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380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98화
34. 내 직업(4)
어떤 10년을 살 것인가.
‘지금은…….’
결단력이 좋은 편인 상현도 지금 이 자리에선 고를 수가 없었다.
그의 시선이 눈앞에 앉은 김치워리어와 그의 팀원들을 향한다.
‘이 시간에 왔다는 건. 아까 말한 대로 급하다는 뜻이겠지.’
이들도 절박한 상황이다.
그러니 저 추운 밖에서 이 시간까지 기다린 것이다. 요령은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 게임에 얼마나 진심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들을 위해서는 빨리 선택하는 게 좋겠지.
그러나…….
“……하루만 시간을 주세요.”
상현은 결국 선택을 미뤘다.
당연한 일이다.
“알겠습니다.”
김치워리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하실 텐데. 이만 들어가 쉬시죠. 시간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조금 짧고, 이틀간 기다리겠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더 자신들의 절실함을 어필한 후. 이만 물러났다.
* * *
카페에서 나오는 길.
앞에선 꽤나 깔끔하게 말하고 빠져줬으나.
“하아아으아.”
아몬드와 헤어지자마자 그는 침음을 흘렸다.
“왜 그래?”
옆에 있던 물만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뭔가…… 눈빛 못 봤어? 그냥 안 할 거 같아.”
“……에이. 그걸 어떻게 알아?”
“그야 네가 생각을 해봐. 상식적으로. 저 사람 입장에선 팔 건강이 달려 있는데. 고작 망할 시빌 엠파이어 국대전이 저 사람한테 뭔 의미야.”
“무슨 소리야!? 국가 대항전이 얼마나 중요한데!”
물만두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이렇게 외쳐 버리자, 김치워리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관뒀다.
그에 옆에 있던 곱스피어가 끼어든다.
“여튼. 이틀 기다리기로 한 거 아니냐. 쯧. 좀 기다려 보자.
* * *
그날 밤 집에 도착한 상현.
“대체 뭔 얘기를 한 거야?”
주혁이 티비를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국가 대항전 힘드니까 제대로 다시 생각해 보래. 중간에 하차 못 한다고.”
“……뭐? 그 정도야?”
주혁은 그런 얘기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던 건지 의아해한다.
“그래도 하는 거야?”
주혁은 조금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묻는다.
사실 그는 속마음으로는 굳이 그런 거 하지 말자고 하고 싶지만.
유상현이라는 인간은 자칫하다간 청개구리식으로 결정해 버리기에 조심스러운 것이다.
어찌 됐든 상현 스스로 결정하게 만들어야 하니까.
“……하루 뒤에 답 준다 했어. 아니, 이틀.”
주혁은 조금은 안도한다.
이틀이나 설득할 시간이 주어진 셈이니까.
“난 먼저 씻는다.”
“어. 그래.”
* * *
쏴아아아.
뜨거운 물줄기를 맞으며 생각에 잠기는 상현.
‘……많이 물렁해졌네.’
그는 무심하게 자신의 몸을 내려보며 생각한다. 옛날에 한참 운동할 때와는 확실히 다른 몸이다. 그간 꾸준히 조깅 정도는 뛰어줬어도, 그건 유산소일 뿐.
중량을 들어 근육을 키우는 웨이트 계열은 꽤 오래 쉬었다.
그의 근육들은 이젠 흔적과 자국만 남긴 채 거의 사라져 있었다.
‘꼭 그 시절처럼 말이지.’
끼익.
다 씻은 상현이 물줄기를 잠근다.
‘온수 아껴야지.’
워낙에 집이 구식인지라, 미리 데워놓은 온수를 다 쓰면 주혁이 씻을 때 곤란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욕실에 들어갔다 나오니 주혁은 이미 자러 들어간 상태였다.
‘이 자식. 안 씻었던 것 같은데.’
주혁의 부스스한 머리를 떠올려보는 상현. 그는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은 채, 최근엔 보통 주혁이 앉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듯이 한 파일을 재생했다.
[와아아아!!] [또 명중! 레, 렌즈가 깨져 버립니다!! 지금 최연소, 최연소…….]몇 번이고 돌려봤던 파일.
이제 몇 분대에서 관중 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외운다.
그리고 마지막은 당시 만 17세의 유상현의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
[올림픽 우승할 겁니다.]핑.
영상은 끝났다.
검은 화면에 비친 10년 후의 상현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 중이다.
‘…….’
그 검은 세상 속의 자신과 상현은 한참을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 둘이 동시에 말했다.
“아직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 * *
다음 날.
아침 식사 중이었다.
술을 마신 다음 날은 주혁이 늘 순두부찌개를 끓여준다.
가끔 여기에 북어도 넣어 주는데. 그게 의외로 맛이 잘 어울렸다.
바로 오늘 같은 날.
“와.”
하얀 김이 올라오는 찌개를 앞에 두고 상현이 꿀꺽 침을 삼켰다.
아무리 아몬드를 좋아라 하는 그라도, 숙취가 조금 있는 채로 들이켜는 뜨끈한 국물은 참을 수 없었다.
새하얀 쌀밥과 새빨간 기름이 뜬 순두부찌개를 몇 번 번갈아 먹던 상현은 문득 이상한 걸 깨닫는다.
‘왜 아무 말도 안 하지.’
평소 무슨 말이라도 할 터인 주혁이 아무런 말도 없었다.
마치 순두부찌개 끓이는 기계마냥 그냥 찌개 밥 가져다 놓고 퍼먹기만 한다.
‘저 자식 뭐라 말해야 청개구리 짓 안 하지.’
사실, 주혁은 상현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분명히 할 텐데. 그렇다고 하라고 하는 것도 티가 날 테고.’
어떻게 해야 상현이 국가 대항전을 포기할지에 대해 고민하느라 상현에게 쉽사리 말을 못 꺼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친 둘.
“있잖아──”
“그러고 보니 어제──”
동시에 말을 꺼낸다.
“……?”
“?”
잠시 멈칫하다가, 상현이 먼저 말을 다시 꺼낸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아성 사람들 만났다며.”
상현은 사실 어제 주혁과 따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김치워리어가 오는 바람에 못 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아…….”
주혁은 예상했던 말이 아니라 잠시 당황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만났지.”
상현은 뭐라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가 그냥 간단히 줄여 말한다.
“간만이었겠다?”
넌지시 운을 떼는 말이다.
“어. 그렇지. 특히 내 예전 팀 사람들이거든. 아마…….”
“아마?”
“어. 잘 기억이 안 나. 그냥 이 과장만 기억나네.”
“아, 이 과장이면 너네 옛날 팀 맞네. 아직도 멤버 그대로야?”
“어. 그러고 보니 그대로네? 지독한 놈들.”
한참 당시의 추억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상현이 툭 던지듯이 물었다.
“근데…… 그간 말 안 했다면서. 왜 굳이 그날 매니저라는 거 말한 거야?”
이게 그가 본래 묻고 싶었던 말이었다.
“아. 음. 생각을 해보니까.”
앞에 나눈 잡담에서 이미 뭔가 벽이 허물어진 덕분인지 주혁은 별로 놀란 기색도 없었다. 그냥 간단히 대답할 뿐이다.
“이게 현재 내 직업이잖아.”
이후 주혁이 더 갖다 붙인 이유는 없었다.
“……끝?”
“어. 그게 다. 돌이켜보니, 내가 이걸 직업으로서 엄청 열심히 하고 있더라고. 그걸 깨달으니까 숨길 마음이 다 사라졌다.”
“그렇구나.”
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뭔가를 깨달은 듯했다.
‘뭔가 알 것 같아.’
주혁은 직업이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걸 속이는 건 자기 왜곡이 된다. 상현도 공감한다.
그가 양궁 선수였던 시절, 아성의 직원이었던 시절.
어떻게 보면 그의 인생 분기점 자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로 나뉘고 있지 않나?
‘그리고 지금…….’
상현도 그제야 떠올렸다.
자신의 직업을. 현재 자신의 정체성을.
그는 더 이상 양궁 유망주도 아니고, 아성의 낙하산 골칫거리도 아니다.
그는 스트리머였다.
“와. 나 결정했어.”
뜬금없이 내뱉은 말에, 주혁이 벙쪄 버렸다.
“뭐? 뭘 결정했다는 건데? 설마…….”
“마저 먹어라. 난 뭐 확인 좀.”
상현은 주혁의 말은 무시한 채 빈 그릇을 치운 후, 컴퓨터로 향하더니.
‘한 번 더 보고 싶은 게 있어.’
딸깍.
어떤 영상을 틀었다.
선수권 대회 우승 영상은 아니다.
[난트전 결승) 레이나 하드 캐리!]풍선껌, 타코 등과 함께 했던 난트전 경기. 그중에서도 우승을 거머쥐게 했던 결정전의 경기였다.
그 경기에서 아몬드는 레이나로 전설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데.
게임 시작하자마자 상대 미드 단무지와 서포터 대추를 더블킬한다.
채팅창과 댓글에서 시청자들이 환호한다.
-블라인드픽 뽕맛 뒤지네
-아몬드! 레이나를 책임져! 아몬드! 레이나를 책임져!
-레이나는 아몬드에게 입술을 바친 보람이 있었다고 한다…….
-와 1:33 뭐냐?
환호하는 건 시청자들뿐이 아니다.
해설진의 흥분한 목소리가 이 영상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이게! 아몬드 선수의 VNS 수치가 허황된 게 아니라는 증거죠! 1레벨이야말로 피지컬 진검 승부니까요!] [아무리 계획을 잘 짜놓으면 뭐하나요!? 이런 수준의 플레이가 나올 거라고 누가 예상합니까!?]그때 그 현장의 전율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어지는 또 한 번의 슈퍼 플레이.
[와! 다이브킬! 이건 게임 터졌죠?!] [단무지! 억장이 와르르!]관중석의 함성.
와아아아아……!
어찌나 에너지가 넘치는지, 열기가 손으로 만져질 것 같았다.
상현의 가슴도 함께 뛰었다.
그는 홀린 듯이 다른 영상을 하나 더 본다.
[난트전 결승) 점멸검 드디어 등장!]지금과는 다르게 영상의 제목이 꽤나 정상적이나, 담긴 플레이는 그렇지 않았다.
[아니, 1렙 솔킬! 이거 대형사고죠?!] [아몬드가 외치고 있죠?! 짜장면만 가져와! 단무지는 다 썰어놨으니까!!]위 영상처럼 1레벨부터 터진 단무지 솔킬.
그리고, 지고 있던 팀을 머리채 잡고 일으켜 세운 6렙 로밍.
[엄청난 회전격 콤보에 방금 그 심리전!!! 순식간에 너무 많은 게 지나갔습니다!] [이, 이게 무슨!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번쩍번쩍 촤아아아아! 하더니! 제천이 죽었어요!?] [진짜 무호흡 딜링이죠!? 진입 후 검강! 회전격! 회전격! 회전격! 점멸! 하고 어검술로 분신 다 터뜨리고 다시 점멸! 검강! 완전 숨 쉴 틈도……]목청이 터져라 고함치는 해설, 캐스터, 팬들…….
그때의 감정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상현은 생각했다.
‘이게 내 직업이야.’
스트리머는 이런 직업이었다.
시청자들을 즐겁게, 환호하게, 때론 눈물도 흘리게 하고.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직업.
그로써 저들에게 잠시라도 현실에서 벗어난 즐거운 시간을 선물하고, 그 보답으로 사랑을 받는 직업.
-와 아몬드 국대전 ㅈㄴ 기대된다
-국대가서 제발 레전드 찍어줘 ㅠㅠ
-국뽕 요즘 진짜 달달하네 ㅋㅋㅋ
-우리 청년이 오랑캐들을 향해 활 쏘는 모습~~ 기대합니다~~
-주모! 연말에 주막 터진다니까!? 아몬드가 국대를 한대 글쎄!?
상현은 아무런 말도 없이 자연스레 전화기를 들었다.
“아. 예. 아몬드입니다.”
상현은 결심을 완전히 굳혔다.
팔의 수명이 깎인다느니, 얻을 게 없다느니. 그런 고민은 저 멀리로 치워 버렸다.
인간은 어차피 천천히 죽어 나가고 있다. 수명이 깎이는 게 두려우면 애초에 어떻게 살아가겠나. 삶은 어쩌면 어떻게 살아나갈지가 아니라, 어떻게 죽어 나갈지 고르는 것이다.
그리고 상현은 이렇게 죽어 나가기로 했다.
“될 것 같습니다. 해볼게요. 끝까지.”
전화기 너머에서 국대 팀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가 보던 영상에서도.
[우와아아아!] [점멸검! 점멸검! 더블킬! 트리플킬! 쿼드라아아아!!]두근.
심장이 뛰는 이런 흥분도 잠시.
“?”
지이이잉.
상현의 휴대폰에 교차 전화가 걸려온다.
“어. 잠시만요.”
발신자를 확인한 상현은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 되어버린다.
[의사 송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