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72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72화
26. 기록(1)
“이상은 없습니다.”
1시간에 걸친 검사 후에야 들을 수 있었던 말이었다. 상현은 그제야 몸을 일으킨다.
그동안은 죄수마냥 칭칭 묶여 있었던 터라, 구석구석이 저릿했다.
“다행이다.”
후.
주혁이 옆에서 안도의 숨을 내쉰다.
오 실장과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아까 전에 한번 크게 싸운 것 같더니, 지금은 화해한 모양이다.
“뭘 이렇게까지 모여 있어요. 사실 별 이상은 없었는데.”
건재한 척하려는 상현을 주혁이 곧바로 일갈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어쨌든 이상 없다잖아.”
상현이 이제 병실에서 나가려 가운을 벗던 찰나였다.
“엇……! 저기, 환자분?”
의사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
“잠시 따로 얘기를 하고 싶네요.”
의사가 환자를 따로 보자고 하는 게 그리 드문 경우는 아니다.
그저 사고가 나지 않은 것에 안도하고 있을 뿐, 다들 별로 이상할 거 없다고 생각했다.
오직 김주혁과 오 실장만이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 때문인지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죠.”
상현은 얼른 의사와 함께 자리를 피했다.
* * *
개인 상담실에는 의사와 상현 둘뿐이었다.
“앉으세요.”
둘은 서로를 마주보고 앉았다.
잠시 그렇게 적막이 흘렀다.
의사는 흐트러졌던 머리를 묶어 올리며 침묵을 깬다.
“어떤 말을 드리려는지 어느 정도는 알 거라고 생각됩니다.”
“예.”
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많은 테스트를 했으니, 현대 의학 기술이라면 반드시 알아냈겠지.
“오른손이 불편하시죠.”
“맞습니다.”
역시나 오른손에 대한 문제였다.
“그 손이 사실 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 알고 계십니까?”
“예.”
상현은 연이어 간단히 대답했고.
의사의 표정에는 안타까움이 서렸다.
그녀는 꺼내기 힘든 말인 듯 한마디 한마디 천천히 전달했다.
“상현 씨의 오른손은 사실 뇌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캡슐은 뇌파를 간섭하는 기계고. 음……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이유로 풀다이브 플레이 이후 녹초가 되시는 겁니다.”
“……역시 그거였군요.”
게임을 하고 나서, 너무나 많은 땀이 나는 것, 피로를 느끼는 것, 그래서 플레이 타임이 짧은 것…….
그 원인이 자신의 장애 때문이라고, 사실 상현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던 바다.
다만 외면하고 있었다. 그 사실 자체가 그냥 인정하기 싫었다.
난 그냥 오른손만을 다쳤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지금 상현 씨가 겪고 있는 현상은 일종의 신경계 장애이고, 후천적 뇌성마비 같은 겁니다.”
“압니다.”
“단순히 오른손으로 끝난 건 엄청난 행운이에요. 반신 마비가 오는 경우도 많아요.”
“……예.”
그때 의사도 천운이라 했었지.
‘천운이라…….’
상현의 귀에는 그게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눈 한쪽이 날아가더라도, 혹은 귀 양쪽이 다 잘리더라도, 아니면 코가 잘려 나갔더라도…….
오른손은 멀쩡해야 했다.
활을 잡고 쏘는 신체 부위만은 멀쩡해야 했다.
그런데 그게 망가졌다.
그것도 영구적으로.
그건 어떻게 봐도 천운이라고 할 순 없었다.
심지어 그 장애가 지금도 이렇게 앞길을 가로막으려는 듯 보인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이 의사가 왜 부른 걸까.
“무슨 문제가 있나요?”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없어요. 정확히는 몰라요. 하지만 문제가 생길 위험이 있으니까요.”
“얼마나요?”
“가상세계에서는 오른손이 잘 움직이시죠?”
“예.”
“왜 그런지 생각 안 해보셨어요? 뇌의 문제라면 거기서도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뇌의…… 신호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 손상 문제라서 그런 거 아닙니까? 거긴 가상현실이니까 손상이 없으니…….”
“아뇨. 뇌에 손상이 있다면 신호에도 문제가 있죠. 가상현실에서도 분명 영향이 있답니다. 캡슐이 손을 대신 만들어주긴 해도 뇌를 대신해 주진 않으니까요.”
“…….”
할 말이 없다.
상현도 의아했던 부분이긴 했다.
뇌가 다쳤다고 알고 있는데, 가상현실에선 오른손이 잘 움직였다.
일단 잘 움직이니까, 당연히 별 의문은 품지 않았다.
당장 활을 쏠 수 있었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왜 그런 거죠?”
“뇌의 다른 영역들이 그 오른손을 움직여주고 있어요.”
“……?”
“회사로 따지면, 아파서 병가를 낸 직원 때문에 다른 상관 없는 부서의 직원이 야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
“100% 정신의 영역으로만 구동되는 가상 세계여서 가능한 일이에요. 물리적 신경 체계 문제 때문에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죠.”
확실하게 이해가 됐다.
오른손을 관할하는 뇌의 영역이 손상되어 있는데, 가상세계에서는 다른 영역이 대신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동료 대신 야근하고 그러면 피곤하겠죠? 과부하가 걸려요. 그래서 땀이 많이 나고, 피곤하신 겁니다. 다른 게이머분들보다.”
“그렇군요.”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장기간 지속될 경우, 혹은 게임 시간이 늘어날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상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다이아 랭크를 가기로 했는데.’
마침 이제부터 게임 플레이 시간을 늘리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플레이 타임을 늘리고 싶은데.”
“상투적인 말이지만. 꾸준한 운동, 건강한 식습관은 필수시고, 그 외에 정기적인 검사로 데이터를 봐야 해요.”
계속 병원을 다녀야 한다는 말인 건가.
“알겠습니다.”
병원비가 걱정되긴 했지만. 일단 알아보긴 해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대답하고 이만 나가려는 그때.
척.
의사가 뭔가를 건네줬다.
명함이다.
‘송하나.’
의사의 무게감치고는 조금 캐주얼한 이름이 적힌.
“저한테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이건 자랑이 아니라, 정말 우리나라에 몇 없거든요.”
주혁이도 일전에 언급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뇌파 검사와 캡슐 플레이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의료진은 손에 꼽는다고.
그런데 그만큼 비쌀 터다.
그냥 일반적인 검사를 하는 병원에서 하면 안 되는 걸까?
“제가 무료로 해드릴게요.”
“……예?”
믿을 수 없었다.
이 의사 몸값이 얼만데.
“연구…… 목적도 있어서요.”
송하나는 시선을 피했다. 연구를 위해서 영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창피해서다.
“연구요?”
“……네.”
“어떤 점을요?”
“방금 말씀드린, 다른 부서 사람들이 대신 일해주는 거요. 그게 흔한 일은 아니에요. 정확히는 저는 처음 보는 현상입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으니까.”
그렇구나.
희귀한 일이었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는 상현이다.
“가상 세계라서 가능한 거 아닙니까?”
“가상 세계의 케이스도 처음이에요. 그게 가능하다는 걸 저도 처음 목격한 거구요.”
“저는 그게 가능한지에 대해 연구하시려는 겁니까?”
“네. 연구라고 해서 걱정 마세요. 환자분께서는 똑같은 코스를 밟습니다. 다만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제 연구가 추가되는 거죠.”
“알겠습니다.”
“동의…… 하시는 건가요?”
“매니저랑 일단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다만, 제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상현은 아까 게임 끝날 때 겪었던 현상을 떠올렸다.
“뭐든지 말씀하세요.”
“제가 아까 전, 게임 안에서 오른손이 저릿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에서처럼요.”
송하나의 눈이 커다래진다.
“그래요?”
“그건 왜 그런 겁니까?”
“……음. 간단히 생각한다면, 야근을 반복하다가 지쳐서 때려치운 거라고 보면 되는데…….”
그녀는 의사들 특유의 휘갈겨 쓰는 글씨로 뭔가를 마구 적으며 이어 말했다.
“그렇게 1차원적으로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네요. 그건 제가 여기서 엔지니어와 상의해서 추후에 연락을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상현은 또 뭔가 생각난 듯 멈칫했다.
“아. 하나만 더요.”
“?”
“아직 아무도 안 알려줘서 그런데, 제가 전자파 기록 깼나요?”
“아…… 동점이래요.”
의사의 대답을 들은 상현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 * *
송하나와 상현이 상담실에서 나오자, 주혁이 벌떡 일어났다.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송하나는 살짝 인사만 건네고 그들을 지나쳐서 엔지니어에게 향했다.
“야. 뭐래?”
주혁은 곧장 상현을 붙잡고 물었다.
“…….”
상현은 대답이 없었다.
“야. 왜 그래? 심각하냐?”
“어.”
“……진짜!?”
“하. 씨발…….”
“?!”
상스러운 말까지 뱉는 상현의 모습을 보고 주혁은 깜작 놀랐다.
대체 의사한테 무슨 말을 들었길래!
“아니, 왜 그래!? 말을 해봐!”
“기록 못 깼다며.”
“……?”
“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야. 의사한테 들었어. 동점이라고.”
“……그, 그게 지금 화가 나서 이러는 거야?”
“말이 되나? 동점이? 초 단위로?”
“아, 아니, 그러니까 지금 기록이 동점인 게 화가 난 거야?”
“그럼 넌 화가 안 나냐!?”
버럭.
상현이 큰 소리를 냈다.
그가 이렇게 흥분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그만큼 이번 기록을 깨고 싶었던 걸까.
“0.000001초만 더 있었어도 내가 이기는데 화가 안 나? 어떻게 완전 동률이야? 이거 주작 아냐?!”
“아니, 이 미친놈아! 지금 네 목숨이 왔다 갔다 했는데 뭔 동점이고 나발이고가 중요하냐?! 의사 선생님이 뭐라 하셨는지나 말해!”
“목숨은 무슨, 오버하지 마! 기록이 지금 훨씬 더…….”
둘이 거의 멱살을 잡으려는 찰나.
“저…… 아몬드 님?!”
스태프들 중 막내 작가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아몬드를 불렀다.
“이, 이제 들어오셔야 하는데…….”
“……예?”
상현은 지금 자기가 제대로 들은 건지 의심스러웠다.
방송?
그걸 아직도 한다고?
그는 주혁을 보면서 되물었다.
“아직도 방송이 안 끝났어?”
“그래. 인마.”
메디컬 체크로 1시간 반가량을 소모했는데, 당연히 모든 시청자가 나가떨어졌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 하고 있다니. 상현은 이번엔 막내 작가를 보고 물었다.
“아직 시청자가 있어요?”
“아, 아직 있는 정도가 아녜요.”
막내 작가가 휴대폰을 내밀어 보여줬다.
[현재 시청자 7.1만]무려 7만의 시청자가 가만히 대기 중이었다.
상현은 기분이 좋다기보단 이상했다.
“아니…… 대체 왜?”
정말 ‘왜?’라는 질문이 절로 나올 정도다. 왜 이 많은 인간이 그 긴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단 말인가?
기록도 돌파하지 못하고 동점인데?
상현의 기준에서는 의아하기 짝이 없었다.
“왜긴. 널 보려고 기다리는 거다. 최초로 전자파의 기록을 깬 사람을.”
주혁이 구겨진 셔츠를 정리하며 툭 뱉었다.
“……?”
상현의 얼굴은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이게 뭔 소리야. 기록을 깼다니.
“몇 분의 몇 초까지 다 동률이라며.”
“그거 말고.”
척.
주혁이 가리킨 세트장의 전광판.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사상 최초! VNS 마의 300선 돌파!] [기록 보유자 : 아몬드]“…….”
상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주혁은 피식 웃었다. 놀랐나 보구나.
자기가 세계 기록을 가졌다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돌아온 대답을 듣고 주혁은 지구에서 가장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저게 뭔데?”
순간의 정적.
‘아…… 그렇지. 뭔지도 모르겠다.’
게이머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개념이라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아몬드는 게이머가 아니다. 적어도 3주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주혁은 지금 자신이 상대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다시 인지했다.
하지만 뭐 어떤가? 이게 아몬드의 모습이다.
“얼른 저기 옆자리로 가서 앉아라. 가면 저 예쁜 아나운서 누나가 설명해 줄 테니까.”
“누나라기엔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아니, 이 미…….”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주혁을 피해 상현은 얼른 세트장으로 뛰었다.
그곳엔 이미 상현을 위해 모든 걸 준비해 놓은 채 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상현이 오는 걸 발견한 유하연이 흥분한 목소리로 텐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여러분! 아몬드, 아몬드 님이 지금 들어…….”
무슨 대단한 사람이 오는 것처럼, 결승전의 챔피언이 온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