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801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269화
88. 진격의 호두(2)
금일 아성 마케팅 부서의 직원들은 모두 초긴장 상태였다.
사실상 후계를 잇는 게 확정인 회장님의 장남이 부회장님과 직접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개 과장 구진모는 사실 회장은커녕 한 번도 부회장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사납게 굴어대던 마케팅 부장이 거의 벌벌 떨면서 긴장하는 꼴도 처음 봤다.
밑에 사람 갈구는 거 하나는 기똥 차게 잘하는 놈인 만큼, 윗사람은 무서워하는구나.
구진모는 그제야 매우 평범한 진리를 상기한다.
매일같이 부장이 무섭고, 어려웠던 사람 입장에선 그가 어디 가서 이런 꼴을 보이는 게 상상이 안 갔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정말 동물이었다.
자기보다 윗계급이 등장하면, 그간의 자아, 인격 따위는 전부 사라지고, 그저 척추에서 나오는 반응만이 몸을 지배하니까.
그걸 또 아랫계급인 자신은 전혀 예측하지도 못한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선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니까.
“오, 오십니다!”
그렇게, 이 조직의 최고 계급이 등장한다.
쿵.
차에서 내리는 구둣발이 내는 진동이 실제로 울린 것만 같았다.
부회장은 전혀 거인도, 대단한 체격을 가진 것도 아닌데 유난히 거대해 보였다.
구진모는 괜히 쉽게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부장이 앞장서 뛰며 그를 치고 나갔다.
“뭐해! 인마! 따라와!”
“아, 예. 예.”
놀랍게도 그가 직접 발걸음을 한 이유는 이미 회사를 나간 한 사원 때문이다.
그와 사진 촬영을 위해 여기까지 직접 온 것이다.
아성 계열의 한 재단 건물 앞에, 포토존과 화려한 꽃들로 꾸며진 회견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파앙!
첫 번째 플래시가 터지며, 수많은 다른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가 눌리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수많은 임직원이 그의 뒤로 졸졸 따라나섰다.
경호원들이 바깥에서 팔을 벌리며 라인을 만들어 지켰다.
어느 누구도 그 선을 감히 넘으려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필사적으로 그 선을 사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회장은 수많은 환호와 보호를 받으며 목적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목적지엔 아성의 옛 사원이 서있었다.
여기서 구진모는 놀라운 장면을 목도했다.
“…….”
부회장이 그를 보자마자 웃으며 인사하는 것이다.
손을 흔드는 인사가 아닌, 아주 미약하지만 허리를 숙여 사원 동기끼리 건네는 듯한 그런 가벼운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그도 당황했는지, 90도로 허리를 숙여댔다.
카메라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마구 플래시를 뿜어댔다.
구진모에겐 그런 플래시가 굳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사진으로 남길 이유가 없었다.
그는 이 장면을 거의 평생 기억할 것 같았다.
“하.”
부회장은 다가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나눴고, 이내 그와 어깨 동무를 하며 웃어 보였다.
그 웃음엔 별다른 가식도 불필요한 진중함도 없었다.
구진모는 그간 먹어온 수많은 눈칫밥 덕에 충분히 부회장님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신기하다.’
그는 그저 신기해하고 있었다.
그에게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전 아성의 사원 김주혁이 아니라 세간이 이목을 한 번에 받고 있는 국가 대항전 팀의 매니징을 맡은 업체의 대표였다.
그가 아성의 전 사원이었다는 사실은 이제 어떤 꼬리표도, 자랑거리도 아닌, 그냥 신기한 일이 되어 있었다.
구진모는 고개를 돌려 옆에 선 부장을 바라봤다.
“…….”
그의 표정도 구진모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분명 자신과 같은 처지, 아니, 훨씬 더 낮은 위치에 있던 사람이 저 멀리 다른 세계로 올라가 버린 걸 본다는 건 고통스럽다.
특히나 부장 나이의 사람에겐 더욱더 고통스럽다.
그들은 결국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 얼버무려 버리고 만다.
“참내. 역시 금수저는 뭘 해도 다르다? 세상 참.”
“……하하.”
구진모는 그냥 아무런 의미도 담지 않은 웃음을 터뜨렸다.
무어라 더 말을 얹고 싶어도, 알 수 없는 감정이 그의 뇌를 고장 나게 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누군가 와서 거든다.
무역팀의 박 부장이다.
“그러게 말이야~ 어? 어유 금수저들은 세상 참 살기 좋다. 유학 가서 영어도 공부도 편하게 편하게 해~ 하기야 뭐~ 부회장님도 에이.”
쩝.
박 부장은 부회장에 대해 뭐라 말을 더 얹기는 언짢았는지 말을 흐린다.
이런 와중에도 상하관계를 지키는 그 인내력만큼은 확실히 사회인으로서 본받을 만하다. 구진모는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부회장이 어딘가로 손짓하는 그때, 두 부장의 표정이 더 심하게 일그러진다.
“오세요. 같이 찍어요.”
“저, 저도요?”
“예. 얼른.”
부회장이 가리킨 건 앞에서 주혁의 사진을 찍어주던 상현이었다.
그는 현재 굉장한 유명인이지만, 본래 부회장과 사진을 찍는 건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국가대항전 팀의 선수 중 하나일 뿐이고, 투자되는 선수단 전체를 대표하는 건 오히려 매니지먼트인 김주혁 쪽이니까.
이건 단지 부회장이 아몬드를 발견하고 당연히 같이 찍으면 그림이 더 좋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목된 후, 상현은 단상을 올라가 멋쩍게 악수를 나눈 뒤.
그의 리드에 따라 어깨를 걸쳤다.
“잘봤어요. 게임.”
“가, 감사합니다.”
“중국도 이겨줘요.”
“……예!”
상현은 뭔가 감동 먹은 듯한 얼굴로 크게 끄덕였고.
찰칵!
이 장면도 수도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중 하나에 담겼을 것이다.
번쩍거리는 플래시 세례와 아몬드라는 스타를 향한 팬들의 환호성.
그리고, 부회장의 활짝 핀 미소.
두 부장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그저 멀찍이 떨어져 지켜봐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입은 차마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내뱉는다.
“그깟 게임 좀 잘하는 게 벼슬이구나. 참내.”
“말세네요. 말세.”
여기서 생긴 이 모든 사건들은 수많은 기자들에 의해 꼼꼼이 기록되었다.
[아성, 시빌엠 “국가 대항전” 메인 스폰서 등극 “프로 리그 개최 순항 중”] [꿈을 위해 회사를 떠난 두 “아성맨” 다시 회사와 손을 잡다] [e스포츠계 주식 꿈틀.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나?]이 많은 기자들의 많은 기사들 속에서, 그 어디에도 구진모와 두 부장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안엔 금의환향한 두 꿈 많은 청년에 대한 이야기, 아성이 다시 e스포츠에 발을 들인 것이 릴드컵에서 중국에게 밀린 것에 대한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마케팅이라는 분석, 국가 대항전 중국전에 대한 예상 등.
온갖 이야기들이 서술되어 있고, 기자의 성격, 올라가는 플랫폼의 성향에 따라 내용도 전부 제각각이었으나.
그 어디에도 그들의 이야기는 적혀있지 않았다.
아, 물론…….
-그깟 겜돌이들이 출세했누 ㅋㅋㅋㅋ
└ㄹㅇㅋㅋ 하기야 겜잘하면 군면제도 시켜주는 겜돌이들의 나라에서 뭐 ㅋㅋㅋ
-김주혁 쟤 유명한 금수저라는데. 자수성가 하는것처럼 나오는 건 좀……
└ㄹㅇ??
└아성 다니던 사람들은 다 알지. 아버지 겁나 잘나가는 중견 기업 사장님임.
-잘나가는 건 알겠는데. 이건 좀 뇌절인듯
-결국 뜨니까 변하네 ㅋㅋ 아성이랑 ㅋㅋ 어휴……
└아성이 왜???
└뭔 말임 이 새낀 ㄹㅇㅋㅋㅋ
└저런 대기업 더러운 돈 먹는거 말하는거지 못알아듣냐?
└와 중증이네 이새낀;
댓글에만큼은 두 부장의 이야기들이 수도 없이 많이 적혀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희한하리만치 본문에는 실리지도, 어디에 언급되지도, 사실로 드러나지도 않았지만.
이들만의 한구석 댓글창 세상에선 성서와 같은 진리였다.
* * *
부회장과의 촬영 직후.
“와. 봤어? 어?”
상현은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주혁에게 계속 떠들어댄다.
주혁은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말이 많은 놈인지 처음 알았다.
“나 안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막, 이렇게 해서…….”
요지는 자신은 찍을 생각이 없었는데, 부회장님께서 친히 자신을 끌어 당겨 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였다.
이거 무슨 연애 서바이벌 예능에서 인기 좋은 남자 꼬시고 자랑하는 여성 출연자도 아니고.
“그래. 나도 봤다. 내가 바로 3센티 옆에 있었던 걸 혹시 모를까 봐 말해주는데. 보일 수밖에 없었다. 부회장님이 널 아시더라. 네 팬이더라. 아몬드 모자도 사가시겠더라. 됐냐?”
“와…….”
원하는 대답을 들은 후, 상현은 그대로 가짜 국대 촬영진에게 향해 “보셨어요? 아까 막……” 등의 똑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 자식. 아성에서 괜히 5년 버틴게 아니네.”
아성 임원들을 저렇게나 좋아하니, 회사 생활이 아무리 그지 같아도 버틴 게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짜 국대 촬영진은 그런 그에게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며, 신난 아몬드를 찍어대고 있었다.
오히려 더 부추기는 것 같기도 했다.
하긴 그들이야 뭐, 이러면 방송 분량 뽑긴 좋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만 이 장소를 빠져나가려는 중.
‘어.’
그는 익숙한 얼굴들과 마주친다.
주혁의 눈은 본능적으로 상현 쪽으로 돌아갔다.
상현은 여전히 가짜 국대 팀과 이야기하고 있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왜일까.
원래였다면 인사라도 건넸을 텐데.
왠지 그럴 수 없는 분위기였다.
상현에게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들도 똑같이 생각했는지, 눈인사조차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
주혁은 멀어져 가는 하얀 셔츠 셋을 보며 잠시 멈춰 섰다.
왠지 모르게 또 그때가 겹쳐 보이는 것이다.
사내에 있던 그 기나긴 복도.
패배자는 모든 걸 납득할 수밖에 없단 말을 듣던 그 복도.
당시 주혁은 그 말에 저항했다.
그러나 비겁하게도, 그는 이번엔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그는 반대의 처지가 되어서는 이렇게 말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도 어쩔 수 없게 절로 튀어나오는 말이었다.
“그래. 그냥 우리가 이긴 거야.”
* * *
사실 회사 믹스넛츠의 호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점점 중국과의 경기 날이 다가오고 있어, 세간의 구설수가 많아질 때였다.
사람들은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심지어 소파에 앉아 가족끼리도 국가 대항전에 대해 이야기했다.
“중국 이길 수 있는 거 맞냐?”
“솔직히 좀 힘들지. 그나마 이점이 있다면…… 지휘관이 둘이라는 거?”
“중국은 200명이 전부 다 1선이라는데.”
“5경기까지 가면 절대 못 이겨. 일본이랑 중국 파워랭킹 차이 봐. 게다가 선수 풀은 또 어떻고.”
“그래도 조선이 어떻게든 하지 않을까?”
이런 말이 오프라인에서도 오갈 정도니, 온라인에선 하루 웬종일 중국과 한국의 경기에 대해서만 글이 올라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게 큰 변화가 생긴 곳은 올튜브였다.
그간 가짜 국대 컨텐츠나 게임에 관련된 채널 외엔 국가 대항전 관련된 이야기는 올튜브에 별로 올라온 적이 없었는데.
몇몇 국가주의적 채널에서 앞다퉈 국가 대항전에 관련된 이야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소위 ‘국뽕’ 라인에 이제 국가 대항전이 언급된단 말이었다.
[조선이 중국을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 3가지] [다음 달 인체신비전에 200개 작품이 추가되는 이유 ㄷㄷ] [과거 조선이 정말 중국에 다 졌던 걸까? 팩트를 알아보자] [현재 시빌엠 국가 대항전의 팀의 승리에 일본이 열광하는 이유] [일본이 경악하고 유럽에겐 박수를 받는 국가 대항전 팀의 행보]등등.
나름대로 사실에 기초하긴 했으나, 채널의 컨셉에 맞게 굉장히 희망적인(?) 관측들 위주였다.
-ㅠㅠ이제야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나오네요
-그치; 조선이 중국에 질 리가 있나 ㅋㅋㅋ
-신비전 200개 ㅁㅊ ㅋㅋㅋㅋ
-ㄹㅇㅋㅋ 똑같이 200 대 200이면 지겠냐고~
나름대로 이게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데에는 꽤나 효과적이었으나.
드르륵.
스크롤을 내리던 주혁은 심드렁한 소리를 내었다.
“흠…… 그 정둔가.”
사실 막상 국가 대항전 팀을 운영하는 그로서는 공감 안 되는 게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응?’
이 중에 주혁의 눈에 들어온 건, 어쩌면 국가 대항전에선 조금 비껴가 있는 무언가였다.
-일본이 경악까진 아니고, 아몬드 일본 반응 난리났음 ㅋㅋㅋ
-아몬드 일본에서 완전 제대로 뜰 거 같던데
-얼굴이 나라다ㄹㅇ 어떻게 작보일 ㅇㅈㄹ하고도 일본 팬덤이 생기냨ㅋㅋㅋㅋ
일본에서 아몬드에 대한 반응이 오고 있다는 말이었다.
별거 아닌 몇 마디 댓글이었으나…….
‘이거…… 진짜 같은데?’
현재 모든 게 돈으로 보이는 사업가적 직감이 그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