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780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248화
82. 우릴 믿어(1)
“맞아요…… 저한테 온 거.”
“그렇구나.”
상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쪽지를 건네주고는 앞장서 걸었다.
‘Legends Never Die.’
상현은 이 문구를 본 적이 있었다.
릴 스토리 모드에 관한 설명문이었다.
[화신들은 성소가 존재하는 한 불사의 존재입니다. 이는 그들이 전설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죽을지라도, 그들이 남긴 전설은 죽지 않습니다.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그들의 전설을 체험하여, 그들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보세요.]아마 이것의 영어 원문에선 ‘Legends Never Die’라는 말이 들어갈 것이다.
비록 게임 설명의 한 구절이지만, 상현은 이게 틀린 말이 아니라 여겼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여 또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존재다.
그렇게 그 이야기에 담겨진 인물의 전설은 죽지 않고 이어진다.
이미 은퇴한 전자파를 지금도 인터넷에서 언급하여, 모르는 자들이 보면 마치 그 존재가 지금도 업계에 살아 있다고 느낄 것이다.
이 또한 어느 한편으로는 여전히 그곳에 전자파라는 인물이 살아 있는 것이다.
비록 은퇴했어도, 잊혀지지 않는 존재, 새로운 모든 도전자들의 목표가 되는 존재.
그것을 업계에선 ‘전설’이라 칭한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축구의 메시, 농구의 조던 등. 수많은 스포츠 전설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영원히 그 안에 살아 있다.
이는 상현의 꿈이기도 했다.
그는 양궁에서 자신이 그런 존재가 되기를 꿈꿔왔다.
비록 한참 먼 곳에서부터 이미 좌초하여 침몰하였으나.
꿈꿨던 그는 여전히 이 자리에 서 있다.
어쩌면 릴의 화신들과는 전혀 반대의 상황이었다.
그들은 몸은 사라지고, 전설만을 남겼으나.
상현은 전설은 남기지 못했고, 온전치 않은 몸만은 남아 있다.
‘…….’
그는 실내로 들어가기 전,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본다.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가끔도 아니고, 시종일관 이렇게 떨리고 있다는 건 무리가 왔다는 뜻이다.
“하아.”
그는 복잡한 심정으로 다시 발을 떼며 마저 들어가 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 * *
장난감 총으로 의견 전달을 마친 한우주.
그는 자신의 에임에 만족스러운 듯 씩 웃으며 이만 자리로 되돌아가려 했는데.
우당탕!
“어, 어어!?”
갑자기 검은 양복의 무리들이 덮쳐와 그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커헉! 뭐, 뭐야!? 왜 이래요!”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일본인들이었다. 그들이 그의 두 손을 뒤로 채우며 무어라 마구 소리쳤는데.
뭔가 맥락상, 그리고 상황상 드라마 같은 데서 형사들이 체포할 때 알려주는 미란다 원칙인 거 같았다.
그리고, 어쩌구 테러리스트라는 말이 들려온다.
“아, 아니! 아니라고! 지가으! 테러리스트! You Speak English? dude!?”
한우주는 그제야 자신을 뭐로 오해한 건지 알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대로 질질 끌려가 버렸다.
찰칵! 찰칵……!
근처에선 신기한 듯 사진과 영상을 찍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씨! 찍지 마! 씨발! 찍지 마!”
안 그래도 별로 이미지가 안 좋은 한우주.
코스믹 선수는 필사적으로 사진에 찍히는 것만은 피하려 발악했으나, 당연히 그 장면까지 찍혀 커뮤니티에 올라버렸다.
* * *
커뮤니티에선 한참 조선의 패배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조선 또 패배 ㄷㄷ] [아니 방금 아몬드 에임 뭐임?] [조선 지휘관 버그걸림???] [초반엔 좀 잘하더니……]3경기 초반보다 4경기 초반이 나았지만, 후반의 4경기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링고 역전 시나리오 가동중ㅋㅋㅋ]그래서인지 한 게시물에선 댓글에서 팬들끼리 피 터지게 싸우기도 했다.
-ㄹㅇ인거 같아서 이젠 웃지도 못하겠다
-시나리오 바꿔 ㅅㅂ 비형 불러와
-진짜 개못하더라 ㄹㅇ
-이게 원래 조선 실력이지 ㅉㅉ 뭔 우승까지 말하는 애들은 눈이 있냐? ㅋㅋㅋ
└조선 실력 안좋은거 다 알지. 근데 말도 못함? ㅋㅋㅋ
└잘할땐 아닥하고 있다가 이때다싶어 기어나온 조선까, 조까들 ㅋㅋㅋㅋ
└ㅈ까 ㅋㅋㅋㅋㅋ
└응~ 조빠들은 종교야~
└어케 팬덤이름이 ㅈ빠 ㅈ까 ㅋㅋㅋㅋ
그간 국가 대항전에서 보여졌던 여론 흐름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었다.
[한일전이라 그렇지 8강까지 온 거 기적인데 다들 기대치가 ㄷㄷ하네]-ㄹㅇㅋㅋㅋㅋ
-하필 한일전이라 그럼
-사실 여기서 져도 박수받으면서 와야함
└한일전에 그게 되겠누
-사실 2대2도 기적이긴함 서순 때문에 까이는거지
└ㄹㅇㅋㅋㅋ 순서바꼈으면 지금 커뮤 다 난리남ㅋㅋㅋㅋ
└지금도 난리났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
아무리 8강까지 온 게 대단한 성공이라고 해도, 앞서 이겨왔던 경험이 있기에 실망이 드는 건 별수 없었다.
또한 한국인들의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한일전’이기에 그 후폭풍 역시 거세었다.
그런 와중 잠시나마 커뮤니티의 관심을 돌릴 만한 사건이 하나 올라온다.
[속보) 조선 지휘관 테러하려던 일본인 잡힘]경호원들에게 끌려가는 사람의 사진이 박힌 기사가 퍼날라졌다.
기사에선 그가 ‘일본 관중’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는데.
이는 사실 일본에서 게임을 보던 관중이라는 말이었다.
-??
-엥?
-ㅁㅊ놈들
-와; 이게 뭐라고 ㅅㅂ
-리버스 안중근 뭔데 ㅁㅊ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이네 ㅋㅋㅋㅋㅋ
-???:일본을 침략한 조선의 지휘관을 죽인다……
-지들이 이기고 있는데 왜저러냐
└2대2니까 혹시 모르니까
-ㅈㄴ 역겹네 비겁한 새끼들
처음엔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돼서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진에서 음성이 들리는 것도 아니기에, ‘일본 관중’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일본인으로 오해했다.
우습게도 이 오해 덕분에 여론은 잠시 조선 지휘관을 옹호하는 쪽으로 환기되었다.
-ㅅㅂ 저런데서 게임하는데 진다고 욕하지 말자
-ㄹㅇ 전쟁중이었누 ㅠㅠㅠ
-아니 안그래도 휠체어 앉으신 분을 테러하고 싶냐???
-조선 화이팅! 억까 견디고 이기자~!
이 오해는 테러리스트의 정체가 드러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한동안 게시판 전체가 테러리스트에 대한 이야기, 조선은 힘내라는 말로 도배되었다.
그리고…….
[저거 코스믹인데?]마침내 코스믹인 것이 밝혀진 후에야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영상 있음) 일본인이 아니라 코스믹.]웃긴 건, 그가 테러를 하려 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오해받고 있어서.
조선에게 향하던 욕이 죄다 코스믹을 향했다.
[쟨 저기서 왜저럼 ㄹㅇ 관종새낀가] [코스믹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쟨 왜 테러함?? ㅅㅂ 매국노임?] [코안용 ㅅㅂ련아!] [와 미친놈 아니랠까봐 여기서도 저렇게 관심을 끄누]평소 별로 좋지 못했던 이미지에, 어이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에 대한 대가였다.
물론 이것도 후에 그 의도가 밝혀진다.
-코스믹은 좋은 의도로 간건데 왜 욕먹누 ㅋㅋㅋㅋㅋ
└원래 욕받이임ㅋㅋㅋㅋ
└평소 행실이 ㅋㅋ
└ㄹㅇ 좀 불쌍하넼ㅋㅋㅋ
그를 불쌍히 여기는 자들도 있었으나, 사실 그간의 업보였다.
어쨌거나, 지휘관에게 힘을 실어주려던 코스믹의 의지는 실현된 것 같았다.
그가 욕을 대신 다 먹는 바람에 조선을 욕하는 글들이 눈에 띄게 사라졌으니까.
* * *
덜덜덜…….
상현은 대기실 구석에 앉아 자신의 오른손을 가만히 내려봤다.
‘멈춰라…… 멈춰…….’
아까부터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상현 씨도 이만 멈추는 게 좋아요. 적어도 2선으로 물러나서 게임 하세요.」
의사의 말이 귓가로 지나간다.
「왜들 이렇게 이거에 진심인 거야. 진짜…… 진짜 국대전도 아니잖아요.」
그녀는 자신이 담당하는 환자들이 몸을 막 쓰는 게 답답하여 내뱉은 말이었다만.
그 말은 의외로 상현의 심장에 깊이 파고들어 왔다.
‘그건…… 그래.’
그가 국가대표의 꿈을 가졌던 것은 맞다.
태극마크를 달고,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무대에 서, 당당하게 금메달을 거는 장면을 늘 꿈에 그리던 건 맞다.
그러나, 여긴 대한민국이 아닌 조선이란 이름이 걸려 있으며, 유니폼엔 국가대표의 상징인 태극마크도 없었다. 스폰서인 괴수의 광고가 붙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오른손은 어느 때보다도 떨리고 있었다.
‘활 말고 검으로 가야 하나.’
검을 쓸 때는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활만큼 예민하게 조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조선의 검수로서 그가 일본 검객들을 이길 수 있을까?
기습적으로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검 대 검으로 붙었을 때. 활만큼 압도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조선은 누가 뭐래도 활 문명이며, 처음 전투를 주도하는 건 늘 궁수들이다.
‘그런데 이래서는 방해만 될 거야.’
그의 머릿속에 팡어, 당근, 스팸, 롸떼 등의 멤버들이 스쳐 간다.
이들도 이미 충분히 훌륭한 궁수들이었다.
거기에 팔이 불편한 사람의 자리 따위, 마련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국가 대항전? 하는 건 좋은데. 무리하지 마라. 넌 프로게이머가 아니라 스트리머야.」
주혁이의 말도 스쳐 갔다.
그의 옆에 지아의 얼굴, 펑크의 오 실장님, 요즘 주혁이 일을 도와주는 본투비, 그리고 그에게 광고를 줬던 수많은 대표들…….
그랬다. 그가 분명히 스트리머로서 짊어지고 있는 짐도 존재했다.
“하아─”
상현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떨구었다. 땀이 흐르다 말라버려 꼬인 앞머리가 시야에 아른거린다.
고민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가 버렸다.
“선수들. 입장 준비해 주세요!”
웅성웅성.
대기실이 잠시 시끄러워진다.
“아니. 뭐야. 피드백 없어?”
“어떻게 된 거야. 이렇게 그냥 나간다니.”
“……허. 참.”
전 경기에 대한 피드백이 없이, 그대로 쉬다가 5경기로 나가는 상황.
절체절명의 경기인 것을 감안하면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바름이 문을 열고 들어와 외친다.
벌컥!
“일단 나가! 들어가서! 들어가서 짧게 브리핑한다! 오케이!? 회의가 늦어졌어!”
지휘부랑 싱크 탱크의 회의가 꽤 오래 걸린 모양이다.
“오, 오케이~”
병사들은 당황했으나, 그리 티는 내지 않았다.
여기서 괜히 몇 마디 더 얹었다간 모두의 사기가 저하될 것이다.
조선 팀의 대기실 공기엔 보이지 않는 폭약 가루가 흩날리는 것만 같았다.
“자! 입자아아아앙!”
선수들이 줄을 지어 다시 경기장으로 향했다.
상현은 천천히 머리를 저으며 생각을 털어내려 애썼다.
일단 들어가서 생각해 보자.
어떻게 할지.
탁─
그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걸어가며 경기장 안으로 한 발을 들여놨을 때였다.
“!”
순간 그는 온몸이 공중에 붕 떠 뒤로 날아가는 듯한 착각을 받았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제까지와의 함성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 터져 나왔다.
천둥이 바로 눈앞에서 울려 퍼진 듯했다.
“대──한 민국!!!”
콰과광! 쾅! 콰앙!
응원 구호도 이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또렷하게,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울려 퍼졌다.
심장이 북소리에 맞춰 쿵쾅거렸다.
‘코치님…….’
그의 뱃속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치솟았다. 그것은 이내 상승하여 이 현장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그의 두 눈에 깃들었다.
「코치님. 국내선수권 우승하면 국가대표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국내선수권을 준비하면서 코치에게 물었던 말이다.
「뭐 인마? 하하. 그래. 뭐. 실력은 국가대표급이겠지.」
「……실력은? 실력이 국가대표면 국가대표죠.」
「다르지. 국가대표는 말이다. 음…… 쉽게 설명하자면 이 사람이 우리나라의 승, 패를 결정짓는 사람이라고 국민들이 인정해 줘야 한다.」
「응원단이 있어야 돼요?」
「으, 으아하하! 응원단 그래. 그런 게 있어야지. 그럼 여기 태극 마크 딱 달아주지.」
톡, 톡.
코치는 그의 오른팔을 치며 말했다.
「그럼…… 실력도 있고, 응원단이 있으면. 국대시험 안 봐도 태극마크 줘요?」
「음? 그럴 일은 없다. 양궁은 국대 경기 아니면 아무도 안 보는데. 응원단이 어떻게 있냐. 이 녀석아. 잔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국대 시험 봐!」
「에이…… 칫.」
그래, 맞았다.
그땐 코치님 말이 맞았는데.
상현은 중얼거렸다.
“에이…… 코치님.”
코치님이 연습시키려고 거짓말했나 보다.
그야, 지금 그의 눈엔 보이고 있었다.
파란색과 붉은색으로 나뉘어 앉은 관중들.
너 나 할 거 없이, 국가도 상관없이 모두가 일어서서 열정적으로 응원가를 부르짖는 이들.
이들에게서 분명 보이고 있었다.
눈가가 뜨거워질수록, 그 두 색의 경계가 점차 흐려질수록.
그가 꿈에 그리던 그것이, 그 누구의 것보다 큰 모습으로 나타났다.
“태극마크 주잖아요.”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관중들이 다시 한번 크게 외쳤다.
“대──한! 민국!”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태극마크, 수많은 관중들.
이제 아무도 부정할 수 없었다.
상현은 더 이상 도망갈 수 없었다.
그는 여기서, 진짜 국가대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