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32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32화
12. 선택(2)
“일단…… 들어와라.”
할머니와 상현이 살던 집은 서른 평이 조금 안 되는 크기이다.
그러니 혼자 살기엔 꽤 크다. 주혁이 들어와도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캡슐의 위치도 딱히 바꿀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축축하게 내려앉은 분위기가 밝아지기까지 했다.
주혁은 유독 신나 있었다.
“야. 오늘 치킨 시켜 먹을까?”
주혁은 집을 나온 거 자체가 재밌는 모양이었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건 유학 시절 이후로 처음이니 그럴 만했다.
더군다나 친구와 함께 사는 건 아예 처음.
서른 넘은 나이에 창피하게도, 그는 수련회에 온 학생처럼 설레고 있었다.
“맥주도 사 오자.”
“…….”
상현도 주혁이 들어와서 꽤 기분이 좋은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혼자 사는 게 처음에야 재밌지, 나중엔 굉장히 쓸쓸한 편이다. 동료가 있으면 적적하진 않으니 좋을 터다.
그럼에도 상현은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대체 왜 나온 건지 말 안 하냐?”
일단 같이 살아도 좋다고 말하긴 했지만, 이 자식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알아야 한다.
나이 서른 넘게 처먹고 부모랑 따로 사는 게 무슨 대수겠냐마는, 그래도 나온 이유 정도는 알고 싶었다.
“후……. 어떻게 된 건지는 나중에 술이나 마시면서 얘기해 줄게.”
“나 다음 날 방송 있으면 술 안 마셔.”
“그래? 그럼 나중에 쉬기 전날에 마셔. 그나저나 게임은 어쩔 거냐?”
“뭘 어째.”
“에밀리아냐, 로제니타냐 기로에 서 있잖아.”
“음…….”
상현도 딱히 생각해 보진 않았다.
“뭘 골라도 별 상관없지 않을까? 흠.”
그는 마침 생각난 김에 커뮤니티 반응을 살폈다. 아몬드라는 이름으로 검색하자, 굉장한 양의 게시글이 쏟아졌다.
[견과류 쉑 네가 사람이냐?] [내 기준에서 아몬드는 악인…….] [하, 참. 거기서 끊네] [저기서 끊어놓고 에밀리아 배신 때리면 죽창 찌르러 감].
.
.
게시글 제목들부터가 꽤나 살벌했다.
피식.
그런데 상현은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의 멘탈은 저런 장난에 가까운 힐난에 흔들릴 정도로 우습지 않았다.
“반응이 뜨겁긴 하네.”
“내가 다음 게임으로 생각해 본 게 있거든.”
“음? 다음 게임?”
주혁이 갑작스레 화제를 전환했다.
“어. 여기 봐.”
그는 자신의 노트북을 홀로그램 프로젝터에 연결시켜서 자료 화면들을 띄웠다.
“오…….”
요즘에 초대형 모니터 대신 쓰는 장비였다. 아무래도 여러 가지 정보를 한 번에 보기가 편하고, 직관적이니까.
주혁이 터치 패드에 대고 손가락을 빙글 돌리자, 홀로그램들이 휘리릭 회전하며, 여러 자료를 동시에 띄웠다.
상현의 방송 시청자 분류와 특징에 대한 것들이었다.
정리 포맷은 아성 기업에서 쓰던 그대로여서, 상현이 알아보기에도 편했다.
“으음…… 그래서?”
“결론은 이거야.”
띵.
모든 잡스러운 창들이 싹 사라지고, 하나의 화면이 두둥실 부유했다.
[배틀 라지]그 화면에서는 게임의 티저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100인이 참여하는 서바이벌 형식의 게임.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찬 소재였다.
“괜찮은데? 한번 미리 해볼까?”
상현은 별생각 없이 캡슐에서 플레이해 보자고 말했으나, 주혁이 그를 뜯어말렸다.
“안 돼!”
“……?”
‘이렇게까지?’라는 표정으로 상현이 돌아본다.
“네 시청자들이 원하는 포인트를 모르겠어?”
“게임 잘하는 거잖아.”
“그냥 잘하는 게 아니야. 천재라고, 천재!”
“……그거랑 잘하는 거랑 뭐가 다른 거냐.”
주혁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무테안경을 치켜세웠다.
“그냥 잘하는 건 연습을 해서 잘해질 수도 있지. 하지만 우리가 아는 천재들은 어때? 처음부터 그냥 재능으로 잘한다고.”
“아, 나 연습하는데? 활 실력도 연습─”
“아니! 적어도 그 게임은 처음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잖아. 근데 넌 연기도 못 하고 거짓말도 못 하니까. 그냥 진짜 처음 하라고.”
“???”
상현은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킹덤 에이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킹덤 에이지는 패키지 게임이다. 원래 처음 하는 게 당연한 게임.
그런데 배틀 라지는 전혀 아니다. 온라인 PVP 게임이다.
사람 대 사람이 부딪히며 서로의 실력을 겨루는 게임인데, 문제는 나온 지가 거의 2년이 다 되어간다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고인물들이 생겼고, 사람들의 실력 편차가 굉장히 커졌으며 초보자 진입 장벽은 높다.
이런 게임을 처음 켜서 잘하라고 하는 건 너무 과한 부탁이다.
그 게임을 하는 다른 사람들은 처음이 아니고,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데, 생판 모르는 상현이 처음 시작한다고 그들보다 잘할까?
이게 상현의 생각이었으나, 당연히 제3자의 시선에선 달랐다.
“킹덤 에이지도 처음 하면서 신기록을 갈아치웠잖아. 배틀 라지를 네가 처음 한다고 못 할 것 같냐?”
“……어. 난 활 쏘는 재주뿐인데, 그건 총 쏘는 게임 아니냐? 기본적으로.”
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배틀 라지는 총을 쏘는 게임이다.
화살이나 쏠 줄 아는 상현이 어떤 메리트를 갖고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아냐. 이걸 봐라.”
주혁이 몇 개의 분석 영상을 띄웠다.
상현이 말을 타고 달려가면서 적들을 쏘아 맞히는 영상이다.
“이게 양궁이랑 관련이 있어 보이냐? 뭐, 물론 조금은 있겠지. 근데 네 양궁하던 친구들한테 이거 시키면 할 수 있을까?”
“…….”
‘할 수 있는 거 아냐?’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뻔 했으나, 상현도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양궁은 굉장히 정(停)적인 스포츠다.
흔히, 양궁 선수들이 축구마저 잘할 거라고는 다들 생각하진 않는다.
영상에 나오는 플레이도 마찬가지다. 양궁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음…… 내가 나름 시뮬레이션 훈련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는데 그 성과인 것 같네.”
“시뮬레이션 훈련 프로그램?”
주혁으로선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다.
“기본으로 깔린 거 있어. 최적화가 잘된다고 해서 주기적으로 하고 있거든.”
상현은 자신이 매일 최고 난이도로 시뮬레이션을 한 번씩 클리어한다고 말해줬다.
주혁은 상현이 말한 프로그램의 이름을 검색해 봤다.
“어…… 너 총점이 몇이라고?”
시뮬레이션 훈련을 끝내고 나면 총점을 부여해 준다.
“12,000점 언저리였는데?”
“미친.”
우웅.
홀로그램 화면에 새로운 자료가 떴다.
“그 프로그램이 전문가용은 아니긴 한데…… 일단 네가 거기서 1위인데?”
“뭐?”
상현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그 자료를 더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가까이서 본다고 홀로그램 픽셀이 바뀔 리가 없다. 자료는 그대로였다.
맨 위에 아몬드의 신체 인증 일련 코드가 똑같이 적혀 있었다.
‘내가…… 1위?’
킹덤 에이지는 랭킹 시스템이 없다. 어떤 플레이가 좋은 플레이라고 기준을 잡을 수가 없으니까.
신기록을 갈아치웠다고는 해도, 막상 체감이 잘 안 되던 게 사실이다.
상현의 입장에선 처음부터 그랬으니,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게 별로 대단치도 않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정확하게 1위라는 수식이 붙는 건 느낌이 아예 달랐다.
“우어…….”
그는 멈칫하며 뒤로 물러나서는,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 말 맞지?”
“뭐?”
“넌 양궁이랑 상관없이 그냥 이 분야에 재능이 엄청나다고! 배틀 라지도 가이드 영상 정도만 보고 바로 시작하면 돼. 무조건…….”
주혁은 자신의 의견이 들어맞아서 신이 났는지 마구 주절댔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상현의 귀엔 주혁의 말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1위…….’
1위를 했다는 감격은 생각보다 그의 가슴을 크게 울리고 있었다.
* * *
상현은 오늘 방송을 조금 더 일찍 켜기로 했다. 어느 시간대가 유입이 가장 좋은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다.
“들어간다.”
“오냐.”
캡슐에 들어갈 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꽤 괜찮은 기분이었다.
그 상대가 예쁜 여자 친구가 아니라 계산기 같은 말투를 쓰는 김주혁이라는 건 상당히 거슬리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치이익─
뚜껑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사방이 컴컴해지며,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데일리 훈련 프로토콜 시작]들어가자마자 자동으로 세팅해 놓은 시뮬레이션이 시작된다.
상현은 조깅을 하듯이 가볍게 풀코스를 클리어했다.
[13,112]1만3천 점이 넘는 기록이 나왔다.
‘……신기록인 거야 그럼?’
이 훈련 프로토콜은 경쟁용이 아니기 때문에 시스템 내에서 점수 차트를 보여주진 않는다.
그러나 이제 상현은 안다.
자신이 세웠던 1만2천 점이 1위 점수였다는 걸.
근데 그마저도 오늘 깨버렸다.
아주 가볍게.
얼떨떨한 기분으로 잠시 멍해 있던 찰나.
[주혁 : 방송 켜기 전에 배틀 라지 가이드 영상 봐라.]띠링.
주혁이 영상 링크를 띄웠다.
상현은 손을 움직여 그 영상을 클릭했다.
휘이이이잉─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낙하하는 100명의 플레이어들.
그들은 낙하산을 펼치며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각자 무기를 주운 후, 상대방을 마주칠 때마다 쏜다. 혹은 대충 멀리서 지나가면 암묵적으로 공격을 안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재밌어 보인다…….’
두근─
상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킹덤을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다.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서바이벌 경쟁을 하는 게임이라니.
듣기만 해도 흥미가 도는데, 막상 실제로 보니 굉장히 하고 싶어졌다.
‘오늘은 안 되지.’
상현은 일단은 참기로 했다.
주혁의 말대로, 너무 많이 알고 들어가면 시청자들이 느끼는 재미는 반감될 터다.
딱 룰만 아는 정도에서 멈추는 게 좋다.
‘어차피 천재 컨셉이라면, 그렇게 가줘야지.’
거기에 더해, 상현은 시험해 보고 싶었다.
정말 그가 가진 재능이 어디까진지.
[잘 봤다. 이제 방송 시작함.]그는 주혁에게 메시지를 보내놓고,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 * *
방송 시작과 함께, 아몬드는 어느새 전장이 펼쳐졌던 그 너른 들판에 서 있었다.
역시 가상현실 게임의 몰입도답달까.
아까만 해도 배틀 라지를 하는 상상을 했단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상현은 킹덤 에이지 세계에서 잔네렛과 탈로란트의 전쟁에 끼어든 용병, 아몬드였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지?”
로제니타가 약간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되묻는다.
그녀가 물어봤던 질문에 대한 답을 촉구하는 것이다.
[1. 제 가치를 인정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2. 비록 용병이나, 이미 충성을 맹세한 몸입니다.]만약 상현이 진짜 이런 상황이었다면, 적어도 1주일은 고민했어야 할 선택지인데.
로제니타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얼른 대답해. 여기서 하루 종일 있을 셈인가?”
사뭇 건방져 보이는 재촉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시청자들은 매력 있다며 환호했다.
-걸크러쉬ㄷㄷ
-걸자이언티 ㄷㄷ
-제발 저 건방진 견과류 좀 혼내줘요 누님!
-언니 사랑해!
에밀리아도 인기가 있고, 로제니타도 인기가 좋다.
‘로제니타는 다음 기회로…….’
로제니타에게 간다면, 게임은 훨씬 더 길어질 터다.
이제 슬슬 게임 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그러므로 이번 회차는 에밀리아의 루트로 끝을 내고 싶다. 그게 의리도 지키는 일이다.
아몬드가 입을 열었다.
“저는 비록 용병이나, 이미 충성을 맹세한 몸입니다.”
로제니타는 잔뜩 실망한 표정이 되었다가, 오히려 웃는다.
“이걸 어쩌나. 더 탐이 나는걸? 어지간한 기사보다 낫잖아?”
결론이 나자, 군인들은 로제니타를 끌고 갔다.
포로로 잡혀가는 와중에도 그 깊은 바다 같은 눈은 아몬드를 계속 바라봤다.
-ㅠㅠ 잘 가라 로제니타!
-제길…….
-아몬드 이 알못 쉑…….
-ㅠㅠㅠㅠ
로제니타의 팬들은 실망한 듯했다. 과몰입해서 정말 아몬드의 선택을 비난하는 자는 다행히 없었다.
“……아, 아몬드.”
뒤쪽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녀리고 익숙한 목소리다.
‘에밀리아?’
전장 한복판이었던 곳에 에밀리아가 와 있었다.
당연히 기사들은 식겁했다.
다들 그녀를 얼른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한다고 아우성이었다. 이곳은 아직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에밀리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곧장 아몬드를 향해 달려왔다.
달려와 아몬드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가녀린 팔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세게,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