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cher's streaming RAW novel - Chapter 821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289화
94. 선봉(2)
중국전이 시작하기 며칠 전.
희철은 상현을 따로 불러냈다.
‘나를?’
상현은 별다른 안건도 없이 따로 보자고 한 것이 이상하였으나.
그답게 그냥 가긴 갔다.
희철의 객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자, 희철이 반갑게 그를 맞았다.
“어. 앉아. 잠시만. 차라도 좀 마셔야지.”
처음 만났을 땐 서로 어색함이 꽤 있었지만, 어느새 말을 편하게 하는 사이였다.
─탁.
희철은 호텔에 구비된 작은 잔에 차를 내오며 그에게 건넸다.
따스하게 올라오는 기운이 상현의 손 주위를 감쌌다.
“할 얘기가 있어서 불렀다.”
“아.”
상현은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갸웃했다.
보조 지휘관들을 두고 자신과 전략 회의를 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다시 돌아오자마자 긴히 할 얘기라는 건 뭘까.
“아…… 우선…….”
의외로 쿠키는 별로 의미가 없게 들리는 잡담으로 이야기의 운을 떼었다.
재미가 없진 않았다. 상현 역시 그의 이야기를 긴밀히 듣는 건 처음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이런 이야기까지 나왔다.
“난 내 사연을 얘기한다는 게 늘 두려웠거든. 근데 상현이 넌 이미 다 했었잖아. 그래서…….”
희철은 우승하면 그가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영상을 찍기로 했단다.
이에 상현은 난트전 때가 생각나서인지, 할 소리 못 할 소리 다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 나서야 본론이 흘러나왔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난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본론……?”
상현은 이제야 본론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희철은 필요할 땐 꽤나 단도직입적인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서론이 길었던 걸 보면, 꺼내기 쉽지 않은 얘기였다.
“상현이 네가 완전한 리더가 될 수 있는 때가…… 왔다고 느낀다.”
“……!?”
본론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큼이나 상현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사실 리더 포지션은 거의 항상 팡어의 몫이었다.
특히 희철이 지휘대를 잡으면 더욱 그러했다.
그의 스타일상 리더가 기본적인 전쟁 개념을 모르고 있으면 게임이 제대로 굴러가질 않으니.
굳이 팡어가 아니라도 당근 같은 사람이 하는 게 맞았다.
‘설마 내 지략이 벌써 그 정도인가?’
상현은 말도 안 되는 망상까지 하게 됐다.
“처음 네가 왔을 때. 사실 걱정이 많았다.”
희철은 이제야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못할까 봐요?”
그 말에 희철이 피식 웃는다.
“못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 오히려 반대다.”
“?”
“너무 잘하니까.”
“!”
그랬다. 국가 대항전 팀은 200명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조직이다.
그런데 새로운 자가 너무 뛰어나다는 이유로, 조직의 우두머리가 그자를 위주로 갑자기 모든 걸 재편성한다면 조직 간 신뢰는 와해될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진행됐어야 하는 일이었어.”
치승과 희철은 처음 아몬드를 데려올 때, 그를 차기 리더로 키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를 리더로 키운다는 걸 다른 멤버들이 알아서 안 됐다.
조금은 불편한 그런 진실을 희철은 이제야 털어놓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거의 혼자만이 짊어져야 했던 짐이었다.
사실 이는 리더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이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그의 말대로, 때가 왔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선수들이 너를 인정하고, 그걸 넘어서 네게 의지하고 있다.”
기존에도 계속해서 그런 흐름이었으나, 일본전 이후 모든 선수들은 상현을 완전히 신뢰했다.
그의 실력, 인격, 투지 등 모든 것들을.
희철은 이때를 기다린 것이다.
그는 이때가 올해 안에 안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만, 상현은 상상 이상으로 활약하여 선수들의 신임을 얻어냈다.
단순히 게임을 잘해서가 아니라, 한때 국가대표를 노렸던 한 사람으로서 이곳에서 존경을 받고 있다.
아닌 척해도 사실 모두가 그의 정신, 훈련 방식, 마음가짐을 배우고 있다.
이미 그는 단순한 전투력 100%의 에이스 플레이어가 아니라, 국가 대항전 팀의 큰 축이다.
마치 예전 희철이 그러했듯이.
“그러니까─”
희철의 잠시 숙여졌던 고개가 올라선다.
그의 눈빛은 간곡했다.
뭔가 큰 부탁을 하고 싶은 그런 눈이다.
“네가 진정한 리더가 되어줘라. 이번 대회에서만이라도.”
* * *
그렇게 중국전이 시작됐고, 어느새 2경기.
“뭡니까!? 기마 궁수 부대! 살아났어요!?”
미로의 진법에 빠져있던 기마 궁수 부대가 다시 중심을 잡기 시작하고.
“그뿐이 아니라 활도 쏩니다! 궁수부대를 기어코 찾아서!!”
심지어는 궁수 부대까지 색출하여 타격을 입힌다.
퍼버버버벅!
일제히 쏘아진 화살이 궁수부대를 향해 내리꽂혔다.
몸, 팔, 머리 등. 어디 하나 사정 봐주지 않고, 무참히 명중되는 화살들.
“아니, 지금 달리면서 쏘는데! 명중률이!!”
중국의 궁수부대가 한참 동안 기마 궁수들을 제대로 맞히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굉장한 명중률이었다.
이는 역시나 활 문명의 플레이어들과 그렇지 않은 문명의 플레이어들 간에 나타나는 두드러지는 차이점이었다.
“중국 팀의 사실 유일한 약점이 원거리 무기를 다루는 데 능숙한 선수층이 적다는 거거든요!? 근데 그것도! 중국 기준에서 그런 거지! 저 사람들도 잘 맞혀요!!”
“맞습니다!? 지금 그냥 기마 궁수 부대들이! 무빙이 신들렸거든요!?”
“분명히 우왕좌왕했었는데! 한순간에!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 * *
처음 진법에 당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마 궁수 부대가 제대로 싸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쿠키가 언제 도와줄지, 혹은 안 도와줄지가 논점이었지.
이들이 임무를 완수할지 말지는 논점이 되지 못했다.
그건 유비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시선은 기마 궁수가 아닌, 조선의 본대를 향해 머물러 있었다.
그야 유비의 눈에 저 기마 궁수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었다. 진법 변환에 크게 당황하여 스스로 넘어지기까지 하는 추태를 보이는 이까지 있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막다른 길에 가로막혀 창병들에 둘러싸여 처참히 죽어 나갔다.
어떤 자는 실수로 창이 수도 없이 뾰족하게 솟은 곳으로 뛰어들어 꼬챙이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니, 기마 궁수 부대의 생존 여부보단 쿠키의 다음 대응이 훨씬 전쟁의 큰 맥락에서 중요했다.
이는 분명 옳은 판단이었다.
그런데─
‘뭐지.’
──퍼버버버벅!
중국 궁수 부대의 숫자가 일순간 확 줄었다.
지휘관의 화면엔 각 병과별 머릿수가 표시되기에, 숫자로 바로 알 수 있었다.
[궁병 43 → 31]순식간에 12명이 죽었다.
안 그래도 빡빡하게 편성한 궁병 부대라, 숫자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궁수 부대만큼은 저 미로의 진법에서 가장 핵심지에 있다.
궁수부대의 원거리 사격을 보호하면서, 앞으로 천천히 나가며, 적의 돌진을 와해하기 위한 진형이었는데.
그 핵심인 궁수 부대가 타격당했다.
그는 기마 궁수 쪽을 볼 수밖에 없었다.
“!”
유비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게 아까 전 그 부대라고?’
분명 같은 부대인데, 낯설다.
아예 다른 부대를 보는 느낌이다.
아까만 해도 우왕좌왕 오합지졸 같았는데, 지금은 완연한 정예 부대다.
유비는 원인을 찾기 위해 눈을 굴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건 하나.
‘선봉…….’
가장 빠르고, 가장 정확하게 달리고 있는 선두 주자.
[아아몬드]아몬드였다.
푸른 도포를 휘날리며, 가장 선두에서 부대를 지휘하고 있다.
‘이자가 앞에 오는 순간 완전 기류가 바뀌었어.’
실제 전쟁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똑같은 실력의 소대가 똑같은 임무를 똑같은 과정으로 수행하더라도, 누가 선봉을 잡느냐, 누구의 명령을 받느냐에 따라 군의 전투력이 아예 달라지는 경우.
그래서 중국의 고대 역사에선 지략의 책사들도 중요시하지만, 예로부터 선봉을 잡는 무력의 장수들도 높이 쳐줬다.
전쟁이란 생과 사를 오가는 불안과 공포의 연속이다.
그런 와중에 자신 있게 선봉을 서주는 믿을만한 장수의 등을 보고 따라갈 수 있다면, 누구라도 몸에 도는 기운이 달라질 터.
이런 장수는 단지 앞에 서서 부대원들에게 등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전쟁을 완전히 뒤집는다.
‘저자가……?’
유비는 그게 아몬드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주시하던 자이긴 했으나, 이런 능력 때문에 주시했던 건 아니었다.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척!
선봉의 사인에 맞춰, 일제히 말머리를 돌리며 유유히 미로 안을 달리는 기마 궁수 부대의 모습.
그들의 눈은 오로지 선봉의 등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말도 안 되는 변수로 가득한 지뢰밭 같은 이 진법을 최대 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이건 광적인 믿음이 있지 않다면 불가능하다.
누구나 망설이고, 머뭇거리게 되어있다. 그 틈에 보병인 창병들에게 조여지는 것이다.
그 잠깐의 망설임이 모여, 결국 보병이 기마병을 따라잡게 만드는 것이 이 진법의 핵심 심리전이다.
그러나, 저들에겐 믿음이 있다.
아몬드가 헤쳐나간다면, 길이 있다.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1%의 의심도 하지 않고 있다.
그 확신에 가까운 믿음이, 없는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실제로는 길이 없음에도, 그들이 함께 달리면 생기는 것이다.
척!
선봉인 아몬드가 다시 한번 활시위를 당긴다.
그제야 부대원들은 그의 등에서 눈을 떼고, 타깃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이 과정마저 기계처럼 빠르고 완벽하다.
두 발로 잡는 균형, 수평으로 당기는 시위, 말의 움직임에 대응하며 고정되는 타겟팅.
그리고, 스륵─
흔들림 한 번 없는, 마치 유령이 지나간 듯한 릴리즈.
──파아아앙!
이렇게 쏘아진 화살이 빗나가길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어 보일 정도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쩌렁쩌렁한 함성이 울려 퍼진다.
유비마저 전신이 저릿거린다.
저 아래 있는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궁병 31 → 12]궁수 부대는 사실상 힘을 잃었다.
이 숫자로는 200 대 200 싸움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힘들었다.
기마 궁수 부대는 기어코 자신들의 미션을 수행해 낸 것이다.
유비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이러면…….’
분명 자신이 공세를 이어나갈 턴이었다.
마치 오목처럼, 한 번 공세를 이어나가는 수를 두기 시작하면 상대는 막아야만 하고, 계속해 전술을 끌려다닌다.
상대가 뭘 내는지에 대한 대응책만 생각해야 하고, 자신이 뭘 낼 수는 없는 상태가 된다.
지금의 진법으로 유비는 분명 공세를 가져왔어야 했는데.
그래서 쿠키가 어떤 대응을 하는지 기다리면 되었는데.
‘…….’
쿠키는 미동도 없다.
조선의 모든 부대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기마 궁수 부대를 애초에 포기했던 걸까?
‘아니.’
유비는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이건 안전한 선택을 하기 위해 그들을 버린 선택이 아니었다.
1경기가 끝난 후, 쿠키와 눈이 마주쳤을 때 느꼈던 그 감각.
후욱……!
마치 빨려 들어가듯 했던 그 기운.
‘믿은 거다.’
쿠키는 기마 궁수 부대가 저 상황에서도 헤쳐나올 거라, 아니, 그 이상을 보여줄 거라 믿은 것이다.
유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여기서 대응책을 내놔야 하는 건 자신이었다.
그는 참담한 심정으로 다음 말을 판 위에 올린다.
턱.
흑돌이 판 위로 내려앉았다.
[관우]