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555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23화
9. 추억의 스타 리그(3)
조선 대 잉글랜드.
대회도 뭣도 아닌 테스트 서버의 작은 이벤트 경기이지만.
조선 문명을 골랐다는 건, 시빌엠 유저들 사이에선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개중엔 시빌엠 국대팀들의 이목도 포함이다.
“어…… 최고다이순신 예전에 그 사람 아니에요?”
김치워리어가 먼저 알아봤다.
“쿠키 형이 그렇게 데려오려고 했던…….”
“맞아.”
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기회조차 주지 않았지. 그래서 기억해.”
국가대항전 참가를 거절하는 지휘관은 많았다. 그런데 개중에서도 최고다이순신이 기억에 남은 이유는 뭘까?
‘그런 압도적인 성적을 갖고도 거절하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쿠키가 보기에 최고다이순신은 시빌 엠파이어에 인생을 건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승률과 플레이였다.
수년의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야만 가능한 전략들을 너무나 능숙하게 사용했다.
그런 사람이 국가대항전이라는 명예를 거절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쿠키와 대면하는 것조차 거절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한국에서 지휘관을 열심히 플레이하는 사람들이라면 쿠키라는 인물에 대해 약간의 환상을 갖고 있었으니까.
물론 최고다이순신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사코 거절의 연속뿐이었다.
‘너무 완강하더라니.’
쿠키의 눈이 사랑의 휠체어로 향해있다.
저것 때문일까?
* * *
“이야. 패기 있는 조선 문명 픽!”
“이러면! 활 대 활의 대결이죠!?”
잉글랜드는 장궁.
조선은 각궁.
“그렇습니다. 장궁 대 각궁!”
각각 시대는 다르지만 활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문명들이었다.
잉글랜드는 장궁으로 2시대에 어떻게든 큰 이득을 봐야 했고.
조선은 어떻게든 3시대까지 버티면서 각궁과 산성 전투로 적의 고지를 점령해 나가야 했다.
“아…… 잠시만요?”
캐스터가 잠시 중계화면을 보더니 어딘가를 가리킨다.
‘어?’
나잖아?
그가 가리킨 곳은 상현이 있는 쪽이었고.
카메라에도 그가 나오고 있었다.
“그렇죠! 활! 활 하면 아몬드죠! 아몬드 님이 여기에 관전을 오셨네요!”
와아아아아아!
관중들이 그를 향해 환호성을 질러준다.
옆에 있던 제시는 깜짝 놀랐다.
그가 이렇게 인기가 많은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아. 옆엔 누구죠?”
카메라가 잠시 제시 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게임 화면으로 바뀐다.
“아…… 그…… 모른 척해드리겠습니다~”
-ㅋㅋㅋㅋㅋ앗ㅋㅋㅋ
-그게 더 나빠 ㅋㅋㅋ
-진짜 뭐 있는거처럼 말하네
오오오오~
현장의 사람들은 묘한 환호성을 내줬다.
“자, 활의 본좌. 아몬드 님이 보고 계신 활의 대결입니다. 여러분.”
“예! 다시 게임 얘기로 돌아가 보죠!”
“이 두 문명의 상성은 꽤 유명해요. 여러 가지 정황상 잉글랜드가 유리하죠?”
“예. 장궁병이 2시대부터 나올 수 있다는 점.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다는 게…… 큰 이점입니다.”
“사실 가격이 비싼 편인데. 각궁병이 워낙 비싸서 그게 상쇄되는. 그런 상성이 되겠습니다.”
“맞습니다.”
“이순신장군 님이 지금 뭔가 특별한 묘수를 들고 온 게 아니라면. 불리할 수밖에 없는 매치업입니다.”
흔히들 상위호환이라고 한다.
A가 갖고 있는 장점을 B 또한 그 이상으로 갖고 있고, 심지어 다른 뛰어난 점도 있을 때.
B 대신 A를 쓸 이유가 전혀 없을 때.
B는 A의 상위호환이다.
여기서 B가 잉글랜드고 A 조선이다.
적어도 2시대까지는 그렇다.
3시대만 가면 이기는 거 아니냐? 하겠으나. 2시대가 있어야 3시대도 있는 거다…….
“조선은 뭔가 묘수를 써야 해요.”
언더독에게 늘 필요한 게 ‘묘수’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뭔가를 취해내야 하는 것이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는 것인데.
보통 살을 내주고 뼈까지는 아니고 신경 정도 끊어놓는 것에 그친다.
하지만 사랑은 뼈를 취했다.
“자! 자 조선 단궁 부대! 단궁을 이렇게 많이 뽑는 경우는 드문데! 몰래 적진에 투입됩니다!”
“게릴라전이죠!? 단궁부대가 이동 속도 하나는 궁병들 중에서 꽤 빠른 편이거든요!”
잉글랜드 장궁병보다 궁병으로선 뭐 하나 나은 게 없는 조선의 단궁병.
그런 그들이 갖는 이점은 ‘기동성’이다.
이 점 하나만큼은 ‘상위호환’되지 않는 것이다.
피융! 피융!
금광 뒤로 돌아들어 온 단궁병들이 일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기 시작한다.
장궁병과 정면으로 붙으면 당연히 지겠지만. 애초에 싸워주질 않는 거다.
“이러면 장궁병도 조선 본진으로 가야죠!?”
“하지만 이미 휘둘렸어요. 이미 일꾼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있고! 자원 줄이 잠시 동결됐거든요!”
단궁병은 장궁병보다도 더 싸다.
그만큼 효율이 안 좋아, 잘 쓰이지 않지만. 이렇게 전략적으로 쓸 수 있다면 좋을 수도 있었다.
“장궁병 부대 뒤늦게 조선 본진으로 가는데……!”
“이게 지금 능동적으로 가는 게 아니라, 거의 무슨 억지로! 억지로 가고 있어요! 억가에요! 억가!!!”
-억가 ㅋㅋㅋㅋ
-십ㅋㅋㅋㅋ
-ㄹㅇ 억가넼ㅋㅋ
-와 조선 기동성 ㄷㄷ
-이게 조선이여 베트콩이여
이미 사랑의 게릴라 전략에 휘둘린 뒤였기에, 그들이 오는 동선은 훤히 읽혀 버렸다.
조선은 지형 활용 꼼수를 많이 갖고 있다.
“거, 거기로 가면 안 됩니다아!”
쾅!
장궁병들 몇이 큰 구덩이로 빠져 버렸다. 그 안엔 날카롭게 갈린 죽창들이 여럿.
푸부북!
구덩이 안이 피바다가 되며 전멸한다.
“이게 조선이다아악!”
“여기 조선 땅이야! 이 섬깡패들아!”
-함정 위치 지렸다
-이게 벌쳐와 마인의 민족!? 이게 벌쳐와 마인의 민족!? 이게 벌쳐와 마인의 민족!?
-크
-디스 이즈! 코레아!
조선은 이런 함정 따위로 시간 끌기에 능했다. 적이 어디로 올지만 안다면야.
“하지만 조선은 지키는 병사가 몇 없죠!?”
“일꾼들이 동원됩니다! 조선이 그 팩션(*문명 특성) 중에 병농일체라고, 일꾼들이 다른 문명보다 조금 더 셉니다!”
“그렇죠! 옛날에 조선시대 때는 농사짓다가 강제 입대하고 막 그랬잖아요?”
“예비군이죠! 다 나와! 동원 예비군!”
-군바리의 나라 ㅋㅋ
-굳건이 등장 ㅋㅋㅋㅋ
-예비군 ㅇㅈㄹㅋㅋ
조선이 일꾼 전투 효율이 좋은 건 맞는데.
어찌 됐건 일꾼이다.
이들이 싸우는 동안 일부 자원 수급이 원활치 않아진다.
그런데─
“자, 잠시만요!? 지금 잉글랜드 쪽 맵이 이상한데요!?”
“타, 타워러쉬! 방어 초소 러쉬에요!”
“단궁병들 사이에 일꾼이 섞여 있었습니다!?”
조선의 게릴라전 병력들 사이에 일꾼이 몇 껴 있었나 보다.
금광에서 잉글랜드 일꾼들을 몰아내고 방어 초소를 세우고 있었다.
“난장판으로 가자 이거죠!?”
“너네 병력 일로 안 돌려!? 금광 안 캘 거야!?”
“일꾼 다 죽어요!”
“아니. 저 병사들 꼭 이 게릴라전을 위해서 훈련된 것처럼 엄청난 움직임입니다!”
시빌엠이 일반적인 RTS와 가장 다른 건.
유닛 하나하나가 실제 플레이어라는 것이다.
이게 이 게임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포인트인데.
지휘관이 아무리 그럴듯한 계획을 갖고 있어도, 막상 제대로 구현이 안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번엔 꼭 그녀와 합을 맞춘 병사들처럼 완벽한 게릴라전을 선보이고 있었다.
“이 또한 지휘관의 능력일까요!?”
공부에서도 간혹 이런 강사들이 있다. 딱딱 요점만 짚어서 시험을 어떻게든 통과시키는 사람들.
지휘관들 중에서도 그런 자들이 있다.
중요 포인트만 딱 짚어서 완벽하게 부대를 통솔해 내는 자들.
“잉글랜드! 결국 회군!!”
“아……! 지, 지금 이게 잉글랜드는 조선의 상황이 안 보이잖아요!? 그래서 회군한 거죠!?”
조선도 이미 난장판이었다. 다만 잉글랜드는 조선 상황을 잘 알지 못했다.
여러 함정과 일꾼들의 거센 저항으로 안쪽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선은 일꾼 피해가 막심했었다. 사실상 일꾼들의 시체로 적의 진입을 막아냈으니까.
물론 잉글랜드 입장에선 조선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겨를은 없고, 자신의 집이 불타는 것만 계속 눈에 들어올 테니.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 회군은 최악의 선택이었습니다!”
두둥.
[3시대 – 성주 시대]산성, 각궁, 기마 궁수 등의 조선에게 유리한 팩션이 죄다 몰려 있는 3시대가 왔다.
“성주 시대라고 하는데. 조선 유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수시대!”
“조선의 성수기라는 거죠!”
-성수기 ㅋㅋㅋ
-ㄹㅇ
-성수기는 못참지
-물가 폭등 ㄷㄷ
3시대에 접어들고 각궁병들이 하나둘 나오면서 상성은 완전히 뒤집힌다.
“아…… 영국은 3시대에 별게 없거든요!? 그나마 석궁병이랑 정예 기사 정도!?”
“정예 기사들은 사실상 기본적인 창병만으로 커버됩니다! 문제는 각궁병! 그리고 기마궁수예요!”
결국 적의 본진이 터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퍼엉……!
“Damn. she’s good.”
옆에서 제시가 감탄한다.
상현은 게임을 잘 볼 줄은 모르지만. 잉글랜드를 상대해 봤던 입장에서 이긴 것만으로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 2시대 상성이 정말 안 좋거든.’
물론 상대 지휘관의 실력, 상대 지휘관에 배정된 병사 플레이어들의 실력 등등.
변수는 아주 아주 많다.
시빌엠은 원래 그런 게임이다.
그럼에도 승리를 얻어내는 게임이다.
“조선! 승리!!!”
“와아아아! 박수 한번 주시죠!”
그리고, 승리한 사람이 환호와 박수를 얻어내는 것이다.
“자, 승자승으로 처음으로 5연승을 달성하면 이기는 방식이죠!? 자…… 다음! 한번 외쳐주세요! 최고다이순신 님!”
솔직히 호응 안 해줄 거라 생각했다.
곱디곱게 자란, 예의는 지키지만 까칠한 아가씨.
상현의 머릿속 사랑은 그런 이미지였으니.
그런데, 그녀가 손을 번쩍 들며 신나서 외치는 거 아닌가?
“다음!”
푸핫.
상현은 저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렸다.
저 사람…… 저렇게까지 신낼 줄 아는 거였다니.
* * *
조선 대 잉글랜드 이후.
사랑은 -좀 더 쉽게 이기고 싶었는지- 조선 문명을 고르지도 않았고, 상현도 굳이 경기를 더 지켜보진 않았다.
제시와 이만 작별 인사를 해야 할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See ya~”
제시는 가벼운 포옹과 허공 입맞춤으로 친밀감을 표시한 뒤. 그대로 떠나버렸다.
-ㅈㄴ 부럽네 아몬드 쉑
-오늘의 교훈) 영어를 개떡같이해도 잘생기면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엄마! 토익학원에 다닐게 아니라 성형외과에 가야됐어! 애초에 난 기회도 없다고!!
제시의 아주 가벼운 스킨십에도 활활 불타버리는 휘발성 낮은 사람들의 채팅도 많았지만.
-제시…… 사랑했다.
-쿨하게 가네 ㅠ
-ㅠㅠ제시좌 ㅠㅠ
-언제 또 볼 수 있냐고 ㅠㅠ
-21세기 신념의 연락처인 룬스타 교환했으니 ㄱㅊ
-아쉽……
제시와 헤어지는 것 자체를 아쉬워하는 채팅도 당연히 많았다.
“음. 저도 아쉽네요. 저녁 정도는 같이 먹을 줄 알았는데.”
약속하고 만난 것도 아니다 보니, 각자 스케줄이 있으니 별수 없다.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날 터다.
“그럼 매니저랑 본투비 님이랑 같이 저녁을 먹으러─”
그때, 제시의 빈자리를 단숨에 채워 버릴 메시지가 도착한다.
──띠링!
[오늘 오후 9시 30분. 달성하신 챌린지 포인트에 따라 포상이 있을 예정입니다!]포상?
갑자기 의식 저편의 기억이 꿈틀거린다.
여태 잊고 있던 무언가.
「지스타에서 챌린지 많이 이기면 랭킹을 세워서 추가로 보상해 준다더라. 여러 가지로 괜찮은…….」
주혁이 지스타에 대해 브리핑할 때 했던 말이었다.
‘아.’
그제야 상현은 고글 한편에 써진 챌린지 포인트를 바라본다.
‘……이게 얼마나 높은 건지 잘 모르겠네.”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얼마나 높은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애초에 챌린지를 몇 개 하지도 못했잖아.’
비교할 것도 없다.
허비한 시간이 너무 많았다.
아마 1등을 하기엔 턱없이 모자랄 거다.
상현의 시선이 시계로 향한다.
‘지금 5시.’
이제 오후 5시다.
앞으로 4시간가량 남았다.
잠시 조용해진 상현의 반응에 시청자들이 놀린다.
-왜 또 금시초문인듯한 반응?
-설마 몰랐냐고 ㅋㅋ
-이래서 이제 그만하려함??ㅋㅋㅋ
-에이 아무리 “견”이라도 이걸 몰랐냐고 ㅋㅋㅋㅋ
“1등 보상 뭔데요?”
채팅을 가만히 살펴보던 상현의 동공이 커진다.
“천만 원이요!?”
아니. 사실 100만 원이다.
시청자들이 속인 거다.
“다음 챌린지 갑니다.”
하지만 상현은 다음 챌린지를 향해 이미 눈을 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