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82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82화
29. 팬서비스(2)
상현이 사는 곳은 분명 달동네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낙후된 지역이다.
편의성과는 거리가 먼 가파른 계단, 낮은 지붕, 시대착오적인 붉은 벽돌집들,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낡은 가로등.
부촌에서만 살았던 주혁에겐 낯선 환경이었다.
“하아. 이놈의 계단은 내려갈 때마다 인고의 시간이네.”
주혁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이 계단만 좀 어떻게 해줬음 했다.
이제 곧 겨울인데 눈이 내리면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일단 여기 사는 사람들은 자가용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걸어서 올라가는 것도 장비를 구매하지 않으면 힘들어 보인다.
적어도 주혁의 눈엔 그랬다.
“야. 우리 할머니도 겨울에도 올라오고 그랬어.”
상현이 주혁의 투덜거림에 일갈한다.
할머니도 오갔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하아. 그래 내가 약한 탓이다.”
“암. 그럼.”
상현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주혁을 앞질러서 내려갔다. ‘아 배고프다. 빨리 가자.’라면서.
주혁도 피식 웃으며 속도를 냈는데.
끼익.
옆에서 갑자기 열린 문에 이마를 강타당했다.
퍽!
“아오! 이놈의 동네!”
역시……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살고 싶은 동네라고 보기엔 힘들었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이웃집 대문에 이마를 후려 맞을 수 있다니. 정말이지 후계동은 낙후된 지역이다.
“어……?”
그래도 후계동의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좋은 이웃들이다.
서지아 역시 그 이웃 중 하나였지 않은가?
“많이 아파요?”
잘 어울리는 도톰한 빨간 목도리를 하고 나온 지아.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보게 된 게 오만상을 찌푸린 김주혁이니 그럴 만했다.
“……아. 지, 지아 씨. 하하.”
주혁은 팍 찌푸렸던 인상을 억지로 펴 보였지만, 상현이 보기엔 그 얼굴이 더 무서운 인상이었다.
“괜찮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이쪽 동네가 설계가 좀 이상해요.”
“그렇죠? 하하. 이거 뭐 도시 설계한 사람더러 여기 살아보라고 하고 싶네.”
상현이 이쯤에 끼어들었다.
“우연찮게 자주 보네요.”
“아, 아몬드 님. 안녕하세요.”
아몬드 님이라니.
상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어디 가시나 봐요.”
“예?”
“둘이서 어디 놀러 가시는 거 아닌가.”
“아. 놀러 가는 건 아니고…….”
주혁이 끼어든다.
“밥 먹으러 가요. 같이 가실래요?”
* * *
“여깁니다.”
주혁이 가리킨 곳엔 대문짝만한 간판과 현란하고 눈이 아픈 원색으로 ‘오강우 김치찌개’라고 쓰여 있었다.
“여기 요즘 유명하던데.”
“아, 그래요? 하하. 이거 비밀인데 여기가 저희한테 광…….”
“야. 얼른 가자.”
주혁이 서지아에게 허튼소리를 하려고 하자, 상현이 먼저 앞장서서 김치찌개 집으로 향했다.
사실 그가 앞장선 이유는 비단 주혁의 말을 끊으려는 것뿐만은 아니었다.
‘뭐지. 날 보는 것 같은…….’
다른 이유가 더 컸다.
-저거…… 야?
-글쎄 난…… 데.
웅성. 웅성.
이상한 속삭임이 귀 언저리를 괴롭혔다.
아까부터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을 느끼던 터였다.
시내에 오고 나서 계속 이상하게 불편한 기분이었다.
‘그냥 빨리 들어가자.’
김치찌개 집 안으로 들어가면 좀 나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한참 잘못된 것이었다.
“어서 오세요! 만 년 전통…….”
* * *
끼익.
문을 열리자마자, 직원들은 숙지한 대로 우렁차게 소리쳤다.
“어서 오세요! 만 년 전통! 지옥의 맛! 오강우 김치찌개입니다!!!”
만 년 전통이라니.
진짜 말도 안 되는 이 말을 매번 입에 담아야 한다는 게 또 다른 이 직업의 고충이었다.
이 체인점의 사장인 오동산은 ‘그냥 한 천 년 정도로 하지.’라고 늘 생각했다.
정말이지 항상 너무나 극단적인 컨셉이라고 생각됐으나, 사장이 방금 전만 해도 와서 으름장을 놓고 갔기에, 무조건 컨셉은 유지해야 했다.
「무조건 그대로 똑같이 시켜. 만 년이야. 천 년 안 되고, 백 년 안 돼. 만 년! 그리고 지옥의 맛! 알았어?」
이렇게까지 주문하는데 어떤 체인점 점장이 그 뜻을 거스르겠나.
「내가 이번에 아주 핫한 친구로 광고 하나 섭외했어. 수익 뻥뻥 튈 거야. 내가 볼 땐 그래! 걱정하지 말고! 나만 따라! 알았나?!」
아. 예예. 핫하다고 하시더니.
사진 보니까 누군지도 모르겠네요. 얼굴이 잘생기긴 했네.
후…… 그래. 장사가 잘되는 건 팩트니까. 그냥 닥치고 똑같이 따라 하자.
끼익.
또 문이 열린다.
봐? 장사는 잘된다니까?
“어서 오세요! 만 년 전통…….”
어?
인사를 넙죽하던 점장은 머리를 갸웃했다.
“지옥의 맛! 오강우 김치찌개입니다!!!”
다른 스태프들의 우렁찬 고함 소리가 그 빈 공백을 다시 채웠으나.
머리에 떠오른 묘한 의문은 가시질 않았다.
‘어디서 본 친구인데?’
방금 들어온 셋 중 키가 좀 더 작은 남자.
어디서 보지 않았나? 낯이 익었다. 낯이 익은 정도가 너무 심했다.
“꺄아아!”
근데 그 의문이 해결되기도 전에, 들려온 비명. 점장 오동산의 머리가 휙 돌아갔다.
김치찌개라도 엎었나?
“아몬…… 아몬드!”
아몬드? 그딴 게 여기 어딨어.
여긴 김치찌개 집인데?
“왜 그래!”
점장이 버럭 소리를 쳤으나. 여직원의 눈은 아까 들어온 일행에 고정되어서 점장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툭. 툭.
보다 못한 오동산이 가서 어깨를 건드렸다.
“뭔데.”
“저, 저분 아몬드예요.”
“……사람인데?”
“아, 아니! 스트리머 아몬드요! 몰라요?”
스트리머?
내 나이가 마흔이다. 이 사람아.
“내가 스트리머를 어떻게 아…….”
아.
오동산은 그제야 깨달았다. 왜 여직원이 자기한테 스트리머 아몬드를 아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는지.
당연히 알아야 했다.
당연히 알아야지! 오동산! 이 머저리야!
“아! 그 광고……!”
오픈 10분 전까지 프랜차이즈 대표가 이 사람한테 광고 넣었다면서 생색을 그렇게나 내지 않았던가!
자기들이 이렇게나 열심히 한다고!
‘그런데 대체 아몬드가 뭔데. 생색을 낼 정도야?’
오동산은 여직원에게 속삭여 물었다.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핫하죠. 나름요. 나름! 그래도 저 정도면 솔직히 요즘 다 망해가는 방송사 광고보다 나은 거예요.’
‘오, 그래? 세상 참 변했네.’
‘그쵸? 그리고 일단…….’
‘?’
‘잘생겼잖아요!?’
꺄하핫!
귀에 대고 빵 웃음을 터뜨리는 통에 오동산은 인상을 팍 구겼다.
“죄, 죄송합니다.”
“됐고. 네가 잘 알면 맡아서 서빙해라. 서비스는 내가 담당할 테니까.”
“옙! 저…… 근데 사인 하나 받고 와도 돼요?”
“……마음대로 해.”
“앗싸! 충성! 충성!”
* * *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자신을 가리켰다.
아…… 아몬드! 하면서.
상현도 바보가 아니니, 이제 안다.
‘아몬드란 걸 알아본다고?’
항상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게임 커뮤니티와, 가상현실 게임, 인방 등은 현실과는 다른 세계라고.
그래서 그 안에 사는 사람들도 다른 세계라고 멋대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게임 한 번 안 해본 상현도 풍선껌이 누군지는 알고.
서지아도 상현을 동네에서 알아보고 따라왔었다.
시내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었다.
“팬인가 본데요.”
서지아가 여직원을 슥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은은하게 차가운 눈빛이다.
“팬까지는 아니고, 그냥 알아본 사람이겠지.”
왠지 모르게 상현은 변명하듯이 대답했다. 주혁은 그 꼴을 보고 피식피식 웃을 뿐이었다.
“이야. 인기 터지네.”
상현이 주혁에게 뭐라 한마디 받아치려 할 때.
아까의 여직원이 다가왔다.
다가와서 상현의 옆쪽에 슥 달라붙어 메뉴판을 내밀었다.
생긴 건 고양이 상인데, 하는 행동은 꼭 강아지 같았다.
“주문받으러 왔습니당!”
메뉴를 보니, 꽤나 단순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구천 지옥 김치찌개 3인분 주세요.”
“예! 구천 원짜리! 구천 지옥! 김치찌개! 이건 비싼 메뉴라 특별히 낙지가 들어가는데, 혹시 해산물 가리시나요?”
서지아만 추가로 입을 열었다.
“소주도 한 병 주세요.”
“소주! 알겠습니당!”
직원은 우렁차게 주방 쪽에 소리 쳐서 메뉴를 전했다.
그리고…….
“저…….”
이내 얼굴을 붉히며 상현에게 뭔가를 내민다.
“아몬드 님 맞죠? 사인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올 게 왔구나.
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해줘야 한다. 사실상 사인해 달라고 다가온 그의 첫 번째 팬이니까.
“아. 예. 물론이죠.”
“앗싸!”
그녀는 대놓고 방방 뛰었다.
직원이 이래도 되는 거야? 싶을 정도였는데, 사장으로 보이는 쪽은 오히려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스스슥.
상현은 대충 결재하듯이 사인을 그었다. 사실 대충이 아니라, 할 줄 아는 사인이 이것뿐이다.
“저! 이름도! 적어주세요! 이주현!”
“아. 네.”
“아, 거기에 이주현 사랑해! 해줘요!”
“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따라 쓰던 상현이 흠칫 놀랐다.
“예?”
사랑해라니.
“……아, 안 돼요?”
이거 당황스러웠다.
상현의 정신은 아직 그냥 일반인이다. 그에게 ‘사랑해’라는 말은 상당히 묵직한 무게감이었다.
“아, 안 되면…….”
직원의 눈이 웃고는 있었는데, 눈물이 글썽였다.
“그, 그냥 이름만 주세여…….”
“예. 알겠습니다.”
상현은 기어코 사랑해는 써주지 않았다.
그녀는 어찌 됐든 소중한 가보처럼 사인을 끌어안고 돌아갔다.
“후아.”
상현은 여직원이 충분히 멀리 가고 나서야 심호흡을 했다.
“뭐, 뭐냐 방금.”
“뭐긴. 유명인의 비애지.”
주혁이 낄낄댔다.
저 자식은 요즘 들어 웃음이 많네.
“다행이네요.”
서지아는 지긋이 여직원 쪽을 바라보며 그렇게 읊조렸다.
“……뭐가요?”
“그냥. 별일 안 생겨서요.”
그런 말이 무색하게, 또 다른 그림자가 상현의 위에 드리웠다.
“저, 저기요…….”
이번엔 직원이 아니었다.
“저는…… 혹시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도 될까요?”
아까 밖에서부터 상현을 흘겨보던 여자들 중 하나였다.
김치찌개집까지 따라 들어온 것이다!
“어…… 혹시, 밖에서부터 있지 않으셨어요?”
“아…….”
추운 날씨 때문인지 여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네……. 그, 그런데 여기서 식사할 거예요. 민폐 걱정은 마세요.”
따라 들어온 게 맞구나.
진부한 표현으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듯한 생김새인데.
저런 여자가 여기까지 따라올 정도로 대담하다니. 상현은 믿기지가 않았다.
“찍어드릴게요.”
상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 보였다.
사진은 서지아가 찍어줬다.
“감사합니다! 꺄아!”
찍힌 사진을 확인한 일행은 자기들 자리로 돌아갔다.
상현은 점장 쪽을 보며 사과를 전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네요.”
“아…… 아뇨! 무슨 그런 말씀을! 전 오히려 감사할 따름입니다!”
“……?”
감사?
가게 점장이 왜 감사한 걸까.
상현은 잠시 의문이었으나. 점장의 흐뭇한 눈길을 따라가 보니 바로 답이 보였다.
뒤에 몇 팀이 더 들어오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아몬드를 쳐다보면서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나 유명할 리가 없는데.’
아몬드가 유명한 건 맞지만 길거리에서 이렇게 사람들이 다 알아볼 정도로 유명하진 않다.
이는 상현의 얼굴 때문이다. 그의 얼굴은 생각 이상으로 눈에 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인파에서도 바로 알아볼 정도다.
보통 연예인이면 팬이어도 길에서 모르고 지나칠 확률이 높은데.
상현은 그렇지 않은 셈이다.
그렇기에 굳이 대스타가 아니어도, 이 수준의 관심을 받는 것이다.
“아, 아몬드? 진짜지? 아저씨 저희 여기 666 김치찌개 2인분이요.”
“어쩜 좋아…….”
“저 사람이야?”
“사진 찍자고는 못 하나?”
“옆에 여자는 누구야?”
“글쎄. 동생?”
한번 눈치를 채니까, 귀에 들려온다.
전부 아몬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상현의 심장이 두근대었다.
팬들 중 몇이 눈치를 보며 다가온다.
“아몬드님. 저, 저도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사인이요!”
점장도 오히려 좋다는데.
상현이 거절할 이유는 없다.
“물론이죠.”
그는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초짜 스타 아몬드가 이제 막 인기를 체감하고 있던 그 시각.
오랜 기간 활동이 없던 한 계정이 ‘라이브’ 상태가 되었다.
[전자파 님이 스트리밍을 시작합니다!]무려 3년 만의 컴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