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617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85화
30. 괜찮아, 다시(2)
지아는 살면서 카드값이 연체됐던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그녀는 급하게 옷을 아무거나 걸쳐입으며 당시를 회상해 본다.
“한 번은 남캠 영상에 아무렇게나 후원하다가…….”
최근 것부터 말해보자면, 잘생긴 남자 인터넷 방송인들한테 후원을 꽤나 해댔었다.
소위 돈지랄이었다.
이 돈지랄은 처음엔 인터넷 방송인들한테 가던 게 아니었다. 남자 아이돌부터 시작했다.
사실 이 덕질이란 게, 그냥 무난하게 하려면 돈이 드는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극단적으로 가는 경우였고, 지아는 당시에 기댈 곳이 없어 한없이 극단으로 치우치고 있었다.
어떻게든 눈에 띄고 싶고, 한 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었다.
그러려면 돈이 많이 필요했다.
돈을 많이 써도, 이야기를 하고, 교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연스레 관심은 작은 규모의 스트리머들에게 옮겨갔다.
이제 막 방송을 시작했지만, 얼굴은 꽤나 곱상하고 돈 쓰면 쓰는 대로 친절하게 대해주는…….
“하아…… 젠장!”
지아는 신발을 급히 신고 헐레벌떡 뛰어나가며 눈을 질끈 감았다.
타다다다닥…….
그때의 그녀는 지금 같지 않았다.
이대로 그냥 죽을 거라 아침에 생각하다가, 점심밥 정도를 먹고 나면 다시 어느새 좋아하는 올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 버린다.
그중 얻어걸린 게 아몬드의 영상이었다.
처음부터 거액 후원으로 주목을 받은 건 그러니까,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었다.
그녀의 패턴이었다.
동시에, 기적이었다.
그 기적이 지금 그녀를 살아서 숨 쉬게 하고 있는 것이다.
기어코 벼랑 끝에서 잡아 올린 것이다.
지아는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거의 반쯤 구르듯이 뛰어내렸다.
곧 있으면 점심시간이라 대기 시간이 길어진다.
“하아…… 하아…… 두 번째는…….”
머릿속 기억이 그보다 훨씬 더 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간다.
모든 사태의 원흉.
날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그 자식과 만나던 그 시절.
“……그 개자식이 사업한다고 돈 빌려갔을 때.”
이때 지아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카드값이 밀려봤었다.
더 지체되면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말까지 듣게 됐었다.
그 말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사회적 사형 선고를 당하는 그 기분.
자신의 연인이 그 사형 선고문을 읽어주는 그 기분.
지아는 입술을 짓씹으며 뛰어내려갔다. 거칠게 발라진 시멘트에 발목이 긁혀 피가 흘렀지만.
추위로 얼어붙어 흰 속살이 다 땡땡 부었지만, 알 수 없었다.
“하아…… 하아…….”
띠링~~~!
“어서 오세요. 실한 은행입니다. 번호표는 안쪽에 있습니다.”
어느새 도착한 은행의 정문을 밀며 들어가, 번호표를 뽑고 앉아서 따뜻한 히터 바람을 맞을 때가 돼서야 깨달았다.
“!”
따끔.
발목에서 피가 맺혀 또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큰 상처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당장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일단 그냥 두기로 했다.
띵동~!
“32번 고객님~”
그녀의 순번이 호명됐을 때.
그녀는 이런 때마다 주문처럼 말하곤 했던 말을 중얼거렸다.
‘난 괜찮아.’
난 괜찮을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괜찮아.
* * *
철컥…….
지아가 떠난 지아의 집.
낡은 문의 자물쇠가 스르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작은 마당이 보인다.
지아의 집은 달동네 흔히 있는 한옥 비스무리한 집이다.
한옥의 구조를 갖고 있으나, 한옥의 고풍스러움은 담고 있지 못한 집이다.
세월을 고이 담아놓은 것이 아니라, 그저 방치해 오래되어 버린 집.
그럼에도 주혁에겐 친숙한 공간이었다.
“지아야. 밥 먹으러 가자.”
언제부턴가 제집처럼 편안하게 드나들게 되었다.
그래서 전화를 하기보단 그냥 내려가는 길에 부르러 온 것인데.
“지아야~”
뭔가 기척이 없는 듯하다.
‘어?’
주혁은 고개를 갸웃하며 집 안으로 들어간다.
단순히 기척이 없는 게 아니다.
‘신발이…….’
마루 아래 가지런히 놓여 있던 신발들이 흐트러져 떨어져 있는 모습.
어딘가 급하게 나간 것 같았다.
“음…….”
똑. 똑.
주혁은 혹시 몰라 방에도 들어가 봤으나.
역시나 그녀는 없었다.
“왜 그래! 없어?”
대문 밖, 멀찍이서 상현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어. 없네! 어디 갔나 봐. 전화해 보고 안 받으면 우리끼리 먹자.”
주혁은 대수롭지 않은 말투였으나.
‘이상하네.’
이상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지아가 이렇게 일찍부터, 자신에게 말도 없이 집을 비우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지아]전화를 걸어봐도, 받지 않았다.
“뭐…… 그냥 가자. 안 받네.”
“간만에 오강우 김치찌개 가는데. 아쉽네.”
상현은 입맛을 다시며 앞장서 달동네의 계단을 내려갔다.
주혁은 간단한 메시지를 남겨두며, 뒤를 따라나섰다.
* * *
그 시각.
실한은행 안.
“제, 제가 그 새끼 빚을 갚고 있는 거라구요?!”
지아가 창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친다.
다른 자리에 있던 손님들이 전부 일어나서 돌아볼 정도였으나, 지아는 신경 쓰지조차 못했다.
이 사람들이 단체로 일어나서 자신을 향해 수리검을 날린다고 해도, 지금 일어난 사건보다 덜 충격적일 테니까.
“네…… 현재 대출 이자 납입이 너무 지나셔서, 계좌가 잠시 동결됐습니다.”
“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데요!?”
직원은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깜짝 놀라 소리치는 지아와는 정반대로 굉장히 침착하게 상황을 읊어준다.
“보증을 서주셔서요. 피보증인이 변제 능력이 사라져서, 보증인에게 빚이 넘어왔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이자만이라도 납입하시면 동결은 해제되니까요.”
보증……?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지아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하아.”
사람들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쯔쯧…….
어쩌다 저리 됐누…….
어른들이 허구한 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보증은 절대 서지 마라, 집안 말아먹는 지름길이다. 보증 서면 호구 된다.
예. 그 호구가 접니다.
그 미친년이 저였다구요!
지아는 과거의 자신에게 그렇게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니지. 내가 괜히 서준 게 아니라고.’
이내 정신이 들었다.
보증 섰다고 해서 그 사람 빚을 내가 대신 변제하는 게 말이 될 수는 없다.
적어도 이번 케이스는 말이다.
“아니. 뭔가 착각하시는 게 있으신 거 같아요.”
“네? 분명히 맞는…….”
“아뇨. 그 사람 변제 능력이 있단 말이에요. 그 사람 대기업 다닌다구요! 최강 기획!”
대기업 근무자에게 대출은 어지간히 수익 높은 개인 사업자보다 잘 나온다.
왜겠는가?
회사에서 꼬박꼬박 돈이 나오니까.
지아는 자신의 전 연인이 최강 기획을 다니는 걸 두 눈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변제 능력이 없다고? 말이 안 된다.
“최강 기획. 심지어 경력직으로 이직한 거구요. 연봉이 최소 9천은 될 텐데. 왜 변제를 못 해요?”
“그런 경우라면 당연히 본래 채무자가 변제가 가능하세요.”
“그쵸? 그런 경우에는 그 사람이 갚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는 계약이었어요.”
“찾아보겠습니다.”
잠시 후.
창구의 직원은 영문을 몰라 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 그 사람이라는 게 혹시 이경호 대표 맞나요?”
“?”
대표?
아뇨? 과장 나부랭이인데요?
이 말이 턱 밑까지 왔었다가 들어간다.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랬지.
그랬던 거였지.
“설립하신 법인이 있으신데…….”
그 사람이랑 그런 미래를 꿈 꾸던 때도 있었지.
순간 눈앞에 호화롭게 짜여진 하얀 실크 천이 나풀거린다.
환상? 환각?
무엇이든 오래가진 않았다.
댕~
커다란 종이 울리며, 모든 게 사라졌다.
지아는 저도 모르게 배를 부여잡는다.
찢어질듯이 아파왔다.
이 또한 진짜 통증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에겐 진짜였다.
직원은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말을 이어나갔다.
“괜찮으신가요?”
“아…… 네.”
지아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대답했다.
“현재 대출은 이경호 앞이 아니라, 그 분이 세운 법인 앞으로의 대출이구요. 그 보증을 고객님이 서신 거고, 지분은 없지만 역시나 대표이사로 되어 있으세요. 그리고, 그 법인은 현재 변제 능력이 없습니다.”
이경호는 변제 능력이 있지만, 그의 법인은 없다.
그래, 그렇겠지.
그 법인으로 뭘 하려던 계획은 전부 수포로 돌아갔으니까.
그 이후로도 직원은 최근 어떤 어떤 법이 바뀌어서 등…….
모르는 이야기들을 나열했으나.
지아의 귀엔 이미 잘 들리지 않았다.
앞의 이야기만 들어도, 그녀는 자신에게 선고된 결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빚 얼만데요.”
이 빚은 명백히 자신의 앞으로 왔던 것이다.
“1억 4천에서 현재 8천만 원 남았습니다.”
이경호가 6천은 갚았다는 건가? 작은 돈은 아니지만, 못 갚을 돈도 아니었다.
“하…… 진짜…….”
그녀는 다시 몰려온 복통에 배를 움켜쥔다.
머리가 핑 돌 정도로 아프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이미 이 창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끝났음을 지아는 직감했다.
그녀는 일어나 가방을 챙겨 다시 출입구로 걸었다.
발이 알아서 움직여 몸이 끌려가는 것인지, 몸이 나가면서 발이 끌려오는 것인지.
어떻게 걷는지도 몰랐다.
은행 출입구까지의 길이 이토록 길었나?
마치 네가 여길 갈 수 있겠니? 라고 묻듯이, 온 세상이 그녀를 향해 갸우뚱한다.
휘청─
순간 틀어진 중심은 다시 세워지지 않았고, 그녀는 그대로 무너졌다.
쿵!
온몸이 울리는 듯한 진동이었다.
배가 찢어질듯이 아파왔다.
몸 깊숙한 곳 안에서 누군가의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
웬 아이가 목놓아 우는 소리.
무어라 말하고 있으나, 너무나 서럽게 울어서 무어라 하는지 모르겠는.
“──아아.”
결국 입안 가득 넘실거리던 비명이 흘러나왔다.
“아…… 아아아아윽! 흐으윽……!”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보지만, 이미 넘쳐 흐른 것마저 막아낼 순 없었다.
“아, 아이고. 학생? 괜찮아?”
희끗한 머리의 노년 여인이 그녀에게 다가온다.
“아이고! 다리에 피가 많이 나는데? 겨울에 이러면 너무 아파. 응? 여, 여기요! 거기 경찰 청년. 이 아가씨 좀─”
넘어져서 주저앉은 것으로 생각한 것일까?
여인은 은행 앞에 선 경비를 부르며 도움을 요청했다.
─턱.
지아는 있는 힘을 다 끌어내 여인의 손을 잡았다.
“저 괜찮아요.”
“그, 그래?”
그녀는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주저앉고 만다.
그래, 분명 괜찮아.
난 괜찮아.
다리를 봐. 피만 조금 날 뿐 멀쩡해.
“어이구. 아, 안 괜찮은 거 같은데?”
그런데…… 흘러내리는 건 피만이 아니었다.
눈물은 곧 바닥을 치며 쏟아졌다.
“하…… 학생?”
여인은 당황하여 안색을 살폈다.
그녀의 손이 상의 아랫단을 꾸깃하게 쥐었다.
“나…….”
뭔가를 꺼내고 싶다는 듯.
“나, 아…… 안 괜찮은 것 같…… 아요…….”
시야가 옛 기억처럼 흐릿해져갔다.
창구 뒤에 있던 직원들과 입구에 서 있던 경비원들의 발이 바쁘게 움직였다.
타다다다닥……!
수많은 구둣발이 바닥을 박차며 뛰어오더니, 곧이어는 벽까지 타고 뛰어온다.
쿵!
한 번 더 울리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암전한다.
그녀는 잠시나마 아프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