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356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74화
27. 반격(2)
휘이이잉.
바람이 부는 들판 위.
아몬드는 바람 소리보다도 더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하아…… 하아…….”
게임 속에서 움직인 것에 불과하지만, 어찌 됐든 정신력은 소모된다.
정신의 소모도 극단적으로 이뤄지면 육신에 영향이 간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 있음에도 땀을 뻘뻘 흘리고 몸을 덜덜 떠는 것과 같다.
‘무리했나.’
릴 난트전 이후로 이렇게까지 집중했던 적은 없었는데.
활을 들고 기사들과 근접전을 벌이는 건 생각 이상으로 힘든 일이었다.
-ㄷㄷ 지렸다
-이걸 다 죽였네
-장난없다 ㄷㄷ
-몇 명 죽임? 10명은 죽인 거 같은데
-이렇게 죽여도 저렇게 많이 남음 ㅠㅠ
기마병 하나당 1골드를 주는데 13골드를 얻었다.
게임 시작부터 지금까지 열셋이나 죽인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적은 충분히 많이 남아 있다.
‘또 오는구나.’
두두두두!
들판을 짓밟으며 달려오는 기마대가 보인다.
이번엔 10명이다.
아몬드는 갑옷을 해제하기 시작했다.
쿵. 쿠웅.
-천재 궁수 스트리퍼?
-이 견과류는 무료로……!
-제대로 싸우려는 건가
‘중갑 때문에 무거워.’
아까 전 혈투 때 느꼈다.
기사들이 입는 중갑은 몸을 제대로 보호해 주긴 하지만, 무게도 상당했다.
날랜 움직임을 제대로 살리려면 얇은 갑옷이 더 유리했다.
이제 갑옷도 없고, 화살도 없다.
재활용할까 생각도 해봤으나, 이미 상대 몸에 박힌 것들은 거의 다 휘거나 부러져 쓸 수가 없게 됐다.
결국 근처에 떨어진 검 하나를 집어 든다.
창도 아니고 검이라…….
이건 기마병에게 단 하나의 이점도 없는 세팅 아닌가?
아몬드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오 와중에 좋은 거 고름 ㅋㅋ
-때깔이 남다르네 검이
-라스트 사무라이 ㅋㅋㅋ 아몬두상
그와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고른 검이, 꽤 좋은 녀석이었던 게 아마 유일한 행운이었다.
“히랴아아!”
선두로 달려오는 기마병 하나가 기합을 넣으며 창을 찔러넣는다.
카앙!
그는 검을 휘둘러 창을 흘려냈다.
그다음 기마병이 작살처럼 밑으로 창을 찔러넣는다.
“하압!”
카앙!
검을 우로 휘둘러 다시 피해낸다.
그러나, 말발굽에 치여 굴러버리는 아몬드.
──퍼억!
다그닥! 다그닥!
한 번 치이니 답이 없었다.
안 그래도 1대 다수라 불리한 상황. 바닥에 굴러버리기까지 하니,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희망을 보는 게 되려 이상하다.
푹!
푹!
기사들의 창이 들판을 들쑤신다.
-ㄷㄷ
-끝났네 ㅠㅠ
-전설의 끄튜ㅠㅠ
푸욱! 푹!
열심히 구르며 피해봤으나.
가죽 갑옷이 찢어발겨지고, 옆구리와 팔뚝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점점 피하는 속도도 느려진다.
분명 끝난 것 같았다.
그런데 왜일까?
아몬드의 눈은 어느 때보다도 빛나고 있었다.
온전히 이 상황을 돌파하는 데에만 전념한 눈.
이미 끝났다든가, 희망이 있다든가 없다든가…… 따위의 무의미한 건 생각하지 않았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 생존해 내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러다가 안 되면 그때 가서 절망을 느껴도 늦지 않다.
‘안 끝났어.’
모든 화살을 10점을 맞혔다 해도 양궁은 끝나지 않으며. 모두 0점을 쏜다고 해도 양궁은 끝나지 않는다.
상대의 점수가 나와야만 끝이 난다.
혹여 수학적으로, 물리적으로 역전이 불가능한 상황이더라도.
양궁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쏜다.
오늘 선 이 자리가, 마지막 무대가 아니니까.
다음을 위해서라도 최선의 활을 쏜다.
“흡!”
아몬드가 한껏 호흡을 머금는다.
타악!
그가 허리를 활처럼 튕긴다.
후욱!
반동으로 튕겨 나간 몸이 날았다.
들판을 데굴데굴 구른 후, 수많은 말들의 다리 사이로 착지하는 데 성공한다.
그는 마지막 힘을 짜냈다.
“으……!”
딛고 앉은 바닥이 움푹 패인다.
빠각──
그 힘은 그대로 상체로 전달됐다. 허리가 회전하며 그 힘은 다시 검으로 휘둘러졌다.
──촤아아아아악!
하단으로 깔끔하게 그어진 혈선.
수많은 말들의 다리가 절단됐다.
이히이잉……!
말들의 비명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지더니. 철갑의 기사들이 비처럼 떨어졌다.
쿠웅! 쿵!
쿠궁!
-미친
-헐
-ㄷㄷ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사들의 말 열 필 중 다섯이 쓰러졌다.
난장판이 되었다.
“이, 이게 무슨…….”
“뭐야!”
완벽한 힘의 전달 덕도 있지만, 조금 싸구려 칼이었다면 말 다리 서너 개 자르고 부러졌을 것인데.
‘멀쩡하네.’
그의 것은 아직 멀쩡하다.
아몬드는 자신의 체력도 확인한다.
[체력 19%]체력만큼은 멀쩡하지 않았다.
‘한 대도 맞으면 안 된다.’
이제 제대로 된 타격은 한 대라도 허용하면 안 된다.
“하아. 이 자식이!”
떨어진 기사 중 하나가 검을 휘둘렀다.
아몬드도 휘둘렀다.
키이이잉!
검과 검이 맞물리며, 미끄러졌다.
종착지는 목이었다.
촤악!
기사의 목이 떨어졌다.
아몬드는 광대뼈에 옅은 상처만 패였을 뿐이다.
하나 쓰러뜨린 건 겨우 한 명.
‘뒤!’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그다음은 뒤였다.
이번엔 보고 휘두를 시간 없다.
그는 보지도 않은 채 감각에 의존해 휘둘렀다.
촤아악!
“!”
운이 좋았다. 목이 정확히 베였다.
그러나 여기서 안심할 수 없다.
이번엔 우측, 좌측 동시에 온다.
가볍게 고개를 뒤로 젖힌다.
카강!
적들의 두 검에서 불꽃이 튀었다.
저들끼리 서로 부딪친 것이다.
그 틈에 아몬드는 상체를 한껏 숙이며 하단을 휘둘러 베었다.
카강!
놈들의 보호 철갑에 맞아 체력을 깎을 수는 없었지만, 넘어뜨릴 순 있었다.
기사 둘은 발도, 손도 꼬여 넘어지고 만다.
아몬드는 그사이에 하나라도 끝장내려 검을 밑으로 찔러넣었으나.
다른 적의 검격이 파고든다.
카가강……!
검면이 마찰하며 요동친다.
이번 적은 예리하고 능숙했다. 놈의 칼날은 철로 만든 뱀 같았다.
키잉! 카앙!
몇 번의 합이 더 오갔으나.
스르륵!
어느새 아몬드의 목이 그어지고 있다.
‘아.’
여기까지 같았다.
슬슬 넘어졌던 기사들도 일어날 텐데.
미션은 실패 같았다.
‘정신 차려.’
그러나, 와중에도 아몬드는 정신을 붙잡았다.
목이 완전히 그어지지 않으면 반격할 수도 있으리라.
천재지변이 일어난다면 어쩔 텐가?
그런 기회가 왔을 때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놓친다면, 자신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
희번뜩거리는 뭔가가 날아와 아몬드의 턱과 상대의 검날을 같이 쳐냈다.
아몬드는 뒤로 뒤집어지고, 상대의 검은…… 부러졌다.
‘부러져……?’
검이 부러져 버리다니.
아몬드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다시 몸을 튕겨 일어났다. 이게 천재지변이든 뭐든 어찌 됐든 정말로 다시 기회가 왔고.
‘이걸 살다니.’
그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채로 뻗어 나간 검이 아까의 숙련자의 목을 찔렀다.
푸욱!
그런데, 그의 목엔 이미 하나의 검이 더 찔러져 있었다.
‘이 검은 뭐야.’
기다랗고 아름다운 검.
파도가 치는 듯한 무늬를 타고 올라가 보니, 기사였다.
번쩍이는 은빛의 갑옷, 휘날리는 녹색의 휘장, 늘어진 적색의 머리칼을 가진 기사.
[wackjassey]제시다.
이히이잉……!
투레질하는 멋들어진 말 위에 올라탄 기사가 되어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는 아무런 인사말도 없이 바로 손을 내밀며 외쳤다.
“뭐 해? 타!”
씨익.
아몬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역시.’
역시나 예상치 못한 기회는 온다.
준비된 자에게만.
타악─
제시의 손을 맞잡으며 몸을 날렸다.
“히랴아!”
멈춰 있던 풍경이 순식간에 지나가기 시작했다.
* * *
제시의 재등장에 채팅창의 스크롤이 마구 올라갔다.
-제시 누님 ㅠㅠ
-헐 진짜 돌아왔어 ㄷㄷ
-페이스 아이디 성능 보소 ㅋㅋㅋ 전쟁통 한복판에 다시 오게 만드러??
-이 언니 뭔데 내 심장을 찌르고 난리
-두둥! 레이나 최고 라이벌 등장
그녀의 뒤에 붙어 함께 말을 타고 가고 있는 아몬드조차 현재 상황이 잘 믿기지 않았다.
‘혼자 왔나?’
제시는 다른 기마병들과 같이 온 게 아니라, 혼자서 이 거리를 달려온 듯했고.
장비도 아까 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최고급으로만 맞춰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제시가 하수라는 느낌은 없었지만, 딱히 게임의 고인물 같다 느끼지도 않았던 아몬드는 혼란스러웠다.
그야 그녀는 자신과 같은 열에 서 있던 일개 창병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마치 창병은 전생일 뿐이라는 듯.
2회차의 제시는 어엿한 왕실 기사 같은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다.
그녀는 능숙하게 말을 몰아 숲을 돌파했고.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
다그닥! 다그닥!
순식간에 몇 그루의 나무를 스쳐 가는 건지. 꼭 녹색 파도를 거슬러 헤엄쳐 가는 기분이었다.
적들은 추적 중에 거의 다 도태되었고.
“저기다아! 따라잡아아!”
“이거 놓치면 끝이다!”
적들 중 제시만큼 날래게 말을 몰 수 있는 자들은 여섯뿐이었다.
그중엔 그들의 수장 격인 베테랑 기사도 포함이었다.
“날 따르라아아아!”
항상 전투에서 뒤로 물러나 있던 그가 직접 전투에 참여한 것이다.
이에 제시가 투덜대듯 중얼거린다.
“이상하네. 포기할 만도 한데. 어지간히 신경 거슬렸나 봐.”
뒤돌아본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몬드의 놀란 표정이 웃긴 모양이다.
“놀랐어? 장비 때문에?”
“아, 응…….”
-ㄹㅇㅋㅋ
-힘순찐이었던거냐고!
-제시가 스캡이었넼ㅋㅋ
“아깐 스캡질 하던 거야. 그게 뭔지 설명할 시간은 없으니 네 시청자들한테 물어봐.”
-시엠처돌이님! 나와주세요!
-후원유도 ㄷㄷ
-맞다 제시님 방송하는 거 알고 있었징ㅋㅋㅋ
-엌ㅋㅋ
-시돌이 제시한테도 소환당하네. 월클이여 ㅋㅋ
[시엠처돌이 님이 1천 원 후원했습니다!] [스캡은 가장 싼 장비로 와서 최단기로 효율만 뽑거나 대기 시간을 떼우는 거예요!]스캡은 스캐빈저(Scavneger,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동물)의 약자이며.
고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적은 페이를 받고 전쟁에 참가하는 자들을 말한다.
대신 이들은 최소한의 장비로 참가하여 가성비를 챙긴다.
베테랑들의 페이가 워낙 높고, 대기 시간도 길기 때문에 생긴 현상인데.
이는 사실 생태계를 망치는 짓이라 별로 칭찬받을 만한 행동은 아니다.
그러나 이 게임이 직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의 제시는 최소한의 장비라는 말과는 전혀 맞지 않는 차림새였다.
‘지금 이게 원래의 풀세트구나.’
그러니까, 제시는 1회차는 스캡이었으나 현재는 아니다.
-진심모드 제시 ㄷㄷ
-어쩐지 창 던지는 건 못해도 싸우는 건 잘하더라
-제시 고인물이었구나 와
그러고 보니 제시가 말을 탄 기사를 상대로 너무 오래 버티고 있었던 게 기억났다.
그때부터 뭔가 실력이 다르단 건 알았어야 했으나.
아몬드의 실력이 더 뛰어난 바람에 시청자들 대부분은 눈치채지 못했다.
“자. 선물.”
척.
그녀가 뭔가를 내민다.
“꽃다발이야.”
슥.
제시가 내민 물건은 꽃이 아닌 화살 다발이었다.
아몬드가 화살이 없을 걸 고려해서 가져온 것이다.
“고백하는 건 아니고, 너 쏘라고.”
“지금은 못 쓸 것 같은데.”
그러나 아몬드는 그걸 받아도 쓸 수가 없었다.
뒤에 탔는지라 등자(鐙子, 말을 타고 앉아 두 발로 디디게 되어 있는 물건)에 발을 걸 수 없는 상태다.
등자에 발도 얹지 않은 채로, 심지어 뒤로 돌아서 쏜다는 건 아무리 아몬드라도 어불성설이다. 아마 거의 다 빗나가서 화살만 아까워질 터다.
제시는 다 안다는 듯 끄덕였다.
“응. 그냥 잘 넣어놔. 이제 곧 쏘게 될 테니까.”
“……?”
그녀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숲을 다 지나서, 평야로 나온 순간.
‘어…… 아군.’
두두두두두……!
아군의 깃발 여럿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먼지구름 속에서 얼핏 보기에도 규모가 5~60은 되어 보이는 기마대.
-이밥만의 유쾌한 반란ㅋㅋㅋ
-어이어이 시작된 거냐구우!
-캬ㅋㅋㅋ
우리 지휘관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기마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점점 거리가 가까워졌다.
“히랴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아아!!!”
그들과 약 200미터 남짓 남겨둔 시점.
제시는 다시 말을 뒤로 돌렸다.
이히이잉……!
상황이 바뀌었다.
도망치던 제시와 아몬드는 이제 아군의 가장 선봉이 된 셈이다.
제시의 긴 손가락이 가리킨다. 저들을 쫓아오던 여섯 명의 기사들을.
“누구 말이 제일 마음에 들어?”
아몬드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베테랑 기사를 가리켰다.
“저거.”
“오케이.”
히랴아아!
제시는 다시 적진을 향해 역주행을 시작했다.
-ㅋㅋㅋㅋㅋ커엽
-응애 나 아가몬드! 저거! 사줘!
-바로 말하는 거 뭐얔ㅋㅋ
-제시 누님 걸크러시 ㄷㄷ해
-겁나 멋있네
-말 잘 사주는 예쁜 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