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285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4화
2. 본질(1)
은퇴하신 이유가 뭐예요?
이 질문은 너무나 예상 범위 안에 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상현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지금 네가 화제가 된 이유가 뭔지 알지?」
주혁이 했던 말이 스쳐 간다.
「네 사연 때문이야. 말했잖아. 그 스토리는 힘이 있다고.」
상현은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지금 연락 오는 매체들. 전부 그 사연을 원해서 널 부르는 거야. 그 부름에 응하면 무조건 그 얘기를 다시 하고 다녀야 된다.」
다시.
하고 또 해야 한다고.
마치 매크로가 달린 기계처럼.
주혁은 몇 번이나 강조했다.
「나중엔 무뎌지고 괜찮아지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돼야 한다고 난 생각하지만. 네가 하고 싶지 않다면 다 거절해도 된다.」
그는 상현이 느끼는 무게를 짐작하기에, 메이저 진출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종용했다.
「메이저 채널 같은 데 안 나가도, 우리 충분히 먹고살고 나도 살길 찾을 수 있어.」
맞는 말이긴 했다.
특히나 상현은 메이저 채널에 진출할 필요까진 없었다. 단순히 개인 방송만 운영해도 충분한 부를 휙득할 수 있다. 1년만 이대로 꾸준히 한다면 괜찮은 집도 살 수 있을 것이다.
히나 상현은 고개를 저었다.
‘하늘에서 소연이가 비웃겠다.’
이런 말과 함께, 그는 메이저 채널로 가겠노라 정확하게 전달했다.
‘나 혼자 먹고살 수 있다고, 여기서 멈춘다고? 그것도 이유가 그깟 사연 하나 반복해서 말 못 해서? 그럼 진짜 소연이가 비웃을 거야.’
주혁이 메이저 진출을 원한다는 것. 아니, 그에겐 이게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뿐 아니라 지아 역시도 조금 더 큰물로 나아가서 나빠질 게 없다는 것.
상현은 전부 알고 있었다.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다.
그를 그간 도와줬던 사람들이 있다. 다이버즈의 대표님도 상현이 더 날아오를 것을 예상하고 이런 광고를 제안한 것이고. 그전부터 밀어주던 판타지아도, 오 실장님도 더 큰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그에게 특혜를 줬던 것이다.
이젠 상현이 그들에게 보답할 차례였다.
“제가 사고를 당했거든요.”
그는 오른 팔을 들어 올리며 슬며시 웃어 보였다.
“헉. 사고요?”
“헐…….”
“진짜?”
패널들의 약속한 듯한 반응이 이어진다.
“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딴 후. 차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때 화제가 됐었던 사건인데…… 무인 택시 때문에요.”
“아……! 그, 그 사고?”
한민구가 놀라며 다른 패널들을 돌아본다.
“그 사고 기억하시죠? 10년 전에 처음 무인 택시 나왔을 때요. 뉴스에서 엄청 때렸는데.”
패널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 출신인 김트루는 더 관심을 표하며 물었다.
“그 사건 피해자셨어요? 제가 그 사건 담당이었거든요.”
“네. 그 이후로 오른팔이…… 일상생활은 될 정도로 쓸 수 있는데. 후유증으로 수전증 같은 게 심해져서요.”
사실 뇌 쪽의 문제지만, 그런 자세한 사항은 생략했다.
설명하기 어렵기도 하고, 수전증 정도로 타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후, 상현은 할머니와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던 이야기, 재활에 힘썼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였던 것 등을 나름대로 잘 풀어내서 말했다.
그리고 아성 입사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 그 장애인 전형으로 들어가셨구나. 근데 낙하산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맞아요. 그때 부장님이 장애인 전형, 낙하산 중에 어떤 게 낫겠냐고 해서. 제가 그게 나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낙하산 인사에 대한 해명도 했고.
-ㅠㅠㅠㅠㅠ
-헐 할머니 때문에 회사 다녔구나 ㅠㅠ
-하긴 대기업 어케 포기해 솔직히 ㅠㅠ
-진짜 가슴이 아린다 ㅠㅠㅠ 어떡해 ㅠㅠㅠ
“아. 그럼 나이를 속일 수밖에 없었구나. 군필 2살 추가로.”
“그치. 장애인 전형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니까. 낙하산이니까. 당연히 군대는 멀쩡히 다녀왔다고 말하고 싶었겠죠.”
“아이고…….”
이로써 나이를 속인 이유까지도 나왔다.
호스트들 반응은 말할 것도 없고, 제작진에서까지 탄식이 흘러나온다.
-ㅠㅠㅠㅠㅠㅠㅠ
-아몬드 오른팔 다시 살려내 ㅠㅠ
-양궁 협회는 이런 거 안 도와주냐??
-헐 ㅠ 생각보다 인생이 고단했네
-그냥 금수저라서 스트리머 하는 줄…….
아몬드를 처음 보는 혹은 대충 알고 있던 사람들도 이 사연을 듣고는 모두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한번 해봤다고 훨씬 낫네.’
아몬드는 오늘 방송이 만족스러웠다.
특히 과거 이야기를 꺼낸 부분.
처음 과거 이야기를 꺼낼 때보다 지금은 훨씬 자연스럽지 않은가? 별로 떨지도 않았다.
오히려 혀가 멋대로 먼저 움직인다고 느낄 정도로 휙휙 말이 튀어나왔다.
‘이러면서 무뎌지는 거겠지.’
무뎌진다.
그 표현이 딱 맞았다.
그의 아픈 과거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희석된다는 게, 한편으론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과거는 이제 슬슬 과거로 남을 때가 온 것이다.
진즉에 이랬어야 했다.
말하고 보니 별거 아니잖은가?
‘분량도 많이 뽑았어.’
현재 아몬드는 1시간 반가량을 이야기했다.
이는 옆의 아이돌 게스트인 인호는 4~50분 정도였는데. 그보다도 훨씬 많은 분량이다.
이후 편집이 어떻게 들어갈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야기 자체를 많이 했으니 조금이라도 안심이다.
‘할 만큼 했다.’
아몬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오늘 토크쇼 처음이라고 나름대로 긴장을 했었는데. 이제야 완전히 풀린 것 같았다.
이젠 다른 사람 토크를 지켜보며 시간을 보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아이고…… 이거 참. 서린아. 넌 왜 또 울고 그러냐.”
흐느끼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여자 아이돌 패널인 서린이 울고 있는 거다.
-서린이 울어?
-야 우냐? ㅋㅋㅋ
-뭐야 ㅋㅋㅋㅋ
아몬드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조금은 당황했다.
이 정도까지 바란 건 아닌데 말이다.
“흐윽…… 흐으으 죄, 죄송해요.”
“아이고…… 야. 참…….”
한민구는 차마 뭐라 하진 못하고, 급 다운되어 버린 분위기에 곤란한 표정이다.
“여튼, 지금은 잘되시는 거잖아. 그쵸?”
“아, 예.”
한민구는 서린을 달래주기 위한 건지 뭔지 아몬드에게 이제 좀 밝은 스토리가 남아 있지 않냐는 듯 또 물었다.
이미 거의 1시간 반가량을 이야기한 참이라, 아몬드마저도 당황스러웠는데.
“그 잘된 이야기 좀 해봐요. 얘는 무슨 사람 인생 하나 망한 것처럼 울고 있잖아.”
“아 그…….”
아몬드는 아성에서 구조조정으로 물러난 후. 처음 스트리밍을 막무가내로 시작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게 재밌진 않을 텐데.’
여기서부턴 그냥 스트리머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이야기다. 그리 흥미롭진 않을 터다.
하나 아몬드는 어떻게든 서린에게 자기가 잘되고 있고, 시작부터 꽤 반응이 좋았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열심히 말했다.
그런데, 웬걸.
-왘ㅋㅋㅋ
-아니 행동력 뭐냨ㅋㅋ 전세금으로 모은 돈 털어서 캡슐 사려 했다니
-미친 사람이네 ㅋㅋㅋㅋ
-와 이 썰은 처음인데 역시 견과류 형은 어디 하나 잘못된 게 분명하네!
사람들이 꽤 재밌어 한다.
그러고 보니 어떤 방식으로 스트리밍을 시작하게 됐는지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와. 그러니까. 게임 안에선 이게 제대로 된다는 거잖아요?”
김트루가 신기하다는 듯 오른팔을 흔들며 묻는다.
“네. 아무 문제 없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처음엔 활 쏘는 거 자체가 너무 재밌어서 계속했던 거 같아요.”
“아니, 그럼 처음으로 한 게임은 뭐에요? 활 쏘는 게임을 했을 거 아녜요?”
이야기는 생각보다 더 길게 이어졌다.
패널들이 계속 질문을 하는 탓이다. 저들에겐 스트리머 이야기, 그것도 그 시작이 어땠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신선하게 다가온 모양이다.
“처음 한 게임이 킹덤 에이지라는 건데요. 나름 전략적으로 선정한 거였어요.”
-와 킹덤이 메이저 채널에 진출하다니 ㅠㅠ 아몬드니뮤ㅠㅠㅠ 당신은 킹덤의 영웅이야!
-킹덤무새들 성불하겠누 ㅋㅋ
-이브닝와이드에서 킹덤 언급ㅋㅋㅋㅋ
-킹덤 얘기까지 나오는 거냐고 ㅋㅋㅋ
“킹덤 에이지요?”
“아, 예. 인기는 없는데, 마니아층이 있는 게임이에요.”
“아, 되게 마이너한 게임을 고르셨네요? 근데 이 게임으로 빵 뜨신 거예요?”
“예. 그…….”
첫 게임인 킹덤에서 어떻게 흥하게 됐는지 말하는 파트에선 패널들도 꽤 흥미를 보였다.
그건 퍼펙트샷의 조건을 아몬드가 처음으로 완벽하게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그 설명을 듣자, 한민구가 못 믿겠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되묻는다.
“아. 처음부터? 갑자기 그 게임의 퍼펙트샷? 뭐 그런 걸 발견해 낸 거예요?”
“네. 제가 발견한 건 아니고. 몇몇 분들이 발견해서 소문은 있었는데. 제가 그걸 계속 쏠 수가 있으니까. 완전한 증거로 됐어요.”
“아니. 지금 퍼펙트샷 조건이…….”
한민구가 아몬드가 말했던 조건을 되새겨보며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딱 한 번에, 급소를 그것도 급소 정중앙을 맞히면 된다는데. 만약 한번 빗나가면 그 이후로는 안 되는 거잖아? 이거 말이 되는 거야? 이거 언제든지 원하면 쏠 수 있어요?”
“예. 당연하죠. 그래서 밝혀진 건데.”
“이게 당연해요!?”
-ㅋㅋㅋㅋㅋㅋ몬드에겐 당연
-견과류식 자신감에 한민구 매순간 당황 ㅋㅋㅋ
-당연한 게 맞긴 함 ㅋㅋ
“이야. 이런 건 우리가 한번 보지 않을 수가 없는데.”
결국 그는 자료 화면까지 요청한다.
이러면 또 한 10분은 잡아먹을 터다.
‘너무 길어지는 거 아닌가.’
이 정도면 아몬드 본인도 너무 길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슥 제작진 눈치를 한번 살펴보니 피디의 표정이 좋다.
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팻말에 계속 진행하라는 말들을 써서 흔들고 있었다.
‘제작진이 계속하라고 주문하던 거였구나.’
* * *
약 두 시간 후.
촬영이 전부 마무리됐다.
“이야. 수고했어요. 오늘 녹화가 좀 길었네.”
짝짝짝!
모두가 박수를 치며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친다.
드르르륵.
온갖 촬영 장비들이 세트장을 떠나는 소리로 가득 차는 중.
“수고하셨습니다!”
아몬드는 이리저리 다니며 열심히 인사를 건넸다.
일단 여기선 그냥 신입사원이다 생각하기로 했으니, 그때 그 시절 기억을 되살리며 열심히 허리 운동을 하는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주혁도 자리에서 일어난 제작진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둘 다 간만에 옛날 생각이 난다.
그러던 중. 서린이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아마 유일하게 먼저 와서 인사해 준 사람이다.
“오늘 진짜 재밌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휙.
머리가 다 휘날릴 정도로 굽히는 우렁찬 아이돌식 인사.
“아. 네. 감사합니다. 서린 씨도 수고하셨어요.”
“아몬드 님!”
릴잔디가 뒤에서 튀어나왔다.
“오늘 너어엄! 잼썼다! 저도 륄 좀 하는데. 초대 가능해요?!”
“아, 저 이제 릴 안 하…….”
“아! 물론이죠! 물론입니다! 합방 가시죠!”
휙.
갑자기 주혁이 튀어나와서 대신 인사를 건넸다.
“저는 아몬드 매니저 김주혁입니다. 릴잔디 님 평소에 팬이었는데. 봬서 너무 영광입니다.”
“오우. 그뤠여?”
“예. 싱글 리푸비도 잘 듣고 있어요.”
“오오오 싸인해 드릴까요?”
“와! 그럼 너무 감사하죠! 저 여기에…….”
주혁은 자신의 휴대폰 케이스에 해달라며 펜을 건넸다.
“에? 여기에 해도 돼요?”
“아, 당연하죠!”
싸인 후. 릴잔디는 상당히 기분이 좋은 표정으로 촬영장을 떠났다. 계속 손을 흔들어대면서.
그녀가 완전히 사라진 후.
“……리푸비?”
상현은 주혁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얼푸시비치…… 줄임말이야.”
“……아. 보통 영어로 줄이지 않나.”
“릴잔디 싱글은 그렇게 부르더라고.”
새삼 역시 이놈은 대단한 놈이라고 느낀다. 그렇게 디테일하게 조사하다니.
그렇다. 조사한 거다.
주혁의 음악 취향이 전혀 저런 쪽이 아니라는 건 상현이 더 잘 알고 있다.
“릴잔디가 너한테 제일 호의적이길래, 내가 기다리면서 조사 좀 더 했다.”
주혁도 멋쩍게 웃으며 고백한다.
“그, 그래도 이건 간직할 거야. 그냥 보기 좋잖아.”
그는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휴대폰 케이스를 흔들어 보이며 변명하듯 덧붙였다.
“릴잔디가 나한테 제일 호의적인 건 어떻게 알았냐.”
“음? 그냥 느낌이 그랬다. 왜? 맞았나 보네?”
“뭐…… 그렇지. 일단 집에 가자.”
“아. 그래.”
주혁은 주차장으로 앞장서 걸어가며 실실 웃었다.
“야. 근데 오늘 시청자 수 좀 나오더라? 한 13만 정도 나오던데? 이거 라이브치고는 완전 잘 나온 거야. 평상시엔 10만 잘 안 넘긴대.”
“오…….”
“이거 편집본 나오면 박 부장도 너 알게 되는 거 아니냐? 어? 이번에 분량도 엄청 뽑은 거 같은데. 아 그럼 진짜 통쾌하겠다.”
크크큭.
주혁이 사악한 웃음을 지어 보였고, 상현도 피식 웃으며 주차장으로 따라 걸었다.
“에이. 그 정도는 아니겠지. 그 사람은 트로트 방송이나 볼 텐데.”
“트로트? 박 부장도 그래도 40대인데. 너무한 거 아니냐?”
“그래? 액면가로는 50대 중반…….”
띵!
웃고 떠드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한다.
“그래. 장 피디도 지가 별수…….”
안에 있던 인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멈췄다.
분명 아까 먼저 떠났는데.
그의 옆엔 아까 전엔 없던 매니저까지 함께다.
주혁의 머리가 빠르게 굴렀다.
‘뭐야.’
이 두 사람. 1층을 누르는 걸 깜박하고 지금까지 멍청하게 얘기하고 있던 게 아니라면…….
‘위에서 왔어?’
위층에 갔다 온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