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666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34화
44. 넘겨(4)
“……뭐?”
예상치 못한 답변에 이경호는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를 넘기라니?”
보상금을 주라든가 아니면 사과를 해달라든가 정도를 예상했다.
회사를 넘기라는 건 무슨 의도인가?
“남은 빚을 갚고. 우리 쪽에 회사 주식을 넘기면 넌 살아나갈 수 있어. 사실 그 방법밖에 없지.”
그거야 당연한 거다.
수익 한 번 안 난 회사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아 쪽에 팔라?”
그게 끝?
여태 협박한 거치고는 오히려 이쪽의 살길을 뚫어준 듯한 느낌이지, 지아에게 득 되는 게 뭐지?
이경호는 내부 사정을 모르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지만.
주혁에겐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명의를 빌리는 것보단 싸게 먹힌거지.’
대중문화예술기획업.
이 사업자를 내려면, 관련 업계에서 다년간 경력이 필요하다.
주혁은 그 경력을 다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무려 2년을 더 해야 했다.
그는 2년이란 시간을 매니저 일에 멈춰 있을 생각은 없었다.
「명의를 빌려서 사업자를 내는 것뿐이야. 아니면 이미 사업을 낸 사람이 너한테 회사를 넘기든가.」
법무사 선배와 통화했을 때 들은 이야기였다.
이 외의 방법은 아슬아슬하게 합법인 수준이었다.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방법은 이것뿐이다.
그리고, 이경호의 입장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아…… 알겠다. 그렇게 하지.”
결국 그는 결정 내렸다. 남은 빚을 갚고, 회사를 넘긴다고.
“넌 더 이상 대표도 아니고, 주주도 아닌 거야.”
슥.
이미 준비해 온 서류를 내미는 주혁.
이경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펜을 쥐었다.
‘그래. 그냥 잊고 살자.’
어차피 방법이 없다.
저들이 정말 그 회사로 수익을 내버리면, 그는 직장을 잃고, 심지어는 손해배상 소송까지 걸릴지도 모르다.
일개 민간이야 그렇게까지 안 하겠으나, 대기업은 정말 우습게 볼 자들이 아니다.
일벌백계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아까 예고편을 봤잖아.’
감사팀인 줄 알고 당할 때를 떠올려보면, 이건 싸게 먹히는 거다.
그렇게 이경호는 생각하며 펜을 긋는데.
‘어?’
왜, 사회생활을 오래 해보면 그렇잖은가? 어떤 서류에 사인을 하기 전엔 모든 게 의심스러워진다.
‘잠깐. 이거 지아한테 파는 게 아니잖아?’
상대방 이름이 김주혁이다.
“자, 잠깐…… 이건 혹시 당신 이름이야?”
“그래.”
“지아 쪽에 팔라며?”
“지아 쪽.”
주혁이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한다.
지아 쪽이 자신이라는 거다.
“이, 이건…… 말이 안 돼. 서지아도 동의한 건가?”
‘뭐야?’
주혁은 이상한 반응이라 생각했다.
서지아에게 파나, 여기에 파나.
자기는 법인을 나가기만 하면 감지덕지 아닌가?
빚도 반만 갚는 격인데.
심지어 횡설수설까지 한다.
“이건 아냐. 솔직히 난 당신을 믿을 수가 없어. 처음부터 전부 속였잖아. 나…… 난 지아가 이걸 동의할 거라 생각 못 하겠어. 이건 이상해.”
주혁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상한 내용인지 천천히 읽어보고 있어. 네 눈으로 확인하면 되잖아. 어차피 전화 연결해서 확인시켜 주려 했으니까.”
지아도 공동 대표라 서로 확인이 필요하다.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그렇다. 지아와는 얘기를 끝낸 상태였다.
‘뭐, 이런 식으로 의심할 줄은 몰랐는데.’
주혁한테 팔기 싫어서 의심할 줄은 몰랐다만.
여튼 주혁은 메시지를 보내 지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사이 이경호는 서류의 글자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뭐가 제대로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꾹꾹 뛰는 심장을 눌러가며 글자들을 확인했다.
계약서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근데 의심이 든다.
“……하.”
확실할까?
이런 상황에 이렇게 심장 떨려 하며 읽어서 이게 확인이 될까?
‘아무래도 여기서 사인하는 건 미친 짓이야.’
그는 변호사라도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서류 검토만이라도 시켜야 했다.
“사기를 너무 많이 치고 다니셔서, 다 의심스러운가? 남들도 본인 같을 줄 알고?”
“……뭐?”
“넌 어차피 선택권이 없는데. 뭘 고민하는지 모르겠지만. 과정을 빠르게 하기 위해서 도와주는 것뿐이야. 이 이상은 없어.”
그 말과 함께 주혁이 폰을 들었다.
스피커 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도 동의한 거야.]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경호의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지…… 지아야. 저, 정말…… 너 맞아?”
[그래.]주혁은 안경을 고쳐 쓰며, 이경호의 그런 반응을 주시했다.
‘이건 예상외인데.’
그는 이경호가 지아를 정말 좋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다기엔 오로지 피해 준 일밖에 없는 놈이니까.
그런데…….
“내, 내가 전화할 땐 그렇게나…… 안 받더니…….”
주혁과 이야기할 땐 나름대로 똑 부러지는 기획과장의 모습이더니.
지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완전 다른 사람 같았다.
‘그래서 지아한테 파는 건 괜찮고, 나한테 파는 게 이상하다 한 건가?’
이해가 안 됐다.
‘이럴 거면 왜 그랬지?’
알 수가 없다.
남녀 관계만큼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관계가 없다고는 하지만…….
“지아야. 만나자. 만나서 얘기하자. 어? 내가 다 설명할 수…….”
이경호가 거의 애걸복걸한다.
[싫어…….]“뭐? 이런 일을 하는데. 어떻게 만나주지도 않는 거야? 어?”
이경호는 지금 옆에 주혁이 있다는 사실도 거의 잊은 것 같았다.
[만나? 난 너랑 얘기도 하기 싫어. 지금 내 남친 앞에서 너랑 말 섞는 거…… 이게 유쾌한 기분인 줄 알아?]“지, 지아야?”
[지금 계속 말하는 것도 네가 목소리 녹음한 거니 뭐니 이런 소리 할까 봐!]지아는 숨이 차는지 잠시 헐떡였다.
[하아…… 그럴까 봐 말하는 거야. 여튼…… 난 그 계약에 동의했고. 넌 그냥 나가면 돼. 그러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지아야. 내가 그 돈……! 다 갚을게. 내가 집에 보내는 돈을 적게 하면 된다. 그럼 금방이야. 어?”
[그렇게 간단해? 그럼 진작 갚지 그랬어.]“난 일부러 안 갚은 거야! 너랑 유일하게 있는 고리가 끊길까 봐! 이러면 네가 다시 나타날 수밖에 없으니까! 그, 근데 지금 만나는 남자를 보내?!”
[넌 그냥 미친놈이야. 제발 정신과 좀 가. 내가 이미 갚은 돈은 안 갚아도 돼. 널 처리하는 비용치곤 싸니까.]“어, 어, 어떻게 네가 나한테! 아니다. 아니야. 그 돈! 내, 내가 갚을게! 그러니─”
툭.
전화가 끊겼다.
이경호는 상체를 숙인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의 턱이 덜덜 떨리고 있는 것만은 보였다만.
주혁은 이만 일의 마무리 단계로 들어갔다.
“지금 이 통화가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자비야. 이 이상은 없어. 예고편대로 흘러가는 거 말고는.”
이경호는 고개를 들었다.
“넌…… 대체 뭐야. 왜,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보아하니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니잖아!? 대체…….”
눈물로 범벅된 30대 남성을 마주한다는 건 기분이 참 별로다. 주혁은 그리 생각했다.
“매듭은 지어야 하니까. 내 입장에선 그러지 않겠어?”
“…….”
확실히 현재 연인 입장에선 과거의 망령이 이렇게 얼씬거리는 게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건 단순히 전 남친 쫓아내기 같은 치정 싸움만은 아니었다.
그런 일을 위해서 주혁이 이렇게까지 공들여 준비할 게 없다.
스토킹 신고와 고소, 그리고 직접 찾아와서 한 대 걷어차 주기만 해도 금세 해결됐을 거다.
그것도 귀찮은 짓이긴 하지만, 이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데 걸린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노력일 거다.
‘난 나대로 얻을 게 있으니.’
그는 뭔가 다른 지점을 보고 있다.
아마 그 괴리감을 이경호도 느끼고 있는 거다. 놈은 그런 감은 좋은 편인 듯하니까.
그러나 소용없었다.
이경호는 주혁이 그리 공들여 짠 시나리오 안에 갇힌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그는 결국 울먹이며 펜을 드는 선택지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사인을 시작한다.
스슥.
스스슥…….
서너 번의 인증서 인증을 거쳐서 계약을 마무리했다.
탁.
주혁은 서류를 낚아채 버리듯 가져가며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은 선택이십니다. 이 과장님.”
이제 끝났다.
전부.
‘볼 일 없겠군.’
이경호는 아직 혼이 나간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먼저 들어간 동료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아마 감사팀이라고 생각해서 이미 손절한 거다.
‘원래 한 대 쳐주려 했는데.’
주혁은 구둣발로 머리라도 한 대 걷어차 주리라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는 남자를 두들겨 패는 건 주혁의 취미와는 너무 안 맞았다.
‘어차피 어울리는 형벌이 준비되어있으니까.’
어차피 발로 한 대 차는 건, 앞으로 이경호에게 내려질 선물에 비하면 딸려오는 사은품 같은 수준이었다.
* * *
“자. 아몬드 님~! 좋습니다. 여기서부터 한 번 더 테이크 가면 이 씬은 끝나겠어요.”
“예, 예.”
그러는 사이 촬영 현장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첫 광고 때에 비해 상현은 한참 더 능숙해졌다.
“아. 좋은데요? 한 방에 갈 것 같습니다!”
이 광고는 철저하게 상현 혼자 등장하는 광고라서 대기 시간도 딱히 없었다.
이경호는 촬영 중간쯤에 들어와서 혼이 다 나간 얼굴로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보다 못한 동료가 묻는다.
“……이 과장님. 뭐였어요?”
“아닙니다. 아무것도.”
그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일을 누구에게 말한단 말인가?
“촬영 다 잘되는 거 같은데. 죄송하지만…… 먼저 가 봐도 되겠습니까?”
“어. 그래요. 저는 이따 약속이 근처에 있어서. 여기서 더 보다 가죠.”
너무나 축 처져 있는 듯한 모습에 동료는 흔쾌히 수락했다.
“예. 그럼…….”
감사하다며 가방을 챙겨 나온 이경호는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자신의 차 뒷좌석에 탑승했다.
털썩.
“하아…….”
잠시 천장을 올려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더 해리슨 호텔. 자주 이용하는 곳.”
[목적지로 자주 사용하시던 더 해리슨 호텔 주차장으로 향합니다.]차는 혼자 출발하여 그가 즐겨 가는 호텔로 향했다.
주차장에 내린 그는 트렁크에서 골프백을 꺼낸다.
“안녕하세요. 회원님.”
“예. 일일권이요.”
카운터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법카로 전부 선결제한 후, 사우나로 갔다.
몸을 한참 녹인 뒤, 그는 보관함에서 골프채를 꺼내서 내부에 마련된 골프장으로 향했다.
“어우. 경호 씨. 또 오셨네? 아주 실력이 어디까지 느시려고.”
“아. 예. 재능이 없으면 열심히라도 해야죠. 하하하.”
“요즘 사업은 잘돼가?”
“안돼요~ 그 스트레스 풀려고 오죠.”
“엄살은. 여기 이렇게 자주 드나드는 사람치고 안되는 사람이 없는데. 하하하.”
늘상 마주치는 인상 좋은 지인들이랑 딴 세상 이야기로 떠들어본다. 이러다 보면 어느새 다 잊혀졌다.
그 후, 그는 다시 평화롭게 회사로 출근했다. 그렇게 한 일주일쯤 흘렀을까?
“어? 왜, 왜 그래요!? 뭡니까?”
회사에서 평화로운 오전을 보내고 있던 차였다.
“감사팀입니다. 잠시 가져가겠습니다.”
“뭐, 뭐라구요?”
진짜 감사팀이 그의 데스크를 빼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 감사팀의 모습이구나.
“아니…….”
그제야 이경호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게 됐으나…….
애초에 그런 구분하는 능력 따위 영원히 없어야 했다.
진짜를 마주치면 안 되니까.
“아, 아니, 그건 안 돼요!”
턱.
조금 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그의 어깨를 붙잡아 멈췄다.
“신고가 들어왔고, 확인해 보니 맞더군요. 같이 가주시죠. 아님 여기서 다 말할까요?”
그와 함께 일하던 부하 직원, 동료, 선배들이 전부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뭐야? 과장님이 뭐 한 거야?”
“들어온 지 오래 안 되지 않았어?”
“뭐가 걸렸나 봐. 어휴…….”
“아씨 똥만 뿌리지 마라…….”
이런 수많은 시선을 견딜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노, 놓으시죠. 가겠습니다.”
이경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도망치듯이 감사팀을 따라 이동했다.
* * *
“아니, 이제 와서 끌려갔다고? 어떻게?”
상현이 물었다.
그는 매우 흥미롭다는 듯 눈을 번쩍 뜨고 있다.
포장마차의 빨간 테이블 위에 놓인 초록병은 아까부터 그대로다.
조금 전부터 술을 마시는 것도 잊고 이경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거다.
그가 회사를 넘겨주는 것으로 끝난 줄 알았더니, 마지막엔 결국 징계위에 회부됐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주혁의 설계였던 걸까?
“네가 한 거야?”
상현이 재차 묻자, 주혁이 끄덕인다.
“그래. 내가 했지.”
그가 술기운에 발그레한 얼굴로 씩 웃었다. 통쾌하다는 듯.
“그대로 끝내기엔 괘씸하잖냐? 우리가 결국 지 뒤처리만 해준 꼴인데. 혼쭐 좀 내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