈이 흔들렸는지, 샐 수도 없었다.
그녀가 다가와 피투성이가 된 하얀 손을 들어 올려, 그의 턱을 살살 만져 보았다.
“아…… 아…… 아몬드…… 마, 맞아? 너 화신이 된 거야? 아몬드 데미안. 맞아?”
왜일까.
고작 게임 캐릭터일 뿐인데, 상현은 가슴속 깊은 곳이 뜨겁게 지져지는 듯했다.
아몬드가 잠시 한눈을 팔자, 방패들 사이의 거리가 벌어졌고.
네메시스가 발광을한다.
“죽어어어어! 죽여버리겠어어어!”
콰광!
레이나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괜찮아. 끝났어.”
아몬드의 말처럼,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이제 시간이 끝났으니까.
[남은 시간 종료] [생존 성공]이 메시지가 떠오르는 순간.
퍼엉!
네메시스가 갑자기 하얀 연기로 뒤덮이더니.
“메에에…….”
양으로 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