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465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2 183화
64. 마지막 층(2)
대개 우린 지상 위의 것들에만 눈이 현혹된다.
우리에게 ‘나무’를 떠올려 보라 하면, 싱그럽고 푸른 이파리와 형형색색의 꽃, 아름답게 뻗어 나가는 프랙탈 구조의 가지를 말한다.
뿌리의 존재는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한데 기억해 보라, 나무의 절반 이상은 땅에 묻혀 있지 않던가?
그들의 본질은 사실 뿌리가 아닌가?
말 그대로, 본(本)의 의미이자 그 발현이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위에 나열된 잎, 꽃, 열매, 이 지상의 사치스러운 것들은 지하의 사투에서 피어난 부산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심연은 어떤가?
열매를 통해 들어가, 잎의 층, 다음은 줄기의 층, 마지막엔 뿌리에 닿는 구조.
심연은 우리를 역순으로 삼키면서, 이 진리를 전달하려 한다.
그러니, 이곳에서도 정수는 뿌리이다.
가장 복잡하고, 가장 본질에 가까우며, 가장 치열하다.
그리고, 가장 알려져 있지 않았다.
아니, 알려져선 안 된다.
[성소 탐험가 ‘빌베르크 매그너’의 저서 「전설이 되는 것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조언」 中 발췌]* * *
다음 층으로 전송되는 사이 떠오른 텍스트.
[마지막 층(★)에 한 발 다가갔다.]마지막 층의 조건이 클리어되기 직전이라는 뜻이다.
이제 이곳에서 살아남기만 하면 클리어할 수 있는 거다.
3별 클리어를 하려면 살아남는 것 이상의 뭔가를 해야 할 테고 말이다.
-오오
-이제 그냥 나가도 2별 클리어??
-이게 마지막층이구나
-오늘 엔딩보겠네
“드디어 마지막 층이네요. 오늘 엔딩 한번 봐보겠습니다.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요.”
-ㅋㅋㅋㅋ
-깔깔깔 아부장님! 너무 웃깁니다!
-엌ㅋㅋ
단순히 농담이 아니다.
어두컴컴한 시야,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게 뿌리인가…….’
열매를 통해 잎, 줄기를 넘어 이제 뿌리의 층.
이곳은 주변이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둠이다.
심지어 혼돈이다.
줄기 층엔 꼿꼿이 선 나무 기둥이 가지런히 서 있었다면.
이곳은 사방팔방 이리저리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그마저도 아주 미약한 빛으로 겨우 볼 수 있을 뿐이다.
“루나.”
아몬드는 루나를 불러본다.
“나 여기야.”
어둠 한구석에서 루나가 부른다.
아몬드는 천천히 그쪽으로 기어갔다.
가까이 가니 뿌리들 틈에 숨어 있는 루나가 보인다.
얘는 시작도 전에 왜 숨어 있는 건지…….
“뭐 하는 거야.”
“일단 숨어. 너도.”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아몬드를 끌어당겼다.
졸지에 개구멍 같은 곳에 둘이 낑겨 버리게 됐으나. 루나는 개의치 않고 속삭인다.
“이곳에선 어떤 규칙이 주어질지, 혹은 어떤 규칙도 안 주어질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
“……왜. 넌 갔다 왔잖아.”
“하아.”
루나는 잠시 심호흡 비슷한 걸 하더니 자신의 상의를 끝을 위로 올려버렸다. 마치 옷을 벗을 듯이.
-???
-ㅁㅊ
-루입도 500배
-뭐여
-아 이거 ㅋㅋ
당연히 그녀는 다 벗지 않았다.
자신의 복부 상단에 써진 문자를 가리킬 뿐이다.
“보여? 이건 룬 문자야.”
룬 문자.
이게 왜 루나한테도?
근데 보던 것과 좀 다르다.
‘뭐야.’
아몬드는 혼란스러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루나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룬 문자에는 특별한 힘이 있어.”
“힘?”
“내가 시간이 되돌아가도 계속 인지할 수 있는 건 이 룬 덕분이지. 근데 이게 이 마지막 층에만 오면 빛을 점차 잃어. 지금도 별로 빛나진 않지?”
빛.
글자에서 빛이 난다.
‘그러고 보니 내 문자에서도 빛이 났었어. 기억을 열람할 때.’
아몬드의 몸에 새겨진 룬 문자도 기억을 보여줄 때 빛이 났었다.
즉, 룬은 작동할 때 빛이 난다.
스위프트가 폭발의 룬을 던졌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저건 계속 빛을 낸다?
그렇다면 계속 작동하고 있다는 뜻인가?
‘근데 무슨 뜻이야.’
해석도 안 된다.
이미 거의 모든 룬 문자를 알파벳으로 치환할 수 있는 아몬드도 이 룬 문자가 뭔 뜻인지 해석할 수 없었다.
‘딱 한 글자라니.’
심지어 저 룬문자는 딱 한 글자다.
그렇다는 건 알파벳처럼 표음이 아닌 한자 같은 표의 문자라는 걸까? 룬 문자도 종류가 여러 가지일까?
어찌 됐든 루나의 말을 더 들어보자.
“성소의 빛이 가까워지면 룬 문자는 힘을 잃어. 그리고, 이 층은 성소와 가장 가까운 곳이야.”
“그러면…….”
“그러니까 난 이 층에 대해선 잘 몰라. 여긴 매번 올 때마다 다르다는 것밖엔…….”
이럴 수가.
루나는 이쪽부터는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반복되는 이유를 모른다고 한 거야.’
아, 그러고 보니 루나는 아직도 자신이 과거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여긴다.
이 인식은 고쳐줘야 했다.
아무리 봐도 과거로 가는 방식이 아니었다. 기억을 잃는 것이다.
“루나.”
아몬드는 큰마음 먹고 그녀에게 고한다.
“……어?”
“너 과거로 돌아간다고 했지. 계속?”
“그래. 몇 번을 말해야─”
“그게 아니야.”
“뭐?”
“과거로 가는 게 아니라고. 그랬다면 왜 맨날 내가 다른 사람이겠어.”
“…….”
루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너 몇 번이나 반복했어. 그사이에 바뀐 인원이 있지 않았어? 과거로 돌아가는 거라면 불가능하잖아.”
“말했잖아. 과거로 돌아가도 변수는 생겨서 결국 참가자들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과거로 돌아가는 거치곤 너무 큰 변수 아니야?”
“심연은 그런 곳이야.”
“아냐. 우린 기억을 잃고 있을 뿐이야.”
“뭐……?”
“시간은 그대로야. 우린 기억만 잃고 있어. 그 증거가 있어.”
아몬드는 이번엔 자신의 상의를 조금 벗어 보였다.
“!”
루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런데 다음에 나온 말이 이상하다.
“너…… 이제 진짜로 날 믿는구나?”
“뭐?”
루나는 크게 안도한 듯 말했다.
“사실 네가 처음으로 내 제안을 거절해서…… 날 안 믿을 줄 알았어. 네가 이 문신을 보여주는 순간이 날 정말 믿는 순간이거든. 매번.”
“……”
그럼 이 녀석 회귀하는 게 아닌 것도 알고 있는 건가?
하기야, 생각해 보면 전임자 녀석들이 몇 번이고 보여줬을 거 아닌가?
모르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것일 수도.
“회귀가 아닌 건 알고 있었어. 아니,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게 맞지. 수십 번 전의 네 덕분에.”
“그럼 그냥 떠보려고 그렇게 말한 거야?”
“응. 나도 널 매번 믿을 순 없거든. 게다가 처음부터 기억을 잃고 있고 반복하고 있다고 설명하면 대체로 못 알아듣더라고.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하면 바로 비슷하게 알아듣는데 말이야.”
루나가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린다.
아몬드 생각엔 뒤에 붙인 말은 부차적인 이유고 첫 번째가 진짜였다.
제대로 된 플레이어가 들어왔는지 가려내기 위한 필터였던 셈이다.
-트롤 거르기 위한 거였누 ㅋㅋㅋ
-하기야 릴에서 동료를 믿는게 쉬운 일은 아님ㅋㅋ
-ㅇㅈㅋㅋㅋ
아몬드는 이만 화제를 전환한다.
어차피 이미 알고 있다면 더 말이 쉬워질 뿐 나빠질 건 없다.
“어쨌든 그렇다면 너, 스위프트가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스위프트도 기억을 유지 중이다?
글쎄. 확실한 건 아니었다. 심증이다.
이 몸에 새겨진 문신, 루나의 증언 그리고 아까 전 전투 때 보여준 모습 등.
심증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루나의 질문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정확힌 몰라. 심증만 있어.”
“그래?”
“넌 그렇게 생각해?”
루나는 끄덕이며 사연을 말한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심증이지만. 스위프트가 딱 한 번 이름을 잘못 불렀어. 실수로.”
“이름을?”
“응. 제이크라고 있어. 걘 죽었거든? 당시 기준으론 바로 전 회차에 죽은 애였어. 근데 걔랑 닮은 애가 하나 있었는데. 스위프트가 걔를 제이크라고 부른 거야.”
“알 리가 없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그래. 맞아. 심지어 스위프트는 전 회차에서도 걔네 둘을 헷갈려 했어. 하지만 걔네 둘 이름은 전혀 달랐거든. 나머지 한 명은 이름이 브래드였다고. 갑자기 제이크라고 부를 리가 없잖아. 스펠링도 전혀 다른데 말이야.”
만약 기억이 없다면, 스위프트가 헷갈릴 이유가 없다.
그 회차엔 제이크란 소년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물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어. 내가 가진 증거는 그래서 이 한 번뿐이야.”
딱 한 번 스위프트가 허점을 보인 걸까?
아니면 단순히 말이 헛나간 실수일까?
음. 애매하다.
이걸로 스위프트를 죽여야 한다는 건 더더욱 애매하다.
“네가 생각하는 심증은 뭔데? 아몬드.”
“스위프트가…… 널 의심하고 있어. 네가 접선하는 녀석들을 죽이고 있어.”
“그게 심증이야?”
“단 한 회차 의심했다면 너와 접선하는 애들을 죽일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해.”
“아.”
이것도 애매한 심증이긴 하다.
“그럼 일단 스위프트가 기억을 갖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
여기서 문제는 스위프트의 목적이다.
범죄 수사에서도 범행 동기까지 증명이 돼야 완벽하게 유죄를 선포할 수 있었다.
만약 스위프트가 기억을 갖고 있다면, 녀석의 목적은 대체 뭐란 말인가.
만약 이 반복되는 지옥을 스위프트가 실현하고 있는 거라면, 범행 동기는 뭐란 말인가? 이 심연을 반복해서 뭘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아니면, 혹시 그도 단순히 탈출을 하고 싶은 걸까?
“그럼 기억을 갖고 있는 스위프트의 목적은 뭐야.”
“그건 나도 모르겠어.”
“혹시 너처럼 탈출인 거 아냐?”
“……그건 아닐 거야.”
“왜?”
“난 탈출을 시도하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해봤거든. 일부러 안내를 잘못해서 숲의 끝자락까지 가게 한 다음 벽을 파본다거나…… 나무를 타고 끝까지 위로 올라가 본다거나…….”
“근데?”
“스위프트는 성소로 향하는 거 말고는 한 번도 다른 길로 샌 적이 없어.”
스위프트는 성소에 집착하고, 루나는 탈출에 집착한다.
“사실 성소로 가는 게 심연에서 탈출하는 가장 정석적인 방법이야. 제일 좋은 방법이지. 다만 난 그게 안 통한다는 걸 아니까…… 나중엔 다른 방법을 찾아봤던 거야.”
“스위프트는 아는데도 계속 성소만 가려 하고?”
“그렇지. 뭐…… 일단 성소에 도달하지 못하면 죽으니까 최소한 생존이라도 하자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계속 생존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적어도 시도라도 해야지.”
심연은 성소에 도달한 인원들만 살아남는 구조였다.
이건 어느 심연이든 똑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위프트와 루나는 한 번도 성소까지 못 간 적은 없었다는 얘기네.’
루나야 플레이어와 함께하니까 그렇다 쳐도 스위프트 이 녀석은…… 기억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매번 성소까지 가겠는가?
‘100%군.’
아몬드는 스위프트가 기억을 갖고 있는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기억이 있으니 성공 확률은 계속 높아져서 이젠 100%까지 도달한 거다.
‘대체 목적이 뭐지.’
다만 스위프트의 목적을 모르겠다.
왜 기억을 갖고 있는 걸 숨기고 있는 걸까? 탈출이 목적인 것도 아니라면 뭘까.
[데스패치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왜 스토리 모드 보러왔는데 또 데이트 하고 있누?]-ㅋㅋㅋㅋㅋㅋㄹㅇ
-남녀가 어두운 수풀에 숨어서 속삭이는ㅋㅋ
-이게 데이트가 아님 무냐고!!
-엌ㅋㅋㅋ
“데스패치 님. 후원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움직여야겠네요.”
그러고 보니 이곳에 너무 오래 몸을 숨겼다.
“언제까지 여기 숨어 있을 거야.”
루나에게 물었다.
“아…… 그, 그래. 나가야지. 하지만 아무 규칙도 안 정해졌고…….”
루나는 눈에 띄게 불안해하고 있다.
하기야, 그녀는 별다른 전투 능력이 없으니, 대체로 그간의 지식에 의존해서 살아남았을 텐데. 지금 잘 모르는 층에 와버리니 몸을 최대한 사리는 중이다.
“그, 그게 무슨 눈빛이야? 이걸 몇 번이나 했는데 아직도 싸울 줄 모르냐는 식의 눈빛이지? 나도 싸울 줄 알거든? 겁먹은 거 아냐.”
“아. 진짜?”
“…….”
아몬드는 루나의 믿지 못했다. 그간 보여준 게 있으니 말이다.
이걸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루나가 는 건 눈치뿐인 것 같다.
-ㅋㅋㅋㅋㅋ
-아 진짜?ㅁㅊㅋㅋㅋ
-소개팅남 PTSD
-아진짜 엌ㅋㅋ
루나는 조금 상처받은 듯 침묵한다.
‘플레이어가 먼저 나가야 하나?’
아몬드는 별수 없이 본인이 먼저 일어섰는데.
“내가 앞장설 테니까. 따라와.”
툭.
루나가 수풀에서 나가려는 그를 붙잡는다.
“네가 날 믿어줬으니까. 나도 보여줄게.”
“?”
“나도 나름의 전투 기술이 있어. 근데 이건 쉽게 쓸 수 없어. 기회는 웬만해선 한 번이야.”
루나가 뭔가를 보여주려는 그때였다.
펄──럭!
거대한 날개가 펼쳐지는 소리.
“규…… 규칙!?”
루나는 벌떡 일어났으나.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이건 규칙이 아니었다.
삐이이이이.
[생존 계약자 1명] [경연 종료]통보였다.
[승리자: 스위프트]-???
-이게 뭔 소리야 ㅅㅂ
-엥?
-갑자기?
-왜?
띠링.
[마지막 층(★) 클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