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323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42화
15. 가족(1)
후우.
상현이 심호흡으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의 눈에 잠시 스쳐 간 이채를, 송하나는 놓치지 않았다.
‘기대하셨어.’
그녀는 오랜 기간 신체 일부를 제대로 사용 못 해본 환자들이 어떤 마음인지 잘 안다.
아주 약간의 불씨조차, 그들의 머릿속에선 폭죽이 된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어떻게든 붙잡으려 한다.
적어도 5년 차까지는 그렇다.
기대했다 실망하고, 또 안 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하루 종일 울어도 보고…….
그 후엔 바뀐다.
누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본인이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더 이상 상처받기 싫기 때문이다. 어차피 확률적으로 내 몸이 못 고쳐진다는 건 이미 지난 5년간 처절하게 학습됐다.
그런 자들에게 달콤한 말을 해준다면, 되려 쓴 표정을 지을 것이다.
최사랑도 오늘 이야기를 다 나누기 전까진 그랬다.
상현도 오늘 같은 반응이다.
지금 그의 눈을 보라, 의사가 아니라 사기꾼 하나를 관찰하는 듯한 표정이다.
‘그래도 잠깐은 희망을 품으셨잖아.’
그래도 송하나는 희망을 봤다. 상현의 눈에 아주 잠깐 스쳐 간 희망을.
‘환자가 긍정적이라면, 어떤 치료든 훨씬 수월하니까.’
환자의 심리 상태는 분명하게 신체에 영향을 끼친다. 그게 호르몬 작용이든 아니면 컬트적인 어떤 신비 작용이든.
분명한 건 인과가 늘 있었다는 것이고. 그 인과 자체를 부정하는 의사는 어디에도 없다.
환자가 포기해 버리면, 어떤 치료법이 와도 방법이 없다.
반대로, 환자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희망이 있다.
“흠흠.”
송하나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
홀로그램 화면을 켠다.
그녀는 마치 유치원생들을 가르치듯이 밝게 말한다.
“일단, 저는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 보고된 사례인 두 분이 서로의 상태를 공유하면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건 사전에 설명드렸죠?”
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미 치료 목적을 위해서라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다.
“상현 씨는 제가 매번 캡슐 정보를 얻고 있다는 거 아시죠?”
“예.”
이 역시 저번에 치료 및 연구 목적 정보 사용에 동의한 적이 있다.
상현은 캡슐 정보를 매일 송하나에게 전송한다.
“그걸 바탕으로 제가 어떤 수치를 만들었어요. 설명하기 어려우니까요. 간단하게 어떤 수치로 만들면 좋을까 생각해 봤죠. 이런 수식화가 또 제 전문이거든요. VNS도 제 스승님이 만드신 거예요.”
송하나는 그러면서 홀로그램 판에 ‘SKED’라는 글자를 띄웠다.
약자를 안 알려주는 걸 보니 앞에 S가 분명 Song일 것이라 상현은 확신했다.
“그냥 ‘신경 적합도’ 정도로 알아주세요. 더 간단히 말하자면. 여러분의 다리가, 그리고 팔이 얼마나 악화되었는지 혹은 호전되었는지 숫자로 보여주는 거예요. 플러스 수치면 당연히 호전, 마이너스 수치면 당연히 악화예요. 그럼 볼까요?”
최사랑의 정보가 먼저 떠올랐다.
[최사랑] [1.7 하락]최사랑은 이번 달 SKED 수치가 1.7 하락했다.
‘하락?’
상현은 조금 놀란 눈이 된다.
현상 유지만 해도 힘든데. 하락이라니. 대체 뭘 하고 다닌 거야. 전자파는 게임도 안 하지 않던가?
그러나 남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이제 상현 씨를 볼까요?”
“……!?”
[유상현] [3.2 하락]상현은 수치가 무려 3.2만큼 하락했다.
역시 기대하지 않길 잘했다. 상현이 속으로 그리 되뇌었다.
‘안 좋은 소식이었나.’
조금이나마 기대했던 자신이 멍청하다 느껴진다.
이런 게 왜 흥미진진하다는 건지. 혹시 전자파는 고통을 즐기는 취향인가.
별생각이 다 요동치며, 속에서 뜨거운 게 울컥했다.
감정 동요가 거의 없는 편인 그가, 이례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겨우 이야기의 시작 지점이라는 걸 알면서도.
머리는 안 그런데, 심장이 성급하게 뛰어댄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송하나가 안심시키려는 듯 상현의 손등을 쓸어내렸다.
상현의 동요를 눈치챈 것이다.
“이 수치는 나이를 먹으면 계속 떨어지는 거예요. 관절처럼 다시 좋아지는 건 없어요. 이게 하락 안 하면 늙는 걸 멈춘 거라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 거였어?
“아…….”
상현은 안도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상승은 불가능한 개념이란 거다.
나이를 먹듯이, 자연스러운 거란다.
뜨거웠던 목구멍이 서서히 식어갔다.
“저희의 목적은 이걸 최~대한 천천~히 떨어뜨리는 거예요. 단! 우린 시체처럼 누워서 인생을 보낼 순 없죠?”
송하나는 동의를 구하듯이 양쪽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여러분이 인생을 알차게 보내면서도 얼마나 천천히 떨어뜨릴 수 있는지. 그 가성비적인 측면을 고려해 보는 거예요.”
한마디로, 인생을 최대한 재밌게 살면서 천천히 죽어보자는 거다.
어찌 보면 모든 개인의 공통된 목표다.
“상현 씨는 캡슐을 바꾸시고, 떨어지는 수치가 플레이 타임 대비 상당히 낮아지셨어요.”
좋은 소식이다.
캡슐을 바꾼 게 단순히 땀을 줄여주는 피상적인 효과만 있던 게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이 되었다는 거다.
“사랑 씨도 이 캡슐에 관심을 가지셔서 하나 주문하셨대요.”
그 말에 옆에 있던 사랑이 고개를 끄덕인다.
“현재 상현 씨는 지금 같은 페이스라면 60대에 오른팔은 일상생활을 못 하게 됩니다.”
“……?”
60대?
뭔가 잘못 들었나?
60대에 일상생활을 못 한다니?
“제가 계속 하락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60대면 굳이 여러분이 아니어도 어디 하나 고장 나는 나이이기도 해요.”
그건 그렇다. 60대면 늙은 나이이긴 했다.
임플란트도 한두 개 했을 수도 있고.
관절이 나갈 수도 있다.
하나, 이렇게 직접적으로 선고를 받으니 또 다른 기분이다.
“만약!”
송하나가 말을 이었다.
“쭉~ 캡슐을 안 쓰신다면, 제 생각엔 80세까지 가능해요.”
20년의 차이.
상현은 스트리밍을 위해 20년을 희생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20년?’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스트리밍을 하지 않고, 죽은듯이 사는 20년과, 스트리밍을 하며 즐겁게 살지만 20년 빨리 한계에 부딪히는 팔.
어떤 걸 택해야 할지. 상현은 잘 안다.
고작 3년짜리 꿈이 좌절됐을 때, 그걸 회복하기 위해 몇 년이 필요했는지, 기억한다.
60살부터 80살까지의 20년과 30살부터 50살까지의 20년은 완전히 가치가 다르다.
몸에서 나오는 호르몬 수치 자체가 다르다.
“전…….”
상현은 간단하게 미리 대답하려 했다.
어차피 고민할 가치도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송하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던 게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한 현상이 하나 있어요.”
애초에 오늘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쉭.
송하나가 손짓하니, 홀로그램이 바뀐다.
“한 달, 1주 주기의 수치에 비하면 물론 미미한 수준이지만. 희한하게…….”
단 3일.
홀로그램에 표기된 건 단 3일간의 정보였다.
“딱 3일. 이 3일간 캡슐 사용하시면서 한 번도 SKED 수치가 조금도 하락한 적이 없으세요.”
“……?”
“그러니까 이렇게 설명드리면 얼마나 이게 신기한 건지 체감되실 거예요.”
송하나는 시계를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이틀간 캡슐을 사용하는 동안. 상현 씨의 시간이 멈췄던 거예요. 늙지도 않은 거라구요. 이건 엄청난 발견이에요.”
“……?”
“그러니까 어쩌면 여러분의 팔, 다리를 낫게 할 수도 있는 힌트를 제가 잡을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타다다다닥.
송하나가 키보드에 뭔가를 두들긴다.
“제가 미국에 있는 관련 연구 기관에 자료를 전송했고. 이쪽에서도 신기한 자료라며 곧바로 착수해 준다고 했어요.”
이메일이 오고 간 자료 등이 화면에 나왔지만, 흐릿하게 뿌얘진 상현의 시야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습기를 머금어 먹먹한 귀에, 설명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문장만이 머리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긍정적.
그의 팔에 대해 듣는 말로는 처음이다.
정말, 될까?
믿어도 되는 걸까?
이번에는 뭔가 다른 거 같은데.
그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번엔 그간 가졌던 헛된 희망들과는 뭔가 다르다고.
오른팔이 떨린다.
아니, 전신이 떨린다.
사랑이 상현의 얼굴을 물끄러미 감상하던 중.
나지막이 물었다.
“……울어요?”
“하품이요.”
상현은 고개를 저으며 빠르게 부정했다.
* * *
이후 상현과 사랑은 1, 2시간가량 정기 검사를 받았다.
캡슐이 보내온 데이터와 실제 데이터의 오차 범위를 계산하는 작업이다.
“캡슐로 받은 정보랑 실제 측정 정보랑 얼마나 오차가 있는지 살펴보는 건데요.”
송하나는 데이터를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역시나 기존 오차 범위 밖으로 나가는 경우는 없네요. 상현 씨는 운동도 꾸준히 해줘서 그런가 엄청 건강하세요.”
여기엔 기본적인 건강 검진도 포함되어 있다.
“상현 씨는 호르몬 수치도 좋고. 사랑 씨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최근 체중이…….”
송하나는 말하다 말고 멈췄다.
당사자의 눈빛이 매우 매섭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하하하. 건강 식단으로 아침을 가볍게 시작해서 하루 신진대사량을 늘려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운동계에 종사했던 상현은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었지만, 그냥 모른척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늘 휠체어에 앉아 있으니 자연스레 살이 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돈도 많으니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다닐 거고.
일전에 한 번 식사했던 경험으로 보자면 고상하고 우아하게 식사하긴 하지만 상당히 먹는 편이었다.
“두 분 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로써 모든 진료는 끝났다.
연구소 밖을 나와보니 중후한 생김새의 세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별 관심 없는 상현조차 아는 차다.
올튜브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 등의 제목으로 자주 나오는 차량이다.
저번에 왔던 커다란 밴과는 다른 차량이다.
“고마워요.”
사랑은 휠체어를 밀어준 상현에게 감사를 표했다. 오늘 그녀는 특이하게 밖에서 대기하던 수행원이 없었는데.
어차피 전동 휠체어라 굳이 대동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상현도 매너상 밀어줬을 뿐이다.
그래도 사랑은 꽤 좋아라 했다.
자기가 혼자 움직이는 것보다 사람이 밀어주는 게 어딘가 안정감이 든다면서.
운전석 문이 열리면서 수행원이 다급하게 다가와 묻는다.
“아가씨. 연락을 왜 안 하셨습니까?”
원래 안쪽으로 모시러 오기로 되어있던 모양이다.
“혼자 갈 수 있다니까.”
사랑은 그렇게 말하더니, 차 쪽으로 쌩하고 가버렸다.
‘음?’
상현은 모순된 발언에 머리를 긁적였으나. 금세 잊었다.
“사랑아!”
쩌렁쩌렁 울리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 때문이다.
체격 좋은 아저씨 하나가 뒷좌석에서 내렸는데.
“아…… 아빠. 오지 말라니까.”
그동안의 기품 있고 어른스럽고, 다가가기 어려워 심지어는 퇴폐적인 느낌마저 났던 여자는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사춘기 소녀가 깃들었다.
“무슨 소리냐? 내가 딸을 보러 온다는데!”
아버지인 모양이다.
“아우 시끄러워. 그리고 왜 이런 요란한 차를…….”
“어디가 요란해? 이거 튜닝도 안 한 그냥 순정 검은색 세단인데? 차를 바꿀까? 자못 남자라면…….”
“됐어.”
“아. 자네가 말로만 듣던 그 아몬드군.”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며 아버지가 아몬드에게 다가왔다.
“아, 예. 안녕하세요.”
“오늘 딸내미 휠체어 밀어주셨구만. 고맙네.”
엄청 부담스러운 느낌.
말로는 고맙다고 하는데, 잡아먹을 듯한 눈빛이다. 내 딸 휠체어는 아무나 못 미는데? 라고 얼굴에 쓰여 있다.
아몬드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아빠.”
무서운 기세의 남성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사랑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부르자 허겁지겁 뒤를 돌아본다.
아마 내가 보던 그 표정은 온데간데없을 거라고, 남자의 뒤통수를 보며 상현은 생각했다.
“아, 아. 알았다. 알았어.”
그는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기고는 손을 내밀었다.
“남자라면. 악수는 하고 헤어져야지.”
“아, 예.”
상현은 공손히 그의 손을 맞잡았다.
혹시나 엄청나게 힘을 주는 거 아닌지 걱정했는데. 딸 눈치가 보여 그런 건 안 한 것 같다.
“아빠……!”
안 그래도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재촉하고 있다.
“으하하하! 그럼 가 보겠네.”
분명 엄청나게 성공한 남자겠지.
누군가에겐 쳐다볼 수도 없는 존재일 터인데.
딸의 말 한마디에 뒤뚱거리며 뛰어가는 뒷모습. 상현은 그게 보기 좋다고 느꼈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가족이 있다는 게…….
“자네도 누가 데리러 온 것 같은데?”
그때 저쪽에서 익숙한 차가 다가온다.
차 문밖으로 그의 친구들이 손을 흔든다.
“아몬드!”
“어이. 견과류~!”
데이트를 잘 마치고 온 건지 둘 다 표정이 좋다.
손을 마주 들며 다가가는 상현의 입가에도 미소가 만연했다. 마치 셋을 거울로 비춰놓은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