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664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32화
44. 넘겨(2)
상현은 곧장 메이크업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와. 아몬드 님. 실물이 훨씬 잘생기셨다~”
메이크업 담당 둘이 대기하고 있었다.
“빨리 들어갈게요!”
이들은 시간이 촉박한지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부드러운 솜털 같은 것이 얼굴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어느새 머리는 죄다 위로 묶여 있다.
촬영에 오면 늘 느끼는 거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정말 모든 게 정신없이 지나간다.
찍혀야 할 사람은 한 명인데, 이 사람을 위해 대기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여럿이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언니. 저 헤어 시작할게요.”
“어, 어. 지금 하면 돼.”
이제 메이크업 두 명 중 한 명이 머리를 만지기 시작한다.
“아몬드 님~”
그뿐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 또 다른 사람 하나가 다가와 태블릿을 내민다.
“아몬드 님. 안녕하세요. 담당 작가예요. 콘티는 아마 확인하셨을 텐데. 중간에 현장에서 조금 바뀐 게 있거든요? 설명 듣는 거 괜찮으실까요?”
아마 기획 쪽의 스태프 중 한 명인 듯했다.
콘티가 현장에서 바뀌는 건 거의 매번 있는 일이라 특이할 건 없었다.
상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보여달라 했다.
“어어! 고, 고개 숙이시면 안 돼요.”
메이커업 담당이 곧바로 얼굴을 붙잡아 끄덕여진 고개를 바로잡아 버리고, 옆의 스태프는 귓가에 대고 명랑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상현은 양 볼이 붙잡혀 붕어입이 된 채로 고문당하듯이 설명을 들어야 했다.
“요 부분이 여기로 옮겨가서…….”
사실 여기서 들어도 촬영 현장에서 다시 감독에게 지적받으면서 수정될 거다. 그는 일단 그냥 듣는 척 정도만 해둔다.
“……변경 사항은 여기까지입니다.”
스태프는 감사 인사만 남긴 뒤, 다시 촬영 스튜디오로 휙 사라졌다.
거울을 보니 메이크업과 헤어도 어느 정도 맞춰진 모양이다.
‘이제 눈에 어느 정도 익네.’
새삼 처음 메이크업을 했을 때 얼마나 어색해 보였는지 떠오른다.
그거에 비하면 오늘은 꽤나 자연스럽다.
아마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실력 차이 때문은 아닐 거다.
상현이 이제 이런 일에 꽤나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혹시 어디 더 하고 싶으신 곳 있을까요? 머리나 눈썹이라든지. 편하게 말씀하세요.”
늘상적으로 묻는 질문이었다.
상현은 늘 이 질문엔 그냥 괜찮다고만 대답했었는데.
웬일로 그의 손가락이 어딘가로 올라간다.
“아…… 이 부분 좀만…….”
그는 머리 가르마 라인을 가리키며 앞머리를 넘겨보면 어떠냐고 묻는다.
“아. 한번 봐드릴게요.”
정말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는 아니었다. 연예인병이 걸린 것도 아니었다.
전혀 다른 이유였다.
상현이 벽시계를 힐끔거린다.
바로 시간 때문이었다.
‘아직 10분만 더 끌어보자.’
주혁이가 부탁한 시간까지 무려 20분 정도 남았다.
그는 잠시 헤어 담당이 도구를 가지러 간 사이 빠르게 메시지를 보낸다.
[상현: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났어. 10분 정도만 더 끈다.]* * *
스튜디오 밖, 흔한 오피스 건물의 엘리베이터 근처 홀이었다.
지잉.
주혁의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그러나 그는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앞에 선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서려 하는 남자 둘이다.
둘 다 캐주얼한 정장을 입고 손엔 얇은 노트북이나 하나 들어갈 법한 작은 가방만 들고 있었다.
그들의 목에 걸린 사원증엔 ‘최강 기획’이라 적혀 있다.
그들 중 ‘이경호’라고 쓰인 자가 묻는다.
“예. 제가 이경호가 맞습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그는 주혁을 보고 묻는 것이다.
주혁이 입구에 서 있다가 그를 콕집어서 불러냈으니까.
“법무팀에서 왔습니다. 잠시만 같이 가시죠.”
법무팀이란 말에 이경호가 주혁을 슥 훑었다.
큰 키, 떡 벌어진 어깨, 단정한 머리, 장례식장마냥 시커멓고 칙칙한 양복과 서류 가방.
왠지 차디찬 한기가 느껴지는 눈빛.
뭔가 불길하다.
“저 바로 들어가 봐야 하는데요? 다음에 오시죠.”
“안쪽에 메이크업 중입니다. 아직 시간이 더 걸린답니다. 같이 가시죠.”
안쪽 상황까지 알고 있어?
이경호는 이게 보통 상황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업무 특성상 촬영 현장에선 시간 빼기가 어렵습니다. 다음에 오시라구요.”
그는 조금 더 강한 어조로 업무 핑계를 대며 발걸음을 옮겼다. 주혁을 그냥 지나쳐 걸어가려 했으나.
턱.
주혁의 팔에 가로막혔다.
“저희 업무 특성상 갑자기 등장해서 죄송합니다만. 어쩔 수 없습니다. 가시죠.”
꿀꺽.
마른침이 넘어간다.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건 이경호뿐이 아니었다. 그의 동료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놀란 쥐마냥 두 사람을 번갈아 열심히 훑고있다.
마치 어느 편에 붙을지 간을 보듯이.
“그…… 그럼 경호 씨. 일 보고 와요. 어차피 초반엔 괜찮잖아? 하하…….”
그는 거의 반쯤 도망치듯이 스튜디오 안으로 홀랑 들어가 버렸다.
“아, 아니. 저기……!”
이경호의 애타는 외침은 이미 스튜디오 문에 가로막혔다.
텅.
이경호는 이제 다시 주혁을 보며 부탁하다시피 말했다.
“저기요. 저도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도 우리 회사 업무라구요?”
“어차피 두 분이서 하실 일이 안 되는 거 알고 있습니다.”
“예?”
“한 명이면 충분하잖아요?”
기획 일은 사실 책상에서 다 끝나는 일이다.
현장에서 하는 일은 촬영이다. 그러니 촬영팀의 일이다.
기획팀이 오는 이유는 현장 수정으로 초기 기획안에서 너무 벗어나진 않는지 감독하는 일에 불과했다.
두 명이 오는 건 한 명으로 여럿을 설득하기 쉽지 않아서일 뿐이지 일손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주혁은 이미 지난 촬영 때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현장에선 그냥 검토 확인만 하시잖습니까? 안 그래도 이 시스템에 대해서 사내 자금이 줄줄 샌다고 ‘저희 팀’에서 말이 많습니다.”
뭐? 자금이 줄줄 새는 걸로 말이 많아?
이건 법무팀이 할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감사팀 얘기잖아?
이경호는 순간 등에 소름이 쫙 끼쳤다.
“동료분도 바로 들어가신 거 보면 제가 들은 얘기가 맞는 거 같네요. 둘이서 할 일을 혼자 하겠다고 흔쾌히 나서는 직장인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혼자서 할 만하니까 들어가지.”
주혁의 냉소적인 분석에 이경호는 할 말이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릴 뻔한 걸 겨우 부여잡는 데에만 이미 신경을 다 쓰기도 모자라니까.
‘먹혔군.’
주혁은 속으로 킬킬 웃으며 그의 어깨를 짚었다.
“일단 같이 가시죠.”
휙, 거의 반강제로 그의 몸을 돌려 밀어 스튜디오 복도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그런데 무슨 일이시길래…… 아니, 저기요. 제, 제가 갈게요. 제가……!”
* * *
주혁은 건물 내 한적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일단 말없이 이경호를 관찰했다.
그러던 중, 습관적으로 안경을 고쳐 썼으나, 그의 손은 허공을 저었다.
‘아. 렌즈지.’
오늘은 렌즈를 끼고 왔으니까.
이런 습관 조심해야 한다.
상대가 관찰력이 뛰어나면 이쪽이 원래 안경을 낀다는 걸 알아차릴 테니까.
‘다행히 못 알아보네. 하긴 나도 얼굴로는 구분이 안 갔는데 본인은 오죽하겠어.’
혹시나 예전에 한 번 촬영장에서 마주친 걸로 얼굴을 기억할까 싶었는데.
이 사람이 다니는 촬영장이 수백 개는 될 텐데. 당연히 기억 못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당시 촬영장에서 주혁은 모자를 눌러쓰고 편한 후드티를 입은 일반적인 매니저였다.
지금은 검은 슈트에 머리를 올려 세팅한 채로 안경마저 없으니, 알아보기 힘들 거다.
‘여기까지 왔음 알아봐도 별수 없지.’
그의 정체를 들켰을 때의 플랜도 있었다. 여기까지 끌고 왔다면 오히려 주혁은 그쪽이 더 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탁.
“나오셨습니다.”
점원이 커피를 가져다준다.
카페치곤 꽤 친절한 서비스인데. 이는 주혁이 따로 부탁했기 때문이다.
“하?”
이경호는 그 꼴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친다.
“아니. 제가 뛰어서 도망이라도 갈까 봐 이러시는 거예요?”
커피 가지러 가는 시간도 경계하는 건, 솔직히 주혁이 생각해도 너무하다 싶긴 했다. 그래도 별수 없다.
주혁에게 기회는 한 번이니까.
“예. 실제로 그랬던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뭐, 가져다주면 좋죠. 편하고.”
이경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 새끼 감사팀인 걸 이제 숨기려고 하지도 않잖아?’
“너무 긴장하지 마시죠.”
상대가 감사팀에서 왔다고 확신 중인 거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죠.”
주혁은 그의 감정이 요동치는 걸 즐겁게 관찰하며 커피나 홀짝였다.
스읍.
상대는 일단 지금 많이 당황한 상태다.
당황하면 시야도 좁아지고, 외부 세계에 대한 인지도 떨어진다.
그래서 지금은 안전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면 달라진다.
‘곧 의심할 거야.’
곰곰이 따져보면 적어도 주혁이 감사팀에서 온 게 아니란 걸 알아챌 요소는 많았다.
우선 감사팀은 보통 둘 이상으로 다닌다. 사실 감사팀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경우 회사에서 어디로 파견을 보내면 둘 이상인데.
감사팀은 더더욱 그렇다. 감사팀들조차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서다.
이경호는 회사 생활 경험이 많으니 이 위화감을 금세 눈치챌 수 있을 거다.
‘다만 지금은 머릿속에 뭐라 변명할 건지에 대한 생각뿐이겠지.’
단지 지금은 그의 머리 모든 용량이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그게 해결되고 나면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전에 문제를 더 던져줘야 한다.
“이경호 씨. 제가 왜 왔는지 아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
이경호는 이런 말부터 꺼낼 줄은 몰랐는지 뭐라 대답하진 못하고 침묵했다.
“설명 넘어가고 싶긴 한데. 그래도 이게 절차니까 말씀드리겠습니다.”
주혁은 서류 한 장을 올려놨다.
사업자 증명서다.
“사업자라. 대중문화예술기획업? 흥미로운 투잡이네요. 거기에 더해서 법인으로까지 발전시키셨어요?”
슥.
법인에 대한 서류까지 등장했다.
“왜요. 법인이 되면 따로 분리돼서 생각해 줄 거 같았습니까? 하지만 이경호 님의 개인사업에서 발전한 법인이라는 증거는 떡하니 있고. 대표기도 하시고. 설명 한번 해주시죠.”
여기까진 이경호도 예상했을 터다.
뭐라 말하는지 보자.
“예전에 사업을 하려다가 만들어뒀던 거고. 아무 수익도 못 내고 접고, 지금은 빚까지 있습니다. 이게 투잡입니까? 뭔 수익이라도 있어야 잡이죠.”
“아. 그렇네. 그럼 투잡은 아니라고 합시다.”
“?”
이경호는 벙찐 표정이 됐다.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시다 경력직으로 자사에 입사하셨습니다. 맞습니까?”
“……예.”
“그 이직 기간이 생각보다 짧던데요.”
“저한텐 긴 시간이었습니다…… 저 정도 경력이 있으면 원래 그 정도도 안 걸려요.”
“누구한텐 5분도 긴 시간입니다. 그런 얘기하자는 게 아니잖습니까? 이경호 씨.”
“…….”
“이직하는 사이에 사업을 시도하다가, 실패로 결정하셨잖습니까? 그런 큰 결정을 하는 데 걸린 시간치곤 좀 짧다는 거죠. 고작 3개월인데.”
이런 일은 사실 지아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이건 순전히 정말 최강 기획이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의심이다.
진짜 감사가 나왔다면 뭘 의심했을까?
뭐가 회사에 가장 큰 피해일까?
여기서부터 의심을 전개해 나가는 거다.
“제 판단이 조금 빠를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문제가 됩니까?”
“이 과장님. 이전 회사에서도 과장이셨죠.”
“예…….”
“과장이면 노조에서도 사측으로 분류되는 꽤 높은 직급입니다. 이 과장님은 과장이 되는 데까지 얼마나 걸리셨습니까?”
“그게 왜 중요합니까? 저도 기억 못 합니다.”
“아. 다행히 제가 기억합니다.”
주혁이 싱긋 웃으며 약 올리듯 말했다. 실제로 꽤 효과가 있었다. 이경호의 표정이 이때부터 아주 볼만했으니.
“입사한 지 5년 차. 5년 차에 과장이라. 쾌속 승진이네요?”
“여기처럼 큰 회사가 아니라 직급 명함만 빨리 바뀌는 겁니다.”
“그 회사 평균 연차가 8년은 되어야 과장이 되던데요? 이름만 바뀐 게 아니라 실제로 월급도 가파르게 인상이 되셨다면서요.”
그 회사에서 바로 옆에 있던 지아에게 들었으니 정보의 디테일이 남달랐다.
이경호는 주혁이 감사에서 나왔단 걸 추호도 의심치 못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근데 대체 이게 뭐가 상관이 있──”
─쿵.
주혁은 말을 자르기 위해 서류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그런 회사에서 왜 나오셨습니까?”
“……!”
이경호는 놀란 듯 말을 멈췄다.
“그렇게 인정해 주고, 월급도 팍팍 올려주던 회사에서…… 왜 나왔습니까? 마지막 순간까지 연봉 협상은 하고 나오셨던데.”
꿀꺽.
이경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거 왠지 흐름이 이상하다.
“거기에서 나오신 뒤, 법인까지 세우시고. 그다음 갑자기 최강 기획에 입사하셨습니다. 이거 무슨 패턴인지 아십니까?”
“……무, 무슨 패턴인데요.”
주혁은 이경호가 이런 악의를 품고 사업체를 만든 게 아니라는 건 안다.
그렇기에 이경호의 입장에선 이런 의심이 어이없을 거다.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하지만 회사라면 의심할 법한 이야기지.’
회사라면 생각할 법한 이야기.
이경호는 이에 대해 제대로 된 변명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을 테니까.
머리가 좀 아플 거다.
“산업스파이잖아.”
이경호는 거의 벼락이라도 맞은 듯 의자에서 펄쩍 뛰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