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3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3화
1. 난 여전히 쏘고 싶다(3)
“이렇게까지 똑같다니…….”
상현은 새삼 놀라고 말았다. 올림픽을 구현해 놓은 가상현실 세계의 현실감에.
-우아아아아……!
-유상현! 유상현!
-아. 지금 유상현 선수가 활대를 잡고 올라섰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유상현 선수는 어릴 적부터 천부적인…….
관중들의 환호 소리, 그리고 환청처럼 섞여 들려오는 선수권 대회 시절의 그 중계진의 목소리까지.
그는 실제로 올림픽에 출전한 것 같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두근두근.
분명 들리지 않아야 할 심장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고, 마를 리 없는 가상의 입술이 말라갔다.
그의 시야가 닿는 70미터의 끝부분에 익숙한 과녁이 보였다.
빨강, 노랑, 파랑.
여러 동그라미가 겹쳐져 그려진 타깃.
꿈에서나 보던 그것이 지금 눈앞에 있다. 대체 얼마 만에 이 자리에 서보는 걸까.
“후우.”
상현은 곧바로 활의 현을 당겨봤다. 어떤 느낌인지 미리 알아보기 위해서다.
기리리릭.
시위가 당겨지는 익숙한 촉감과 소리. 그 생생한 감각에 상현의 심장은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지, 진짜 되는 거야?’
현을 당겨 홀딩(Holding)하는 순간.
이쯤에선 늘 문제였던 게 있다. 자신의 오른손이다.
그는 자신의 오른손으로 시선을 돌린다.
‘!’
지금쯤 덜덜 떨려야 했을 오른손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활시위를 당겨주고 있었다. 아주 굳건하게.
상현은 한동안 그 자세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 넘어온다.
‘…….’
그는 슬픔인지, 기쁨인지 모를 복잡한 기분을 힘겹게 삼켜내고, 다시 활의 느낌을 자세히 살폈다.
‘조금은 달라.’
힘을 주기에 따른 줄의 텐션, 그립의 질감…….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간다면 현실과 분명 괴리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미 상현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멀쩡한 팔로 활을 당길 수만 있다면…….
장난감 활 같은 질감이라도, 거기에 적응하면 그만이리라.
‘해보자.’
화살을 꺼내 들어 노킹(Knocking)했다. 이제부터 실제로 슈팅을 시작하는 거다.
항상 멍하던 그의 눈이 매섭게 목표점을 노려봤다.
이제 그는 활과 자신의 전쟁에 돌입한다.
양궁은 언제나 자신과 활의 치열하고 고요한 전쟁.
선수는 늘 그 침묵 속의 혈전을 통해 활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 시작은 풀 드로우(Full Draw)부터다.
이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위치로 화살을 당겨 놓는 일종의 전초전.
풀 드로우 단계에서 오른손의 정교함과 단단함이 필수였기에, 상현으로선 굉장히 오랜만에 해보는 것이지만.
기리리릭!
마치 어제 해본 드로우인 듯, 활의 현이 코와 입술 위로 안착한다. 그의 오른손이 원래 자리를 찾아가듯이 턱 밑으로 착 달라붙었다.
완벽한 자세의 홀딩(Holding)이었다.
분명 완벽한 수순이었다.
다만…….
‘활의 무게나, 현의 텐션이 생각보다 훨씬 낮아.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인가?’
문제가 있었다.
그에겐 그 가벼움이 오히려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익숙한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으니, 쓸데없이 힘이 더 들어가는 거다.
그의 에임이 이리저리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상현은 결국 활을 쏘지 못하고 다시 내려놨다.
* * *
화살을 메기는 순간 눈빛이 달라지는 상현의 모습에, 주혁과 사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이야. 프로는 다르긴 다르다. 자세부터가 장난 아닌데?”
“그, 그러게요. 저도 막상 말로만 들었지 진짜 보는 건 처음인데…….”
주혁은 상현이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저게 유상현이라고?’
단순히 게임 안에서 활을 쏠 뿐인데, 보는 사람마저 사냥을 당할 듯한 기분.
안개처럼 깔려오는 정적에, 불던 바람마저 멈추고 기다릴 듯한 느낌이었다.
“어……? 근데 왜 안 쏘지?”
“……?”
근데 상현이 갑자기 다시 활시위를 풀고 활을 내렸다.
“설마 오른손 문제가 정신적으로도 영향이 있나?”
주혁이 입술을 질끈 물었다. 옆에서 사장이 한마디 보탰다.
“저런 장면 올림픽에서도 본 적 있어. 가끔 저러잖아. 물론 좋은 장면은 아닌데. 특이한 일도 아니야.”
“……아. 그랬죠.”
“너무 긴장했나 봐.”
주혁도 기억난다. 예전에 올림픽 양궁 선수들 중 하나가 화살까지 다 메기고 나서 잠시 활을 내려서 쉰 적이 있었다.
시합의 긴장감과 중압감은 프로들도 견디기 힘든 것이다.
‘저놈이 긴장을?’
고작 가상현실 게임 앞에 긴장하는 유상현이라니. 그의 회사생활을 봐온 주혁으로선 상상하기 어렵긴 했다.
매사에 태평하기 그지없는 놈인데.
‘진짜 좋아하는구나.’
그제야 그는 체감했다.
상현이 얼마나 양궁을 좋아했는지, 그리고 그리워했는지.
그가 양궁을 사랑했다는 것은, 그의 모든 몸짓과 표정, 숨소리에서조차 느껴졌다.
긴장할 수밖에 없다.
아주 오랜 세월 만에 첫사랑을 다시 보는 기분일 테니.
‘돈은 그냥 핑계 아냐?’
상현은 게임을 해서 돈을 벌고 싶은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는 그것을 핑계로 다시 활을 쏘고 싶은 것 같았다.
고리타분한 회사 생활에서 벗어나, 드넓은 평야에서 활을 쏘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지…….’
상현이 회사를 다니던 이유는 오로지 할머니 때문이었는데, 그런 할머니의 장례가 약 1년 전이었다. 상현은 이제 부담을 내려놓고 자신이 해보고 싶은 걸 하는 거다.
‘해보고 싶은 것이라…….’
주혁은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가슴이 뛰었다. 해보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건.
주혁의 인생에서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다.
“오. 다시 당긴다.”
사장이 주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오…….”
‘오…….’라고 한마디 할 시간밖에 없었다.
피융!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불평하고 싶을 정도로, 상현은 물 흐르듯이 활을 쏴버렸다.
“!”
아무것도 모르는 주혁이 보기에도 그의 활은 뭔가 달랐다.
“이, 이런 미친!?”
함께 지켜보던 사장도 탄성을 내질렀다.
화살이 도착하기도 전인데. 이미 상현이 쏘는 순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푹!
과녁의 정중앙에 화살이 꽂히리란 것을.
“와!”
“뭐냐, 쟤? 내, 내가 알던 양궁이랑도 좀 다른데?”
일반인이 아는 양궁은 프로 중의 프로다. 올림픽이 아니면 일반인이 양궁을 볼 일이 없으니까.
그런데 유상현은 그보다도 한 수 위였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분명 그래 보였다.
마치 김연아의 더블 악셀이 다른 선수들의 애매한 트리플 악셀보다 훨씬 우아하듯이.
유상현, 그의 양궁에는 한 겹이 더 있었다.
피융!
또 한 발이 쏘아졌다.
당연하다는 듯이 화살은 다시 정중앙에 명중이다.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바람을 타고 빨려 들어간다.
푹!
연속 3발이 10점을 기록했다.
거기서도 상현은 멈추지 않았다. 순식간에 2발을 더 쐈다.
피융! 피융!
그다음부터는 과녁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10점!] [10점!]만점을 부르짖는 우렁찬 소리가 왠지 모르게 맥이 빠질 정도. 긴장감이라고는 없었다.
상현은 활을 쏘고, 화살은 그냥 과녁의 정중앙에 들어갔다.
손바닥 뒤집는 듯한다는 말은 어쩌면 상현이 활을 쏘는 걸 보고 만든 말일 수도 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형 이거 현실하고는 괴리가 있다면서요?”
“어, 응……. 적응 못 하는 선수들도 좀 많던데, 이 친구는 남다르네. 보통은 처음에 좀 고전하다가 나중에 잘해지거든. 그리고 저 친구는…….”
사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난 양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말이야. 저 친구는 좀 다르지 않아? 그냥 뭔가 궤가 다른 느낌이야. 저게 우리가 아는 그 양궁이야……?”
그제야 주혁은 상현이 사실 우리나라 최연소 국내 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임을 알려줬다.
“……최연소?”
“네. 자기가 술 마시다가 얘기해 줬어요.”
“국내 선수권이면 사실상 최연소 세계 챔피언 아니냐?”
“그렇게 될 예정이었겠죠.”
“장난 아니구나……. 그 정도 경지에 오르면 일반인 눈에도 뭔가 다른가 보다…….”
그때, 모니터에서 우렁찬 환호성이 들려왔다.
-우아아아아아!
-올 10점! 전부 과녁의 정중앙에 들어갑니다! 이게 뭔가요!?
-이, 이럴 수가, 믿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슈팅 시간마저도 최단 기록을 세웁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상현은 제공된 모든 화살을 과녁 정중앙에 박아 넣고 게임을 끝냈다.
치익…….
캡슐 뚜껑이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올라갔다.
상현이 멋지게 일어나서 웃어 보일 줄 알았으나. 상현은 나오지 않았다.
“왜 안 나와?”
주혁은 ‘또 멍청하게 나올 줄 모르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며 상현에게 다가갔다.
캡슐 안을 들여다본 주혁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야. 나올 줄 모르…….”
상현은 울고 있었다.
눈물범벅이 되어서 펑펑 울고 있었다.
그간 활을 잡지 못했던 10년 어치의 눈물을 다 쏟아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