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45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45화
16. 전화위복(3)
“어린놈이 어찌 이렇게 차분할꼬?”
양대인 코치님을 처음 만났던 때 들었던 말이다.
“저, 정말 우리 애가 거기에 재능이 있수?”
할머니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할머니께선 늘 다른 사람의 말을 쉽게 믿진 못하셨다.
딱히 그 인격이 비뚤어지셨다거나, 심술이 있으셨던 건 아니다. 그간 겪었던 일들 때문이다.
“예.”
코치는 특유의 무뚝뚝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는 몰랐다. 코치님이 웃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걸.
“여린 손이 힘이 딸리긴 해도, 양궁은 이 몸뚱이보다는 정신의 싸움인데. 유별난 녀석인 건 맞소이다.”
그는 이걸 보라는 듯, 낑낑대며 홀딩 자세를 유지하는 상현을 가리킨다.
그래도 할머니에겐 별 소용이 없었다.
“끄응…… 내 참, 믿을 수가 있어야지.”
“누가 믿으라 했소? 그냥 있는 그대로 얘기해 주는 거지.”
처음엔 코치님도 그리 적극 권유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재능이란 게, 처음부터 딱……! 하고 나 재능이오! 하고 나오는 게 아니올시다. 그걸 잘 갈고닦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정도가 재능인 게지. 그냥 무시하고 썩혀도, 이 정신력으로 다른 일을 해도 전혀 상관은 없소.”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린 상현은 무심코 손에 힘을 빼버렸다.
“어…… 어……?”
아마 그건 우연이었을 거다. 다분히.
푹!
과녁 정중앙에 박혀 버린 연습용 화살. 촉이 살아 있는 게 아니다 보니, 금세 다시 떨어져 나왔지만.
‘!’
그 짧은 사이, 코치는 분명히 봤던 거다.
상현이 봤던 것과 똑같은 걸.
“허…….”
그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제법이구나. 힘이 다 빠져 놓칠 때까지도 흐트러지지 않았어. 그렇지 않고서야 저기에 맞을 리가 없는데.”
“……?”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의 상현이 올려다본다.
“뭘 하든 이렇게만 살아라. 설사 힘이 다 빠져서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도, 넌 흐트러지지 않는 거다.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을 거라는 기세로.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정중앙에 화살이 박혀 있을 게다.”
“네! 알겠습니다!”
상현의 활기찬 대답.
양 코치는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기왕이면 양궁을 해주면 더 좋고…….”
* * *
높이 솟은 빌딩 숲들에 뜯겨 나간 하늘을 올려다보며, 상현은 옛 생각에 잠시 잠겨 있었다.
‘차분하다. 침착하다. 집중력이 좋다…….’
그 시절 들었던 말들을 되새기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을 양궁 천재로 만들었던 이런 기질들이, 이젠 그저 자기소개서에나 한 줄 들어갈까 말까 한 허접한 스펙이 되었다.
인생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아. 오셨군요!”
오 실장의 목소리다.
쌀쌀한 바람을 헤치고 뒤뚱거리며 달려온다.
배가 불룩 나오고, 술 때문인지 얼굴을 늘 팅팅 부어 있지만, 그에게선 언제나 열정의 기운이 전해져 온다.
“안녕하세요.”
“이사님은 아마…….”
그가 손목시계를 보면서 고개를 까딱거린다.
“10분 정도 뒤에 오실 겁니다. 미리 들어가 있을까요?”
“그러죠.”
그와 함께 추운 길거리를 조금 걸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상현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본래 말이 없는 상황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말하기보다는 듣는 게 상황을 더 유리하게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
“상현 씨는 별로 긴장하는 타입이 아니신가 봅니다?”
“……네?”
“아니, 보통 이사님하고 식사한다고 하면 긴장하시거든요. 더 잘나가는 스트리머분들도. 아, 물론 좋다는 뜻이에요.”
“아…….”
상현은 아까 회상하던 과거의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천성이 좀…… 둔해서요.”
“그래요? 게임할 땐 엄청 예리하던데.”
“?”
“뭘 그리 놀란 표정을 지어요. 당연히 저도 보죠. 하하하. 누가 뽑았는데.”
“아…… 감사합니다.”
“그 개인적으로 뽑으신 편집자분도──”
──이라샤이마셍!!!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들려온 우렁찬 함성.
“크크. 이거 참 00년대 감성이야. 일본은 변하질 않는다니까. 들어갑시다.”
오 실장은 멋쩍게 킬킬대며 유카타를 입은 직원이 안내하는 방으로 향했다.
상현은 잠시 방의 생김새를 둘러보고는 생각했다.
‘엄청 고급스럽네.’
최소 인당 40만 원은 나갈 것 같은 일식집이었다.
아직 펑크에 벌어다 준 금액이 총 40만 원이 안 될 것 같은데.
조금은 부담이 느껴졌다.
“부담스러워하지 마요. 상현 씨가 해낸 거에 비하면 이건 좀 못한 대접이니까.”
오 실장은 상현의 표정을 읽은 듯 덧붙였다.
“……해내요?”
“그건 이사님 오시면.”
오 실장이 눈을 찡긋거린다.
잠시 후. 오 실장이 휴대폰을 보고 튀어나가더니.
약속 시간에 딱 맞춰서 이사와 함께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유상현입니다.”
상현은 본능적으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이사의 눈에 약간의 이채가 띠었다.
‘여느 스트리머들 같진 않은데?’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만큼, 그가 다른 회사의 이사들처럼 보수적이진 않지만.
그럼에도 스트리머라고 하는 자들은 정말이지 상식 밖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만날 땐 어느 정도 각오를 한다.
‘첫인상이 멀끔하네.’
척 보면 척이라고, 상현이 그냥 게임만 폐인처럼 하는 스트리머는 아니라는 걸 한눈에 눈치챘다.
잠시 내려다보던 눈길을 거두고, 그는 손을 내밀었다.
“자네구만. 반갑네.”
악수하는 손에서 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또한 다른 스트리머들에게선 보기 힘든 특성이다. 살펴보니, 팔에 단단한 근육이 자리 잡고 있다.
‘음?’
부르르…….
한데 손이 떨린다. 긴장한 탓인가? 아니면…….
“앉게.”
“예.”
셋 모두 이제 탁자에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셰프가 등장했다.
첫 번째 요리가 서빙된다.
셰프는 ‘가리비입니다. 소금과 와사비에 찍어 드시면 좋습니다.’라든가 ‘이건 쥐치입니다. 쇼유에 버무린 쥐치의 간을 싸서 함께 드시면 됩니다.’ 등의 설명을 덧붙이고는 자리를 비킨다.
“아. 경황이 없어 내 소개를 안 했구만.”
이사가 자신의 명함을 꺼내 들었다.
‘이사, 한태호.’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름이었다.
“저는…… 죄송하게도 명함은 없습니다.”
“아. 알고 있네. 너무 불편하게 생각하지 마요. 내가 나이는 이래도, 스트리머들을 만나본 경력이 오 실장보다 더 됐으니까.”
하하하.
약간의 웃음이 지나가고, 각자 전채 요리를 음미하며 먹었다.
“음. 쥐치가 맛이 좋네. 여긴 스시도 좋지만 츠마미부터가 마음에 들어. 법인 카드로 올 때는 더더욱 마음에 들지.”
하하하.
한 이사의 농담에 또 웃음기가 한 번 스쳐 갔다.
상현도 잠시 웃은 후, 능숙한 손짓으로 서빙된 음식을 먹었다.
“이런 데 자주 와봤나? 난 여기 처음 왔을 때 정말 놀랐는데 말이야.”
“아…… 의도치 않게 몇 번 와야 했습니다.”
그때, 오 실장이 옆에서 뭔가를 귀띔해 준다.
“아, 그래? 아성에서?”
아성 그룹에서 일했던 사람이라고 하니, 한 이사의 표정이 두 배는 더 밝아졌다.
“아니, 이거 인재였구만. 어쩐지 다른 스트리머들이랑은 뭔가 달라도 한참 다르더라니.”
‘사실 낙하산이었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상현도 눈치가 없진 않았다.
맛이 좋은 음식을 그저 계속 입에 쑤셔넣었다.
‘맛있긴 하다.’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모를 상황이라지만, 입에 감도는 녹진한 감칠맛과 오도독한 생쥐치의 식감은 압도적이었다.
여기가 단순한 식사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여기 총괄인 토우지 상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니기리를 구사하시네. 그…… 아성이라고 하니 생각나는데. 전무님 한 분이 여기 단골 아니신가? 그러고 보니 상사 팀인데. 그분…….”
“예. 이 전무님 말씀이신가요.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아. 그래. 이칠성이. 그 사람이 내 고교 동창이야.”
상현은 ‘이럴 수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실 그리 놀라진 않았다.
피라미드의 계급 구조상, 위로 올라가면 몇 명 남지도 않는다.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경우가 더 드물다.
차라리 대표라면 모를까, 이사 라인은 보수적인 엘리트 집단인지라, 어렸을 때부터 같은 환경에서 컸을 확률이 높다.
“어쩐지 분위기가 비슷하십니다.”
이런 말은 사실 굉장히 실례되는 말일 수도 있었다. 만약 상대를 좋게 보지 않는다면, 욕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보아하니, 한태호와 이칠성은 아직 사이가 좋다. 좋은 걸 넘어, 자기가 이칠성 친구라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래?”
하하하하.
호쾌하게 웃는 한태호. 역시나 반응이 좋다.
“……그래도 그 녀석이 더 낫지. 난 양놈들 뒤치다꺼리하는데. 아성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나.”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건 칭찬을 해달라는 신호였다.
“그게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시는 거죠. 제 예전 직장 동료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었고, 이직도 많이 희망했었습니다.”
“말주변이 의외로 좋구만. 하긴 스트리머 하려면 기본이긴 하지.”
한태호는 담담하게 받았지만, 표정은 숨길 수가 없다.
그는 상현이 점점 더 마음에 들고 있었다. 다른 애송이 스트리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 4번째 접시가 나왔을 때쯤.
그러니까 이제 슬슬 한태호가 좋아한다는 토우지 상의 그 니기리를 볼 수 있게 됐을 때.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 들어왔다.
“근데…… 조금 기구하군. 아무리 스트리머가 요즘 좋다지만. 리스크가 상당한데. 아성을 버리고 올 정도인가?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겐가?”
본래 상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하지도 않았을 질문이다. 실례가 될 확률이 훨씬 높은 질문이니까.
하지만 한태호는 지금 상현에게 관심이 있어졌다. 더 가까워지고 싶다.
그래서 이런 근본적인 부분을 따져보려는 것이다.
그런 기본적인 검토 없이 가까이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가진 게 많은 자들이다.
‘좋은 신호다.’
상현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을 필터하려고 한다는 게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바꿔 생각하면 1차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2차, 3차 면접까지 가야만 받을 수 있는 질문을 받게 된 거다.
즉, 지금 마지막 면접까지 온 것이다.
‘한태호와 가까워질 수도 있어.’
일단 한태호의 마음에 들어야 배틀 라지 문제도 아주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다.
제작사와 운영진은 강력한 플랫폼인 펑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니까.
그것뿐 아니라, 저런 파워를 가진 사람과 가까워진다면 그 외에도 수많은 이점들이 있다.
단순히 잠깐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인생을 바꿔 버릴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상현은 이때가 ‘그걸’ 말할 때라고 느꼈다.
‘지금이겠지…….’
그가 왜 가상현실 게임을 하게 됐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말하는 건 처음이다.
“제가 원래는 양궁 선수였습니다. 그것도 꽤 잘하던.”
“양궁……?”
이때 한태호의 눈빛이 여태 봤던 중 가장 흥미롭게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