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797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265화
87. 봄(3)
“예. 다음에 봬요. 구 과장님.”
툭.
주혁은 전화를 끊고 잠시 옛 생각에 잠겼다.
구 과장 하면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다.
약 4년 전.
주혁과 상현, 그들이 아직 파릇한 신입이던 시절.
모든 사원이 하나같이 상사의 칭찬 한마디를 갈구하고, 어떻게든 누군가의 눈에 들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뛸 때.
아직 사원으로서 열정이라는 게 그들의 축 처진 어깨를 받쳐줄 수 있었을 때의 이야기다.
“야. 네가 한 것도 거의 절반 아니냐? 왜 쟤가 칭찬을 받아? 가서 따져야지?”
“칭찬에 목숨 거냐.”
“아니, 그냥 칭찬이 아니라…… 이거 다 고과에 반영된다니까?”
기나긴 오피스의 복도.
주혁은 답답하다는 듯 상현을 따라가며 설득하고 있었고, 상현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
사실 신입 동기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리저리 은근한 친목과 파벌로 어느 정도 팀이 갈려 있었기에, 서로 충고를 해주기도 하고 누군가의 공을 가로채기도 한다.
“나도 알아. 반영되는 거.”
“……아니, 그럼 왜 이러는데?”
“내가 더 해봐야, 상황이 나빠지니까.”
“?”
주혁은 당시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때 상현이 엮여 있던 건에 자신의 부서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냥 좌시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어휴. 이 답답한 새끼.’
주혁은 화가 치밀었다.
속으로 뭔가 끓어오르며, 상현을 지나쳐 앞에서 히히덕거리는 자들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디디려는 때였다.
상현이 차디찬 얼음물을 끼얹어 버린다.
“……그냥 내가 진 거야.”
“뭐?”
져?
뭐가 졌다는 거야.
이번 계약에서 상현은 결정적인 일을 해냈었다.
“지긴 뭘 져?”
“그냥. 다…… 전부 다.”
“……뭔 말이야.”
“내가 고졸인 거. 낙하산이고, 일머리도 없어서 평소에 눈 밖에 난 거, 사회성도 모자라서 일을 어쩌다 잘해도 반영도 못 하게 되는 거. 오히려 내가 이긴 게 없지.”
상현은 정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투였다.
그는 승부에 철저히 수긍하는 편이었다.
그게 어떤 승부든, 심지어 사내 정치력이어도.
“하.”
이때까지만 해도, 주혁은 상현이 단순히 매너리즘에 빠진 낙오자라고 여겼다.
“알아서 해라.”
그러나, 아니었다.
그는 그저 승부에 진심이었다.
그러니까, 입장이 반대인 상황에서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둘이 함께 팀에서 일하게 됐을 때 일이다.
“우리가 왜?”
슥.
다른 팀을 같이 어필해 달라는 말에 의자를 돌려 앉으며 갸우뚱하는 그의 모습.
“그야…… 마케팅팀에서…… 우리 때문에 손해를 좀 봤거든. 구 과장님 너도 알잖아?”
“난 구 과장님한테 그렇게 배운 적이 없어.”
“……뭐?”
“구 과장님이 지신 거야. 우리 과장님한테. 아마 금방 납득하실 거야.”
“…….”
턱.
서류를 가볍게 털어 정리하며 이만 퇴근하는 상현을 보고, 주혁은 기억이 났다.
길고 긴 복도.
‘그때…….’
저 앞에서 부하 직원들과 걸어가던 그 뒷모습.
그 사람이 구 과장이었다.
당시엔 구진모 대리.
“……알았다.”
주혁은 납득해 버렸다.
그 후, 마케팅팀으로 옮겨진 주혁은 구 과장을 좋게 보지 않았다.
‘저놈이 그런 걸 가르쳤나.’
그런데, 아무리 나쁘게 보려 해도.
‘응?’
구 과장은 좋은 사람이었다.
‘뭐지? 좀…… 괜찮은 놈인가?’
첫째, 구 과장은 인격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는 사람이다.
둘째, 주혁은 늘 승리자였다.
사회성으로든, 실력적으로든.
그렇기에 그는 구 과장과 전혀 문제가 없었다.
어찌 됐든 구 과장과의 만남 이후.
원래 성격 탓도 있겠지만, 상현이 패배자를 챙기는 경우는 없었다.
그게 어떤 종류의 패배든, 심지어 그게 자신이라고 해도 말이다.
평소엔 순하고 멍청해 보여도, 정말 중요한 순간엔 아무렇지도 않게 얼음장 같은 칼날을 들이밀 수 있는 사람.
그게 아성을 다니던 시절의 상현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전에 모습은 더했을 수도.
그런 모습 덕에 더 미움을 산 적도 많았다만, 어느 날 술자리에서 상현은 이렇게 대꾸했다.
“그렇게라도 안 했으면 다 날 깔봤을 건데.”
그렇게라도 해서 그나마 미움을 덜 받는 거라고.
지금 주혁의 눈은 한때 그가 일했던 부서의 전화번호로 고정되어 있다.
아까 전 통화 기록이다.
‘구진모 씨…….’
그가 신입이었을 땐 어떤 사람이었을까?
* * *
상현이 눈을 떴을 땐, 옆에서 팡어가 코를 골며 여전히 자고 있었고.
침대 베개는 한겨울임에도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꿈을 꿨나…….”
보통 그 녀석이 나오는 꿈을 꾸면 이렇던데. 막상 기억이 나진 않는다. 그만큼 깊이 잠든 것이리라.
상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켜 시간을 확인했다.
10시였다.
평소였다면 기겁을 했을 테지만, 단체 톡방에는 이런 공지가 떠 있었다.
[치승: 오늘은 휴일]오늘 하루는 훈련이 없다.
자유롭게 쉬는 날이었다.
이만 침대에서 벗어나려던 그는 다시 뒤로 누우며 다른 메시지들도 확인했다.
[주혁: 몸 괜찮냐? 자고 있길래 그냥 왔다. 내일 의사쌤 꼭 만나라.] [주혁: 야. 언제 일어나냐?] [주혁: 일어나면 톡 ㄱ]주혁이 뭔가 일이 있는 건지 톡을 연달아 3개나 보내놨다.
상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왜?’라고 보내놓은 후 다른 메시지를 살펴봤다.
[현주: 오빠 경기 대박 ㅋㅋㅋ 진짜 미쳤어요! 우리 동기들 다 난리야!] [동수: 후계의 자랑! 유상현!ㅋㅋㅋ] [소연: 유상현 출세했네~ㅋㅋ]양궁부 멤버들의 응원 메시지도 와있었다.
한일전은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돼서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회사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메시지를 보내올 정도니까.
‘어?’
그런데, 어떤 메시지 하나를 보고 상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소연?’
그는 머리를 휙휙 흔들고는 다시 봤다.
[수현: 유상현 출세했네~ㅋㅋ]수현이었다.
양궁부 멤버 중 하나였다.
죽은 한소연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아.”
그런 적 있지 않은가?
잠이 덜 깬 비몽사몽한 상황에 시계를 보다가, 한참 시간을 잘못 보게 되는 경우.
혹은 꿈을 꿨다 깼다 반복하다 보면 어떤 게 진짜 꿈이었는지 모르게 되는 경우.
어떤 이들은 그 꿈을 계속 꾸고 싶어 다시 잠에 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엔 그도 다시 잠을 청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단순히 그 꿈을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상현은 어느 시점 이후 한 번도 그런 선택을 했던 적이 없었다.
언젠가 깨어나, 그게 꿈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일어나자.’
늘 그래왔듯, 그는 일단 눈을 뜨면 벌떡 일어난다.
창가로 다가간다. 이대로 더 누워 있다간 또 잠에 들 수도 있었다. 꿈을 꿀 수도 있었다. 찬 공기를 맞으면 금방 깰 것이다.
드륵.
창을 열어젖히니, 시원한 공기가 뺨을 스치고 간다.
훅, 치고 들어오는 공기.
그런데 기대와는 다르다.
“……어.”
일본이라서일까.
공기에서 쌉싸름한 겨울내가 사라졌다.
공기는 차갑기보단 시원했으며 약간의 습기를 머금어 부드러웠다.
저 멀리서 날아든, 작은 민들레 씨앗이 콧잔등에 달라붙는다.
봄이 온 것이다.
이러면 꿈에서 완전히 깨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상현은 떨떠름하게 한참을 창밖을 내다보며 서 있다가, 갑자기 머리를 좌우로 마구 흔든다.
“아부부부부붑…….”
입에서 우스꽝스러운 소리가 나지만, 잠을 깨보려는 발악이다.
* * *
계절이 바뀌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우선 시빌 엠파이어는 명실상부 인기 게임이 되었다.
그게 설령 이번 연도 한정의 반짝 인기라 할지라도, 어찌 됐든 현재로선 그렇다.
엠불은 커뮤니티에 유입되는 사람들을 다 받아내기 위해 서버를 확장한다는 공지를 띄웠고, 시빌엠의 한국 지부는 성과금 파티를 연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런 것들은 큰 변화였다.
기사로 따지자면, 한국일보 사회면 정도에 나와도 될 정도의 변화들.
이런 변화가 생기면, 작은 것들도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기사로 따지자면 지역 신문 한구석에 조그맣게 날 정도의 변화들.
상현이 그런 변화들을 목도한 건 주혁의 부름에 응했을 때다.
비몽사몽, 겨울잠에서 덜 깬 너구리 같은 얼굴로 그의 객실로 향했다.
“뭔데 그래?”
주혁은 상현을 보자 잔뜩 흥분하면서 뭔가를 보여준다.
“야. 이거 봐라.”
화면에 비친 건 올튜브 채널이다.
아몬드의 채널이었다.
[구독자: 104.9만]가짜 국대 이후 채널 조회수가 펑펑 올라가더니, 기어코 구독자까지 100만을 찍었다.
“추세가 장난이 아니더라, 해외에서도 보러 와서.”
채널마다 성향이 있다.
어떤 채널은 구독자가 빨리 늘고, 조회수는 늦게 따라붙거나 횡보한다.
어떤 채널은 조회수는 계속 오르는데, 구독자는 별로 없다.
아몬드의 채널은 희한하게 후자였다.
보통 저런 채널은 자극적인 영상을 올리는 피로도가 높은 컨텐츠를 다루는 채널에서나 보이는 현상인데.
주혁은 이 현상의 원인을 일관성이라고 해석했다.
아몬드도 그렇고, 지아도 그렇고 방향성을 잡기엔 경력이 길지 않았다.
때문에 여러 편집 방향 변경이 있었고, 그때마다 반응은 괜찮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지만.
아몬드라는 인물이 입소문을 타면서, 혹은 어떤 사건들이 터지면서, 조회수만큼은 천천히 우상향했다.
그러나 이 채널을 계속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그의 라이브 방송을 자주 보는 팬들 정도였고.
그 외 라이트하게 가끔 들르는 사람들을 다 포함해도 100만은커녕 50만을 넘기는 데에도 꽤 오래 걸렸었는데.
가짜 국대라는 컨텐츠가 시작하면서 완전히 판도가 바뀌었다.
구독자 상승세가 굉장한 추세로 올랐다.
가짜 국대는 일관성이 있는 컨텐츠였으며, 연결성까지 있어서 ‘다음 화’라는 게 존재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 다음 화를 보기 위해 구독을 눌러두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구조상 국가 대항전의 성적이 나올 때마다, 가짜 국대는 한 화 더 나오게 되어 있었다.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구독률까지 같이 올라가는 상황이니.
한일전까지 이긴 지금, 정신 차려보니 갑자기 구독자가 100만을 넘겨 버린 것이다.
“이러다가 국가대항전 다 끝나면 130만도 가능하겠어.”
주혁이 그래프를 쳐다보며 신나 한다.
“지금 온갖 채널에서 미리 너 출연 예약하려고 메일 오고 난리도 아니다.”
메이저 채널에선 늘 유명 인사들을 모아서 큰 프로젝트성 컨텐츠를 꾸리곤 하는데.
예전에야 기성 연예인들 위주의 프로가 많았지만.
근 10년 정도 사이 적어도 50% 정도는 SNS나 마이너 채널(개인 방송)을 기반으로 한 셀럽들로 채워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몬드 정도면 그런 데 나가도 상전 취급받으며 촬영하게 될 것이다.
채널의 규모나 수익을 떠나, 현재 국민 영웅 수준의 지지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더 브릴리언트’에서도 연락 왔더라. 얘네 또라이 아니냐?”
크하하하.
주혁이 빵 터진다.
“그게 뭔데?”
“더 브릴리언트 몰라?”
“어.”
“그거 있잖아. 머리 좋은 셀럽들 나와서 막 두뇌싸움 하는 거.”
스테이지를 넘어갈 때마다 한 명씩 탈락하고, 두뇌 싸움에서 승리한 자들이 계속 살아남아 매번 달라지는 게임을 하는 포맷의 컨텐츠였다.
“……오?”
상현이 흥미롭다는 듯 영상을 지켜보자, 주혁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설마 이 자식 나가려고?’
그러고 보니 상현은 이상하게 자신의 두뇌 플레이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었다.
툭.
“어? 왜 꺼.”
“아냐.”
“……뭐가 아냐. 왜 끄냐고.”
“아니라니까?”
“칫…….”
상현은 묘하게 풀이 죽었다.
“크흠.”
주혁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서, 다음 이야기를 보여줬다.
“자. 브릴리언트고 나발이고. 이거 봐라.”
엑셀 차트였다.
저녁에 가서 자랑하려 했던 매출이 적힌 엑셀이다.
“일, 십, 백…… 어?”
상현은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이게 진짜 굿즈 수익이야?”
“심지어 네 것만이야. 이건 완전히 우리 100% 다 먹는 거라고!”
돈 얘기에 주혁이 급 흥분하며 벌떡 일어서며 손을 뻗는다.
짝!
상현도 저도 모르게 그의 손뼉을 쳐버린다. 절로 하이파이브가 나오는 액수였다.
둘은 눈이 마주치고, 서로 설레발 올림픽을 개최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지? 한강변 부동산 싹 다 임장 예약해. 할머니가 일단 남자면 한강 보이는 데 살라고 하셨어.”
“난 일단 엘론머스크부터 만나러 가려고. 아버지가 일단 유명한 놈들은 만나고 보라 하셨어.”
물론 현재까지 모은 돈으로 한강변 부동산 싹 다 예약은커녕, 제대로 된 곳 하나도 빚 없이는 살 수 없었다.
차라리 엘론머스크는 운으로라도 만날 수 있을지언정.
“이게 내 굿즈만 판 거라니…… 나머지 다 합치면 대체 얼마야?”
그럼에도 그들의 눈엔 희망이 넘쳐흘렀다.
현재로선 진정한 부자들의 수준에 다다르긴 미약할지언정, 미래를 꿈꿔 볼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래. 나머지 다 합친 건 여기.”
“……?”
이때, 싱글벙글 반짝반짝하던 상현의 표정이 묘해진다.
‘1.5배 정도인 건가?’
아몬드 한 명의 굿즈 판매량이 국가 대항전 모든 굿즈의 75%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 4배는 될 줄 알았는데.’
당연히 인지도에서 밀리기에 큰 기대는 없었지만,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아직 인지도가 좀 밀리잖아. 이건 차차 해결해야 될 거 같아. 어차피 나누는 것도 아니니까. 뭐.”
“어. 그래.”
돈을 나누고 안 나누고의 문제라기보다, 상현은 현재 국가 대항전에 대한 주목도가 자신에게 너무 쏠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양궁을 하던 시절에도 당연하게 알고 있던 일이다. 상현은 그에 대해 일말의 반론의 여지도 없다 생각해왔다.
그야 양궁은 개인 스포츠다. 반면 시빌엠은 철저하게 팀 스포츠다.
“…….”
상현은 잠시 말이 없어진다. 그들의 고생이 눈앞에 보이지 않았던 것도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