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353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71화
26. 활(2)
영혼 상태의 멍한 제시의 머리에 이런 말이 울려 퍼졌다.
‘저게 뭘까.’
당기고 있는 것은 팽팽한 시위, 들고 있는 것은 구부러진 대, 쥐고 있는 것은 살이다.
그래. 활.
저건 활이다.
적을 죽이기 위한 무기다.
이 물건에게 이외의 다른 목적은 없다.
그저 얼마나 더 빠르게, 쉽게 죽일 수 있느냐가 활이 고려할 모든 것이다.
모든 무기들이 그렇다.
극단적으로 효율과 기능을 추구한다.
분명 미(美)적인 가치와는 거리가 멀어야 할 터인데. 그런 것을 일체 고려하지 않았는데.
아름다운 것은 왜인가?
소심줄로 만든 시위, 물소 뿔로 만든 활대, 그것을 잇는 민어 부레풀, 화살 깃에 달리는 새의 깃털.
땅, 물, 하늘.
세상 모든 곳에서 가져온 요소들이 상대를 죽인다는 단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일종의 광기(狂氣).
이것이 심장을 두들기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다.
그가 시위를 당기는 것을 보고 있자면 벅차오르는 것은 왜인가?
영원히 갈고닦은, 극으로 치달아 완성된 존재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제시는 생각했다.
‘같은 거야.’
활의 아름다움과 저 남자의 고고함은 이미 하나다.
평행으로 곧게 당기는 그의 오른손, 딛고 선 두 발의 적절한 어깨너비의 폭, 날 선 눈빛, 그와는 대조적으로 천천히 뛰는 심장, 사자(死者)처럼 멈춘 호흡.
이 모든 것은 목표물의 숨통을 끊기 위해.
숨 막힐 듯 딱딱하게 굳은 시간 속에서, 제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유령의 속삭임보다도 고요하게 놓아지는 활시위를 봤기에.
‘와.’
파공음이 울려 퍼진다.
피유웅──
쏘아진 한 발의 화살은 중력을 찢어내며 곧게 날아간다. 횃불을 머금은 주홍빛이 횡으로 길게 그어진다.
병사의 목젖.
주홍빛의 불꽃이 멈춘 곳이다.
──푸욱!
‘……!’
적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쿵.
느리게 흐르던 시간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간 듯. 쓰러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제시의 입이 떡 벌어졌다.
피융!
또 화살이 날았다.
단 한 번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행위 예술에 견줘도 될 법할 진데. 그 예술 작품은 눈이 깜빡일 틈조차 주지 않은 채 반복되어 이 세상에 현현(顯現)했다.
푹!
적 하나가 다시 쓰러졌다.
“저기다아!”
“적이 활을 들었다!”
적들이 아몬드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는 횃불을 등지고 있었으니, 당연히 잘 보일 터다.
‘피해! 얼른!’
유령이 된 제시의 고요한 고함이 들릴 수는 없다.
아몬드는 미동도 않았다.
그 자리, 그 자세 그대로 아무런 일도 없는 듯.
그는 또 활시위를 매기고 놓는다.
마치 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기계 장치처럼.
피유우웅!
달려오던 적 하나가 날듯이 널브러졌다.
쿵……!
또 활시위를 매기고 놓는다.
또 하나의 적이 쓰러진다.
쿵!
또 하나 더.
쿠웅!
“커헉!”
또 한 명이 더 쓰러진다.
대체 언제 쏜 건지 눈으로 보지도, 귀로 듣지도 못했다.
그 결과물만이 지금 바닥에 나뒹굴 뿐이다. 그리고 시체들의 목엔 약속이나 하듯 정중앙에 화살이 박혀 있다.
순식간.
2초도 채 넘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 안에 병사 일곱이 쓰러졌다.
제시는 자신의 시야 한구석에 떠 있던 메시지를 본다.
[다시 같은 전장에 참가하시겠습니까?]아까는 망설였던 질문에 대한 대답.
지금은 망설이지 않았다.
[예]* * *
둘러봐도 더 이상 적은 없다.
아몬드는 이만 활을 내리며, 얕은 호흡을 내뱉었다.
“후.”
그의 앞엔 수많은 궁병과 창병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더 안 오나?”
-있겠냐고 ㅋㅋㅋ
-님 같으면 옴?
-역시 죽지 않았네
시청자들의 말처럼 적은 시체를 더 충원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와 ㅅㅂ 도랏다 ㄹㅇ
-진짜 내가 뭘 본 거임???
-미쳤다 순식간에 ㄷㄷ
간만에 활로 날뛰는 아몬드를 본 시청자들은 잔뜩 흥분했다.
[수줍은 여포 님이 무려 20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킬당 미션은…… 걸지 않겠습니다아!]-어케 거냐곸ㅋㅋㅋㄹㅇㅋㅋ
-에바지 ㅋㅋ
-ㅇㅈ!
-더 큰 손 오라 해!
“감사합니다. 수포 님. 기왕이면 걸어주세요.”
-무친넘ㅋㅋㅋ
-적당히 죽이고 말해라!
-뻔──뻔
[명장면 님이 무려 10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눈호강 값 내고 감] [시엠처돌이 님이 무려 10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도랏맨…… 와 ㅋㅋㅋㅋㅋ] [제시누 님이 2만 원 후원했습니다!] [아니. 제시 열사님 언급 안 하는 거 실화야? 이 견과류 쉑]이 뒤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후원들.
아몬드가 이번에 보여준 플레이가 꽤나 인상 깊었다는 방증이겠다.
“와. 감사합니다. 명장 님. 시돌이 님.”
-시돌잌ㅋㅋㅋ
-시돌이 웃음벨이넼ㅋㅋ
-오 명장됨ㅋㅋㅋ
“제시누…… 님. 제시는 다시 돌아온다고 했어요. 진짜 죽은 것도 아니잖아요.”
-매정…….
-절대 제시 누님이라고 안 읽어줌ㅋㅋㅋ
-돌아오려나? ㅠ
아몬드는 간단히 후원자들에게 인사한 후 다시 전장으로 눈을 돌렸다.
쓰러져 죽은 자들 중엔 궁수들도 있었다.
“화살 좀 충전할게요.”
그는 쓰러져 있는 궁수들의 시체로 다가가 화살을 챙겼다.
애초에 궁병으로 나왔다면 궁병 특성 때문에 화살 통이 비는 순간 한가득 충전된다만 창병이 활을 들면 당연히 그런 특성 같은 건 없다. 화살을 일일이 주우러 다녀야 한다.
그런 게 불만스러울 수도 있는데. 아몬드는 군말 없이 화살을 담기 시작했다.
그저 활을 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즐거웠다.
‘간만에 실컷 쐈어.’
그의 입꼬리가 아까부터 천장에 걸린 듯 치솟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재밌다. 이거.’
시빌 엠파이어에 큰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자동차도 각 모델별로 손맛이라는 게 있듯, 활도 그 모델에 따라 각기 다른 손맛이 있는데.
국가 대항전에서 한국의 각궁을 써보는 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현실에서도 한 번도 쏴본 적이 없었다.
워낙 귀해서 잘 없기도 하고, 있다고 해도 습도 조절을 못 하면 쉽게 상하는 특성 탓에 함부로 구매해서 형편이 안 좋은 집에 보관하기도 힘들다.
스르륵.
아몬드는 화살 통을 다시 가득 채운 뒤.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의문이 생겼다.
‘근데 궁병들은 화살 다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보다 별로 안 좋을 수도…….’
그렇다.
사실 아몬드가 화살 줍는 행위에 딱히 불만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냥 궁병의 특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시 일꾼 잡으러 가겠습니다.”
* * *
적 지휘관 ‘2_many_moms’도 아몬드와 제시의 침입을 인지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단지 방심했을 뿐이다.
그래 봐야 둘이고, 그것도 창병인데.
일꾼들 캠프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병사 한 분대 정도 보내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
죽었다.
파견했던 병사들이 죄다 죽어 있다.
10명이나 파견했는데!
‘말도 안 돼. 무슨 일이지? 트롤인가?’
그는 모집된 유저들이 트롤링을 했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 트롤링이면 신고감이다.
신고 리포트를 작성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피유웅!
피융!
적 하나가 남아서 활을 쏴대고 있는 게 그의 눈에 들어왔다.
“?”
일꾼들은 마치 그와 짜고 치기라도 하듯 쏘는 것마다 맞아주며 쓰러졌다.
툭.
투욱.
저 궁수가 쏘는 게 다 치명타 판정을 받는 게 아닌 이상, 쏘는 족족 다 한 방에 쓰러질 수는 없다.
그는 일단 일꾼들을 다시 목재 캠프로 들어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러면 그나마 해결될 것이라 여겼으나.
“뭐!?”
쿵.
그는 어이가 없어 책상을 박차며 벌떡 일어났다.
일꾼들은 목재 캠프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이동하는 사이 다 죽은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목재 수급이 안 된다.
“무, 무슨 화살이 연사가 되는 거야!?”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 결과.
이런 경우는 뻔했다.
“이거 핵이잖아. 제기랄.”
적은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캡슐 쪽에서 쓰려면 어지간히 비용이 드는 걸로 아는데.
“망할 중국인.”
적의 검은 머리칼로 미뤄보건대 중국인인 듯하다. 그러면 핵을 쓰는 게 아주 드문 경우도 아니었다. 그들의 문화권에선 이런 짓이 불법으로 인식되지도 않으니까.
게임 끝나고 반드시 핵 사용자로 신고하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그건 사후처리일 뿐이다.
지금은 게임 진행 중이다.
게임은 이겨야 했다.
“어쩌지…….”
방법은 하나.
“어쩌긴.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다.”
그는 적 본진 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거기에 모든 자원을 투자할 생각이다.
[현장에서 진 치고 공성병기 제작 들어가라!]그는 기마대와 함께 파견된 공병들에게 공성병기 제작을 명령했다.
기사가 아무리 강해도 그래 봐야 인간이니. 적의 성벽을 부술 수는 없었다. 게임을 완전히 끝내기 위해선 공성병기가 필수다.
그리고, 공성병기는 목재가 많이 든다.
“……?”
1~2개 정도 만들기 시작했을 뿐인데. 벌써 목재가 없다.
아까부터 목재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견제당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은 아예 캐고 있지 않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씨…… 씨발…….”
적의 함락을 목전에 두고.
그는 큰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기마대 전군 회군]병력을 후퇴시키기로 한다.
* * *
“사…… 살았어!? 살았다아아아!”
지휘관, 이밥만은 생존의 기쁨을 주체못하고 두 팔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적의 기마대가 극적으로 회군한 것이다.
“와 진짜 거의 끝날 뻔했는데!”
적은 아마 몰랐겠지만, 그는 슬슬 방어할 여력이 떨어져 가고 있던 참이다.
그런데 갑자기 군을 철수시켰다.
“미쳤다. 미쳤어.”
그는 이 기적 같은 일의 원인이 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특수 임무 상여금] [27 골드]현재까지 아몬드 앞으로 쌓인 상여금만 봐도 얼마나 활약했는지가 짐작이 된다.
일꾼 하나당 1골드를 약속했었는데.
현재 27골드가 쌓였다.
그는 무려 27명의 일꾼을 잡아낸 것이다.
일꾼의 총 머릿수가 5~60명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는 적의 일꾼 중 절반을 도륙한 것이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따라온 지원병도 전부 죽였다.
“와…… 진짜 미친 사람이다. 미친 사람. 적진을 다 뒤집어놓으셨다! 전설이다!”
한참 기뻐하던 이밥만.
“이럴 때가 아니지.”
그는 정신을 차리며 다시 게임에 집중한다. 이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차례다.
생산 파트를 다시 풀가동시키고 무너졌던 성과 마을을 복구시켜야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저 창병.
저 창병을 이제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 봐야 했다.
“이젠 죽어도 상관은 없지만…….”
어차피 저 창병은 할 일을 충분히 다해줬다. 굳이 저기서 더 뭘 할 필요는 없었다만.
“베스트는 오히려 죽는 거야. 죽고 다시 우리 전장에 참가하는 거지.”
그는 아몬드가 죽고 다시 참가해서 활약해 주길 바랐다.
어차피 저 위치에서 살아나오기란 불가능했으며,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냥 죽고 다시 부활해서 더 높은 페이를 받으며 전장에서 활동하면 된다.
[할 거 다 했으니 죽고 다시 부활하는 게 나을 듯. 제 전장 다시 참여해 주시면 또 특수 임무 빵빵하게 드림. 계약금도 5배로 드림.]메시지를 보낸 후 이밥만은 아몬드 쪽에 신경을 껐다. 아몬드가 이 제안을 수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지금 중요한 건 발전이야 발전.”
그는 아몬드에겐 이만 신경을 끄고.
파괴된 본진을 복구하고, 자신의 기마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역공을 준비하는 것이다.
기마병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돌진할 듯 도열한 늠름한 기마대.
이밥만은 음미하듯 잠시 그들을 감상한다.
[wackjassey]익숙한 얼굴도 보였으나, 아이디가 안 보이는 이밥만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눈치채지 못한 게 하나 더 있는데.
그의 바람과는 별개로 아몬드는 죽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수줍은 여포 님이 미션을 등록하셨습니다!] [한 번도 안 죽고 승리하면 50만 원!]-킬당은 못 걸고 ㅋㅋㅋ 안 죽고 승리 ㅋㅋㅋ
-이 새끼 수포 안 했네 수학 개잘하네 ㅋㅋㅋ
-야비하다! 수포자!
시빌 엠파이어 시작 후 첫 미션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