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3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17화
41. 정치워리어(2)
인터넷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이한 현상을 뒤로한 채, 상현의 일행은 병원에 도착한다.
“끝나면 연락해.”
“그래. 고맙다.”
상현은 차에서 내린 뒤 주혁과 지아를 떠나보냈다.
둘은 저번처럼 강변 쪽 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아무래도 데이트를 하러 가는 것이다.
상현은 반대 방향, 익숙한 하얀 건물 안으로 향했다.
지잉.
자동문이 열리고, 깔끔한 로비와 접수대가 등장한다.
어차피 예약 환자이니, 왔노라고만 이야기한 뒤 자리를 잡고 앉는 상현.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잠시 호명되길 기다리는데…….
지이잉.
전동 휠체어를 탄 여자와 마주친다.
“아…… 안녕하세요.”
상현은 간만에 보는 터라 나름대로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
그런데 그녀의 분위기가 평소와 상당히 달랐다.
평소에도 조금 차갑긴 했어도 예의는 상당히 잘 차리는 편이었다. 조금이라도 무례한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느낌이 다르다.
묘한 위화감.
“?”
그게 왜인지, 상현은 알 수 없었다.
화가 났나?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조용하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리만치 접수대의 직원들도 고요했다.
“……네.”
그녀는 간신히 겨우 대답을 뱉고는 건물 밖으로 나가버린다.
상현은 멍하니 그녀가 나가버린 문을 바라봤다.
‘무슨 일 있나.’
그녀는 진료실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그녀가 진료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그건 상현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물어보고 싶었다만 그럴 순 없었다. 둘은 동병상련이라는 연결점만 있을 뿐.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
“상현 씨. 들어가시면 됩니다~!”
무심하게 울려 퍼진 접수대 직원의 음성이 그의 고개를 다시 잡아 돌렸다.
“예. 갑니다.”
* * *
설원으로 뒤덮인 고요한 풍경에 놓인 하나의 하얀 건물.
그곳의 문이 열리고, 전동 휠체어 하나가 홀로 나온다.
지이잉.
휠체어를 탄 여자는 긴 검은 머리를 뒤로 대충 넘기며 한숨을 내쉰다.
“……하아.”
하얀 입김을 뱉으며 풍경을 본다.
횡으로 길게 뻗은 산봉우리들의 머리가 백발이다.
눈 내린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녹지 않은 걸 보니, 여기가 얼마나 시골인지 실감난다.
유독 이곳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변한 게 없다.
“10년 동안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구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데.
그녀의 몸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꼭 이곳의 풍경처럼.
여전히 휠체어에 올라타 있고,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뻥 뚫린 채로 살아간다.
그때 들려오는 인기척.
사부작, 풀 밟는 소리가 난다.
“뭐라는 거야. 다 죽은 사람처럼.”
그는 다가와 담배를 내밀었다.
최사랑의 눈매가 슬쩍 위로 올라간다.
아는 얼굴이다.
“……왜 왔어.”
차갑게 대꾸하면서도 담배는 채가는 사랑. 삐져나온 한 개비만 가져가는 게 아니라, 아예 한 갑을 가져갔다.
“그거 다 주는 거 아닌데.”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한다.
“지랄하네. 이거 안 피우잖아.”
“그렇다고 그게 네 거냐?”
“그냥 나 주려고 가져왔다고 말해. 남자답게.”
치익.
무표정으로 불을 붙인 그녀는 다시 전동 휠체어를 움직였다.
지잉.
남자를 쏙 빼놓고 돌아 나가 버린다.
“여전히 무빙 지리네.”
남자는 피식 웃으며 따라 달려왔다.
도착한 곳은 병원 뒤쪽의 너른 들판.
지금은 하얀 눈이 덮은 이곳은 사랑이 병원부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적당히 거센 강줄기가 흐르고 뒤로는 웅장한 산맥이 보이는, 나름 명당이라면 명당인 장소다.
잡생각을 지우고 멍하니 있기에 딱이랄까.
“하아.”
사랑은 또다시 한숨을 뱉었다.
그런데 툭, 그녀의 어깨 위로 담요가 둘러졌다.
아까 그 남자다.
“성현아. 그거 기억나냐?”
그는 옆으로 서 자신의 담배를 꺼내 물며 말한다.
“예전에 재민이 말이야.”
“…….”
사랑은 대꾸하지 않고 담배만 더 피워댈 뿐이었다.
“해설들이 맨날 걔보고 그러잖아. 와. 동물적인 감각! 바나나 선수! 짐승이에요!”
사랑은 여전히 대꾸가 없다.
남자는 개의치 않고 혼자 낄낄대며 말했다.
“근데 그 새끼 진짜 동물이었잖아. 걔만 널 진심으로 이성으로 좋아했다니까? 우린 다 네가 그래도 남자긴 하겠거니 하고 있을 때인데. 걔 혼자 네가 존나 좋다는 거야. 자기도 왜 그런지 모르겠대. 자기 성 정체성까지 의심하더라니까?”
사랑은 여전히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한 건, 스스로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맨날 ‘게이바 나나’라고 놀렸거든. 게이바에서 나나를 불러주세요~!”
피식.
사랑이 입에서 결국 바람 소리가 새어 나온다.
“근데 대반전. 네가 여자였던 거지. 설마하니 누가 성별까지 속이고 숙소에 들어올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냐고. 걔 네가 여자인 거 알고 나서 얼마나 안심했는지 아냐? 너 남자라고 생각할 때 꽃 사 들고 왔다가 버리고 또 사 왔다가 결국 버리고 이 지랄해서 그때 아파트 화단에 이상하게 꽃이 많이 펴 있…….”
풉.
사랑은 결국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푸하하하.
“아. 진짜. 지어내지 마.”
“지어내긴 뭘! 이 정도면 간추린 거야! 재민이 그 새끼가 왜 미드 갱만 주구장창 갔는지 모르냐?”
사랑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꺽꺽거렸다.
“그래도 네가 사실상 전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미드여서 망정이지. 구멍인데 그러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아오…….”
“탑 갱 가는 것보단 낫지. 병신아.”
옛 친구를 만나니 그때의 말버릇이 돌아오는 사랑이다.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그녀의 모습.
그런 모습이 이 남자는 익숙한지 별다른 내색도 없다.
아니, 오히려 편해진 듯했다.
“……하. 그건 그렇다. 탑보단 낫지. 탑보단.”
그렇다.
그는 사랑과 함께 월즈 시리즈를 우승했던 탑 라이너, ‘팝콘’이다.
“아, 바나나 때문에 너무 빨리 들켰어. 아저씨가 수습하시느라 고생한 거 생각하면…… 진짜…….”
그의 노력에 사랑도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걸 어떻게 우리한테도 안 들킬 거라고 생각했냐? 넌 서민들을 무슨 개돼지로 보는 거냐?”
“나보다 랭크 낮은 애들한테 들킬 리 없다고 생각했지.”
“허이구.”
팝콘은 어이없어하며 웃는다.
“나중엔 우리도 그거 숨겨주느라고 개고생한 거는 생각하면 참…… 남자처럼 보이려고 무슨 괴상한 메이크업하고, 대체 왜 그렇게 남자로 보이려 했던 건데?”
“그건 이미 말했잖아.”
“아니, 들어도 잘 이해가 안 가잖아. 여자라고 했으면 인기가 훨씬 좋았을 텐데. 얼굴도…… 뭐, 반반하고.”
예전 동료의 얼굴 칭찬하기가 민망한지 팝콘은 슬쩍 시선을 돌린다.
“반반? 적당히 경국지색이라고 해.”
“그, 그게 적당한 거야?”
사랑은 피식 웃어넘긴 뒤. 아까 팝콘의 질문에 답해준다.
“너만 해도 방금 말했잖아. 여자였으면 더 인기 많을 거라고.”
“어. 그러니까 이해가─”
“그래서 남자라고 한 거야.”
“?”
그는 얼굴에 거대한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자로선 이해하기 쉬운 감정은 아니었다.
“기대도 안 했어.”
사랑이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팝콘이 다급하게 덧붙인다.
“편견이 있긴 하지. 합숙도 안 되고. 커뮤에 이상한 글 졸라 올라왔겠지. 그래. 인정.”
잠시 후.
그는 역시나 이해가 안 되는지 또 덧붙인다.
“그래도 난 인기 많은 게 더 좋을 거 같은데…….”
이후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변하지 않는 저 풍경을 그저 멍하니 감상하며 담배를 피웠다.
사랑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왜 왔냐고.”
“뭘 계속 왜 왔냐는 거야. 이 새끼야.”
“?”
“크흠. 그…… 뭐냐. 잘 지내나 싶어서 왔지. 너희 집사님한테 오늘은 내가 데리러 간다고 말씀도 드렸어.”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
“……타이밍?”
이때부터였다.
사랑의 목소리가 점점 떨리기 시작한 게.
“난 안 된대.”
“뭐…….”
뭐가? 라고 물으려던 팝콘이 멈칫한다.
그야 방금 그녀가 갔다 온 곳을 생각하면 뭐가 안 되는지 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난 그냥 희망이 없대.”
“그게 무슨 말이야. 의사가 그래? 무슨 개소리야. 그게. 어떻게 그딴 말을…….”
팝콘이 대신 화를 내려던 찰나.
“근데 그 사람은 된다더라.”
“……뭐?”
희한한 소리를 듣게 된다.
“나랑 비슷하게 아픈 사람이 있어. 걔는 되고 난 안 된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데?”
“나도 모르지!”
찌릿.
팝콘은 전기가 오른 듯 움찔거렸다.
전자파가 이렇게 꽥 소리를 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특히나, 그녀는 자신의 여자 목소리를 감추고 싶어 했기에…… 더욱이 조심했었다.
‘다른 사람은 치료가 되고, 자기는 안 된다는 건가…… 제기랄.’
팝콘은 전자파의 참담한 심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다리 때문에 어떤 곤욕을 치러야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곤욕에 비하면 월즈 우승은 아주 작은 세상의 보답일 뿐이었다.
“나 정말 그 사람. 좋아해 보려고 노력 많이 했어.”
“좋아해…… 보려고? 대체 왜?”
“응. 안 그러면 밑도 끝도 없이 질투 나고 화가 나서, 미쳐 버릴 거 같으니까.”
그런 걸 억지로 해보려 한다고 될 리가 없었다. 재민이가 사랑이를 좋아하는 걸 멈출 수 없었듯이.
“그 사람 좋은 사람이야. 귀엽고, 잘생기고, 좀 엉뚱하긴 한데. 순수하고…….”
“그래? 잘됐─”
“그런데 너무 미워! 너무 싫어!”
꿀꺽.
팝콘은 마른침을 삼켰다.
사랑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 사람 좋은 사람이야. 그 사람이 싫은 내가 싫어! 내 처지가! 왜 걔는 되고 난 안 돼? 똑같은 일을 겪은 건데. 왜 걔는 치료가 되고! 날……! 날 나쁜 년 만들어!”
“서, 성현아. 진정해. 진정…….”
사랑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여기…… 여기도 내가 먼저 왔는데…… 내가 더 열심히 했는데…….”
“괜찮아. 내가 봤을 땐 그 의사는 아직…… 어? 뭘 모르는 거야.”
이상한 말만 뱉는 팝콘.
위로를 하고 싶어도 뭔질 몰라 할 수가 없었다.
“야…… 하하하.”
사랑은 이제 웃기까지 한다.
“나 기억이 안 난다? 내가 어렸을 때 육상 선수가 꿈이었대. 근데 나 기억이 안 나.”
“…….”
“심지어 그거 다 구라 같아. 믿을 수가 없어. 난 처음부터 병신으로 태어났는데 세뇌당한 거 같은 거야.”
“야. 야. 왜 그래!? 제발 진정해!”
“다 날 속이고 있는 거지. 아빠랑 아저씨랑, 그리고 너도!”
“억!”
퍽.
괜히 한 대 맞은 팝콘.
“가, 갑자기 난 왜 때려!”
“너도! 너도! 너도 날 속였어!”
퍽. 퍽. 퍽.
“야, 야……! 속인 건 너잖아!?”
괜히 화풀이 대상이 되어버린 팝콘.
황당했지만, 별수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전자파가 자기 앞에서 이렇게 우는 모습을 처음 봤고.
‘이렇게 약했구나.’
그녀의 주먹은 생각보다 너무 약했다.
그렇게 커 보이던 그 녀석이.
너무 작았다.
* * *
상현은 여러 검사를 마친 후.
그간의 플레이 데이터를 송하나와 함께 살펴본다.
“……이때가 좀비 스쿨을 플레이했을 때…… 확실한가요?”
“예.”
벌써 몇 번을 반복해 물어본 질문.
상현은 뭔가 이상하다 느낀다.
“하아.”
송하나는 책상 위로 쓰러지듯 엎드려 버린다.
뭔가 잘 안되나 보다.
“어쩌지…… 사, 상현 씨도…… 이럴 줄이야.”
‘뭔가 잘못됐나 보네.’
상현은 이때 직감했다.
그가 또 헛된 희망을 품었던 것이라고.
“이상하네요. 분명히…… 분명히 1초 오차도 없이 딱 맞는 시간이라 그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으로 연신 다른 종이들을 번갈아 봤다.
“사랑 씨가 아무 영향이 없던 것도 어쩌면…….”
약간 정신이 나간 것처럼 서류를 뒤져대는 송하나.
“제가 실언을 했을 수도 있어서요. 죄송해요.”
“…….”
상현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송하나는 결론을 내린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상현 씨. 전 거의 확실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지금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네요.”
듣자 하니 좀비 스쿨이 팔의 악화를 막아준다는 건 실패한 이론이 된 모양이다.
아니, 적어도 성공한 이론이 되진 못한 것 같다.
“그래도 계속 주기적으로 플레이해 주세요. 분명히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아, 예. 알겠습니다.”
고개는 끄덕였으나 속으론 이렇게 생각해 버렸다.
‘그럼 그렇지.’
이런 일…… 한두 번 겪었던 것도 아니다.
상현은 반사적으로 위로를 되뇐다.
‘괜찮아.’
게임이 치료제라니.
처음부터 얼토당토않은 소리였다.
그래,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 * *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탁.
문이 닫힌 후, 상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빨리 걸었다.
병원 건물을 나서며 접수 안내대를 지나치는데.
푹!
무언가 날 선 것이, 그대로 심장을 찔러왔다.
울컥거리는 뜨거운 것이 목을 타고 올라오려 발악했다.
아까 전 최사랑이 이런 상태였을까?
그는 끝끝내 삼켜내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어차피 똑같은 거야.’
어차피 그는 팔 상태에 상관없이 국가대항전을 나가려고 했고, 준비는 순항 중이다.
랭크는 연승을 거듭해서 몸에 무리를 줄 정도로 플레이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게 잘 되고 있었다.
‘그래. 똑같아. 그냥 하면 돼.’
비 온 뒤 땅이 굳듯이, 모순적이게도 그의 열망은 더 단단하게 자리 잡아갔다.
마치 팔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보상 심리처럼.
마치 과거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