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700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68화
56. 네가 가라 발할라(1)
중앙 지대, 전투 시작 전.
아몬드는 자신의 시야 중앙에 커다랗게 뜬 글자를 바라봤다.
[잠입]아몬드는 기억을 되새겨 봤다.
체탐인 연습을 했을 때, 아몬드외 단 3명만이 훈련을 받았었다.
쿠키는 그들을 모아두고 체탐인에 대해 설명할 때 이렇게 말했다.
「체탐인은 사실 전투직이 아니다. 전투를 최소화하고 명령을 수행해 전쟁의 전략 승리를 가져다주는 특수 병과다. 그러니 그간 훈련 방식과는 다를 거야.」
전투를 최소화하라는 말에서 아몬드를 지그시 노려본 건 아마 우연이 아니었을 거라고, 아몬드 자신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아몬드의 플레이 방식이 체탐인이 되기엔 다소 호전적이니까.
물론 아몬드 자신은 그게 호전성이 아니라, 그냥 효율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만.
그럼에도 그는 연습 과정에서 쿠키의 말에 귀 기울여가며 체탐인이 갖고 있는 특수 효과와 스킬 등을 체화해 냈다.
아몬드와 함께 선택됐던 당근, 토마, 호크 셋 역시 이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들은 모두 당근처럼 지략적으로 뛰어난 인재들이었는데.
‘결국 내가 선택된 건가.’
실전에서 결국 선택받는 건 아몬드 한 명이었다.
[각궁병 → 체탐인]병과가 바뀌며 그의 복장 역시 시커멓게 물들었다.
머리엔 검은 삿갓이 씌워지고, 상의는 짧고 검은 도포, 하의는 폭이 넓은 검은 바지였다. 그리고 겉옷으로는 역시나 시커먼 두루마기가 요원용 코트처럼 둘러졌다.
허리춤엔 체탐인이 쓰는 수리검과 화살통이, 등 뒤엔 각궁이 매여져 있었다.
신발은 형상은 고무신에 가까운 단순한 것이었는데, 걸을 때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
이 특이한 복장은 아마 조선 전체에서 아몬드가 유일할 것이다. 그가 현재 유일한 체탐인이니까.
체탐인은 병과 전환에 상당한 돈이 들기 때문에 둘 이상 뽑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선택된 단 한 명이 아몬드였다.
아몬드는 다시 공중에 뜬 글자를 응시한다.
[잠입]그러니까, 이 임무를 완수할 사람은 현재 아몬드 혼자뿐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떠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도와줄 사람 정도는 있다.
“출발한다. 뒤에 타.”
커피가 다가와 자신의 말 뒤를 가리킨다.
“우리도 적진으로 잠입하지만, 바이킹들 중 일부 역시 아마 우리 본진으로 돌아오고 있을 거야. 큰 싸움이 벌어지면 늘 그러거든. 마주칠 확률이 있어.”
잠입 루트를 밟는 중에 바이킹을 마주치면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에 보조 지휘관 한 명이 동행한다는 말이다.
지금 같은 시기에 보조 지휘관 한 명은 여러모로 엄청난 전력인데.
이를 현장에 두는 걸 포기할 정도로 아몬드가 맡은 임무가 무거운 것이다.
“내가 매 날리기를 쓰면서 안전한 경로를 확보할 거야. 매 날리기는 2개를 쌓아놨고.”
보조 지휘관이 앞서가며 길을 밝히고, 아몬드가 안전한 경로를 따라 적진까지 침투하는 식이다.
“적진에 최대한 접근해서 변장을 쓰도록 해. 제한 시간이 있으니까. 내가 시야 끄트머리 위치를 알려줄게.”
“그래.”
커피는 아몬드의 대답을 듣고 말을 몰았다.
“히랴!”
말은 급속도로 빠르게 경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이 경로는 쿠키가 그려준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믿을 건 못 된다. 쿠키는 지금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느라 이쪽을 거의 보지 못할 것이다.
커피가 쿠키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다.
다그닥! 다그닥!
커피는 말발굽 소리를 귀로 흘리며 생각했다.
‘말은 그렇게 해놓고, 결국 이 녀석 때문에 4시대까지 끌었어.’
커피는 조선이 왜 4시대까지 끌렸는지 대강 짐작하고 있다.
아마 눈치 떨어지는 식빵은 상상도 못 하겠으나, 커피는 예상 가능했다.
‘내 뒤에 탄 저 녀석 때문이지.’
쿠키는 아몬드 하나 때문에 시대전을 바꾼 것이다.
뒤에 탄 이 녀석은 분명 우리 게임의 크랙이다. 그건 커피도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다.
동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피지컬과 전투 센스.
그도 분명히 몇 번이나 목격했다.
‘쿠키 형의 방식이 참…….’
그는 그냥 쿠키의 방식이 이해 안 될 뿐이다. 멤버들의 여론을 고려해 상당한 거리를 두는 방식 말이다.
조화를 위한다는 그 방식이 커피에겐 멤버들을 믿지 못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직접적으로 아몬드를 높이 평가 안 할 뿐이지, 이런 작전에서 이미 쿠키의 본심이 다 보이는데.
‘왜 말을 못 하는 거지.’
커피의 머릿속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 지나갔다.
「왜 말을 못 해? 자신감이 없는 게 아니라. 넌 결국 우릴 믿지 못하는 거야. 그래서 말을 못 하는 거야. 네가 질질 짤 게 아니라고 등신아.」
말을 달리며 지나치는 풍경들만큼이나 빠르고 경쾌하게 지나가 사라진 목소리.
‘뭐, 나도 마찬가진가.’
그는 잠시 되새겨 보고는 다시 머리에서 깨끗이 털어낸다.
지금 중요한 건 이런 잡념이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정 꼬우면 다음에 네가 우승시켜.」
팀의 승리다.
커피의 두 눈이 매섭게 빛났다.
그가 손가락을 입에 넣어 크게 불었다.
휘이이이이이이──
[매 날리기]휘파람 소리와 함께 시야가 밝혀진다.
매 날리기로 밝힌 곳은 쿠키가 확인해 주지 않아도, 커피에게도 따로 미니맵에 표기된다. 그는 보조 지휘관이니까.
그리고, 아마 그녀도 이 신호를 보고 있을 것이다.
‘지금쯤 전투가 시작이려나.’
퍼버벙……!
저 멀리서 신기전의 폭발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늘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히랴아!”
커피는 한 번 더 말에 박차를 가하며 내달렸다.
* * *
아몬드는 커피 뒤에 탄 채로 심호흡을 거듭했다.
‘아마 한 번 정도 더 싸울 수 있나.’
그간 전용 캡슐에 익숙해졌던 터라, 이 감각을 잊고 있었다.
전투가 반복될수록 현저하게 컨디션이 떨어졌다.
릴 난트전 때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결국 한 손 플레이를 선보였던 적도 있었지.
굳이 오른손을 자주 쓰지 않아도 되는 화신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상대하게 되는 자들이 전부 아마추어 레벨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긴 달랐다.
‘전부 진심이잖아.’
모두 눈에 불을 켜고 이기려 하는 게임.
그리고 이제 본선이니만큼 상대 대부분은 프로다.
처음 전 프로 단무지를 상대했을 때, 그리고 챌린저 홍차를 상대했을 때만 느껴졌던 미묘한 압박감이 이곳엔 아주 짙고, 팽배하게 깔려 있다.
‘괜찮아.’
아몬드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나도 그때랑 달라.’
바뀐 건 적들의 실력만이 아니다.
아몬드 역시 그때와 다르다.
그는 이제 개인으로도 팀으로도 싸울 수 있다.
팀으로 싸운다는 게 뭔지, 이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분명 전보다 성장했다.
“이런. 씨…….”
그때, 앞에서 커피가 욕을 내뱉는다.
아까 매를 한 번 더 날렸는데. 뭔가 발견한 건가?
“만난다. 피할 길이 없어. 이 자식들 체탐인을 의식하고 있는 거 같아.”
“……!?”
체탐인을 대비하고 있다고?
체탐인은 잘 쓰이지 않는 전략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걸 대비하고 있다니.”
“이게 프로 레벨인 거지. 조선 상대로 4시대 변수 중 가장 큰 건 체탐인이다.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대비한다. 이런 생각 분배가 숨 쉬듯이 이뤄지는 거야.”
잘 쓰진 않아도 늘 대비한다.
실존하는 리스크니까.
적의 지휘관은 그런 사람인 것이다.
“기마 궁수가 없고, 편전을 쓰는 걸 알고는 체탐인을 예상했을 거야. 그래서 지금 대비책을 쓰고 있어.”
“어떤?”
변장과 도주, 잠입에 능한 체탐인을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전에 차단하는 거다.
“미리 발견하려고 하는 거지. 우리 길목에서.”
바이킹들은 길목을 차지하고 천천히 조선 본진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는 조선 일꾼들을 견제하러 가기 위한 것도 있지만, 배치나 속도를 봤을 때 뭔가 찾는 게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체탐인일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매 날리기도 이제 없고…….”
커피가 결단을 내렸다.
그는 말 한편에 매달려 있던 활을 매더니, 아몬드에게 작별을 고했다.
“거의 다 왔거든. 여기서 숲을 타고 최대한 들어가. 북서쪽이야. 내가 시선을 끌 테니까. 얼른!”
이 상황에서 시선을 끈다는 건 죽겠다는 말이다.
보조 지휘관은 죽으면 아예 아웃이다.
“뭐? 보조 지휘관인데…… 같이 싸워보는 게 낫지 않아?”
“아니. 넌 지금 싸우면 안 돼.”
커피는 아몬드가 쓴 삿갓을 낚아채고는 그를 밀어버렸다.
턱!
“!?”
“지금부터 내가 체탐인이야.”
그 말을 남기고 커피는 모자를 눌러쓰고, 말을 달려 전방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낙마한 아몬드의 시야엔 여전히 하나의 명령이 떨어져 있었다.
[잠입]“…….”
그는 얼른 다시 몸을 일으켜 커피가 가리켰던 숲을 바라봤다.
치이이이익…….
파란 길이 그려진다.
커피가 숲 쪽으로 길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
* * *
“허억…… 허억…….”
아몬드는 활을 등 뒤로 멘 채로, 죽어라 뛰었다.
‘빨리 가야 된다.’
아군이 기마 궁수가 없다는 걸 알아챌 정도면 전투가 이미 제대로 시작된 거다.
커피의 희생 덕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바이킹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아몬드는 계속 길을 따라 달릴 수 있었다.
‘여긴가.’
커피가 그려준 길이 끊겨 있다.
그리고, 멀리 전방에 적진의 성곽이 보인다. 적의 본진이다.
아몬드는 그 성곽과 커피가 그려준 끊어진 길을 번갈아 쳐다봤다.
‘애매한데.’
커피가 자신이 어디서 변장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고 했었다.
그런데 길이 끊긴 이곳이 그 지점일까?
아니면 그리다 끊긴 걸까?
‘생각보다 먼 것 같은데.’
성곽까지 거리가 꽤 멀다.
변장의 시간은 정해져 있다.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 이상, 쿨타임도 꽤 길다.
최대한 적이 보지 못하는 선에서 가까이 접근해 변장하는 게 유리했다.
그러나 그 지점을 아몬드는 알 재간이 없다.
위에서부터 보고 정확히 그리거나, 팡어처럼 거리 감각이 거의 절대적인 사람이 옆에 있어야 했다.
고민된다.
‘앞으로 더 나가서 변장한다?’
아몬드는 판단을 빠르게 마쳤다.
‘안 돼. 그랬다간 끝이야.’
적에게 들킨 채로 변장해 버리는 리스크는 현재 짊어질 수 없다.
그리고, 조선은 지금 한시가 급했다.
[변장]스스슥…….
아몬드는 커피가 그려준 선 앞에서, 바이킹 전사 중 하나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 * *
체탐인.
모든 탈 것을 자유롭게 타며, 원거리 무기를 다루는 데 능숙하다.
또한 넓은 챙의 검은 삿갓을 쓰고 있다.
이 정도의 인상착의가 바이킹들이 알고 있는 체탐인이다.
4시대까지 갈 걸 고려하여 따로 연습한 적은 없어서 정확히 전달받진 못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잡고도 남는다.
그렇게 그들은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걸렸다.
말을 타고, 검은색 삿갓을 쓴 놈.
그 뒤에 활도 걸려 있다.
“저 놈이다아아아!”
바이킹 하나가 고래고래 외친다.
“잡아아아!”
“저 자식이 체탐인이다!”
사납게 눈을 부릅뜬 바이킹들이 달려든다.
검은 삿갓 아래 얼굴은 슬며시 웃는다.
‘좋아.’
커피는 말의 방향을 바꾸며, 거세게 박차를 가했다.
거기에 활을 꺼내 뒤로 돌아 쏴주기까지 했다.
파앙!
지금 기마 궁수 팩션이 없는 게 분명한 와중에, 말 위에서 활을 쏠 수 있는 건 딱 체탐인 그리고 보조 지휘관뿐이다.
그러니 저들은 확신해 버린다.
“확실하다! 저놈이야!”
후웅!
선두에 선 자가 도끼를 내던지며 화살을 쳐낸다.
커피는 어차피 저들이 따라오게 하는 게 목적이니, 화살을 맞히는 건 별로 상관치 않고 계속 달렸다.
그러던 중─
‘어?’
갑자기 바이킹들이 추격을 멈춘다.
‘……뭐야.’
잠시 조용해져서 돌아보니, 대뜸 바이킹들이 이렇게 외치는 게 아닌가?
“저놈이 체탐인이 아니다! 본진에 잠입했다!”
“그럼 우린?”
“우린 그냥 조선 본진으로!”
커피의 눈이 휘둥그레져 버렸다.
‘들켰어?’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
그는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여기서 저들을 다시 무리해서 유인하다 보면, 죽을 수도 있었다.
보조 지휘관은 죽으면 그대로 끝난다.
게임에서 아웃이다.
커피는 잠시 눈을 질끈 감는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단신으로 저 바이킹들을 저지한다.
가능한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보조 지휘관인 내가 죽어도 게임이 괜찮을까……?’
아몬드가 해낼 수 있을까?
어쩌면 이미 실패한 거 아닐까?
머리가 어지럽다.
보조 지휘관은 언제 죽을지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
죽어서 게임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면, 죽는 게 좋다만.
커피는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여긴다.
혹은 있더라도 자신이 확실하게 판단할 수 없을 거라 여긴다.
그러니 보조 지휘관은 사는 게 무조건 낫다. 이게 그의 지론이다. 보조 지휘관의 역할은 상상 이상으로 중요하니까.
그런데, 머릿속으로 다시 스쳐 가는 한마디.
「자신감이 없는 게 아니라. 넌 결국 우릴 믿지 못하는 거야.」
그런가.
그는 중얼거리며, 감았던 눈을 부릅뜬다.
그리고, 말 고삐를 당긴다.
이히이이잉……!
말은 반대 방향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커피가 외쳤다.
본진으로 돌아가는 바이킹들을 향해서.
“야아아! 어디 가냐아! 같이 가아아!”
스릉!
그가 칼을 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