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31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31화
12. 선택(1)
어쩐지 목소리가 얇더라니.
황금 투구의 정체는 이 게임의 두 번째 히로인인 로제니타였다.
-이 루트에선 이렇게 등장하네
-에밀리아보단 로제니타지. 암암.
-에밀리아 치워라~~
-헐…… 난 에밀리아가 좋은데.
일단 로제니타가 엄청난 인물이라는 건 이 게임을 한 치도 모르는 상현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굉장하네.’
모델링부터가 남달랐다. 왠지 에밀리아보다도 훨씬 더 신경 쓴 티가 났다.
정확한 비율로 자리 잡은 정갈한 이목구비, 갑옷을 걸쳤음에도 흘러나오는 여성적 매력,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는 깊고 반짝이는 눈.
거기에 고풍스러운 말투와 몸짓까지 더해지니 어느 남자인들 한눈에 맛이 가버리지 않을 수 없다.
실로 에밀리아의 기사들조차 멍하니 턱을 빼고 로제니타의 미모를 감상하기 바빴다.
로제니타는 투구를 벗은 것 외에 아무것도 한 게 없지만, 이미 기사들은 제각각의 시련에 빠지고 말았다.
에밀리아에 대한 충성이냐, 아니면 당장의 욕망이냐.
물론 이 시련에 직접 마주한 이는 다름 아닌 아몬드다.
[1. 제 가치를 인정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2. 비록 용병이나, 이미 충성을 맹세한 몸입니다.]이렇게 선택지마저 떠버렸다.
여기서 1번을 고르면 빠르든 늦든 언젠간 로제니타에게 붙게 되는 루트를 탄다.
‘에밀리아랑 이미 7일 동안 같이 지내지 않았나……?’
상현은 당황스러웠다.
이제 와서 에밀리아를 배신하기엔 그의 입장에선 그녀와 보냈던 시간이 꽤 길었다.
물론 그래 봐야 게임 캐릭터고 7일의 시간은 그저 설정상의 여흥일 뿐. 상현은 직접 겪어본 일이 아니다.
‘그게 아니어도…… 정 들었는데.’
에밀리아를 마차로 호송하면서 산적들을 물리쳤던 일, 그녀가 마을 사람들의 농사를 망치는 고블린을 해치워 달라고 한 일.
에밀리아의 수줍게 달아오른 볼, 뻔하고 귀여웠던 거짓말…….
당돌하고 정의로우며 순수한 눈.
‘으…….’
이 모든 것들은 아몬드가, 상현이 직접 겪은 일이다. 비록 그게 게임일지라도, 실제로 만지고 들었던, 심지어는 그 향기도 맡았던 것들.
-닥 에밀리아지
-투표 ㄱㄱㄱ
-아니, 에밀리아를 배신한다구?!
-로제니타지 씹 에이다들아
-닥 로제니타
-아오 쿨찐들ㅋㅋㅋ
-닥1111111111
-222222222눌러 2눌러!
2번을 누르면 에밀리아, 1번을 누르면 로제니타를 고르는 상황.
채팅창엔 1과 2로 치열하게 도배되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게 1, 2천 명이 보는 방송에서 올라오는 속도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날 이렇게 무안하게 둘 텐가?”
로제니타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단순히 시간이 지체되면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말일 뿐인데.
별것 아닌 그 행동에 상현은 움찔했다. 그만큼 살아 있었다. 로제니타라는 캐릭터는.
-오우우우!
-로제니타 누나 나 죽어어어!
-난 그냥 1갈래. 미안하다, 에밀리아!
-ㄴㄴㄴㄴㄴ그래도 에밀리아야ㅠㅠ
-에밀리아 버리는 거 에바야!
방금의 행동 덕에 로제니타로 조금 더 여론이 기울었으나, 여전히 팽팽한 상황이다.
아몬드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마음을 정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너무 달렸네요.”
방종하기로.
* * *
정말이지 가차 없이 방송을 꺼버린 아몬드.
-아니, 네가 사람 새끼냐!?
-아오, 견과류 쉑…….
-ㅋㅋㅋㅋㅋㅋ방종 타이밍 봐
-이것만 기다렸다는 듯이 방종하누
-빌어먹을 놈……ㅋㅋㅋㅋㅋ
껌껌해진 아몬드의 방송 채팅창에 아직 원혼처럼 남은 시청자들은 그의 무자비한 방종을 곱씹었다.
하나, 진심도 아닐뿐더러 그런들 떠나간 아몬드가 돌아오지는 않는다.
결국 그들은 하나둘 각자가 활동하는 커뮤니티로 돌아가서 오늘 있었던 일을 퍼 날랐다.
이 열성 팬들은 아몬드의 방송을 켜면 항상 가장 먼저 도착해 있고, 나갈 때도 가장 나중에 나가며 욕을 해댄다.
비록 입은 좀 거칠지라도, 상현의 입장에선 공짜로 광고를 해주는 고마운 사람들.
“마니아 팬층이…… 굉장히 두터운 편.”
김주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키보드를 두들기며 메모했다.
“2, 30대 남성 위주이긴 한데, 충성 팬은 여성 비율이 비등비등하군.”
그는 상현의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빠지고 나가는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앞으로 그의 방송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를 잡아가는 중이었다.
대충 게임 시작 전에 들어오는 시청자를 충성 팬으로 잡고, 게임 시작 후에 들어오는 시청자들을 라이트 팬으로 잡았다.
상현 방송의 특징은 게임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여성 충성 팬의 비율이다.
그래 봐야 반반이지만 다른 게임 방송과 비교했을 때, 보통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닌 듯했다.
“심지어 후원 비율에서는 여성이 압도적…….”
헤비 도네이션이 몇 번 있어서 그런지, 아직까진 여성 후원 비율이 압도적이다. 금액으로만 따지면 79%가 여성들의 후원.
그러나 후원 횟수는 남성 회원의 비율이 64%로 더 높았다.
“이건 아직 표본이 너무 없어. 서지아 씨 후원 하나가 모든 남성 후원 다 합친 거 수준이니…….”
물론 후원은 아직 판단하기 섣부르다.
이제 겨우 소기업으로 커가는 수준이기에 시청자 중 후원을 하는 비율이 굉장히 낮다.
절대적인 표본 숫자가 모자란 것이다.
“이런 지표라면 다음 게임은…….”
주혁이 지금 지표 분석을 하는 건 다름이 아니라 킹덤 에이지 이후에 플레이하게 될 게임 때문이다.
킹덤 에이지는 실력자 컨셉의 스트리머에게 완벽한 선택이었다.
단순히 아몬드가 게임을 잘해서, 혹은 방송을 잘해서 지금의 성장세를 얻은 게 아니었다.
게임 선택이 굉장히 유효했다.
그걸 상현 스스로 해냈다는 게 대견할 정도로.
그러나 이젠 주혁 자신이 매니저이고, 분석가다. 영상 편집도 하지 않는 마당에, 게임 선택 정도는 그가 고를 수 있어야 했다.
앞으로 펑크의 파트너 스트리머가 될 테니, 펑크사에서 유통하는 게임 목록을 띄운 주혁은 스크롤을 내린다.
“음…….”
상현과 가장 비슷한 시청자 지표를 가진 게임을 찾아야 했다. 동시에 상현이 잘할 수 있을 법한 게임.
만약 어느 정도 인기 게임이라면 금상첨화다.
“이게 좋…….”
그가 뭔가를 발견하고 마우스를 움직이는 순간.
쿵.
그의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여, 여보!”
“놔!”
쩌렁쩌렁 울리는 아버지의 목소리.
“!?”
주혁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어렸을 때부터 학습되어 뇌에 각인된 공포다.
벨을 울리면 침을 흘리는 개처럼, 화난 아버지의 목소리엔 한없이 작아진다.
“너, 뭐 하자는 거냐.”
그 화가 난 목소리는 다름 아닌 주혁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눈엔 용접 불꽃을 심어놨는지, 무쇠도 뚫어 죽일 것 같은 기세였다.
“자, 잠시 쉬고─”
“그딴 걸 내가 묻는 거 같으냐?”
“……!”
주혁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주먹을 움켜쥐었지만, 이내 그마저도 스르르 풀리고 만다.
“왜 회사 그만뒀냐.”
“…….”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았다고 여기서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아버지에게 그저 변명일 뿐이다. 패배자는 이유를 대는 순간 변명이 된다. 늘 식사 때마다 하던 말.
“왜 그만두었냐고!!!”
콰광.
서른 넘은 아들이 회사를 그만둔 것에 보내는 분노치고는 광기에 가깝다.
그는 자신의 피가 누구에게 지는 꼴을 보지 못한다. 심지어 사회에서 도태된다? 차라리 제 손으로 죽이고 말 것이다.
“이…… 이직을 하려는 거죠.”
“어떻게 그만두었는지도 들었으니까, 이직한다는 헛소리는 그만둬라.”
주혁은 입을 다물었다.
하기야 부장에게 그런 식으로 온갖 성을 다 내고 그만둔 뒤 같은 계열의 회사에 취업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넌 내 체면도 생각 안 하는 거냐? 한 이사가…… 하아, 됐다. 너 그냥 내일부터 우리 회사에 출근해. 대리부터.”
“아버지! 그건─”
“뭐!?”
네가 이러고도 할 말이 있어? 그리 말하는 눈빛이다. 주혁은 견디기 어려웠다.
그의 어깨가 덜덜 떨린다.
아마 평소의 자신감 넘치고 쾌활한 그의 모습을 아는 주변인들은 이런 주혁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주혁의 한 면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이다.
“할 말이 있느냐?”
“…….”
할 말이 너무 많았다. 혹은 할 말이 없다.
아버지 앞에선 그 두 문장은 동의(同義)다. 어차피 결과는 같으니.
“……아뇨.”
“내일 아침부터다. 거드름 피우지 말고 일 똑바로 배울 생각해라. 직원들한테 잘하고. 한 명, 한 명이 우리 회사의 피와 살이 되는 사람들이다. 항상 겸손하고.”
매일같이 듣던 말의 반복.
“예…….”
아버지는 다시 서재로 돌아가셨다.
“주혁아…….”
“됐어요, 어머니. 내일부터 갈게요.”
“……그래, 잘 생각했다. 과일이라도 줄까?”
“아뇨.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
탁.
문을 닫은 주혁은 힘이 다 풀린 채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하아.”
주혁의 눈이 잠시 자신의 컴퓨터 화면으로 향했다.
추리고 추려서 만들어놓은 게임 목록이 떠 있다. 시청자 추이 분석표와 그래프도.
서지아가 보내온 아몬드의 올튜브 채널 영상도, 채널 인터페이스 디자인도…….
모두 잠깐의 꿈이었던 걸까?
“꿈치고는 너무 길었잖아.”
투정 섞인 말을 중얼거린 주혁의 턱을 타고 눈물이 뚝 떨어졌다.
고작 1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
일확천금을 번 것도, 대단한 명예를 얻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 이상으로 주혁은 이 일에 몰입해 있었고,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후우…….”
그러나 이제 아마도, 그건 잠깐의 즐거웠던 꿈으로 치부해야 할 듯하다.
* * *
지이이잉…….
휴대폰이 아침부터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상현은 일찍부터 일어났다.
어제는 새벽 4시까지 방송하는 바람에 오늘은 좀 늦게 일어나려 했건만.
“하아. 이 새끼는 또 왜…….”
휴대폰에 뜬 이름을 보고 전화를 받은 상현은 깜짝 놀랐다.
-야! 문 좀 열어라!
휴대폰에서뿐만이 아니라, 창문 밖에서도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이제 진짜 미쳤나. 왜 아침부터 남의 집─”
“미안하다.”
쿵.
그가 내려놓은 물건을 보고 상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집 나왔냐?”
여행을 갈 때나 쓰는 캐리어와 빵빵하게 들어찬 배낭. 누가 봐도 집을 나온 행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