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37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97화
34. 내 직업(3)
“나오세요! 주혁 씨! 지아 씨!”
사회자의 재촉에 주혁이 먼저 일어났다.
“가자.”
“……아, 응.”
지아는 당황스러워 보였다. 오늘 소개할 걸 알고 꾸미고 왔다고까지한 주제에. 막상 올라가려니 무서운가 보다.
주혁은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얼른.”
지아는 조심스레 그의 손을 잡고, 둘은 천천히 2층에 마련된 무대로 올라섰다.
무대라고 하기엔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어쨌거나 원래 바닥보다 한 단이 더 높아 확실히 눈에 띄어버리는 곳.
그곳에 올라서니 갑자기 얼굴이 화끈해지면서, 머리가 새하얘졌다.
‘……!’
지아는 무대라는 곳에 아예 처음 올라와 봤다. 하다못해 스태프나 팬으로서 불려 나간 경험도 없었다. 그냥 이런 공간에 올라설 기회가 그녀에겐 없었다.
‘많아.’
그녀는 여기에 모인 100명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무대 규모로 따지자면 100명은 아주 적은 숫자지만, 그녀에겐 많다. 10명만 돼도 그녀는 많다고 했을 것이다.
‘너무 많아.’
그녀는 많은 시선을 받는 것에 익숙지 않았다.
당돌해 보이며 할 말 다 하는 듯한 성격과는 별개로, 모르는 사람 2~3명만 쳐다봐도 움찔하게 되는 게 지아다. 그런데 지금은 100명이다.
머리가 핑 돈다. 조금 어지러울 정도로.
그러던 중.
‘어?’
우아아아아.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와……! 예쁘다!”
“서지아! 서지아!”
“저분이 땅콩인가요!?”
어지럼증에 파르르 떨리던 지아의 눈이 다시 번쩍 떠졌다.
‘다 나한테 하는 말이야?’
믿기지가 않았다.
저 많은 사람들이 날 보고 좋아한다니.
“지아 누나! 나 죽어어어!”
“언니. 존예에요!”
“오우오오오오!”
예쁘다니.
‘나 별로 안 예쁜데…….’
지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늘 그녀에게 또 예쁘다고 말해주던 사람이 생각나서.
자연스러운 웃음이 배어나자 창백했던 그녀의 얼굴에 더 활기가 돌았다.
뿌예졌던 머릿속의 안개가 조금씩 흩어졌다. 시야도 다시 넓어졌다.
지아가 안정된 걸 깨달은 걸까? 사회자가 자연스레 끼어들어 질문했다.
“이야. 지아 씨! 인기가 많은데요? 오늘 올라간 영상들이 다 인기 영상이라 그런 걸까요?”
“아…… 그런가 봐요.”
지아는 쑥스러움에 말끝을 흐렸다.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모습에 팬들이 마구 소리를 질러줬다.
“예쁘다아아!!”
“와아아! 목소리 여신!”
남자들의 함성에 사회자가 하하 웃는다.
“와. 여성분이 더 인기가 많네요. 이쪽 매니저분은 왜 환호 안 해줘요?”
주혁에게 환호가 덜한 것은 주혁은 이미 몇 번 방송으로 노출됐었기 때문이었지만. 한 시청자가 손을 들고 장난스레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이 저 목 쳐서요!”
전광판에 박힌 채팅창의 스크롤이 마구 올라갔다.
-ㅋㅋㅋㅋㅋㅋㅁㅊ
-도라이쉑ㅋㅋㅋ
-지금도 쳐버려라 호두야!
-밴(물리) 가능?
사회자는 능청스럽게 그 말을 넘겼다.
“목을요!? 근데 어떻게 여기 계세요! 듀라한이세요!?”
-듀라한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
-좀 치네?
와하하하.
현장의 사람들도 마구 웃었다.
“아. 여튼 매니저분은 업보가 많으시구나. 알겠습니다. 직업상 어쩔 수 없죠.”
사회자는 지아와 주혁에게 아몬드와 일하게 된 간단한 경위에 대해서 물었고.
둘은 있는 그대로 대답해 줬다. 그리고 주혁의 이야기가 나올 때 사회자는 이런 질문을 했다.
“이야. 아성 다니다가 갑자기 매니저……를 하는 건 쉬운 결정은 아닐 텐데요. 주변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주혁에겐 조금 예민할 수도 있었던 질문인데.
그는 흔쾌히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먼저 꺼낸 이야기.
“안 그래도 아까 전 직원분들 만났어요.”
“아. 진짜요!?”
사회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럼 막 물어보잖아요?!”
여기서 주혁은 잠시 멈칫했다.
사실 주혁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모를 정도의 망설임이었다만, 이때 2층에서 보고 있던 상현과 눈이 마주쳐 버린다.
그러나 주혁은 별 내색 없이 이내 웃으며 입을 연다.
“네. 매니저라고 말했더니 역시 놀라시긴 했던 것 같습니다.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요.”
“그, 그렇죠. 그분들 입장에선 갑자기 이렇게 된 거니까요……? 하하.”
“하하. 그렇죠? 하긴, 저도 신기합니다.”
* * *
한편, 지아와 주혁이 집중 조명을 받게끔 2층의 빛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빠져 있던 상현.
그가 착잡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랬구나.”
방금 전 주혁의 망설임 때문에 상현도 이제야 깨달았다.
‘말을 안 하고 있었다니.’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녀석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아무리 자기 자신을 믿어도, 아성의 전 동료들에게 매니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나 보다.
‘이해해.’
상현은 충분히 이해했다.
그 역시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산다고 말하기 싫어했더랬지.
그렇다고 할머니가 부끄러웠던 건 아니다.
부모도 없이 할머니하고만 사는 자신의 처지가 부끄러웠던 것일 뿐.
‘주혁이도 그런 거겠지.’
대강 머리로만 상상해 봐도 그렇지 않은가.
한때 잘나가던 기업의 에이스였던 그가 골칫거리 낙하산이던 사람의 매니저라니.
“아…… 그리고요.”
주혁은 아직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다는 듯.
“이 자리를 빌려서 말하고 싶은 게…….”
“네. 뭐죠?”
“스트리머로서의 여정에 제가 함께할 수 있게 해준 상현이에게 꼭 고맙다고 전하고 싶네요. 막상 이런 말을 한 번도 못했거든요.”
쿵…….
상현은 심장이 철렁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좋은 의미로.
‘고맙다니?’
주혁이 자신에게 고맙다고 할 줄은 몰랐다.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건 상현 쪽이라고, 항상 생각해왔으니까.
상현은 내심 주혁이 자신의 날개를 다 펼치지 못하고 계속 매니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아. 그렇군요?! 너무 친하면 그럴 수 있어요. 어떤 점이 고마우시죠?”
“그야, 간단히 말해서 전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매일 날아다니는 것 같아요.”
“그 정도로요!? 그건 좀 수상한데요?”
와하하.
사회자의 눈길이 지아 쪽으로 향하자 팬들이 마구 웃는다.
“저 자식…… 나한테 말하는 거 맞냐?”
상현은 괜히 우스갯소리를 뱉었으나.
눈시울이 뜨거웠다.
* * *
그렇게 지아와 주혁의 소개가 끝나고.
본격적인 놀자판이 벌어졌다.
상현은 팬미팅 내내 치맥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팬들에게 양궁을 가르쳐 주고,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건배를 해주고, 이리저리 가서 단체 사진을 찍어야 했으니. 앉을 틈도 없었다.
아, 여담으로 활을 제일 잘 쐈던 팬은 루비소드였다. 그녀는 경품까지 타가면서 1번 팬의 위상을 보여줬다.
치킨과 맥주를 가장 많이 시킨 팬은 킹덤좌였다. 그의 우람한 체격부터가 사실 복선이었던 셈이다.
치킨을 무슨 스프처럼 흡입하는 발골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면은 아무래도 수많은 치킨 빈 접시를 들고 ‘치,킹~ 너네 나 못 이겨!’를 외쳐댔을 때이다.
‘치,킹’에 맞춰 마치 로봇처럼 팔을 들어 올리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수많은 플래시가 터지면서 사진이 찍히고, 채팅창 반응도 제일 좋았다.
-ㄹㅇ도라이넼ㅋㅋ
-걍 스트리머하지 ㅋㅋㅋㅋ
-킹덤…… 그 게임은 대체 뭘까.
-치,킹ㅋㅋㅋㅋ 로봇이냐곸ㅋㅋ
-치킹 ㅇㅈㄹㅋㅋㅋ
시계를 보니 시침이 정신이 나간 것처럼 휙휙 돌아갔다.
그리고 어느새 새벽 1시.
“너무 재밌었어요!”
“또 해요! 꼭!”
“네~! 안녕히 가세요!”
팬미팅이 끝났다.
-ㅠㅠ트바ㅠㅠ
-팬미팅 레전드였다 ㄹㅇ
-넘 재밌었어요 ㅠㅠ흐
팬미팅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정신없고, 턱이 뻐근할 정도로 웃겼고…….
팬들이 다 떠나고 난 뒤엔 가슴이 한편이 시릴 정도로 허전했다.
* * *
“하아. 진짜 정신 하나~~도 없었다.”
스태프들과 뒷정리를 하면서 주혁이 허리를 두들기며 중얼거린다.
“와. 끝나긴 하네요. 이게.”
“이제 정리도 거의 끝나가는데요. 뭘.”
뒷정리는 점원들과 파티 플래너 측이 맡아 거의 다 처리해서 주혁과 상현, 지아는 크게 할 건 없었다.
거의 다 끝나갈 즘.
주혁은 잠시 담배를 피운다며 문으로 나갔고.
상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괜시리 그를 따라나섰다.
뭔가 따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거기로 나가보니 입김을 뿜으며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 셋이 있었다.
“……?”
팬미팅은 다 끝났으니 설마하니 상현을 기다린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나.
“……아모으! 아모으아!”
얼어붙은 입으로 셋 중 하나가 ‘아몬드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게된다.
담배를 피던 주혁도 깜짝 놀란 표정.
“팬미팅은 이미 끝났는데…… 여태 기다리셨는데 죄송──”
주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그가 입을 마구 문질러 온도를 올리더니. 정체를 밝혔다.
“김치워리어입니다! 갑자기 찾아와 죄송합니다! 잠깐만 어디 들어가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일행의 정체는 시빌 엠파이어 국가 대항전 팀이었다.
“아…… 네. 물론이죠.”
상현은 당황스럽긴하지만, 기다린 노고를 봐서라도 일단 수락했다.
* * *
상현은 이들과 근처 24시간 카페에 들어갔다.
주혁과 지아는 오늘 과로했기 때문에 먼저 돌려보낸 후였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김치워리어고요. 이쪽은 곱스피어, 물만두입니다.”
육성으로 아이디를 뱉는 것에 전혀 거부감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다. 이들이 얼마나 시빌 엠파이어 국가 대항전을 위해 함께 준비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상현은 마주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로 이렇게까지 기다리셨나요.”
김치워리어는 벌겋게 얼어버린 볼을 문지르다가 얼른 대답했다.
“아. 그…… 제가 미처 설명 못 드린 부분이 있어서. 저희 길드장? 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편하실까요? 여튼 그분이 꼭 오늘 안에 말씀드리라고 했거든요. 저희가 팀 구성에 시간이 촉박해서…….”
상현은 국가 대항전이 한 달 남짓 남았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급한 상황이었구나.
그럼 메시지로 보내든가 하지…….
“아몬드 님께서 그…… 이미 국가 대항전 참여 의사를 밝혀주셨잖아요.”
“네.”
“거기서 제가 너무 성급하게 진행하는 바람에 말씀 못 드린 게 있습니다.”
“?”
“쿠키 형…… 그러니까 길드장 형이 아몬드 님의 건강에 관한 영상을 봤다고 하더라구요. 제대로 언급된 건 아니지만 장시간 캡슐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식의…….”
“아, 네. 맞습니다.”
역시. 그렇구나. 셋은 그렇게 눈빛을 주고받으며 말을 다시 이었다.
“그…… 국가 대항전 준비는 굉장히 힘듭니다. 심지어 아몬드 님은 거기에 S+까지 올리는 과정도 추가되어 있어요. 순탄하지 않을 경우 하루 10시간을 넘는 플레이를 해야 할 수도 있어요.”
하루 10시간?
아몬드로서는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한 플레이 시간이었다.
“제가 간단히 스케줄을 설명드릴게요.”
옆에 있던 여성이 스케줄 보드를 켜고 하나하나 알려줬다.
국가 대항전이 어떻게 준비되어가고, 몇 명이 합동으로 진행되는지 등등…….
‘장난이 아니네.’
상현은 올림픽을 꿈꾸며 준비하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 정도로 이들의 일정은 빡셌다.
비록 겨우 한 달간이라지만, 어쨌든 그 한 달만큼은 거의 선수들의 생활이었다.
물론 빡센 생활이라면 이골이 난 상현이다. 선수촌, 아성 등을 거쳐온 그는 근성 하난 자신이 있었다. 다만 캡슐에서는 달랐다.
거기서의 체력은 한계가 명확했다.
‘이걸…… 내가 할 수 있나.’
이건 거절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아. 이래서 직접 왔나.’
상현은 그제야 어렴풋이 이들이 여기로 와야 했던 이유를 알아챈다.
상현이 조건을 듣고 거절할 것 같아, 설득하려 온 것이다. 중간에 갑자기 하차한다고 하는 걸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상현으로선 이런 말을 다 듣고서도 수락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레 악화돼요. 캡슐을 사용하면 더 빠르게 악화되고.」
의사의 말이 떠오른다.
「아무리 새로운 캡슐이 잘 보조해 준다고 해도, 여전히 팔의 수명을 연료 삼아서 플레이하고 계신 거예요. 다만 본래 인간의 모든 부위는 소모품이죠. 선택은 상현 씨의 몫입니다.」
50년간 무난하게 사용할 팔을 선택할지, 한 10년간 캡슐에 매진하여 나머지 40년은 불구로 살지. 상현의 선택이라 했다.
‘그 여자는 후자를 선택한 건가.’
새삼 떠오르는 최사랑의 상태.
그녀는 이미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전자파로서 쌓아온 명성을 생각한다면, 이미 그녀는 후자를 선택하여 나머지 인생을 불구로 살기로 했던 것이겠지.
그 어린 나이에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아쉬울 것도 없는 집안의 딸이? 그녀는 그래서 행복했을까?
글쎄…… 어쨌거나 상현도 똑같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10년이다.’
팔의 건강 40년을 희생하여 캡슐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이라 했다.
우연인지 뭔지, 상현이 팔을 다치고 잃어버린 시간 역시 10년.
‘어떤 10년을 골라야 할까.’
상현과 국대팀의 시선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