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632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00화
35. 릴리즈(1)
로마와의 마지막 전투 전.
“끝났구나…….”
경기를 끝까지 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랑이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듯했다.
“어? 가, 가게? 야, 그래도 시빌엠은 마지막 발악 전투에서 역전 잘 난다며? 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빨간색으로 입고 목청 터져라 응원하던 팝콘.
그가 놀라며 그녀를 붙잡는다.
“다 보고 가는 게 좋지 않아!?”
“본진 방어를 서너 번을 더 해야 역전할까 말까야.”
“서너 번 하면 되지! 우리도 90분 경기했던 거 기억 안 나냐!?”
“그 경기는 우리랑 상대 실력이 비등했어.”
“……그, 그럼 이건?”
팝콘은 시빌엠에 대해선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냥 사랑이 더 이상 선수가 될 수 없게 되고, 요즘 흔치 않게 마우스로 할 수 있는 게임이라며 꽤 열심히 했다는 것만 알 뿐이다.
“이건…….”
사랑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너무 차이가 많이 났어. 그리고 볼 건 이미 다 봤으니까.”
척.
사랑이 자신의 메모장을 시야 한편으로 치워 버린다.
경기를 보면서 몇 가지 전략을 메모해 놓은 것이었다.
팝콘은 그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다.
‘뭐야. 이 자식.’
별거 아니지만, 방금 메모장을 치우는 모습에서 예전 전자파가 겹쳐 보였다.
“너…… 이거 재미로 본 거 아니구나?”
그는 모르고 있었다.
사랑이 이 경기를 왜 보러 온 건지.
그냥 기분이나 내려고 본 줄 알았다.
사랑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응.”
* * *
조선의 마지막 항전은 생각보다 고무적이었다.
“막나요!? 막나요!?”
“아아아아……!”
“주, 죽어요 다 죽습니다!”
“로마도 피해가 막심하거든요!? 이거 좀만 더…… 좀만……!”
아무래도 3시대 말이 조선이란 문명의 최전성기이기 때문일 터다.
그러니 로마가 이때를 끝내는 시점으로 잡은 것도 한편으로는 굉장히 도발적이다.
이미 승기를 완벽히 잡았기 때문에 밀어붙일 수 있는 전략.
“아아몬드! 아아몬드! 그래도 빠져나가서 계속 딜합니다! 계속……!”
“한 명 데려가고 둘 데려가고! 다시 병영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중계진은 이때쯤 이미 목이 거의 다 쉬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병사가 쓰러졌을 때.
“아아몬드! 작렬히 전사아아아앍!!”
킹귤의 목청이 쩍 갈라졌다.
-킹귤 성대도 전사 ㅋㅋ
-ㅠㅠ
-견같이 산화 ㅠㅠ
-ㅅㅂ
-개까비……
-근데 안될 거 같았음 ㅠ
-ㅠㅠㅠㅠ
패배가 선언된 후 채팅창은 눈물 바다가 되어버렸다.
“아…… 정말 아쉬운 패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름 할 만한 포인트들이 많았어서. 더 아쉬운 것 같아요.”
사실 게임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로마와의 전력 차이를 여실히 느꼈던 경기였으나.
중계진은 나름대로 포장해 주는 것이다.
“2시 멀티 먹을 때. 그때만 해도 어떻게 반격이 되는 줄 알았는데…….”
“예. 마린 몇 마리가 이겼다고, 테란이 이기는 거 아니죠. 하…… 아쉽습니다.”
“예. 계속 로마가 한발 빨랐…….”
핑.
아지트 안의 TV 화면이 꺼진다.
“…….”
어둑한 거실을 침묵이 짓누르고 있었다.
그 상태로 모여 있는 모두가 한마디도 꺼내지 못한 채로 멍하니 검은 화면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위로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반성이라도 하려는 듯.
“하.”
이내 물만두가 습기 가득한 한숨을 뱉으며 뒤로 돌아버린다.
“야. 야.”
짝, 짝, 짝.
그래도 가장 맏형인 곱스피어가 일어나서 분위기를 환기한다.
“됐어. 어. 이 정도면 졌잘싸야. 우리 로마한테 져도 본선은 갈 수 있다? 알지?”
치승과 만두는 마지못해 끄덕였다.
특히나 치승은 저도 모르게 손을 덜덜 떨고 있었는데.
그는 힘겹게 이번 경기에 대한 감상을 내뱉었다.
“졌잘싸는 아니지.”
졌지만 잘싸웠다.
치승은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 싸웠다면 이겼겠지.
잘 싸우지 못했으니 진 거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엔 잘 싸워야 한다.
잘 싸웠는데도 졌다고 생각하면, 다음을 준비할 방법 따위 없다.
“야. 치승아.”
곱스피어가 나무라듯 그를 불러세웠으나.
치승과 그는 언쟁만 더 하게 됐을 뿐이다.
“아…… 싸, 싸우지 마!”
물만두는 말리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그냥 눈을 감고 돌아앉아 귀를 막았다.
“……!? ……! ……!!!”
“……! ……!! ……!”
그들이 뭐라 소리치는지 들리진 않으나, 진동으로 느껴졌다.
잠시 후 그 진동이 멈추고 나서야 그녀는 막았던 귀를 풀어줬다.
“……미안.”
결국 과열된 언쟁은 치승의 사과로 끝났다.
“난 방에 좀 들어가 있을게.”
쿵.
치승은 비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하…… 싸, 싸우지 말라니까.”
* * *
“하아…….”
쿵.
방문을 닫은 뒤.
들어오자마자 치승 머릿속에 생각나는 건 우습게도 카메라였다.
‘다 찍혔겠구나.’
방에도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바로 앞에, 빨간 불을 깜빡이면서.
“……촬영하셔야…… 되겠죠?”
저 카메라에 대고 물어봐야 뭔 대답을 듣겠는가.
어차피 다 동의한 거.
이미 아까 언쟁하던 것도 다 영상으로 저장돼서 제작진한테 넘어갔을 텐데.
여기서 더 창피 볼 게 뭐 있겠는가.
“하긴 하셔야죠. 이게 다 컨텐츠인데.”
치승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문에 등을 기대었다.
“어차피 촬영하실 거 묻고 싶네요. 저만 진짜 이길 거라고 생각했나요?”
당연히 카메라는 대답을 줄 수 없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너무 뻔히 예상되는 답에 치승은 그냥 혼자 답해버렸다.
프랑스도 격파하고 스페인까지 완전히 압도하면서 아무래도 기대감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기고만장해졌던 것이다.
최고의 상승세를 달리고 있는 로마, 이제 국가 대항전 우승만 거머쥐면 모든 시리즈 우승이자, 역대 최고 지휘관이 될 안토.
그 안토를 치승이 전략으로 이겨볼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건…….
어쩌면이 아니라, 분명한 오만이었다.
지잉.
휴대폰이 울린다.
[유혜인: 오빠. 저 조별 과제 때문에 그런데 혹시 알바 대타 되세요?ㅠㅠ]아르바이트 관련이었다.
치승은 바로 안 된다고 보냈다.
대회 중엔 본인이 대타를 구해야 할 판이다.
[김치승: ㄴㄴ 불가능. 나 대회 중이라.] [유혜인: 아…… 오빠 말고는 할 사람이 없는데ㅠ 그거 게임 대회 말씀하시는거죠? 저는 학교 중요한 조별인데……ㅠㅠ 어떻게 안 될까요?]치승은 무어라 답변을 보내려 했으나.
[이것도 중요한 거…….]다시 전부 지우고는 한숨을 내쉰다.
“하아…….”
치승은 카메라를 보고 헛웃음을 터뜨린다.
“그냥 이유는 말하지 말 걸 그랬나 봐요.”
치승은 안 된다고 다시 메시지를 보내려다, 그냥 무시하기로 한다. 어차피 안 된다고 이미 말했으니. 상대하기 싫다.
지이잉.
지잉.
그럼에도 계속해서 오는 메시지.
어떻게든 바꿔주면 안 되냐는 징징거림이다.
“하아. 빌어먹을 새끼…….”
안 된다는데 왜 난리야.
잠시 천장을 쳐다보던 치승은 이에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 * *
늦은 저녁.
촤르르르.
상현의 캡슐이 열렸다.
주혁은 최대한 별 내색 없이 인사해 줬다.
“어. 왔냐. 오늘 안에 안 오는 줄 알았다.”
“……아, 응. 아무래도 지는 날엔 피드백이 더 길거든.”
상현도 별 내색은 없었다.
이미 패배한 뒤 너덧 시간은 더 흐른 뒤니까.
“난 샤워 좀.”
아무래도 게임 시간 자체가 길어지다 보니 전용 캡슐에서도 후덥지근하니 땀이 밴다.
상현은 웃통을 벗으며 곧장 욕실로 향했고.
주혁은 저녁을 준비해 본다.
‘음…….’
주혁은 냉장고를 슥 살핀다.
냉장고엔 손질된 닭 한 마리와 감자, 양파, 당근, 대파 등이 있다.
본래 찜닭류를 할까 생각하고 장을 봐둔 것인데.
그의 눈길이 냉장고 한편에 자리한 소주로 향한다.
‘매콤한 게 땡긴다.’
정했다. 메뉴는 닭도리탕이다.
잠시 후.
보글보글.
매콤 칼칼한 빨간 국물, 포실한 감자, 거기에 부드러운 윤기를 머금은 닭고기까지.
한눈에 보기에도 맛이 좋아 보이는 요리였다.
그리고, 테이블 한구석엔 소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오…….”
젖은 머리를 털고 나온 상현이 슬쩍 웃는다.
“웬일로?”
주혁은 웬만해선 집에서 소주는 잘 안 먹는다.
“뭐. 패배의 쓴맛…… 이랄까?”
푸핫.
상현은 그게 뭐냐면서도 냉큼 자리에 앉아 잔을 내밀었다.
“패배가 쓰긴 하더라.”
쪼르륵.
서로 잔을 한 잔씩 따라주며 비워내는 둘.
“크으.”
상현은 곧장 빨간 윤기를 머금은 닭다리를 집어와 한입 베어 물었다.
“마, 마이뜨아…….”
입김을 뿜어내며 웃는 상현.
“크. 죽이네~”
주혁 역시 날개를 쏙 빨아먹으며 좋아라 했다.
닭도리탕은 순식간에 사라져갔고, 소주병도 어느새 테이블 위로 두어 개가 더 늘어나 있었다.
“아…… 잘 먹었다.”
배가 부르니 상현도 마음에 한껏 여유가 생긴 걸까?
“그나저나 나 커뮤 반응을 못 봤는데. 오늘 져서…… 봐도 되려나?”
아마 주혁은 봤을 테니 넌지시 묻는 상현.
반응이 궁금하긴 하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은 주혁도 굳이 커뮤 반응을 확인하지 못했단다.
“나도 안 봤어. 그냥. 편집자 뽑는 거 서류나 좀 보고 있었지.”
“오. 그럼 볼까?”
“……괜찮겠냐?”
“어차피 볼 거야.”
술이 들어가서 그런 건지, 상현은 거침없이 휙 일어나서 휴대폰을 가져온다.
“분명히 안 좋은 말도 많을 텐데.”
“그게 재미지, 뭐.”
상현은 별거 아니란 듯이 말했다.
확실히 상현에게 악플 따위가 어떤 영향을 끼친 적은 별로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승부욕만 부추겼을 뿐이지.
‘그래도…… 이번엔 잘 모르겠네.’
하지만 주혁은 두려웠다.
그간 다른 게임들과는 다르게 국가 대항전은 상현에게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진 듯해서다.
“……어?”
같이 스크롤을 내려보던 둘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엠불의 반응.
1위) 그래도 잘싸웠다!
2위) 아쉽지만…… 이번 경기력이 역대급인 건 부정 못할듯 해요
3위) 안토가 잘한 거지 쿠키가 못한 건 아닙니다
이슈글 대부분이 긍정적인 것들뿐이다.
그런데 이건 사이트 성향일 수도 있었다.
“엠불은 좀 젠틀하거든.”
그러니 곧장 ‘프로게이머의 지옥’인 릴프로로 향해 본다.
쿠키의 전략을 욕하는 게시글이 하나 정도 있는 듯하지만, 릴프로치고는 많이 양호했다.
그런데…….
빅 게시판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새로운 게시물.
빅) 아몬드 <<< 거품 제대로 낀 이 새끼의 실체
짧은 순간 가장 많은 빅을 받은 게시글이었다.
“어쩐지 잘 넘어간다 했다.”
상현이 큭큭 웃으며 클릭해 본다.
상현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고, 그 밑으로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 ====
이 얼굴로 학창 시절 삼천궁녀 안만들고 그냥 양궁만 하루 삼천번씩 쏜 새끼……
난트전 때 욕 그렇게 처먹어도 결국 증명한 새끼……
마이크 잡으면 골 때리는데, 활 잡으면 상대 골 박살내는 새끼……
괜히 쓸데없이 잘생겨서 릴 찐따들한테 억까 당하는 새끼……
좀만 못생겼으면 이미 릴프로 먹었을 새끼……
한국팀 릴드컵 ㅈ망해서 볼 거 없을 때 시빌엠 같은 웬 듣보 좃망겜 부활시켜서 지 억까하던 릴 찐따들한테 국뽕 한사발씩 쏴주는 새끼……
걍 존나 멋있는 새끼
THE NUT
아. 아. 몬. 드.
==== ====
‘엥?’
아몬드에 대한 칭찬 글이었다.
중간중간 칭찬이 아닌 듯한 것도 있지만, 릴프로의 언어를 생각하면 극찬하는 글이다.
아니, 극찬이 아니라 추앙 수준이었다.
‘오늘 경기를 졌는데…….’
상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난트전에서 경기를 졌을 때를 생각해 보면, 이런 반응은 말이 안 되니까.
그런데 댓글도 현 게시글의 뉘앙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거품이 혹시 언빌리버블?
└릴하하하하!
-견뽕 거하게 들이켰누 ㅋㅋㅋ
-이 새끼 실체 ㅇㅈㄹㅋㅋㅋㅋ
-응~ 거품 낀 건 제목 보고 들어온 들어왔다가 빡친 견까들 입이었고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ㄹㅇ
-로마전 2시 멀티 근접 전투 개지렸다 ㅅㅂ
-NUT 이거 웃음벨이누 ㅋㅋㅋ
-재밌었음. 뒤 경기들도 견과류 때문에 재밌을듯
-아몬드랑 아아몬드랑 다른거지? 맨날 아몬드 까던새끼들잌ㅋㅋㅋ
└오늘 차력쇼 무력이 지리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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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글뿐만이 아니었다.
빅) 미친 아몬드 차력쇼 뭔뎈ㅋㅋ
빅) 오늘 궁병들 근접 전투력 감상
빅) 로마 군대 조직력 체감
상현은 인상 깊은 듯 오늘 커뮤니티에 올라온 빅 게시글들을 주르륵 살펴본다.
국가 대항전 팀을 비하한다거나, 까 내리는 게시글은 거의 없었다.
이때만 해도 상현은 난트전 때와 지금이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알 듯하면서 모르겠는 기분.
“운이 좋네.”
그냥 이번엔 운이 좋았다고 퉁치는 것치고는, 꽤나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