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61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87화
30. 괜찮아, 다시(4)
주혁은 대충 직감하고 있었다.
지아의 주변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일단 그녀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비교적 평범하지 않은 동네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가족의 흔적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전에 사귀던 연인에 대한 언급도 겨우 얼마 전에야 들었던 것뿐이다.
아마 그마저도 주혁이 직접 그를 봤기 때문에 말했던 것이리라.
‘무엇보다 돈이 안 모이고 있어.’
주혁이 또 우연찮게 그녀의 이상함에 대해 알게 된 건, 체크 카드 때문이다.
지아는 사회생활을 꽤 일찍 시작했음에도, 신용 카드보단 체크 카드를 활용했는데.
체크 카드에서 한도 초과라고 나왔다는 것.
즉, 지아의 통장에 잔액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회 초년생이었다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겠으나.
그녀는 얘기가 달랐다. 아몬드 채널의 메인 편집자로서, 그녀는 영상이 잘될 때마다 상당한 액수를 받고 있었다.
그렇다고 주혁이 알고 있는 한 대단한 소비를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돈이 부족했다.
심지어 지아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주혁에게 카드를 건네줬던 게 다름 아닌 지아였으니.
본인도 본인의 돈이 없던 걸 모르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와중에 지아가 기절했던 장소가 참 공교롭다.
‘그런데 하필 은행에서 기절했었다니.’
은행.
주혁에게 말도 없이 아침부터 나가더니. 향한 장소가 은행이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다리에 긁힌 상처도 많았다.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을 당한 건지. 무슨 일에 휘말린 건지.
아니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주혁의 생각이 더 전개되기 전에, 다행히 지아는 이야기를 시작해 줬다.
“전에 만났던 사람 얘기야…….”
그는 전문대 출신인 그녀를 유일하게 편견 없이 능력으로 대해준 상사였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시작은 나쁘지 않았어.”
그녀의 능력을 어쩌면 가장 먼저 알아봐 준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 역시 주변에서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람.
인정과 애정, 충성과 사랑, 남과 여.
점점 구분되지 않기 시작했다.
세상은 알록달록하게 빛났고, 그 빛들은 전부 한데 모여들어 섞이기 시작했다.
빛은 섞여들수록 점점 밝아지기만 했다.
결국 그녀는 그와 함께하는 밝은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이 시작해 보자. 우리 능력이라면 할 수 있어.」
둘은 본격적으로 미래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망상이었어.”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의 세상은 새까만 칠흑.
빛이 아니었다.
아무 물감이나 섞은 듯한 진흙탕이었다.
아무도 쉽사리 다가오고 싶지 않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웅덩이.
주혁은 그 안으로 손을 성큼 넣어 헤집어본다.
“그러니까…… 같이 법인을 준비했고.”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와중에 네 보증으로 된 대출도 있었는데. 그런데…… 이별 후에 회사는 사실상 그 사람의 비전으로 운영되던 거라서…… 그 사람이 갚기로 한 건데 안 갚았다는 거구나. 넌 아예 잊고 있었고.”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더 천천히. 면목이 없다는 듯.
누가 봐도 자신의 실책이었다.
법적으로 전혀 그 사람이 안 갚아도 되는 것 아닌가.
“그 회사는 도대체 뭔데? 운영은 했던 거야? 업종이 뭔데.”
“대중문화예술…… 기획업? 그 사람이 연예 사업 쪽 광고 특화라…….”
주혁이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왜…….”
“아, 아냐. 잠깐 딴 생각난 게 있어서. 연예 사업 광고가 특화라서, 우리랑도 마주쳤던 거구나? 사업이 시작된 적은 있어?”
“몰라……. 나라에서 지원도 받고 했는데. 결국 다시 이직한 거 보니까, 운영도 안 했을 거 같아.”
“그럼 법인 명의로 빌린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단 거지……?”
주혁은 턱을 매만지며 갸웃거린다.
“법인 명의로 빌렸고, 지원도 받았다면 법인 명의로 썼다는 건데 그러면 사업적으로 썼다는 건데. 사업이 시작된 적은 없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주혁.
지아는 슬쩍 그의 눈치를 살핀다.
이런 어이없는 함정에 빠진 날 얼마나 한심하게 볼까.
“이 돈이 어디로 빠졌는지가 핵심일 수도 있겠는데…….”
그런데, 그녀가 살핀 주혁은 정말 진지하게 해결책을 고민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의 표정 어디에도 한심하다는 듯한 경멸은 느낄 수 없었다.
그냥 조금 어려운 수학 문제를 받은 고등학생 같았다.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봐.”
“법카 사용처를 봐야 맞겠는…… 뭐?”
주혁은 무슨 소리냐는 듯 돌아봤다.
“왜 그렇게 생각해야 되는데?”
“그야…… 이딴 일이 벌어졌잖아. 그때 난 바보같이 법인이 뭔지도 모르고. 사실 지금도 잘 몰라.”
피식.
주혁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웃는다.
“당연히 모르지.”
그럴 수밖에 없다.
지아의 나이에 이런 걸 다 안다는 게 이상한 수준이다.
“그리고 사업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어. 멍청한 게 아니라, 그냥 순간 판단을 잘못한 거야. 파트너를 잘못 고른 거지.”
사업하다 보면 늘 생기는 인간에 대한 리스크.
주혁은 항상 알고 있었다.
아버지를 통해서 배운 것들이다.
“사업…… 리스크…….”
지아는 주혁의 세계에서 쓰는 단어를 천천히 읊조려 본다.
‘그렇구나.’
왜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내가 그에게 당했다고만 생각하고, 그런 뻔한 속임수에 당한 게 창피하다고 여겼을까?
난 파트너를 고르고 싶었던 것일 뿐이고, 그 과정에서 작은 리스크가 터졌을 뿐이라는 걸…….
리스크라는 건 안 터지면 좋지만, 터져도 별수 없다. 터질 확률이 늘 있으니까 리스크인 거다.
“리스크보다 리턴이 높기만 하면, 리스크가 터져도 계속해서 반복해서 큰 수의 법칙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 그러니까 이런 건 별것도 아니야.”
주혁이 씩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니까, 일단 큰 고민하지 마. 최악의 상황엔 어차피 갚아야 했을 빚을 갚으면 되는 거야. 액수도 그리 크지 않고.”
맞아. 이 빚 정도 갚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못 갚을 액수가 아니다.
이 돈을 갚는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화가 났을 뿐이었는데.
내 잘못된 선택에 대한 비용이라고 생각한다면 납득이 된다.
지아는 이 단순하고 명쾌한 결론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세상이 밝아지고 있었다.
‘빛이…….’
세상이 다시, 알록달록한 빛으로 물든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어떤 말을 읊조린다.
“괜찮아. 다시.”
“응……?”
“나 그 말이 너무 좋아.”
주혁이 자주 쓰는 말.
“괜찮아. 다시…… 괜찮아. 다시 하면 돼. 괜찮아. 다시 일어서면 돼. 괜찮아 다시…….”
다시 반할 테니까.
“다시 말해줘.”
“…….”
주혁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 그게 뭐였더라? 하하.”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딴청을 피웠다.
“아까 했던 말.”
“그러니까 그게 기억이…….”
“나가.”
“…….”
* * *
지아는 일단 주혁의 설득 끝에 따로 더 안정을 취하기로 했고, 주혁은 이만 일을 보러 나가기로 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알았어.”
입원실 문을 닫고 나오는 길.
주혁은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하.”
하얀색 복도를 걸어 나가며, 주혁의 눈이 잠시 감긴다.
‘그 자식…….’
지아의 앞에선 티 내지 않았으나.
천불이 끓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해결할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지아가 본인이 해결해 보겠다고 했으나.
주혁은 주혁대로 방법을 찾아볼 것이다.
법대로, 매뉴얼대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아직 어린 지아에게 맡기기엔 너무 거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척.
[스케줄]주혁은 아몬드의 스케줄을 확인한다.
[히트맨 시뮬레이터 촬영]3주 뒤.
국가대항전 예선이 끝난 뒤 잡혀 있는 촬영이다.
이 광고가 분명히 최강 기획과 함께 만드는 거라 했지.
“이경호…….”
주혁은 까먹지 않겠다는 듯 그의 이름을 되새겼다.
모든 관련자가 현장에 나오지 않지만, 이경호는 분명히 촬영 현장에 나올 것이다. 저번 촬영 때도 그는 등장했었으니까.
직군 자체가 촬영 현장 쪽으로 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어. 주혁쓰.”
“?”
상현이었다.
복도 반대편에서 급하게 뛰어온 듯한 기색이다.
“벌써 나오는 길이야? 지아는 좀 어때?”
그는 주혁과 식사 후 간단히 방송을 하고 있었던 터라, 늦게 소식을 접했다.
“아…….”
주혁은 무어라 설명할지 고민됐다.
상현에게 비밀로 하고 싶은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지아의 이야기는 예외겠지.
“어. 그냥 안정을 좀 취하면 된대. 대신 편집은 힘들 것 같더라.”
“아. 그렇구나. 다행이다. 편집은 상관없어. 게다가 오늘 보조 편집자 면접 본다며.”
“맞아. 지금 가는 길이다.”
“먼저 가라. 그럼.”
상현은 끄덕이고는 주혁을 지나쳐 지아가 있는 입원실 문을 열었다.
드르르륵!
참 요란하게도 열었는데.
“…….”
주혁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왜 그래?”
“거기가 아니니까.”
“……?”
그 순간, 열린 입원실 문틈에서 갑자기 이런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아몬드 아냐?”
“헐. 아몬드 여기 왜 있지? 나 방금 방송 봤는데?”
쿵.
상현은 얼른 다시 입원실 문을 닫아버리고는 호수를 확인한다.
“여기 아냐?”
“아냐. 길치인 건 여전하구나.”
“길치 아닌데. 아, 이제 진짜 알았다. 가라.”
상현은 바로 옆 입원실을 열려 했다.
“거기도 아냐. 21호야. 인마. 어휴.”
주혁은 답답한지 결국 입원실까지 상현을 끌고 가줬다.
* * *
드르륵.
상현이 입원실을 열고 들어가자.
지아의 침대는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어? 아몬…… 아, 아니, 오빠도 왔구나.”
지아는 아몬드라고 부르려다가 주변의 시선이 걱정되어 그냥 어색한 호칭을 써버린다.
“……?”
갑자기 오빠라고 부르는 통에 상현은 순간 뒤를 돌아봤으나.
자신을 부르는 게 맞았다.
“흠. 갑자기 기절했다며.”
상현이 다가와 옆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무심하게 묻는 듯했으나, 방송을 중간에 끊고 달려온 거라는 걸 지아도 알고 있었다.
“아…… 응. 그냥 빈혈이었나 봐.”
실제론 스트레스로 인한 극성 위장염이었으나.
이렇게 말하면 심하게 걱정할 테니 말을 돌렸다.
“음…….”
상현은 지아의 안색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그런다고 지가 의사도 아니고, 뭘 알아챌 리도 없는데 말이다.
상현은 말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고, 그건 지아도 마찬가지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되려 주변에서 몇이 호들갑 떠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온다.
“아몬드 맞지.”
“어, 어 백퍼야. 저렇게 생긴 사람이 어딨어.”
“진짜 개존잘이다.”
“사진 찍어달라 하면 좀 그런가?”
“미쳤어? 병문안 왔는데…….”
“입원한 사람은 누구지? 여자던데. 진짜 개부러워. 아까 왔다 간 사람도 완전 키도 크고…….”
피식.
지아는 가만히 있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대체 왜 온 거야. 그렇게 가만히 있을 거면.”
갑자기 병문안 와서는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멀뚱멀뚱 있는 게 너무 웃긴 거다.
“어…… 병문안 와서 원래 가만히 있는 거 아냐?”
지아는 그 말에 꺄르르 웃었다.
맞는 말이긴 했다.
뭘 해줄 수 있는 게 있겠는가.
“그렇긴 한데. 보통 말이라도 걸려고 하지.”
“아.”
상현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먹을 수 있으면 이거 먹어.”
아몬드 초콜릿바였다.
그린다이아몬드사에서 나온 제품.
“이거…… 협찬이지.”
“아, 아냐! 내가 협찬 받은 건 시리얼이야. 난 원래 여기 제품 좋아해.”
웃긴 건 지아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걸 사 왔다는 건데.
지아는 협찬이 아니라는 것만으로 감사하기로 했다.
“나도 알아. 잘 먹을게.”
그녀도 원래 시리얼만 협찬인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너 아픈 거치고는 기분이 좋아 보인다……?”
“글쎄~ 아닌데~”
푸훕.
지아는 장난치는 게 재밌는지 연신 웃는다.
지아는 모르지만, 상현은 어떨 땐 눈치가 상당한 편.
그는 뭔가 익숙하고 불쾌한 감각을 느꼈다.
‘더러운 커플 놈들.’
* * *
어찌 됐든 지아는 로마전까지는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러니 사실상 로마전이 오기까지 아몬드의 올튜브 채널에도 올라올 영상은 없었다.
아직까진 유일한 편집자가 지아 혼자였기 때문이다.
분명 그럴 텐데…….
-??
-편집자님 아프시다더니?
-오 뭔데 이건
-아몬드 채널에선 처음 보는 영상 같은데?
-엥? 와 스케일 뭐야 ㅋㅋㅋ
-ㄷㄷㄷ
아몬드 채널에 영상이 업로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