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7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267화
87. 봄(5)
팡어, 강어진.
강하고 어질게 살라는 의미로 지어진 순우리말 이름이다.
어머니께서 한자에 정통한 일본인이었으나, 아버지가 박박 우겨 태어나게 된 이름이다.
처음엔 멀끔하게 생긴 청년이었던 팡어는 강하고 어진 것까진 아니어도, 공부 머리는 곧잘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생각보다 쉽게, 남들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남들보다 조금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구석은 늘 이상하게 텅 빈 공백이 존재했다.
마치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뭔가 있었던 게 지워진 것 같은 텅 빈 공간.
어느 날 어진은 시빌 엠파이어라는 게임을 처음 해보게 된다.
그는 홀린 듯이 이 게임에 빠져들었다.
비어 있던 마음 한구석이 서서히 차올랐고, 일본인 어머니와 결혼했으면서 두개골 깊숙이까지 한국적인 아버지 탓인지, 조선이라는 나라를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에 매료됐다.
그렇다. 그는 게임 초기부터 국가 대항전에 관심이 있었다.
자연스레 그는 랭킹에 오르게 됐다.
희철을 만나고, 이안용이라는-어머니가 꽤나 좋아하실 것만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와도 만나게 됐다.
이때만 해도 모두 다 젊고, 열정이 넘쳤으며, 화창했다.
지금 창밖에 봄이 오는 것처럼, 화사한 나날로 기억에 남아 있다.
마치 싸구려 벚꽃 필터를 씌운 것처럼, 기억은 그렇게 아름답게 굴절되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보통 이런 필터는 그런 건 첫사랑 기억에나 씌우는 것 아니냐? 라고 스스로 반문한 적도 있으나. 이에 대한 대답은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그는 이 친구들이 좋았고, 이 게임에 모든 걸 쏟아내고 싶었다.
하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젊은 시절 조선소에서 배를 만드셨던 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산업 먼지로 인한 암이라며, 나라에서 보상이 나왔다.
어디 전세도 들어갈 수 없는 돈이었다.
와중에 나라에서 상속세는 예외 없이 뜯어갔다.
어머니는 그렇게 몇 푼 안 되는 재산과 함께, 홀로 한국이란 타국에 남으셨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시지 않느냐는 말에, 이곳에 아버지와의 추억이 전부 있다는 말만을 대답으로 돌려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시 출근하는 날 지하철에서 그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의 세계에서 한 축이 사라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지하철은 계속 덜컹거렸고, 삶은 이어졌다.
세상은 멀쩡히 돌아갔고, 보상금을 준 회사는 여전히 배를 척척 잘 만들어갔다.
조선 사업이 다시 부흥한다며 허구한 날 올튜브에 국뽕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어진은 그 영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진은 불효자였으며, 애국자도 아니었다.
대기업 신입에서 과장으로 거듭나는 동안에도 그는 게임을 멈추지 않았다.
일개 궁수 1명에서 궁수 부대의 리더로 거듭났으며, 희철은 총지휘관이 됐다. 안용은 검을 곧잘 다뤘다.
함께하던 형들은 점차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게임판을 떠나게 되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들 셋은 팀의 맏형이 되어 있었다.
그런 세월 동안 조선은 첫 출전, 단 한 번의 본선 진출 말고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점차 다른 국가들의 팀들이 스폰서를 받고, 프로로 거듭나는 동안. 국가 대항전이 아니어도 리그가 개설되고 프로 리그가 생기는 동안.
한국에서 시빌 엠파이어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아니, ‘철저히 외면’이라는 말은 틀렸다.
외면하는 사람들이 의도를 갖고 외면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실제 현상은 그게 아니었다.
그저 지나치게 많이 쌓여 버린 먼지처럼 얕은 바람에도 스러져 갔다.
아무도 시빌 엠파이어가 사라지길 바라진 않았다.
그저 무관심 속에 자연스레 풍화되어 가는 것이다.
유일하게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길은 국가 대항전에서 성적을 내는 것이었다.
그게 유일한 부활의 길이었다. 물론 이마저도 희철 개인의 생각이긴 했다만.
이 개노답 불효자 3형제는 희철의 그 말을 그저 곧이곧대로 믿었다.
희철의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는 애석하게도 한동안 확인되지 않았다.
그간 성적을 제대로 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에휴 올해 또 조졌네] [걍 돈의 문제임 자본 차이 보셈] [본선 가던 그 조선은 어디감?] [일개 카페 사장 자본력으로 프로 리그 경쟁으로 육성된 사람들을 이기겠누?] [난 쿠키가 진짜 천재라고 생각했는데…….]국가 대항전이 시작되면, 커뮤니티 엠불에선 곡소리가 울려 퍼지는 게 연례행사였다.
그 행사의 폐막은 늘 희철의 이런 말과 함께였다.
“내년 준비해야지.”
툭.
팡어의 어깨를 두들기며 씩 웃어 보이는 그 얼굴.
그 얼굴은 매년 조금씩 피폐해져 갔다.
준비해온 내년은 어느새 올해가 되었고, 또 다른 내년을 준비하자는 희철은 어느새 나이를 먹는다.
단순히 세월이 야속하다고만 생각했다.
지나치게 창백해져 가는 안색과 하루가 다르게 늙어 보이는 듯한 착각은, 안타깝게도 착각이 아니었다.
“……뭐? 뭐가 걸렸다고?”
이때 처음으로 이 게임을 그만두려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희철이 그만두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어나갔으니까.
어진은 이를 꽉 물었다.
다시 한번 다리가 휘청거렸으나, 이번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어찌 됐든, 이들 셋은 계속 이어나갔다.
“내년 준비해야지.”
다시 한번 이 말을 듣게 됐을 때, 어진은 언제까지 내년인 거냐며 결국 폭발했었다.
그에게 내년이란 게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속에서 천불이 끓었다.
그냥 다 그만두고 싶었다.
희철은 그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내년’이라는 차원으로 회피 중이다.
어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도피 중이다.
그러나 어찌 됐든 희철은 이어나갔고, 그가 말한 내년은 다시 한번 올해가 됐다.
그리고, 오늘.
지잉.
어진은 잠에서 덜 깬 눈을 부비며 한 통의 문자를 확인한다.
[공지) 스폰서 설명회 안내]==== ====
안녕하십니까? 국가 대항전 선수 여러분.
매니저 김주혁입니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고, 저희 팀도 이제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조심스럽지만 내년 프로 팀 창단에 필요한 자원이 모였다고 생각…….
==== ====
텍스트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글자들이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았다만, 떨어진 건 뜨거운 물방울이다.
어진은 문자를 받고 바로 눈치챘다.
‘돌아왔구나.’
보낸 이는 분명 매니저로 되어 있지만, 이 문구는 전부 어떤 사람과 상의해 작성된 것임을.
“그래, 내년…… 준비해야지.”
그 사람은 올해도 내년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지금 어진의 떨리는 목소리가 그의 목소리를 대신해 울려 퍼진 것처럼.
그는 상관없었던 것이다.
내년이라는 게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을지라도, 그는 남겨두려 했던 것이다.
후에 생겨날 또 다른 팡어, 쿠키, 마라탕을 위해.
그 싸구려 같은 벚꽃 필터 뒤, 유쾌한 추억을 위해.
또 다른 ‘내년’이라는 이 위대한 유산을 남기려는 것이다.
* * *
텅.
택시 문이 닫히고, 희철이 내렸다.
그전보다 한결 건강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택시 기사가 트렁크에서 짐을 빼는 동안 그는 이 도시를 다시 한번 둘러본다.
‘다시 왔구나.’
오사카.
그에게 이 도시는 단순한 한국인들의 인기 관광지가 아니었다.
기적이 시작된 곳이다.
그의 시선이 수없이 솟아오른 빌딩 중 어느 한 곳을 향한다.
선수들이 묵고 있는 호텔이다.
그는 그곳을 향해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호텔에 들어서자 익숙한 로비 풍경이 맞이한다.
그는 체크인을 함과 동시에, 자동 번역기를 켜 질문했다.
“세미나 장소가 어디죠?”
오늘 매니저가 이곳에 세미나 실을 예약해 뒀다.
대규모 강당 같은 곳인데, 본래는 예약이 어렵지만 이 호텔 자체가 국가 대항전 팀을 위한 것이라 쉽게 진행됐다.
직원은 어딘가를 가리키며 친절히 설명해 주고, 그에게 지도를 전송해 줬다.
희철은 끄덕이며 자신의 짐을 다시 들여놓으러 객실로 향했다.
이전에 받아놨던 객실과 같은 자리였다.
“4강 가면 좀 큰 데로 바꿔주지.”
아저씨 같은 농담을 던지며, 객실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요란스러운 폭죽이 터진다.
퍼벙!
“여어!”
밝은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팡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국희철! 개같이 부활~!”
“와아아아아아아!”
국가 대항전 멤버들이 이 좁은 방에 우르르 몰려서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덜컹!
다른 방문이 일제히 열리고 다른 선수들도 복도로 튀어나왔다.
“와아아아아아! 쿠키! 쿠키!”
“국희철! 국희철!”
그의 복귀를 축하하기 위해 모여 있었던 모양이다.
희철은 놀라 뒷걸음질까지 쳤다.
“어…… 뭐, 뭐야. 어떻게 알았어?”
사실 희철은 세미나 때 깜짝 등장하려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긴 인마. 척 보면 척이지.”
그런데 아무래도 오랜 친구들의 눈을 속이긴 힘들었나 보다.
오히려 역으로 깜짝 놀라버렸다.
“이놈 이거 전략가 실격이네. 동선 다 들키고! 어!? 으하하하하!”
마라탕이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희철도 따라 웃었다.
“아하하하하!”
그 웃음과 함께 그는 확신했다.
자신이 다시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희철은 진심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들과 함께 해낼 수 있다고.
조선이 4강마저 헤쳐나가고, 결승에서도 빛날 수 있을 거라고.
* * *
한일전의 승리는 단순히 조선 팀의 승리만이 아니었다.
시빌엠 코리아 지부의 승리이기도 했다.
그들은 한일전이 끝난 후, 폭발적으로 몰려드는 유저들을 감당해 내야 했다.
서버를 임시 확장하는 건 물론이고, 여러 가지 이벤트도 동시에 진행해 뉴비들이 최대한 잘 적응할 수 있게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이, 이거 제대로 된 그래프야!? 어?! 그래프 뒤집어 놓은 거 아니지?!”
동시접속자 수 그래프는 영화 속 작전 들어간 주식 그래프를 방불케 했다.
“떡사아아아아앙!”
직원들이 두 팔을 벌리고 펄쩍 뛰었다.
임원마저도 사무실에서 뛰쳐나와 이렇게 외칠 정도였다.
“대한 독립 만세에에에!”
하기사 임원이 가장 기쁠 것이다. 당장 다음 달에 본사에서 퇴사 통보를 받느니 마느니 얘기가 나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어서 기사들이 연이어 터지기 시작했다.
[비인기 게임 “시빌엠” 동시접속자 15만 “한일전” 효과] [지금이니? 시빌 엠파이어, 치솟는 주가] [시빌 엠파이어 “한일전” 이후, 치솟는 동시접속자, 증권가까지 술렁]단순히 게임의 문제를 넘어, 시빌 엠파이어 제작사의 주가까지 변동이 생기고 있었다.
한국이 미국, 중국에 비해 인구수는 적을지라도, 절대 소비자들이 게임에 쓰는 돈이 적진 않았다.
특히나 온라인 게임에서 한국 시장이 차지하는 순위는 인구가 3배 가까운 일본을 넘어 중국, 미국 바로 다음 순위였다.
그런 시장에서 이렇게 반응이 크게 오고 있으니, 주가가 움직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심지어 “패전국” 일본에서도 동접자 수 늘어…… 시빌 엠파이어 주가 “수직 상승”]한일전의 효과는 심지어 한국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다.
양국의 경기가 워낙에 치열했기 때문에, 수많은 명장면들이 재생산되고 미디어를 탔다.
일본의 유저들도 그것에 감화되어 시빌 엠파이어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어떤 이들은 절치부심하여 내년에 조선을 이겨보겠다며 더 열심히 하기도 했고, 국가대표의 플레이가 마음에 안 들어 “차라리 내가 뛰지”라며 접속한 자들도 있었다.
덕분에 일본, 한국이 동시에 접속자 수가 늘어나면서, 미국에 본사를 둔 주식이 심상치 않은 기미를 보이게 된 것이다.
급기야 주식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시빌 엠파이어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시빌엠 화성 가냐?] [한일전 테마주 리딩 ㄱㄱ] [테마주 우르르 병신들ㅋㅋㅋ 어휴] [너넨 베트남 주식 사야되는거 아님?ㅋㅋ] [화성 가즈아아아아!] [시빌엠 진짜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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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만 해도 시빌엠 주식은 치솟다 말다를 반복하며, ‘술렁’이는 정도였다.
현재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긴 하지만, 주식이라는 게 결국 미래의 가치를 보고 사는 것이기에.
뭔가 엄청난 잠재력이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업계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속보) 아성이 시빌엠 프로팀 창단한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