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701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69화
56. 네가 가라 발할라(2)
게임 초반에는 상대 본진을 들어가는 게 꽤 쉽다.
아주 특별한 맵을 제외하면 본진 주변으로 성곽이 지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지키는 병사들도 사실 몇 없다.
방어탑이나 몇 개 정도 있는 게 최선이다. 그런 것들만 조심해서 들어가면 잠입해서 일꾼을 괴롭히는 게 가능하고, 실제로 그런 일이 많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3시대에 진입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본진에 잠입해서 일꾼을 죽이는 일조차 3시대 이후엔 상당히 어려운 미션이 된다.
본진 주변에 방어탑도 많아지고, 성곽이 둘러진다.
성곽은 공성 병기가 없다면 절대 뚫을 수가 없다.
보병이 횃불을 던져도 전혀 타격이 없고, 궁병은 말할 것도 없다.
차라리 본진보단 멀티를 노리는 건 그 때문이다.
애초에 3시대쯤 되면 본진엔 일꾼도 몇 없고, 자원도 거의 없다. 하물며 4시대는 어떻겠는가?
자원 피해를 입히기 위해선 멀티로 가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몬드는 상대의 본진으로 향하고 있었다.
‘왔다.’
높디높은 본진의 성곽이 그를 가로막는다.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높이의 압박감.
이런 걸 사다리를 타고 오르라 하면, 현실에선 아무도 쉽게 나설 수 없을 것이다.
아몬드는 개의치 않고 그 방향을 향해 달렸다.
그야 그는 체탐인이다.
본진에 들어가야만 존재 가치가 있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았다.
본진에 자원은 말랐을지라도, 온갖 종류의 연구소, 주요한 건물이 존재하고 있으니.
체탐인에겐 젖과 꿀이 흐르는 명소다.
물론, 체탐인이라 해서 저 높디높은 성곽을 스파이더맨처럼 기어오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단단한 성곽을 향해 달려가서 해리포터처럼 9와 4분의 3 성곽 사이로 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체탐인, 그들이 잠입하는 방식은 훨씬 더 단순하고 명쾌했다.
그냥 당당하게 성문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탁─
아몬드가 그들의 성문 앞에 서자.
드르르르륵!
성문이 반응하며 위로 올라간다.
그야, 지금 그는 쿠키의 시야에서나 아몬드로 인지될 뿐…….
[변장] [남은 시간 01:27]적들에겐 바이킹 전사 중 하나로 보이고 있다.
그것도 죽은 자들 중 하나로 변해 있는 상태이니. 지휘관이 어지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이상 그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
홀로 본진 안에 들어서는 모습이 지휘관에게 들키면 바로 정체가 탄로 날 수 있겠으나. 지휘관은 지금 한창 가장 중요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중간 지대에 집중하고 있었다.
퍼벙…… 펑…….
여기까지 미약하게나마 신기전 터지는 소리가 들려올 지경이니.
아직도 한참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간 지대 전투가 시작됨과 동시에 아몬드가 본진으로 침투하는 건 상당히 의도된 쿠키의 계획인 것이다.
물론 아몬드가 그런 연유를 다 알고 당당하게 성문으로 들어선 건 아니었다.
그는 그냥 이렇게 하면 된다는 말을 이미 전해 들었기에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게 아몬드라는 병사의 최대 장점이다.
일단 명령이 온대로 의심 없이 들어간 후, 문제는 그 후에 처리한다.
문제가 생길 걸 미리 염려해 주저하면서 작전을 망치지 않는다.
과녁에 화살이 꽂히기 전에 떤다면, 과녁에 화살을 꽂을 수 없다.
이 진리를 아몬드는 이미 고등학생 때 전부 익혔기에, 아주 자연스럽게 성문 안으로 발을 들인다.
쿵!
성문이 뒤에서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는 본진에 입성한다.
‘여기가…….’
조선의 건축 양식과는 확연히 다른 건물들이 보인다.
아마 이 정도 건축 기술을 가진 자들을 더 이상 바이킹이라 부르진 못할 테지만, 노르웨이 및 덴마크의 문명을 바이킹이란 이름 아래 편입시켰기에 4시대 바이킹들도 꽤나 거창한 건축술을 자랑한다.
한 땅에 한 문명만 존재하는 경우가 별로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적용하는 게임적 허용 같은 것이다.
단일 민족이라 하는 조선도 마찬가지다.
1, 2시대엔 초기 삼국 시대 양식이며, 3시대 정도 되어야 고려 – 조선 초기의 느낌이 난다.
‘어딨지.’
아몬드가 이렇게 건물의 생김새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가 돌연 미학적인 것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연구소가…….’
체탐인이 됐을 때를 대비해 연구소의 생김새를 그가 외워놨기 때문에, 그 연구소를 찾는 것이다.
‘막상 다른 건물 엄청 많은 데서 찾으려니까 힘드네.’
그는 지금 어이없게도 건물 찾는 데서 애를 먹고 있었다.
‘최대한 지붕 밑으로.’
그는 튀어나온 지붕 밑으로만 최대한 걸어 다녔다.
지휘관이 보통 위 시점에서 보기 때문에 그가 볼 수 없게 움직이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걸으니 건물을 보는 데 한계가 있단 거다.
[남은 시간 00:19]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곧 있으면 변장이 풀린다.
연구소를 찾기 전에, 누군가를 죽여야 했다.
상대 중 하나를 죽이면 변장의 쿨타임이 초기화된다.
즉, 변장이 풀린 즉시 다시 변장을 쓸 수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문제는 지금 총력전을 벌이느라 여기 남은 병사가 없단 거다.
‘일꾼이라도.’
일꾼은 조금 멀리 있지만, 저기 보인다.
새로운 건물을 지을 게 있는지 일꾼 몇이 망치와 모래 자루 같은 것을 들고 움직이고 있다.
휙─
아몬드는 어두운 그늘 한자리로 가서 자리를 잡고는 망토 뒤에 숨겨진 활을 꺼내 든다.
그리고 옆구리에 감춰진 통아와 짧은 화살 하나도 꺼내 들었다.
[남은 시간 00:11]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통아 안에 애깃살을 넣고, 그것을 시위에 메겨 함께 당긴다.
그르르륵.
각궁의 야성적인 당김 소리와 함께 아몬드는 숨을 머금는다.
‘한 방에.’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활로 이렇게 먼 거리를 쏘는 건 처음이다.
편전을 실전에서 쓰는 것 역시 처음이다.
[남은 시간 00:06]그는 고요하게 숨을 죽인 채, 일꾼 중 하나가 제대로 각 안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다.
터벅. 터벅…….
그때, 근방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땅에 닿은 무릎에 확실히 진동이 느껴진다.
‘온다.’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눈치챘나? 아님 우연인가?
[남은 시간 00:04]시간이 없다.
확인할 여지는 없었다.
화살 끝이 잠시 흔들리다, 다시 한 점에 고정된다.
일꾼의 몸통.
확실하게 몸통을 노린다.
머리를 쏘지 않아도, 집중 풀 차지된 편전, 그리고 체탐인의 원거리 공격력 보너스라면 당연히 한 방이다.
오히려 뒤쪽에 있는 자까지 같이 죽으면 어쩌나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남은 시간 00:02]스륵.
아몬드는 오른손에 천천히 힘을 풀며 시위를 놓아준다.
[남은 시간 00:01]피유우웅──!
소리의 속도가 돌파되며, 공기가 찢어진다.
[변장 해제]스스스슥.
변장이 허물어지며 그가 원래 입고 있던 검은 옷이 드러난다.
──푹!
저 멀리, 일꾼이 맥없이 쓰러진다.
그와 동시에 뒤쪽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거기. 뭐 해.”
역시나 발소리는 이쪽으로 온 게 맞았다.
[변장]아몬드는 뒤로 돌아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
말은 하지 않았다.
통역되긴 하겠지만, 어색하게 들릴 게 뻔하잖은가.
아직 적은 멀리 있었다.
아몬드는 이미 다른 바이킹으로 변한 상태였다.
그냥 지나가 주길.
“……어? 너도 방금 부활했나?”
그런데 하필 저놈이 아는 놈으로 변한 모양이다.
“한참 전에 죽은 줄 알았더니. 또 죽었나 보군. 발할라까지 있는데 어떻게 된 거야.”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말을 꺼낸다.
아몬드가 반응이 없자, 멀어서 안 보인다 생각하고 다가오기까지.
“뭐야. 나 안 보이나!? 나 체드잖아.”
한시가 급한 총력전인데, 뭔 말이 저리 많아.
아몬드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같은 분대에 속한 녀석인가?’
놈은 계속 다가온다.
아몬드는 별수 없이 그냥 다른 길로 틀어버리며 자취를 감춘다.
“어?”
그는 뭔가 눈치챈 듯 말을 멈추고는 아몬드를 급하게 따라 들어왔다.
“너 이 새끼 누구─”
──퍼엉!
길목을 도는 순간, 하얀빛으로 발광하는 화살이 그를 맞이했다.
체탐인의 원거리 공격 보너스, 집중, 헤드샷.
이 삼위일체의 콤보가 더해지니, 4시대의 바이킹도 별수 없이 풀썩 쓰러진다.
‘부활한다.’
아몬드는 그에게 다가가 검을 회수했다.
우우웅……!
하얀빛으로 타오르며 다시 일어난 바이킹.
“너 이 개새──”
어?
그는 복수심을 불태우며 벌떡 일어났으나, 시야에 아몬드가 보이지 않았다.
‘검이…….’
그의 손이 허망하게 허공을 휘젓는다.
검이 없다.
그에 대한 대답은 금세 나왔다.
──촤아아악!
등 뒤에서부터 강한 충격이 밀려왔고, 세상이 한 바퀴 굴러 버렸다.
목이 날아간 것이다.
부활하자마자는 체력이 그리 높지 않기에, 바로 타격을 받으면 생각보다 굉장히 쉽게 죽어버린다.
게다가 부활 시간 사이에 무기를 뺏길 수도 있다.
상대는 그 파훼를 정확히 알고 있다.
‘이 자식 뭐야?’
빈틈 하나 없이 완벽한 4시대 바이킹 암살이었다.
손 하나 제대로 까딱 못 하고 당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체드.”
물음에 대한 대답인지, 외우기 위한 복기인지.
떨어져 버린 머리에 대고 아몬드는 체드라는 이름을 중얼거리며 다시 다른 거리로 사라졌다.
* * *
여유로운 변장 시간이 생기니, 연구소를 찾는 건 금방이었다.
‘여기군.’
그는 입구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그를 막는 가드 같은 건 당연히 구현되어 있지 않았다.
이 게임은 어디까지나 병사들끼리 필드에서 싸우는 RTS이지.
잠입 액션 게임이 아니니까.
체탐인 하나를 위해 연구소에 가드를 세워두진 않았다.
애초에 그는 이미 수많은 가드를 뚫고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
연구소는 매우 단순한 구조로 되어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고급스러운 와인색 벽지에 금색 조명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 아래엔 큰 책장이 하나 있었다.
거기 꽂혀 있는 책들은 대부분이 회색이다.
그런데, 어떤 책들은 희미한 유채색의 빛으로 발광하고 있었다.
‘저거구나.’
저것들이 연구가 완료된 기술책들이다.
‘여기서…….’
슥슥 훑던 아몬드의 눈이 어느 한 책에 고정된다.
그는 씩 웃으며 그쪽에 손을 댔다.
[세작질]스킬이 발동된다.
[연구 ‘발할라’ 습득하시겠습니까?] [*연구는 1개만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애초에 얘기된 건 발할라다.
당연히 대답은 ‘예’였다.
띠링.
[연구 ‘발할라’를 습득했습니다.]발동은 딜레이 없이 즉시였다.
[귀환하여 연구 결과를 공유하십시오.]단, 이 연구를 갖고 귀환해야만 적용된다.
[변장]그는 초기화된 스킬 쿨을 다시 사용했다.
아까 그가 죽인 체드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제 그는 변장한 대상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대처하기가 훨씬 수월해진 셈이다.
* * *
아몬드는 체드의 모습을 한 채로 연구소에서 슬그머니 나와, 적의 병영을 찾았다.
이미 일꾼도 한 명 죽고 병사도 하나 죽었다.
여기서 혼자 다시 적진을 나가는 건 매우 눈에 띄는 일이다.
그는 병영에서 부활하고 있는 바이킹 전사들에 합류해서 조선 진영으로 귀환할 생각이다.
아까 체드가 나온 곳을 얼추 기억해 뒀기에, 그 역방향으로 따라 올라가니 병영이 금세 나왔다.
“아아. 죽었네.”
“편전 세례 맞고 그냥 죽었어.”
“하…… 그래도 우리가 마지막에 붙었는데. 이기고 있겠지?”
“발할라까지 있으니까. 거의 80퍼는 이기겠지.”
죽고 부활한 병사들의 말을 흘려들으며 아몬드는 뒤로 크게 돌아가 은근슬쩍 병영 앞에 섰다.
‘여기 합류해서 자연스레 나가서 헤어지자.’
한 2~3초도 안 기다린 시점, 그들은 명령을 받았는지 어딘가로 뛰기 시작했다.
아몬드는 그들을 따라 뛴다.
드르르르륵.
성문도 안전하게 열렸고, 바이킹 진영에서 벗어났다.
‘후.’
아몬드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한번 내쉰다.
‘조용히 나가자.’
최대한 싸움이 나지 말아야 한다.
「체탐인은 전투 직종이 아니라, 첩보 요원이다.」
전투를 가장 잘할 수 있으나, 가장 피해야 하는 모순적인 병과.
앞에 과녁처럼 보이는 바이킹의 뒤통수들이 아른거리지만, 아몬드는 쿠키의 말을 뇌에 새기며 천천히 일행을 따라간다.
그런데─
“어?”
“뭐야. 핑 잘못 찍혔나?”
“……?”
갑자기 그의 주변에 있던 바이킹 모두가 그를 바라본다.
“야. 체드. 널 공격하라는데?”
왠지는 모르겠는데.
체드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