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36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36화
14. 게임 전환(1)
에밀리아의 눈.
한여름의 호수처럼 반짝이는 눈. 그 위로 하얀 눈송이가 휘날린다.
이제 슬슬 겨울인 셈이다.
그 칼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아몬드는 시리도록 차가운 철갑옷을 차려입고 그녀의 앞에 섰다.
철컥.
그가 무릎을 꿇으며 서약을 위한 자세를 취한다.
두 손으로 받쳐 든 검을 위로 높게 치켜든 채, 둘의 시선이 맞닿는다.
눈을 마주치자, 에밀리아는 그간 보여준 적이 없던 가장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대를 나의 기사로 임명합니다.”
* * *
따스한 햇빛.
부드러운 바람.
녹음을 수놓은 오색빛깔의 꽃.
아무래도 완연한 봄인 듯했다. 기사 서약을 맺은 게 겨울이었으니. 시간이 조금 흐른 셈이다.
“갑자기 봄으로 왔네요?”
아몬드도 이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시청자들과 소통을 시작했다.
-시간 스킵됐나 봄.
-오오오
-이제 엔딩인가?
-에밀리아 너무 이쁘더라 웃는거…….
-에밀리아 누나ㅠㅠㅠ
-근데 이제 뭐 해야 함?
뭘 해야 할까.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아몬드는 일단 자신의 차림새에 주목했다.
“옷이 바뀌었습니다. 조금 더 고급스러워진 것 같은데…….”
용병 시절에 입던 평상복과는 차원이 다른 질감의 예복이었다. 귀족이 되긴 한 건가?
두둥?
익숙한 북소리가 들리며, 그에게 임무가 주어진다.
[기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라!]아직 기사가 된 게 아니었단 말인가? 아몬드는 의아한 얼굴로 하늘에 떠오른 그 텍스트를 쳐다봤다.
상황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시간이 또 훌쩍 지난 모양이니까.
“아몬드 님!”
멀리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러다 경합에 늦겠습니다!”
웬 어린 남자아이였다. 기사들에게 하나씩 있다는 견습인 듯했다.
하지만 아몬드는 아직 정식 기사가 아닌데 이런 녀석이 왜 붙어 있는지 의문이다.
“무슨 경합?”
“예? 혹시 어제 양귀비를 피우셨습니까!?”
“……아니다.”
“그럼 와인통에 빠졌다가 나오셨는지요? 아몬드 경의 기사 신분에 정당성을 두고 시비가 가려지는 날이 오늘이지 않습니까!”
“그렇군.”
“그렇군이 아니라, 에밀리아 영애님이 아신다면 대노하실 겁니다! 어서…….”
“내가 알면 뭐가 어쨌다는 거니?”
뒤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에밀리아였다.
“히이익…… 아가씨…….”
“아몬드 경.”
에밀리아는 시종을 지나쳐 곧바로 아몬드에게 다가왔다.
아몬드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분명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전보다 더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쪽.
-와ㅋㅋㅋㅋ
-시작부터 엄청난 포상!
-난 이제 소원이 없어……
-이제 킹덤을 버려도 좋아…….
에밀리아가 입을 맞춘다.
상현은 당황했으나, 아몬드는 그렇지 않았다.
이미 이런 사이가 된 지 오래인 듯이.
‘하긴 이미 성에서 7일 동안 지냈을 때부터 이러긴 했겠지.’
아몬드의 입장에선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리라.
“이번 경합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우리 미래도 어두워진다는 거 알고 있지?”
“물론.”
“잘할 거라고 믿어.”
“고마워.”
대체 기사가 되기 위한 경합이 뭔지는 차치하고.
게임 같은 거 잘 모르는 상현이 보더라도 이게 거의 엔딩 파트라는 건 대충 직감이 되었다.
에밀리아와 맺어지는 형식의 결말인 셈이다.
지금이 아마 그 결말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일 거다.
“이제 가죠.”
에밀리아는 아몬드의 손을 끌어 잡고, 어딘가로 걸었다.
* * *
도착한 곳은 검투사들이 경기를 할 법한 원형 경기장이었다.
‘설마 기사한테 검투를 시키나?’
결투를 연상시키는 경합이란 말, 거기에 이런 경기장을 보니 정말 검투라도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됐다.
“오셨는가?”
흥.
보자마자 콧김을 내뿜는 꼬장꼬장하게 생긴 귀족 하나가 눈을 아래로 부라리면서 툭 내뱉었다.
“잔네렛 가문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자를 기사로 키운다는 건지 알 수 없으나. 기사라는 이름은 그리 가볍지 못하다네.”
그는 말려 올라간 자신의 콧수염을 매만지며 아몬드를 훈계했다. 마치 아몬드가 뭔가를 잘못하기라도 한 것처럼.
“명예로운 이름을 이어받은 게 아니라면, 반드시 증명해 내야 하지.”
“아몬드는 증명이라면 수도 없이 해냈어요. 탈로란트의 성을 홀로 전복시키고, 거대한 괴물도 홀로 잡아냈습니다.”
뒤쪽에서 에밀리아가 반박했다.
“흥. 그런 말뿐인 허황된 소문이 어찌 증명이란 말인고?”
“그럼 백작님의 명예로운 이름은 말뿐이 아니라, 뭐가 보이는 성과라도 있습니까?”
“뭐야?! 이보게, 에밀리아!”
꼬장한 노인이 성을 내자, 뒤쪽에서 다른 귀족들이 말린다.
하나같이 고위 귀족들로 보인다.
다른 루트에서는 꽤 익숙한 얼굴들이기에, 시청자들이 한마디씩 한다.
-알베르토 쉑…….
-포브스 선정 모가지 따고 싶은 NPC 1위에 당당하게 선정된 알베르토!
-ㅋㅋㅋㅋㅋㅋ 콧수염 개극혐
-옆에 붙은 턱수염도 줘패야 함.
아몬드는 피식 웃으며 경기장으로 몸을 돌렸다.
“에밀리아. 걱정 마. 이 경합도 어차피 내가 제안했던 거니까.”
에밀리아는 아몬드의 등 뒤에서 다가가 손을 얹었다.
“……걱정은 안 해. 무시당하는 게 싫을 뿐이야.”
“무시당하지도 않을 거야. 오늘부터.”
투정 섞인 응원을 뒤로하고, 아몬드는 경기장에 섰다.
“우와아아아!”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들려온다.
그를 응원하기 위해서 몰려든 영지민들이다. 이것만 봐도 영지 내에서의 아몬드의 입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몬드는 그 환호성에 잠시 감사를 표하고, 심사석의 귀족들에게 돌아섰다.
“그래서 준비한 게 뭡니까?”
콧수염 귀족, 알베르토가 기다렸다는 듯이 클클거리며 대답했다.
“예로부터 이런 말이 있네. 진정한 기사는 홀로 트롤도 상대해 낸다고.”
트롤?
아몬드가 잠시 트롤이라는 존재를 머리에서 되뇌는 순간.
촤르르릉……!
철창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쿵……
“진짜 트롤이 온다고?”
“말도 안 돼.”
“너무 위험한 거 아냐?”
“듣기로 아몬드 경은 활만 쓰는데.”
“활로는 트롤을 잡지 못하잖아!”
관중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경기장을 뒤덮었으나, 그 소리마저 꿰뚫는 괴성이 울려 퍼졌다.
“끄어어어어어어어!!!”
쿵…….
다시 한번 느껴지는 땅의 진동.
드르륵.
거대한 나무 몽둥이를 질질 끌며 나타난 거구의 살덩이.
그건 진짜 살아 움직이는 트롤이었다.
“자! 상대해 보게! 네가 진정한 기사라면!”
콧수염 귀족 알베르토는 그렇게 외치고는 저 멀리로 얼른 사라져 버렸다.
“본인은 진정한 기사가 아닌가 보네요.”
상현이 한마디 중얼거린다.
-ㄹㅇㅋㅋ
-ㅋㅋㅋㅋㅋ
-줄행랑 실화냐?
-거의 400미터는 떨어져 있었을 텐데ㅋㅋㅋ 그마저도 무서워서 도망가네
-전력 질주 ㅋㅋㅋ
귀족들이 전부 물러나고.
경기장엔 트롤의 위험한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마저 크게 들릴 정도의 적막이다.
-와씨, 트롤 활로 잡을 수 있나?
-계속 재생해서…… 활 같은 걸로는 안 되고 잘라내야 함.
-순식간에 많은 피해를 줘야 해서 철퇴 같은 걸로 아예 다져 버려야 함.
-신체 부위를 많이 잘라내면, 재생력 떨어져서 죽음!
잘라내는 무기에 약한 몬스터다.
아몬드는 채팅을 곁눈질하며 탐색하듯이 돌기 시작한다.
“크르르…….”
트롤도 아몬드를 곧장 공격할 생각은 없는지, 주변을 서성이는 아몬드를 노려보기만 한다.
-언제 쏘려나?
-글쎄.
-쏜다고 되냐?
-이번만큼은 칼로 썰자!
-목을 아예 잘라내야 함.
그 순간.
기리릭-
드로우와 릴리즈가 거의 한 호흡에 진행됐고.
타앙!!
순식간에 적막을 찢으며 날아가는 화살.
퍼억!
트롤의 목에 적중했다.
아몬드는 이미 끝났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
-뭐여.
-트롤 저걸로 안 죽…… 엥?
쿠웅!
트롤의 시체가 육중한 소리로 쓰러진다.
돌바닥이 무참히 무너질 정도의 충격.
“!”
더 충격적인 건, 그런 트롤이 단 한 방에 끝장났다는 것이다.
-아, 시발 맞다!
-퍼펙트샷!
-퍼펙트샷 판정ㅋㅋㅋㅋ
-트롤도 예외 없구요~
-ㅋㅋㅋㅋㅋ재생 왜 함? 어차피 한 방인데!
아몬드의 장기인 퍼펙트샷이었다.
급소의 정중앙에 단 한 번의 시도로 꽂아 넣으면, 어떤 대상이든 즉사해 버리는.
당연하게도 ‘어떤 대상’이라는 말엔 트롤도 포함이었다.
“우아아아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관중석 곳곳에서 쏟아졌다.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
“활의 기사다!”
“에밀리아 만세! 아몬드 만세!”
트롤이 괴성을 지를 때만 해도 웃고 있던 콧수염 귀족 알베르토. 그의 표정은 지금 처참하게 구겨져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누군가 약을 탄 것이다!”
충격으로 머리가 돌아버린 것인지, 자신들이 데려온 트롤에 뭔가 잘못된 게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당장 달려가서 부검해 보라!
그는 자신의 수하들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으나.
아무도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트롤은 죽었다. 만약 처음으로 달려가서 그걸 확인한다면 그자도 트롤과 같은 꼴이 날지도 모른다.
“뭣들 하…….”
“이미 끝났어요.”
에밀리아가 그를 막아섰다.
“괜한 목숨을 하나 더 축내려는 건가요?”
“…….”
그사이 아몬드가 에밀리아에게 돌아왔다.
“기사 작위는 유지한 거로 생각하겠습니다.”
아몬드는 위협적인 어조로 그렇게만 말한 후, 에밀리아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영지민들은 그런 그들을 두 팔을 벌려 환호했다.
알베르토와 그 외 검증을 위해 나섰던 귀족들은 멍하니 그 둘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 뒷모습은 어느새, 하얀 웨딩 드레스와 턱시도로 바뀌었다.
관중들의 환호는 하객들의 축하로 바뀌었다.
삭막한 경기장의 바위들은 오색 빛의 꽃다발이 되었고.
교회의 합창단이 축하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THE END
여섯 글자가 푸른 하늘 위에 새겨지며, 엔딩 크레딧과 함께 테마곡이 흘러나왔다.
킹덤에서 아몬드의 삶이 한 번 끝난 것이다.
-오오오.
-헐. 결혼한 거야?
-와……
-이게 엔딩이구나.
-커플은 지옥에나 가라구!
천천히 올라오는 엔딩 크레딧을, 상현은 잠시 멍하니 보고 있다.
‘끝…… 났구나.’
누구보다 빠른 엔딩 루트를 찾아냈지만. 상현에게 있어서 이 게임이 짧진 않았다.
장장 1주일에 걸쳐서 했던 게임이고. 첫 가상현실 게임이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을 바꿔준 게임.
‘잘 가.’
그는 또 다른 세계의 아몬드에게 천천히 손을 흔든다.
그 아몬드는 아직 상현과의 연결 반응이 남아 있었는지.
어색한 몸짓으로 손을 흔들었고.
그게 꼭 마주 인사하는 것만 같았다.
상현은 뭔지 모를 감정으로, 그 장면을 한참 보고 있었다.
꽤 시간이 지나고서야.
다시 시청자들 쪽으로 돌아선 상현.
“자. 여러분. 킹덤이 끝났습니다.”
그는 씩 웃으며 준비해 온 멘트를 뱉었다.
“다음 게임 갈게요.”
-오오오오!
-진짜냐고!
-새로운 게임 하는 거야!?
-와 ㅋㅋㅋㅋ
-개굳
-릴 해줘! 릴! 릴! 릴!
-남자라면 두근두근 편의점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