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674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42화
47. 대진(2)
“대진표가 완성됐습니다!”
웅성웅성.
경기장 내부가 시끌시끌해졌다.
아무래도 각자 상대에 대해서 한마디씩 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음…… 바이킹.”
희철은 턱을 쓰다듬으며, 바이킹 쪽을 쳐다봤다.
그쪽의 지휘관 ‘엑스마스터’를 쳐다본 것이다. 그쪽에서도 여기를 보고 있었다.
서로를 본다고 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아마 이건 전투에 임하는 자들의 본능이다.
상대의 아주 작은 것이라도 미리 파악하려 하는 것.
“어떤 것 같습니까?”
두준이 옆에서 넌지시 물었다.
“쉽지 않은 상대지만…….”
희철은 경기장 전체를 둘러보며 쓰게 웃었다.
“여기에 우리보다 쉬운 상대는 없네.”
“하, 하긴…… 그쵸.”
“아마 바이킹 쪽은 지금 속으로 축제 분위기일 거야. 내색하기 싫어 점잔 빼는 거지.”
“……그, 그 정도일까요?”
“입장 바꿔 생각해 봐라. 두준아.”
32강에 올라온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평가받는 조선.
게다가 그들은 로마를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혹은 승리에 근접해 보지도 못한 채로 32강에 2위로 올라왔다.
물론 그들이 보여준 언더독의 돌풍은 스페인과 프랑스전에서 여실히 빛났으나.
언제나 전쟁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스페인과 프랑스가 이번 시즌을 유독 못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면 로마는 전혀 조선에게 흔들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굳이 그렇게 저평가하지 않더라도, 조선은 데이터상으로 분명 여기 32개국 중 최약체였다.
본선에 진출한 횟수와 승리 횟수만 따져봐도 조선보다 아래에 랭크될 나라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긴.”
두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침통하기 그지없었다.
‘자존심이 세니까. 그럴 수 있지.’
보조 지휘관인 ‘커피’로 활동하는 두준은 실생활이든 게임이든 굉장히 자존심이 센 편이다.
자신을 갈아 넣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상 심리로 자신을 방어하는 거다.
적어도 희철은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예?”
“우리가 얕보이는 거 말이야. 난 얕보이는 게 무섭지 않아. 생존에 유리하거든.”
희철은 두준에게 자존심에서 벗어나라 이야기하고 있다.
“난 오히려 바이킹 녀석들이 저렇게나 점잔 빼는 게 서운할 정도야. 대놓고 좋아해 줬다면 좋았을 텐데. 스페인처럼.”
두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리는 모양이다.
“그런 추태를 보일 리가 없잖습니까? 여기 본선 경기장인데.”
각 나라별 경쟁을 모토로 삼은 만큼, 시빌엠의 게임사는 오히려 각 나라의 화합을 항상 추진해왔다.
그래서 현장에서 보이는 인종차별적 혹은 문화차별적인 행동은 엄격하게 핸디캡이 적용되며.
심지어는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 역시 강하게 규탄받는다.
그렇기에 국가 대항전이 여태 유지될 수 있었다.
희철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감추지 못하고 티가 나게 되어 있는데.
바이킹 쪽은 모두 태연했다.
“하하. 그렇지. 그렇게 나올 일은 없겠지. 그러니까 쉽지 않을 거다. 두준아.”
“…….”
* * *
한 10여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스크린이 내려갔다.
“자. 떠돌이 용병! 신사! 숙녀! 여러분!? 이것으로 각자 자신의 상대가 누군지는 아셨겠죠?”
진행자가 나와 이만 행사를 마무리했다.
오늘 있을 이벤트를 예고하면서.
“오늘 모두 이 자리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오늘 저녁! 시빌 엠파이어에서 특별한 파티를 준비했으니! 모두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시길 바랍니다!”
와아아아아!
선수단의 박수와 환호성과 함께 진행자는 깊이 허리를 숙이며 이만 행사를 마무리했다.
“진짜 빨리 끝났네?”
팡어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때 너무 아날로그라 욕먹어서 완전 싹 바꿨나?”
처음 예선 조별리그 추첨 때, 일본의 방식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로봇 팔이 일일이 종이를 뽑는 방식이었는데.
너무 오래 걸렸던 것이다.
오늘은 총지휘관 캐릭터들이 전투를 하는 방식의 사다리 타기 뽑기였다.
볼거리도 나름 있고 디지털 방식이라 굉장히 속전속결이었다는 느낌.
“빨리 끝나면 좋죠. 뭐.”
상현이 그렇게 말하며 버스 쪽으로 향하는데.
제시와 마주쳤다.
“오늘 저녁에 오지?”
“아, 응.”
디너 파티는 1차 입국한 선수들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혜라고 들었다.
상현은 이런 식의 사교 모임이 익숙하진 않지만, 어렵게 잡은 기회이니만큼 가 보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생각 중이다.
스트리머들에겐 좋은 컨텐츠이기도 하고.
“16강 때는 둘 중 한 명은 없겠네.”
제시는 갑자기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그렇지…….”
“그럼 이번이 마지막인데…….”
그녀는 잠시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더니, 씩 웃었다.
“네가 디너 파티라도 와서 다행이야. 그때 봐.”
손을 흔들며 이번엔 다른 버스로 사라지는 제시.
아무래도 곧 경쟁하게 될 사람이라 선을 긋는 걸까.
툭.
이에 팡어가 어깨를 치며 물었다.
“야. 너랑 같이 가고 싶은 거 아니냐?”
“예? 어딜…… 파티를요?”
“그래. 왜 영화에 보면 그런 거 있잖냐.”
“에이. 무슨 졸업파티도 아니고…….”
“흠. 그런가?”
팡어도 잘 모르면서 훈수하는 경향이 있다.
“뭐 여튼. 저 여자 너한테 관심 만땅이잖아.”
상현은 피식 웃어넘겼다.
“안 그런 여자가 어딨겠어요. 형.”
이 말은 상현이 말한 게 아니다. 팡어가 한 말이었다.
“엥? 뭐예요, 방금?”
“네가 방금 그렇게 말했어. 표정으로.”
“아니, 제가 언제요.”
“방금.”
팡어는 ‘조심해라. 어?’라는 이상한 경고를 남기며 앞장서 걸어갔다.
* * *
팀끼리 모여 간단한 점심 식사 후.
다 같이 카페로 향했는데.
싱크 탱크 팀은 바로 바이킹 분석에 들어가야 한다며 커피를 포장해서 사라져 버렸고.
결국 플레이어들만 카페에 남아버렸다.
“자리 여기로 하죠.”
모두 착석한 후.
롸떼가 비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이제 전쟁 시작이군요.”
그는 아마 바이킹과 본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은데.
팡어는 대뜸 이상한 걸 물었다.
“너 왜 라떼 안 먹냐.”
“예?”
“왜 라떼 안 먹냐고.”
“아니. 무슨 질문이에요. 그게?”
“이름이 롸떼잖아.”
“……아이 참내. 그렇다고 라떼 먹어요?”
“이거 완전 앞뒤가 다른 놈이네. 이럴 줄 알았어.”
“아니, 형님. 오늘 왜 이렇게 까칠해?”
롸떼는 어이가 없다는 듯 상현을 쳐다봤다. 그에게 뭔 일 있냐고 묻는 거다.
“아…… 아마 인기가 없어서 그런가 봐.”
상현은 정말 원인을 분석해 말해버렸는데.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이 먹던 음료를 거의 뿜을 뻔했다.
“야, 얌마! 어? 뭔 말을 그렇게 하냐!?”
팡어가 얼굴이 벌게져서 따지고 든다.
“아니에요? 제시가 말 걸 때마다 형 완전 분노하던데.”
갸웃하며 묻는 순진무구한 대꾸에 팡어는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 그걸 그렇게 진짜 말하면 어떡하냐!”
롸떼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어댔다.
“아니. 왜 진짜냐고.”
당근도 아닌 척하면서 뒤돌아서 엄청 웃고 있었다.
“아. 형님. 전 이해합니다. 예. 제가 잘못했네요. 그냥 라떼를 시켜서 오겠습니다.”
“하지 마! 시켜 오지 마!”
롸떼는 한술 더 뜨며 약을 올렸다.
한참 웃고 떠드는 공방이 지난 후. 당근이 화제를 돌렸다.
“근데…… 그 얘기 들었어요?”
다들 그녀를 쳐다본다.
“새로운 후보 지휘관이 온다고…… 로스터에도 벌써 등록됐다는데?”
“뭐?”
플레이어들에게 지휘부 소식이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만.
후보 지휘관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놀라웠다.
“아니, 진짜로? 그거 말로 얼핏 듣긴 했는데…….”
“왜요. 뭐야. 왜요. 누군데요?”
롸떼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물어댔다.
사실 상현도 모르고 있었지만, 그는 들어도 모를 게 뻔하단 생각에 별 반응하지 않았는데.
“최고다이순신.”
당근의 입에서 나온 아이디를 듣고는 순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어?’
어디선가 분명 들었던 닉네임인데.
「아몬드 님. 저랑 하시죠?」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건 그 여자 목소리다.
격투 게임을 하자고 제안할 때 목소리.
왜 이게 생각나지?
‘최사랑이잖아!?’
그야 최고다이순신이란 닉네임의 주인이 그녀였기 때문이다.
“와…… 그 사람 결국 설득했어? 근데 실력은 그대로야? 대체 언제 적 최순신이여?”
“그러게 말이다. 아무리 대어라도 철이 지나면 맛이 떨어지는 법인데…….”
롸떼도 팡어도 당근도 그 사람에 대해 아는 듯했다.
“쿠키가 점 찍었던 사람이니. 실력은 여전하겠지. 랭킹 하락도 플레이 횟수가 너무 줄어서 그렇지. 승률이 떨어진 건 아니거든.”
“그게 그거지. 플레이 줄면 폼도 떨어진다고.”
롸떼는 별로 미덥지 못하다는 입장인 모양이다.
“하. 근데 뭐 후보가 나올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는 이내 후보를 볼 일이 별로 없다는 식으로 마무리하며 커피를 홀짝였는데.
“근데 아몬드 형님. 왜 표정이 그리 어두우십니까?”
“……어? 나? 아닌데.”
“아니요. 제가 제 인게임 목숨줄이나 마찬가지인 형님의 표정은 정확히 읽습니다만? 지금 어두운 표정입니다.”
“아니라니까.”
“넵! 아닌 걸로!”
아무래도 상현이 이야기하기 싫어하는 표정마저 정확히 알아챈 모양이다.
‘말할 수가 없잖아.’
상현은 얘기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최고다이순신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왜 그녀가 합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는지.
* * *
잠시 후, 숙소.
팡어와 상현은 간만에 멋들어지게 옷을 차려입기 시작했다.
곧 있을 디너 파티를 참석하기 위해서다.
시상식 때나 맸던 보타이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상현이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최고다이순신…… 그 사람 잘해요?”
“응? 뭐…… 쿠키가 예전부터 잘한다고 평가하는 지휘관이긴 했지. 랭킹 1등도 했었던가? 좀 옛날이라 기억은 잘 안 나. 사실 플레이어 입장에선 지휘관이 그렇게 신경 쓰이진 않잖아.”
그건 그렇다. 지휘관의 모습도 목소리도 플레이어에겐 노출되지 않으니까.
“사실 쿠키는 말을 끝까지 안 하려고 했을 수도 있어. 괜히 동요하거든.”
“동요?”
“지휘관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하잖아. 후보가 들어오면.”
“아…….”
쿠키의 건강 상태에 대해선 팀원들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불안한데, 이례적으로 후보까지 새로 구해왔다고 하면 더 불안함이 가중된다.
“근데 그 사람 그래 봬도 강철이야. 비실비실해 봬도 휘기만 하지 절대 안 쓰러진다.”
팡어가 씩 웃으며 타이를 맸다.
“그러니까. 걱정 마라.”
팡어는 별거 아니라는 듯 타이 매는 것에 집중했으나.
거울에 비친 표정은 미처 다 가려지지 않았다.
그는 잠시 뭔 생각을 깊이 하더니,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우린 한복 입고 온 사람 없나?”
“한복이요?”
“그래. 베스트 드레서 뽑잖아.”
“……?”
“야. 또 잤냐? 저번에 설명했잖아. 참내. 어차피 뭐 남자가 뽑히는 경우는 없으니까. 상관없다만.”
“아…….”
그런 걸 말해줬었나?
“근데 한복 입으면 유리해요?”
“아니. 그래도 약간 튀긴 하잖아. 그렇게라도 비벼봐야지…… 근데 우린 뭐 워낙 급하게 준비해서 아무도 없겠다.”
베스트 드레서가 뭐라고 그렇게 비벼가면서까지 준비를 해?
상현은 의문이었으나, 이내 옷매무새를 다듬고 출발하느라 질문하는 걸 잊었다.
후에 알게 된 바, 베스트 드레서가 받는 상품은 그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 * *
잠시 후.
디너 파티가 시작될 무렵, 간사이 공항.
“와아! 여러분! 왔습니다아! 오오사카!”
한 여성이 카메라에 대고 신나서 떠들고 있었다. 한 손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여유롭게 걸친 두툼한 녹색 코트에 나풀거리는 듯한 원피스는 편해 보이면서도 길쭉한 전신을 돋보이게 하는 센스가 느껴졌다.
그야 그녀는 모델이기도 하니까.
-응원단장 입성 ㅋㅋㅋ
-와 진짜 갔네? 티켓 예약함???
-미호님 의리 갓 ㄷㄷ
-벌룬스타즈 다 옴???
“아! 네! 그럼요~ 티켓 다 예약했죠. 저희는 조선 팀이 최소 8강까지 간다고 예상하고 플랜을 진행했다니까요?”
그녀는 아몬드를 응원하러 온 듯했다.
“미호야. 여기서 벌써 그렇게 떠들면 국외 추방당해.”
그녀뿐이 아니었다.
배불뚝이, 대머리, 근육질 덩어리 등.
희한한 동료들도 함께였다.
“예!? 아몬드가 어제 나랑 한 판 떴다고요? 뭔 소립니까? 일본에 이제 왔는데.”
“꺄아 아몬드 옵~ 응원 가쟈~”
-ㅁㅊㅋㅋㅋㅋ
-어우…… 창피해
-각자 지 얘기만하는 거 똑같누 ㅋㅋㅋㅋ
-어디 내놔도 창피한 놈들 ㅋㅋㅋ
-“K 수어사이드 스쿼드”
-사이즈만 보면 덜렁이 아니라, 철렁 수준~
-딸기쉑ㅋㅋㅋㅋ
-몬드야~ 큰 거 간다~! (대변 아님)
왠지 범상치 않은 무리가 경기장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