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796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264화
87. 봄(2)
한일전이 끝났을 시점.
주혁은 텅 빈 경기장에서 남은 인형들을 수거하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것들도, 4강전에서 리퍼 상품으로 되팔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사실 인형이나 응원 도구나 전부 일회용이기 때문에 리퍼 제품을 사려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았다.
“어휴.”
허리를 지나치게 오래 숙이고 있었는지 뻐근했다만.
깊은숨을 내뱉는 입가는 웃고 있었다.
“이게 다 얼마냐.”
맨땅에 떨어진 돈을 줍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아무도 이게 돈인지 모르는, 그런 돈을 말이다.
그렇게 바보같이 실실 웃으면서 카트에 떨어진 인형과 응원 도구를 전부 수거한 그는 렌트한 커다란 SUV에 전부 구겨 넣었다.
“휴.”
정리 하나 안 되어 있는 채로 아무렇게나 구겨져 들어간 인형과 도구들.
“부장님이 보면 식겁을 하시겠네.”
정리 정돈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 가끔 있지 않던가?
회사 중 특히 상사 같은 곳은 커지면 커질수록 다루는 일의 양, 물건의 양이 많아진다.
정리를 하지 않으면 굴러갈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다.
그러니 그 시스템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조금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늘 정돈된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캐주얼하게나마 슈트를 요구하는 고루한 풍토도 상사에 많이 남은 것이 그런 이유이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주혁도 한 결벽증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에 측정했다면 분명 극단적 J로 나왔겠지. MBTI라는 게 이래서 하등 의미가 없었다.
쿵.
트렁크를 닫아버리며, 주혁은 너저분해지고, 한편으로는 편해진 이 삶에 대해 쓴웃음을 머금었다.
운전석에 탄 후, 그는 시동을 걸어 따뜻하게 좌석을 데울 뿐 곧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예전의 그였다면 모든 일을 정리하고서 확인했을 것을 지금 확인하고자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그의 휴대폰엔 컴퓨터와 연결된 엑셀 문서가 떠올라 있었다.
이는 결제 기기와도 바로 연동되어 있어서, 그가 오늘 판매한 수익과 앞서 공장에다가 넣은 공급액 등이 전부 계산되어 있었다.
“크.”
이거 지금 운전하면 음주운전 아냐?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취기가 올라오는 숫자였다.
“지독하게도 팔았다. 김주혁!”
빠아앙~
그는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려 머리를 핸들에 갖다 박았다.
“스, 스미마생! 스미마생! 하하…….”
회사를 나간 후, 당연한 거지만 마냥 모든 게 좋은 건 아니었다.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서 돈을 만들어낸다는 건 전쟁 같은 일이었다.
어릴 적 봤던 한 미국 영화에서 그는 궁금했던 게 있었다.
그렇게 자본과 자유의 나라라고 하더니, 그 자본의 중심이 되는 증권사 직원들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빡빡한 룰에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
그땐 그것이 소위 허세이거나, 미처 지우지 못한 인습이라 여겼는데.
이젠 알 것 같았다. 뉴욕의 증권사 직원들이 슈트를 철저하게 갖춰 입고 머리를 완벽하게 포마드로 넘겨야 하는지.
군인들이 군복을 입어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증권사라 하면 사실상 시장의 최전선에서 뛰는 자들이니, 그만큼 규율이 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옆에 포마드 군단 전우들이라도 있지, 사장이 되니 주혁은 이 시장에서 홀로 싸워내야만 했다.
저 혼자 머리를 포마드로 올리고, 양복을 갖춰 입고, 구두를 신은 채 어디든 뛰어다녀야 했다.
물론, 그럼에도 늘 일이 끝난 후 저녁이 되면 그의 입가엔 한숨이 아닌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지금처럼.
어릴 적, 그의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실 때 그랬던 것처럼.
부우웅.
그는 차를 몰아 선수들이 머무는 호텔 쪽으로 향했다.
선수들 숙소 바로 옆, 작은 비즈니스호텔이 그가 머무는 숙소였기 때문이다.
* * *
차를 운전하며 일본 도심의 밤을 구경할 때만 해도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가 어떤 전화를 받게 될지, 지금 시빌 엠파이어가 정확히 어느 정도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지.
숫자와 시장 반응에 민감한 그조차도 당장은 재단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조금 한가로운 회상을 하고 있었다.
이제 우측 운전대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서인지, 머릿속엔 계속 예전 생각들이 두둥실 떠돌아다닌 것이다.
그 떠다니는 구름들은 맑은 하늘에 하얀 구름도 있었으나 흐린 회색 빛깔인 것도 있었다. 그런 것들은 유독 크고 넓고 오래 머물렀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얼굴들이 묻는다.
「매…… 매니저? 아니, 무슨 일이야 그게?」
「너 무슨 일 있어? 갑자기 매니저라니.」
「혹시 구조조정 때 나가래?」
예전 회사 동료들과 연이 닿으면 반드시 보게 되는 표정들이다.
완전히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이 이렇게나 같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니.
내심 감탄까지 할 정도였다.
「아…… 하하. 그렇구나? 재밌게 산다. 야.」
뒤에 이어지는 억지스러운 칭찬과 무마는 3류 작가들만 모아놓고, 제발 뻔하디뻔한 대사로만 채워주세요라고 부탁한 것 같았다.
물론 한때 그도 그들과 같은 그 세계의 주민이었기에 잘 알았다.
회사 이름이 적힌 명함이 주는 힘 말이다.
아성의 직원들은 사회의 그런 일면을 아주 긍정적인 방식으로 경험하게 되고.
아주 부정적인 방식으로 다른 이들에게 경험을 전가하게 되곤 한다.
이는 누구도 의도치 않아도 그렇게 되게끔 세상이 만들어져있었다.
그 이유를 당시엔 찾지 못한다.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었다.
그야 산소가 내게 왜 유익한지 알아내려 하는 인간보다, 미세먼지가 왜 유해한지 알아내려 하는 인간이 더 많은 것이 순리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주혁은 당연하게 여겼다. 그 크고 편리한 그늘을.
그게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그는 이제 홀로 뙤약볕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과 그 태양이 생각보다 인간 친화적이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후.
처음엔 아성을 그리워했다.
그 아늑하고 시원한 오피스에서 소소하게 인사도 주고받고, 가끔은 수다도 떨며 함께 일을 해가는 그 풍경이.
그러나, 나중엔 달랐다.
그들이 싫어졌다.
회사가 아니라, 아성을 다니는 자들이 싫어졌다. 아예 멍청한 자들이라 여겨 버렸다.
자신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자들을 싫어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차원적 반응이다.
자신이 괜한 심술을 부린다는 걸 알고 있지만, 주혁의 지금 마음은 그러했다.
* * *
기분 좋은 날, 별로 기분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올라버린 주혁은 생각보다 굳은 표정으로 호텔 방으로 들어섰다.
상현의 상태를 체크하러 선수들이 머무는 호텔에도 들러봤지만, 도착하자마자 자고 있다는 말에 그냥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쩝.
그는 휴대폰 화면에 뜬 엑셀을 다시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 엄청난 숫자를 보고 상현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는데.
조금은 아쉬웠다만, 컨디션이 좋을 때 보여주는 게 효과도 훨씬 좋으리라, 생각하며 이만 옷을 벗어 던지고 노트북을 펼쳤다.
매출을 참고해서 앞으로 공장 오더 계획을 수정하고, 4강전에 대한 계획을 수립한다.
선수들도 4강을 준비하지만, 그 역시 4강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나름 비슷한 처지다.
물론 그에겐 200명이나 되는 전우나, 그들을 전담하는 싱크 탱크 팀이 없었다.
수많은 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도, 심지어 그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업계의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손은 바삐 움직였다.
* * *
이틀 정도가 지났을까?
국가 대항전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주혁은 비로소 완전하게 머릿속에 정리를 할 수 있게 됐다.
[조선이 일본을 꺾다 “기적의 승리”] [4강전 티켓 5분 만에 완판. 일본행 비행기 때아닌 성수기] [릴이 아닌, 또 다른 e스포츠의 왕의 재림]국내 각종 언론사들이 시빌엠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메이저 마이너 이제 구분할 것도 없었다.
한 기사가 올라오면 모든 언론사가 복붙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까.
이런 건 일시적인 호황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만.
“아, 예. 맞습니다. 제가 국가 대항전 매니저입니다. 아, 어디시라구요?”
주혁의 전화가 불티나게 울려댔고.
아성 출신인 그조차 회사 이름을 듣고 놀라게 되는 회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 물론입니다. 제가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모두 같았다.
투자를 해줄 테니, 약간이라도 스폰서 느낌이라도 내는 게 가능한가?
“아. 그…… 사장님. 디자인 변경 좀 급하게 하하…… 예, 예. 별건 아니구요. 그냥 회사 로고 정도만…….”
국가 대항전 굿즈 생산을 시작해야 했던 공장은 수도 없이 몰려오는 요청에 아예 생산을 잠시 중단해야 했다.
“4강전에 안 넣어도 되신다구요? 아. 예. 그럼 결승에 가능하면 넣고. 안 되면 다음 연도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회사들은 4강에 자신들을 안 넣어도 된다고 했다.
시빌엠의 이 모든 인기가 8강 한일전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걸 감안하면 정말 담대한 요청이다.
스폰서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해서 모두가 무급으로, 심지어 돈을 내고 뛰어야 했던 그 팀이, 지금은 스폰서를 넣을 자리가 부족해지고 있었다.
200명, 아니, 싱크 탱크 등 그 관련자들의 월급까지도 챙겨줄 수가 있게 됐다.
이게 8강과 4강 사이 그 잠시 동안에 이뤄진 일이라 말하면 믿어지는가.
주혁은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았다.
더 믿기지 않는 건, 이로 인해 거둬지는 수익과 그 배분 등의 일체가 그의 권한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예? 진짜요?”
이때만 해도 주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희철이 이 팀을 키워내기 위해 바쳤던 시간과 노력이 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넘겨준다면, 얼떨떨해지는 게 당연했다.
“아니, 임시라고는 해도. 그게…….”
신뢰.
단순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희철은 주혁의 능력을 신뢰한다고.
그러나, 그것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희철은 슬하에 자식이 없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주혁은 갑자기 그런 게 생각나 버렸다.
그는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끄덕였다.
“제가 잘 해보겠습니다. 적당한 시기가 올 때까지.”
그의 능력을 보고, 김주혁이 아닌 매니지먼트의 대표로서 신뢰해 준 첫 번째 사람이다.
희철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마 이 전화를 끊고, 복잡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이미 꽤 많은 스폰서들이 붙고, 재정적인 문제는 해결되고.
공급보다 배분을 더 고민해야 하는 상황.
주혁은 어느 전화를 받게 된다.
-안녕하세요. 아성 마케팅 부서 구진모 과장입니다.
“여보세요. 아, 구 과장님?”
정말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다.
한때 잠시 마케팅 부서에 팔려가서 일하던 시절에 나름 잘 챙겨주던 상사다.
“무슨 문제 생겼나요? 마케팅팀은 제가 안 한 지 한참인데.”
주혁은 아성의 이름으로 걸려온 전화이기에, 으레 그가 처리한 일 중에 뭔가 문제가 발생해 오는 그런 전화로 생각했다.
이미 직전에 일하던 부서에선 거의 주에 한 번꼴로 전화가 왔던 적도 있었다.
마케팅팀은 제가 안 한 지 한참인데, 라는 말에서 이미 약간의 심기가 불편함이 드러나는 셈이다.
그런데 상대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예? 그…… 국가 대항전 팀 매니저 김주혁 씨 아닌가요? 여기가 대표 번호로 되어 있던데…….
‘어?’
순간 주혁은 깨달았다.
이 전화가 전 아성 사원 김주혁에게 온 게 아니었다는 걸.
이 전화는 믹스넛츠의 대표이자, 국가 대항전을 책임지게 된 총괄 매니저인 김주혁에게 온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